여강(麗江)의 물빛 & 신륵사의 고색(古色)

 

 강월헌과 삼층석탑

 

12월을 여는 새벽은 영하8도를 넘나드는 강치로 시작했다. 여주 신륵사(神勒寺)를 찾아가기로 한 아침인데 아낸 미적댄다. 눈발이라도 펑펑 쏟아진다면 몰라도 하필 젤 추운 날 나설 건 없잖느냐? . 허나 해마다 이맘때면 어쩌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 신륵사생각이 나곤 했다.

 

 

쫓겨난 어린 왕 단종이 여강을 거슬러 유배 길에 올랐다가 발 디딘 땅이 이포나루여서다. 거기서 나흘간 걸어 영월로, 느닷없이 사약을 받아 살얼음 낀 청령포에 시신을 던져야 했다(1457,12,24). 한파가 씻었는지 하늘은 에메랄드 가을하늘 같다. 차창을 기웃대는 앙상한 나목들이 가끔 파란하늘의 구름을 걷어내고 있다 

 

 

신륵사와 강월헌(江月軒)을 굽이치는 여강(麗江;남한강흐름이 여주나루에선 잔잔한 호수같이 아름다워 여강이라고도 불렀다)은 내가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정오를 넘겨 신륵사경내에 들어섰다. 쾌청한 날씨지만 강치 땜인지 탐방객들이 없어 고즈넉한 사찰은 스산하다. 냅다 강월헌을 찾아들었다. 바위위에 걸터앉은 육각정자는 겨울햇살에 헛헛한 안마루를 말리고 있다.

 

나옹선사의 다비장에 세운 삼층석탑

 

정자 옆의 남루한 삼층석탑은 시종처럼 서서 내방객을 맞고 있다. 강월헌과 석탑을 떠받친 여강은 누가 잉크를 풀어헤쳤는지 남빛인 채다. 잔잔한 강물에 오리 떼가 물질을 하니 번지는 파장에 햇살이 물비늘을 친다. 나옹선사도 가부좌 틀고 남빛 여강의 숨 쉼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석탑은 선사의 영원한 숨쉬기자리(다비장).

 

도도한 여강

 

나는 활시위처럼 굽이친 여강 저만치 목선에서 뭍에 발 딛는 폐왕단종을 그려본다. 561년 전(1456) 한여름인 724일 단종은 창덕궁 돈화문을 나서 유배길에 오른다. 삼촌 세조한테 왕위를 이양했는데도 의심 많은 세조는 단종을 노산군이란 평민으로 강등시켜 내쫓으려 고심했다. 

 

 

그마저 불안했던 세조는 계유정난을 일으켜 단종을 유배시키고 얼마 후 사약을 보내 죽였던 것이다. 단종의 유배전갈을 들은 정순왕후는 숭인동 영도교(永渡橋)에 나와 갓신랑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16살의 신랑과 17살의 신부는 그 순간 이후 영원히 마주할 수 없는 비운의 부부가 됐다 

 

 

그날 단종은 광나루에서 허름한 목선에 올라 하룻동안 남한강을 거슬러 저기 이포나루선착장에 닿았던 것이다. 글고 나흘간 육로로 이동, 1456627(양력 729) 영월 땅을 밟고, 어음정에서 목을 추긴 단종 일행은 약 3km정도를 더 걸어서 주천면 신일리의 역골에 도착했다.

이포나루와 이포보

 

강월헌에 앉아서 한 많은 단종을 그려보며 나는 고금의 권세가들의 허망한 권력욕이 빚은 비극사에 혀를 찼다. 강월헌은 나옹선사의 호를 딴 정자고 옆의 삼층탑은 나옹선사의 다비장이였단다. 강월헌 뒤 동대(東臺)에 다층전탑이 있는데, 이 탑을 벽돌[]로 쌓아올려 벽절[甓寺]이라고도 부른다.

 

전탑

 

우리나라 탑 문화에 희귀한 전탑은 주위의 고목들을 거느리고 있어 품격이 더욱 빼어나다. 특히 전탑아래 660살 된 은행나무는 둥치 속에 관세음보살상을 품고 있어 경외감까지 자아낸다. 은행나무 뒤 팔작지붕의 다포집인 극락보전은 정조대왕이 1797년에 착공하여 3년 만에 완공했단다.

 

660살의 은행나무는 관세음보살을 품고

 

극락보전 정문 위千秋萬歲(천추만세)’라고 쓴 현판은 나옹선사의 친필이라. 내부를 장식한 목조아미타삼존불과 후불탱화·신중탱화·감로탱화와 지장탱화가 유명하다. 500살 된 향나무아래서 훔쳐보는 극락보전이 멋스럽다.

 

극락보전

 

범종각(梵鐘閣)뒤로 빠져 몇 발자국 옮기면 또 다른 향나무가 귀품을 뿜어낸다. 600년 동안 앙팡지게 몸매 가꿔 뽐내는데 신륵사의 고만한 고태를 더해준다. 600여년을 용트림하면서 조사당(祖師堂,보물 제180)을 수호하는 향나무가 형언할 수 없는 위엄 같은 걸 풍기는데 이 향나무는 잘생긴 미향(美香)이다.

 

500살의 향나무를 앞 세운 조사당

 

향나무와 갑장일 법한 조사당도 여강을 훑고 온 풍진에 고색창연하다. 지공(指空)선사와 나옹(懶翁)선사, 무학(無學)대사가 버티고 계신 비좁은 조사당전은 세 분의 법력으로 훤하다. 알 수 없는 형형함에 한참을 묵상했다. 나옹선사는 신륵사의 시주다.

 

지공, 나옹, 무학을 뫼신 조사당

 

나옹선사가 불도들의 야단법석을 뒤로하고 남한강을 따라 남행하다 여기 벽절[甓寺]서 잠시 머물다 입적한다. 구름같이 모여든 신도들로 신륵사중흥이 이뤄져서다. 나옹선사의 정골사리(頂骨舍利)를 봉안한 부도는 사찰북쪽 언덕 있다 

나옹부도

 

신륵사란 이름은 미륵(彌勒) 또는 나옹(懶翁)선사의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막았다는 전설에서 비롯함이란다. 경내를 빠져나와 여강가를 걷는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마른풀이파리를 헤집는다. 마른 잎 뒤척이는 소리가 미풍이 된다.

 

 

겨울미풍이 강물위에 잔주름살을 새긴다. 물오리들이 바위에 올라서서 텅 빈 공간에 훼를 친다. 튕기는 물방울이 허공에서 햇빛에 영롱하다. 멈춘듯 싶은 여강은 흐르고 시간의 더깨는 여울이 된.

2017. 12. 01

 

신륵사템플스테이장

범종각과 법고

조사당 앞 5백살의 향나무

6백살의 은행나무와 보살상

 

파사산성

파사산성은 영동지방과 기호지방의 수로교통의 요지인 이포나루를 지키기 위해 쌓은 성이다. 이포나루는 여주와 양평을 오가는 차량과 물자를 10여차례 건너주고 강은 수 많은 배들이 오가서 주막과 여각이 성황이였다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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