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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다섯시간 반을 완주할 수 있을까? - 별뫼`가학`흑석산

다섯 시간 반을 완주할 수 있을까? - 별뫼·가학·흑석산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은 라일락을 키우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는 둔한 뿌리를 적셔 흔든다.“ -<T S 엘리엇>-


전남,영암,학산 달뫼에서 별뫼산 품을 후비고 든 시각은 오전 10시20분경 이였다.

아직 완치 됐다고 할 수 없는 몸으로 세 산을 종주하겠다고 벼르는 난 오만은 아닐까하고 자문하면서 자신과의 싸움에 들기로 했다.


산 아래 밭 뙤긴 청보리가 초록카펫을 깔고 길을 텄다.

그 길 따라 별뫼 산자락에 드니 내 키를 훨씬 넘는 시누대밭이 조붓한 터널을 만들어 놨다.

시누대숲을 통과하자 잔인한 4월은 아픔과 환희로 초목을 몸살 나게 하고 있는 거였다.

흑갈색나지 눈엔 연초록 혀들이 세상의 쓴 냄새를 맛보다 움츠리고 있고, 숲길 가엔 노랑 양지꽃이 땅을 뚫고 나와선 기쁨에 전율한다.

환희에 젖은 놈은 양지꽃 말고도 고깔제비꽃과 바람꽃이 작은 얼굴로, 산자고와 얼레지가 웃느라 볼이 찢어졌다.

갈갈이 찢어진 그들 얼굴이 더 아름답다. 어쩜 고혹스럽기까지 하다.

허나 진홍 진달래는 눈길도 안주고 딴청을 떨고 있다.

웃는 얼굴은 바로 자기 같아야 한다는 듯. 이 세상에서 진달래를 가장 사랑하는 놈은 애호랑나비다.

그놈은 진달래가 필 때를 기다려 캄캄한 야밤에 애벌레모습으로 땅을 가르고 나와 풀과 나무에 기어올라 동트기 전에 우화(羽化)를 한다.

우화를 막 끝낸 암컷은 그의 페르몬으로 하여 인근의 수컷들이 죽자고 달라붙어 짝짓기를 하는데 딱 한 번의 사랑놀이로 일생을 마감해야 한다.

싸가지 노란 수컷이 암컷의 처녀딱지를 때자마자 임신시키고 분비물로 정조대를 채워 놓는다는 거다.

암컷은 진달래만 먹고 사는데 진달래가 질 때면 알을 낳고 죽어야 함이다.

4월은 잔인하다.

수컷은 더 잔인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그들 얼굴을 카메라에 담으며 반 시간을 오르니 바위들이 바리게이트를 치고 길을 막기를 수십 번이다.

동아줄에 몸을 맡기고 지팡이에 의지하며 땀을 쏟는다.

별뫼산은 별을 보는 산이란데 정상에 오르기도 전에 현기증별맛을 보게 한다.

빡센 바위길에 잠시 숨 돌리자 빨간 진달래무리 뒤로 월출산이 현란한 바위얼굴을 안무 속에서 선뵈고 있다. 어디서 봐도 그놈은 멋지다.

줄차게 가로막는 바위도 정오가 되니 결국엔 별뫼 정상(465m)을 내놓는다.

내가 가야할 가학·호미·흑석·두억산 연봉이 남쪽을 향해 하늘금을 그었고, 그들이 펼친 검은 산자락엔 산벚꽃이 도장밥처럼 군데군데 번지고 있다.

동쪽 깊숙이 파고든 바다는 영산방파제에 갇혀 푸른 호반을 만들었다.

거기 호수에서 인 바람은 청보리파도를 타고 와 여기 산정의 나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다. 감미롭다. 아~! 상쾌하다. 잔인한 4월은 여기선 환희다.

내리막길도 바윈 나를 두렵게 하기일쑤다.

女산님들은 비명을 지른다. 공포감인가?

공포심이란 것도 해낼 수 있다고 여길 땐 두려움일 뿐이고 그것을 통과했을 땐 성취의 쾌재를 맛보게 하는 즐거움이 된다.

잔인한 4월이 환희이듯 어떤 공포감은 즐거움이 된다.

1시10분쯤 흑석기도원 갈림길에 닿았고 난 완주하기로 이미 작심한 바여서 가학산을 향한다.

가학산 옆구리에 바위 호미봉이 뾰쪽할 뿐 흑석·두억산을 잇는 능선은 완만하여 내 행보가 굼뜰망정 세 시간여면 주파할 자신이 솟았다.

더구나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여자산님 두 분이 줄곧 동행하고 있기에 용기백배한다.

간혹 바위란 놈이 장애물을 설치했지만 산길도 육산이라 걸을 만하다.

가학산을 지나니 소사나무군락이 별천지를 만들었다.

그들 특유의 자잘한 가지들은 무수히 얽히고설켰는데 잿빛가지 눈을 찢고 나온 새싹은 자줏빛떡잎포장을 했는데 그 자줏빛이 온 산자락을 물들였다.


빛나는 자줏빛의 향연! 소사나무의 마술은 오늘 아님 내일로 막을 내릴게 뻔하기에 감상할 수 있는 행운을 얻음에 환희한다.

잔인한 4월은 소사나무를 아프게 하고 난 탄성을 지른다.

달뜸이란 것, 즐김이란 것, 행복이란 것도 대상은 바로 내 코앞에 머물고 그걸 소유하는 것도 내 자신일 테다.


행복은 곧 마음일 테다.

잔인한 4월에 잔인한 세상을 소풍 왔다가 즐기고 떠난 시인이 있다.

정말 잔인하리만치 그래 증오로 몸서리칠 만치 이 세상에서 천대받고 멸시당한 가난뱅이, 그 가난한 만큼 천진하고 순수했던 시인은 4월 어느 날 술집이 늘비한 뒷골목에서 쓸쓸히 죽어갔었다. 그는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류 됐단 누명을 쓰고 6개월을 옥살이를 해야 했고, 1970년엔 무연고자 정신병지로 끌려가 서울시립정신병원에 강제수용 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행방불명된 그를 죽었다고 동료문인들은 그의 시를 모아 ‘새’란 유고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세상의 온갖 천대를 받은 그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라고 노래한 천상병(千祥炳 1930~1993)시인이다.

4월은 잔인하다. 허나 시인을 생각하면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 것도 같아진다.

4월은 잔인한 만큼 새 생명을 열어 제켜 우릴 환희에 젖게 한다.

오늘 난 그걸 만끽한다.

오지게 굼뜬 나의 산행은 세시가 넘어 흑석산 깃대봉에 이렀다.

허나 약속된 시간까진 충분할 것이므로 더 굼떠도 될 것이다.

흑석산 서북쪽 용지(용소)리엔 조선조에 율곡선생의 ‘1년5장원’이란 타이틀을 공동소유하게 됐던 출중한 실학자 해금 오달운(海錦 吳達運 1700~1747)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선생도 째지게 외롭고 가난한 처지의 삶을 살면서도 면학에 매진해 18세기 조선조 지식층의 사회개혁의 일환으로 신문화운동에 투신하였으며 후학양성에 일생을 바쳤다.


하도 가난하여 관직에 몸담아 입에 풀질을 할 요량으로 40세가 돼서 과거에 응시했었는데 장원을 하였고, 그해에 치러진 회시를 비롯하여 4번의 시험에 장원을 하니 ‘1년5장원’이란 율곡선생의 이후 처음이라.

하지만 해금선생도 찰방이란 벼슬을 고작 10개월 남짓 하고 말았었다.

행복은 결코 물질의 풍요에서 오는 게 아니기에 가난을 구차 해 하지 않음 이였을 게다.

귀천시인도 해금선생도 평생을 가난했지만 행복했었다.

요즘 우리주변머리로는 다분히 역설적이다.

4월의 잔인함이 환희이듯 말이다.

다섯 시간 반의 산행 - 몸이 천근이 됐다.

집에 들어가면 환자(?)주제에 만용 부린다고 못마땅해 하는 아내의 눈치를 어찌 피할지 묘안이 떠오르질 않는다.

버스 속에서 저절로 스르르 눈까풀이 풀려 감아졌다.

2011. 0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