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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써니, 당신의 미소는 아팠던 나를 설악에 오르게 했죠 (대청봉)

써니, 당신의 미소는 아팠던 나를 대청봉에 오르게 하죠. (설악산)



“써니, 반년전만 해도 내 인생은 암과의 전쟁 이였는데

써니, 당신의 미소는 암의 고통을 사라지게 하지요

힘든 날들은 가고 희망의 날들이 펼쳐 지내요"


5일 후, 6월24일엔 서울삼성병원에서 나의위암치료 후 반년 만에 1차 병세점검을 받는다.

해봐야 알겠지만 나는 이미 자신에 차있다.

그러니까 작년 이맘때 뜬금없는 위암확정·수술을 통보받기 전의 밝은 일상으로 복귀한 채 어제 밤10시 집을 나서 버스에 승차 서동요에 합세했다.

새벽 3시40분, 한계령탐방지원센터에서 대청봉을 오르기 위해 서북능선을 향한다.

어둠이 삼라만상을 검은 수의로 입히고 고요까지 깊은 잠에 빠지게 하고 있었다.

헤드랜턴 불빛들이 칠흑어둠을 뚫고 적막을 깨트리며 긴 도깨비행렬을 이뤘다.

놀란 새가 비명을 지른다.

이름모를 풀벌레들이 야밤의 침입자들 불빛에 육탄공격으로 덤벼들다가 가미가제 신세가 되곤 한다.

참으로 인간이란 동물은 알 수가 없는 묘한 미친놈들이라고 두런거리며 적의의 눈길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특히 주말이면 유명산 등반길은 무단 침입한 인간들로 인해 그들은 비상이 걸리고 선잠을 새운다.

참으로 그들에게 미안할 일이다.

스틱 짚는 소리라도 안 냈음 싶은데 밤중 산길에 누가 감히 엄두나 내나.

별 죄의식 없이 정상에 오르겠다는 욕망에 그들의 단잠 따윈 안중에도 없겠다.

계단·돌길을 한 시간쯤 오르다 검은 숲 속에 유령처럼 얼굴 내미는 하현달이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함에 맘 뺏기는데 장대한 수묵화는 나를 휘둘려 포로로 만들고 있다.

일그러진 하현 달빛은 어둠에서 여명을 준비하고 새날을 지킴이 하고 있는가.

“써니, 좋은 날들을 떠올래요. 인생은 밝게 또는 어둡게 볼 수도 있죠. 불안과 절망은 당신 을 힘들게 할 뿐이죠.”

위암완치란 섣부른 장담은 금물인데도 나는 설악산 대청봉을 오르고만 싶었다.

산을 좋아하는 내가 15년전 산이, 등산이 뭔지도 모른 채 광복절연휴를 기해 친구 세 명과 설악산등정에 올라 대

피소에서 1박하고 새벽 대청봉에서 해맞이를 한 후, 하산하여 이틀 동안 오금도 못 펴고 앓아 누어야 했던 이후 대청

봉은 기대치에서만 살아있던 공염불 이였다.

지난봄에 몇 번의 등산이 자신감을 심어줬고 의뭉스런 암에 대청봉이

공염불로만 끝날까 조바심이 일었다.

하현달빛만 아니라면 하늘과 산릉이 한울일 텐데 주목의 시신을 앞세

운 서북능선이 선의 미감을 돋아내며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시신은 아름다울 때 주검으로 재탄생한다.

거기에 시간의 더께는 미의 극치를 이루게 한다.

나는 주검의 미학을 높은 산에 오를 적마다 생각하는데 오늘 여명 에

서 그의 미감은 형이상학까지를 넘나들게 한다.

사람도 저렇게 아름다운 주검이 될 수가 있다고 높은 산에 오르면 생각하는 거다. 시신기증으로 말이다.

‘써니’를 불러 80년대 우릴 미치게 했던 보니엠, 그걸 가능케 했던 원작

자 흑인가수 보비 헵(1938~2010)은 시각장애인 이였다.

역경을 딛고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의 불굴의 의지가 ‘써니’에 녹아있

다. 우리도 영화로 만들어 지금 흥행을 하고 있다나!

5시 반이 넘어 귀때기청봉에 거대한 바위와 옆에 삿갓을 씌운 시종 바위가나타나 난 문득 산초를 앞세운 돈·키오테

서북능선을 오르고 있나 착각했다.

이상을 향해 용기있게 행동하는 이상주의자 돈키오테가 종자 산초판사를 대리고 새벽설악을 오르는 당당한 모습을-


'레판도의 외팔이' 세르반테스가 장애를 극복하며 부조

리한 세상을 향해 외치는 풍자-돈키오테와 시종 산초판

사는 서북능선에의 지킴이고 안내자다.

돈키오테의 실루엣까지 삼켜버린 부신 여명은 초목에

초록 옷을 입히고 새들은 비명 아닌 아침노래를 부르며

날개짓 하면서 숲을 깨우고 잠결의 풀벌레도 코러스에

동참시켰다.

돈키오테와 산초판사를 디카에 가두려하다 포인터를 놓쳐 얼마나 후회했던지.

검은 바위는 천의 얼굴색으로 화장을 하고 만개의 자태를 선보이고 있다.

여명이 연출하는 천가지의 색깔로 단장하는 얼굴과 만상의 모습을 보려면 설악산을 오르라 하고 싶다.

시시때때로 변화무쌍한 바위얼굴들은 용아장성과 구곡담계곡에서 시리게 마주선다.

이마의 땀방울 훔치기조차 잊고 시간도, 일상도 까마득히 잊혀진다.

병꽃은 이미 시들고 철쭉은 오를수록 생기 돋아 방긋 웃으며

무성한 숲 바닥에선 앙증맞은 풀꽃이 보석처럼 빛나고 산함

박꽃은 초록 속에서 부시게 희다.

산함박꽃이 북한국화라도 사랑을 듬뿍 쏟고 싶다.

7시쯤 끝청에 올랐다.

좀 전에 지났던 귀때기청봉이 저만치 물러섰고 더 뒤론 가리봉과 주걱

봉이 가물거린다.

고려시대 안축(安軸, 1287~1348)은 불후의 시를 남긴다.

“금강산은 수려하기는 하나 웅장하지 못하고 (金剛秀而不雄)

지리산은 웅장하나 수려하지 못하지만 (智異雄而不秀)

설악산은 수려하고도 웅장하다 (雪嶽秀而雄)“


살아 천년 주목과 잣나무와 소나무, 분비나무와 전나무들의

엽수들이 하늘을 덮고 햇살은 뭉텅뭉텅 잘린 채 숲 바닥

에서 나뒹구는 데 향기 밴 미풍이 패부를 청소한다.

코 평수를 넓혀 심호흡을 맘껏 해본다.

누군가 설악은 오뉴월까지도 눈이 있다하여 설악산이라 했

다고 했다.

천의 얼굴, 만의 자태를 백·천 번 오른다고 설악을 어찌 맘

에 다 담을 수가 있으며 노래할 수가 있을까!

오를수록 개불알꽃대는 토실하게 이파리를 살찌워 떼거리

로 능성을 넘고 있는데 며칠 후 오는 산님들껜 개불알꽃 향

에 실컷 목욕하리라. 행복할 진저!

아름드리 거목들이 사라지고 눈잣나무를 비롯한 앉은뱅이 나무들만이 산정의 원형레이더기지를 돋보이게 하고 있고, 저 아래 중청대피소가 자리했는데 꽉 들어찬 산님들로, 그들의 옷들로 쉼터는 울긋불긋 만국기를 휘날리는 운동회라도 벌린 성싶다.

디카 밧데리를 사러 매점에 들렀으나 음료뿐이라.

1.5V밧데리야 부피나 무게가 별로여서 나 같은 어

중이 산님들을 위해 비치했음 싶었다.

하긴 생각이 좀 모자란 나 같은 위인이 몇이나 될 텐가?

7시가 한참 지났다.

햇볕이 따가워 졌다. 어디 엉덩이 붙일 자리가 없어 대

청봉을 오르다 갓길 바위 숲에서 쉬기로 하고 배낭을 내

려놨다. 대청과 중청을 오르내리는 산님들 보는 것도 즐겁다.

어느 방향에서 왔던 간에 모두들 대여섯 시간은 족히 걸렸기에 다리 풀리기 십상이라.

지친 그들의 숨소리와 말소린 한참 타령에 가깝다.

뭣 땜에 이 죽을(?)고생을 하고 있음인가? 몸 좋으라고

운동에 환장해서 온 건 아닐 것이다.

자기실현이란 셈할 수 없는 그 무엇들로 해서 생고생하

는 걸게다. 자아수련(自我修練) 아 닐까?

위대한 학자 송강 정철 선생도 저 아래 봉정암에 올라

“설악은 벼락이요, 구경이 아니라 고경(苦境)이며, 봉정

(鳳頂)이 아니라 난정(難頂)이로다”라고 빗대어 읊었겠

는가!

설악등반은 산님들께 산에 대한 로망을 키우는 로드맵이라고 난 생각한다.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오르고 싶었다.

6개월을 투병하면서 그 많은 세월동안 설악 오르지 못했던

게으름과 무능에 채찍질 했었다.

8시 좀 지나 드디어 설악정상에 섰다.

공룡은 은빛바위등걸을 뽐내며 아직 잠에 들어있나 싶었다.

3년 전엔 저놈의 공룡을 잡겠다고 오늘처럼 새벽에 무단침범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무모하리란 사냥이 결코 그렇진 안했던지 산행후기 <공룡

사냥 원정기>는 많은 호응을 받았었다.

그보다 한 참 앞선 15년 전의 바로 이 자리에서의 해맞이의 감격!

그 감격 못지않게 배고파 땅에 떨어뜨린 컵라면발까지 주어먹었던 ‘집나간 개고생’의 추억은 이제 환희로, 의지로

내 속에 또아리를 단단히 틀고 있는 거다.


설악(雪嶽)은 雪岳, 霜岳, 더는 설화산(雪華山)이라고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단다.

눈 덮인 산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득도하신 설산 히말라야란 뜻의 설산이라는 게다.

허나 오늘의 설화산은 인화산(人華山)이 됐고, 표지석 옆에서 사

진 찍고 싶어도 인파로 묘 책이 없어 물러서야 했다.

아래로 내려오니 사무장일행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8세에 점심이라니?

하긴 출발 전에 찰밥도시락을 하나씩 비웠으니 순서로 치면 점심이다. 그의 부름에 난 기꺼이 끼어들었다.

그와는 구면이지만 여태 담소 나눌 자리도 못 가졌었는데 살가운 친절에 미안했다.

더구나 그의 배려로 정상에서 기념사진까지 박았으니.

길고도 긴 설악예찬가 - 천상(天上) 설악가(雪嶽歌)가 생각나 두 구절만 옮겨본다.

“번뇌속의 세상만사 저 만치에 접어두고,

하늘 끝에 맞닿은 산 천산 설악 찾아가니 눈 산이라 설봉인가 흰색 빛나 설화인가,

시작 산길 어디이고 물꼬리는 어디런고

설봉 설화 천산 설악 세월녹여 품에 안고, 계절 따라 바람 따라 마음대로 펼쳐내니

춘삼월봄 가을이요 추삼월도 겨울이라, 봄이 바로 여름이요 칼바람의 겨울이니

여보게들 어리석게 춘하추동 구분마소“

9시가 지나 오색방향으로 하산에 들었다.

오색까지의 5.1km는 줄차고 빡센 급경사 계단길 이였다.

설악정상에 오르는 최단코스란 풍설에 만만히 생각했던 내가 만약 이 코스로 올 다면 이미 자진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배터지게 해찰을 한 탓도 있지만 하산에 세 시간을 죽였으니 오르는 사람들은 너덧 시간은 잡아먹기 일쑤일거란 생각

이 들었다.

더구나 무성한 숲 터널이어서 조망이 시원찮아 들머리 길로는 ‘죽음의 계단’일뿐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정오에 오색분소에 닿았다. 시작 전 걱정은 기우였고, 거뜬하

게 산행을 마칠 수 있었던 오늘을 아름답게 저장할 게다.

귀로, 새벽어둠으로 한계령쉼터에서 점봉산일대 감상을 놓

쳤다한 고문님께서 특별배려를 한다.

그분의 박식과 정열과 배려심에 난 감복한다.

또 하나 쓰지 않을 수 없는 일은 서동(박달재)을 꼬득여 선화공주를 소개받았다는 사실이다.

오늘 일이 되려고 수고하는 그에게 책<남김없이 내려놓은 우리명산 답사기>를 선사 했던바 그가 선하공주의 짝이란다.

그냥 지나칠 순 없잖은가?

서동의 꾐(작업) 탓에 서라벌 집에서 쫓겨난 공주는 옛날 울산에서 금강산을 찾아가다 설악산에 주저앉은 울산바위를 좇아 설악골에 숨었었는데 지금버스에 동승하고 있다니-.

선화공주는 참하고 순정하며 예쁘고 몸매까지도 가녀렀

다.

서동과 선화와 설악과 산행기 책이 얽힌 즐거움도 오늘

의 행복이다.

써니,

당신이 있어 나는밝게 살아갈 수가 있어요.

2011. 06. 19


혜시미
어쩌다 다시 만나게 된 강대화님...

얼마나 강대화님을 기다리면서 건강 걱정 했는지 모르죠?
이렇게 다시 올려주신 산행기를 대하니 눈물나도록 감사한 마음입니다.
조금 뜸 하신 것 같아서 연락해봐도 회원정보에 있는 전화는 되지않고
까페장에게 여쭤봐도 알수가 없다고 하니 답답했어요.
24일 속 시원한 결과 받으시고 오래오래 산행의 즐거움으로
많은 산님들에게 기쁨 주셨음 좋겠습니다.
옛 친구인 저도 늘 안심하게 해주세요...
2011-06-21
20:4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