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침맞기 딱인 철쭉제 - 자굴`한우`산성산

똥침 맞기 딱인 철쭉제 - 자굴·한우·산성산

10;20분을 넘겨 경남의령 내조리 자굴산 주차장에서 버스를 탈출해 싱그런 5월의 풋풋한 향에 몸을 던졌다.

완만한 경사를 이룬 숲길은 말랑말랑한 육질에다 연두바람이 묻어다주는 숲향 맛보기에 그만이다.

활엽수들이 연초록 이파리를 밀어내 펼치느라 몸을 비틀고 햇살은 연둣빛 이파리 혈관까지 투명시키는 신령스런 숲의 산책은 그대로 영혼을 살찌우게 한다.

연둣빛 이파리 실핏줄을 투사하는 5월의 햇살은 숲을 깨우고 촉촉한 표토 속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일깨운다.

그 두런거림이 숲 속을 흐르고 바람이 되어 산골을 훑고 산릉을 넘어 대지를 어루만진다.

5월의 바람은 연둣빛 스프레이다.

바람이 얼마나 많이, 진하게 스프레이를 뿌렸느냐에 따라 산야는 연두와 녹두 빛으로 그리고 녹색으로 달라진다.

숲길을 걸으며 달려오거나 달아나는 파스텔톤 산록에 눈 팔고 마음 뺏기다보면 나도 어느새 일상에서 까맣게 탈출한 숲의 일원이 된다.

이리도 빨리 삶의 때에서 벗어날 수 있음은 5월의 바람 탓이리라. 왜?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일컫는가.

연둣빛 바람인 까닭이다.

미당(未堂;서정주)선생께서 ‘자신을 만든 게 8할은 바람이다’라고 했듯이 5월의 여왕도 8할은 바람이 이뤄낸 작품일 터다.

난 그 연둣빛을 호흡하느라, 삼키느라, 거기에 녹아나느라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연두색으로 차일한 이파리들을, 그 속을 투사하는 햇살을 줘 담느라 몇 바퀴째 몸뚱일 비~ㅇ돌리곤 했다.

이러다 넘어지면 낭패란 걸 염하면서도 나를 감싸고 있는 연두의 황홀경에 미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산행초입에 애기똥풀이 애기똥처럼 노란꽃을 피웠더니만 양지꽃이 바통을 이었고, 은방울꽃, 개별꽃, 광대수염이 번갈며 웃고 있다.

연둣빛 세계가 더 돋보이는 건 그 속에 알 박은 말채나무와 노린재의 하얀꽃이라. 때 잃은 연분홍철쭉과 오므린 병꽃이 안쓰럽다.

한 시간여를 오르니 수직단애를 방패삼아 곧게 솟은 신갈나무가 연두이파리를 에메랄드하늘을 향해 사무친 그리움민치 흔들어대고 있다.

그 옆 깊숙이, 바윈 깊고 높게 패이고 갈라졌는데 수직으로 갈라진 사이에 돌출한 바위가 일품이고, 사이사이에서 촉촉한 물기를 짜내고 있었다. ‘금지샘' 이란다.

병자호란 때 침입한 오랑케(청)들이 여기서 솟는 물을 마시려하자 금새 말라버렸대서 붙은 이름이다나?

허나 내가 보기엔 샘치곤 여자의 은밀한 샘과 영판 닮았다.

굳이 말하자면 보장지(步藏之)샘 - ‘보장지(保藏池)’라고 했음 싶었다.

여기서 步藏之란 말은 여자의 아래에 있는 소문(小門)을 말함인데 유명한 퇴계선생의 일화가 또한 걸작이다.

선생께서 공조판서 명을 받고 한양에 도착하자 열 살짜리 꼬마가 평소에 궁금해 죽을 것 같은 질문을 했겠다.

여자의 소문을 ’보지‘라 하고 남자의 음경을 ’자지‘란 연유를 하문했던 것이다. 선생께선 당연타는 듯 친절하게 가르쳐 줬다.

여자의 소문은 걸을 때 감춰져서 ‘보장지’라 했으나 차츰 ‘장’자를 빼고 부르게 되다보니 ‘보지’로 부르게 됐고 남자의 음경은 앉아있을 때 감춰진다 해서 ‘좌장지(坐藏之)'라 하였으나 역시 ’장‘자가 빠지고 ’좌‘도 ’자‘로 발음하게 된 것이다. 라고-

난 한참을 그 보장지 앞에 머물며 5월의 여왕 보장지가 뿜는 시원한 녹색바람에 녹아들고 있었다. 정오가 됐다. 모처럼 동아줄을 잡고 바윌 오른다.

반시간쯤 오르니 자굴산정상(897.1m)이 넓은 마당을 만들어 놨다.

산님들이 식탐을 즐기느라 텃새 까마귀들이 울어대도 아랑곳없다.

나도 자미일행과 자릴 폈는데 아이더커플이 좀 상기된 얼굴로 나타났다.

전 같아선아직 한참 후에 나타날 텐데 그간 장족의 발전을 했나싶다.

산력이 붙음인가?

아이더가 푼 점심보따리의 반찬은 식도락(食道樂)보다는 시도락(視道樂)용인가!

갈뫼말따나 밤새움 했을 만하다.

식도락은 자미의 막 만든 통배추김치가 일품 이였다.

그 맛깔에취하고, 간질거리는 연두바람결을 마시며 여왕의 따스한 햇볕아래 만끽하는 오찬은 최상의 즐거움 이였다.

오후 1시 반쯤 한우산을 향해 출발. 반시간 후엔 쇠목재에 닿았다.

아니 자굴산을 하산할 때 산골은 심상치가 않았다. 뽕짝가요가 산골을 타고 능선을 넘나들고 있어 난장판에 잘못 들었나 싶게 했다.

한우산 정상을 잇는 갈지자 길은 아스콘으로 포장 돼 승용차가 꼬리를 물고 늘어졌고, 산마루엔 흰 차일이 상여만장처럼 흩날리고 있다.

자굴산 허리를 자르며 파고든 포장도로는 한우산을 넘어 뱀처럼 휘감아졌는데 이름이 ‘자골산관광도로’란다.

빈한한 철쭉 밭 뙤기 조성해 놓고 철죽축제를 한다고 의령군은 용감했다.

축제를 위해 산허리를 파 해치고 포장을 한 배짱이며, 산정상에 난장을 펼쳐 군민을 위무하는 위락서비스며, 그렇게 하느라 뭉텅이 돈 쓸 생각하는 선정이 눈물나게 가상한 것이다.

두대체 누구의 산이고 누구의 숲이며 누구의 돈이기에 용감하게(?) 만용을 부리는가?

저 아래에 호암 이병철 삼성회장께서 태어난 곳이 있다.

호암은 우리산이 민둥산이었을 때 박정희대통령과 비행기를 타고가다 산림녹화만이 부국강병의 길이라고 의견을 모아 박통의 후원 아래 산에 나무를 심었다.

지금 우리가 숨쉬는 청량한 공기는 그때부터 식재한 수풀이 만들어 주는 선물이다.

그 자연을 호암의 후예들은 파괴하며 난장판을 일구고 세금을 흥청망청 탕진하고 있다.

선생이 편히 잠들 리 만무하다.

아니다. 문명사회를 살아간다는 우리들을 철 안든 ‘아우들’이라고 측은하게 여기며 힐책하는 아루아코족의 분노가생각난다.

콜롬비아 시에라네바다 산록에서 살고 있는 그들은 지상의 중심, 너무 덥도 춥도 않는 엘도라도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데 아우들이 자연을 망가뜨려 엘도라도의 만년설이 녹아내리며 온난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단단히 화가 나 있다.

사실 지금처럼 온난화가 지속된다면 2100년엔 지구온도가 6.4도 상승하여 바다수면이 59cm나 높아져 지구상의 저지대가 물에 잠긴다고 유엔IPCC가 경고를 하고 있다.

아루아코족이 뿔날 만하다.

그들이 여기 한우산 난장을 목격하고 그들의 영적지도자인 마모(mamo)들이 모여 회의를 한다면 의령군수를 비롯한 책임자들을 불러 똥침 몇 대를 놓기 십상일 것 같다.

종아리 걷어 회초리로 때리기엔 회초리나무도 아까울 테니 말이다.

우리 지자체들 자연사랑·보호가 뭔지나 알고 고민 좀 했으면 좋겠다.

재직 시 치적 내겠다고 세금 낭비하는 어리석음은 훗날 똥침으로 벌 받기 딱 이라는 점을 새겨봐야 함이다.

산허리 잘라 관광도로 만들어 놓아봤자 남는 건 매연과 쓰레기와 소음이기 십상이기에 이젠 슬로우·시티 조성한다고 고민한데 의령군은 퀵·시티 만드느라 몇 십 억원 날리고 있는 건 아닌지?

찬비가 내린다는 한우산(寒雨山;830m)이 화병이 도져 뜨건 한숨 내뿜는 불화산이 될까 걱정이 된다.

아루아코족들은 나무, 숲, 물, 공기, 스치는 바람까지도 공생하는 자연이라고 아끼며 보호한다.

심지어 신발도 안 싣는다.

맨살로 자연을 체감해야 자연의 일부가 되는 소연이라는 게다. 소음축제장을 빠져나와 산성산을 향한다.

3시 반쯤 찰비고개에 이르렀을 때 난 외초리 날머리로 지름길 택한다고 애초부터 작심했었는데 누구하나 쉬 동행할 분이 없어, 또한 오늘 산행이 그리 팍팍 하지만도 안 해 산성산까지 종주하기로 했다.

자미일행은 잘 낫다는 듯 앞서 날고, 나비아타와 아이더 두 커플에 끼어 아이더 말따나 오늘 아님 언제 또 여길 오겠느냐? 라고 산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이더커플은 뒤처지고 나비아타커플을 따라 산성산 정상에다 스냅사진까지 박았을 땐 오후 4시였다.

연두바람과 연초록 숲은 여섯 시간의 산행도 지치게 하질 안했다.

내깐 나비아타커플 배려도 하고 또한 홀로 산행즐김이 나의 버릇인지라 5월의 여왕 품을 맘껏 즐기다보니 가파른 내리막길이라.

반시간을 그렇게 즐기는데 앞에 산님들 한 무리가 떠들썩하다.

여섯 명의 산님들은 나비아타 팀원들 이였다.

산을 내려와 찰비계곡물에 모두들 족욕을 즐긴다.

저만치 산등성에서 빨간색버스는 우릴 기다리고 있기에 망중한을 즐기는 거었다.

늦게 도착한 나비아타커플에게 팀원들이 (재미 보라고)방을 빼주자 나도 덩달아 자릴 털고 버스에 닿았을 때야 그 버스는 우리의 버스가 아닌 대구의 ‘산을 닮아가는 산악회’ 버스란 걸 알았다.

그 버스 처지도 우리보다 더 맹랑했다.

43명의 회원 중에 예정된 날머리인 외초리로 간 분은 한 사람이고 죄다 이곳 벽계리로 잘 못새들어 온어중이들 땜에 여기에 있단다.

그때야 우리도 예정된 날머리(외초리)완 정 반대편으로 왔음을 깨닫는 어중이가 됐음을 자각했다. 낭패였다.

심난한 건 앞을 떡하니 가로막고 있는, 좀 전에 넘어 온 산을 다시 넘어야 한다는 억장이 무너지는,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9명이니까, 대부분 회원 아닌 손님들이고 女산님이 다섯 분이니까, 나비아타신랑은 휴대전화로 산 넘어 집행부와 씨름을 하고 있는 거였다.

버스기 이곳으로 와야 한다고-.

우리가 가기엔 한 시간여가 걸리고 이미 모두가 지쳐있다고 나비아타신랑은 길에 덥석 주저앉아 휴대폰에 흥정(?)을 하나 싶었다.

그런 그가 한참 후 버스가 이리로 오기로 했다고 외치자 여덟 명은 개선장군처럼 쾌재를 부르는 거였다.

금방까지 심난해 울상이던 사람들이 닭대가리처럼 좀 전의 시름을 잊고 재밋게 시간 보낼 궁리를 하느라 한 말씀씩 뱉곤 했다.

산님은 산에선 단순해 행복하다.

배낭에서 남겨온 먹거리를 모두 내 놓으란다.

어느새 나비아타신랑이 술을 사와서 일순 건배를 하다 바닥이 나자 ‘조 가치’란 이름을 불러 웃긴 女산님의 신랑이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드만 술과 닭국물을 들고 왔다. 이곳 백계야영장엔 가게는 없고 음식점도 하나여서 안주는 없단다.

푸집한 닭국도 인심 좋은 식당아짐이잘생긴 자길 보고필이 꽂혀준 거란다.

허나 남겨온 반찬과 과자가 술보다 많았던지 술이 먼저 바닥을 비우곤 했다.

나비아타 팀에 몽돌처럼 나 혼자, 낫살깨나 먹은 노친네가 끼어 좀 어색할까 싶었는데 그건 기우였다.

그들은 나를 없는 셈 쳤는지, 안 보이는 척 함인지 전혀 의식하지 안한 채 '보~지 마세용' 하면서 스냅사진도 어지간히 박아댄다.

하여 나도 덩달아 너털웃음에 주등이가 째졌다. 젊어지고 있었다.

시에라네바다 형님들이 이 광경을 목격했담 우리에게도 똥침을 줄텐가?

일곱 시가 되갈 무렵 버스는 나타났다.

우리 모두는 미안함은 맘속 깊이숨겼던지 누구하나 미안타고 빈 허드랫말 한자리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게 외도람 외도는 어떤 땐 신 날 때가 있다.

이래저래 갈뫼는 나에겐 편하다.

2011. 05.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