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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봄,갈, 겨울의 몸살 - 민주지산

봄, 가-ㄹ, 겨-ㄹ의 몸살 - 민주지산


혹독하고 끈질긴 겨울은 엊밤으로 물러섰던지 봄기운 서린 아침을 버스는 신나게 달렸다. 세 시간 후 10시쯤 충북 영동 물한계곡에 내린 난 잔뜩 웅크리고 있는 겨울의 몽니에 움질거렸다.

계곡의 산비탈과 음지엔 하얀 겨울이 덕지덕지 살아있었고, 깨 벗은 나목들은 앙상하게 떨고 있었으며, 바위들을 건너뛰는 물살은 하얗게 부서져 은빛수정 아트페어를 연출하고 있었다.

다만 저만치 깊은 골에서 겨울잔영을 쫓는 물소리만이 세레나데처럼 감미롭다.

부서진 낙엽과 질펀한 눈 덩이가 바위너덜 길을 힘들게 하는데 꺽다리 삼나무떼거리들이 라지(裸枝)들로 구름을 이고 하늘을 떠받들고 있다. 보다는 그 옆에서 어찌 그리 닮았으면서도 초록이파리로 차일을 치고 당당히 서있는 잣나무들은 누구 약 올리기라도 함인지?

그 틈새로 붉게 화장한 소나무도 훤칠하게 자태를 뽐냄에 시간을 훔쳐간다. 반시간을 빼앗겼을까? 갈림길에서 쪽새골로 들어선다. 대피소를 향하는 가파른 비탈길은 빡센데 눈 녹은 흙길은 질척대 미끄럽기 짝 없어 이마에 땀이 송송 맺는다.

바사삭 부서지는 가-ㄹ낙엽 위에 겨-ㄹ 눈이 누더기처럼 붙어 봄 햇살에 부대껴 눈물 짜고 있다.

저만치 산능선은 사자의 갈기같이 관목들이 촘촘한데 한 떼의 바람이 그 갈기를 훑고 와 세 계절의 짠맛을 느끼게 한다.

숨 떨어진 기억도 없을 쭉정이이파리를 붙들고 가을만가(晩歌)를 부르는 당단풍이 처연하다.

11시 반쯤에 무인대피소엘 닿았다. 굴뚝에서 연기가 솟기에 안을 기웃거리니 대전에서 왔다는 산님들이 무순 대피를 하느라 떠들썩하다. 정오가 비켜서자 민둥민둥한 ‘민두름산’정상(1241.7m)이 발아래 깔린다.

북쪽엔 건너 뛴 각호산 너머로 첩첩 산릉들이 산해(山海)를 이뤘고, 남쪽 바로 아랜 석기봉이 등대마냥 우뚝 솟아 가없이 펼쳐진 산해의 파도를 잠재우고 있는 성싶었다.

사방이 온통 산 오름 파도로 넘실대는데 아스름한 덕유산은 누가 쇠스랑으로 파헤쳤는지 하얀 상체기를 감추질 못해 볼썽사납다.

정상에 서니 영낙없이 우리말 ‘민두름산’이다. 일제(日帝)가 억지로 한자로 옮긴다고 밋밋할 ‘岷’자와 두루‘周’자로 무리하게 표기해서 민주지산이 된 게다.

하산길에 쪽새골 갈림길을 지나 석기봉쪽으로 1km쯤 가니 시장기가 발목을 붙잡는다.

뭉그적대도 서동요들은 인기척도 없다. 양지쪽에 노거수(老巨樹)가 기괴한 자태로 오수를 즐기고 있어 그의 발부리에 자리를 폈다.

기갈을 달래며 반시간을 까먹어도 서동요는 소식 무다. 내 등을 받치고 있는 갈참나무는 참으로 잘 생겼다. 아니, 오늘 노거수들은 그의 괴이한 몸짱으로 나의 눈길을 훔치며 탄복케 하는 거였다.

햇빛을 향한 줄찬 의지는 눈·비바람을 피해야 했고, 옆의 성가신 동료들도 떼어놓고 살아야 했을 테니 자연스레 휘고 부러져 난 상처는 옹두라지가 돼 세상에 하나뿐인 몸을 만들었을 거다.

그의 괴이한 자태는 몇 백 년을 처절하게 살아 온 삶의 때깔이어서 아름답고 고상하다. 그들의 경탄해 맞을 몸짓은 자연이 빗은 또 하나의 아트페어일 것 같다. 자연에 순응하는 자만이 장수할 수 있고 아름다워질 수가 있을테다.


남태평양 호주동쪽엔 바누아트(수도;포트빌라)란 섬나라가 있다. 1인당 GNP가 1,400$인 세계최빈국이면서 행복지수는 세계1위라고 2006년 영국 어느 기관에서 발표했었다.

그들이 행복한 건 욕심 부리지 않고 자연에서 필요한 만큼만 얻는 자연동화적인 삶을 살기 땜이란다. 사실 인간도 애초에 자연의 한 생명 이였다.

자연을 정복한다는 게 시건방진 치기였다. 3.11 일본 동북대지진 앞의 21세기 우리들의 초라한 모습이 그걸 실증한다.

1998년4월에 여기서 발생했던 비극도 자연 앞에선 겸손해야함을 일깨워준다.

그날 천리행군 중인 특전사대원들은 봄날이어야 할 이곳에서 느닷없는 폭설과 추위에 6명의 대원들이 목숨을 잃어야만 했었다. 아까 대피소도 그 비극의 사후처방이란 안타까운 산물인 거였다.

무지막 갈림길에서 물한계곡으로 향한다.

1시 반이 지났다. 나를 여기로 이끈 또 한 사람을 생각한다.

그때 그날들, 그는 여기서 얼마나 머물렀을까? 지리산에서 덕유산을 거쳐 이곳에 왔던 그는 왜 소백산을 넘지 안했을까?

1951.5월,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패퇴하는 북한괴뢰군들 속에 이곳에 은거하며 활동했던 골수빨갱이들도 죄다 월북했었다.

그는 남아서 잔여 대원들을 모아 청주교도소와 인근의 경부선군용열차를 습격하는 등 ‘서부활극영화’같은 활동을 하며 남부군사령관이 됐었다.

그는 다시 남하하여 1953.9.18일 지리산 빗점골에서 49세로 불꽃일생을 마감하기까지 항일투사요 독립운동가 이기도 했었다.

6.10만세사건에 연류 돼 해방까지 13년의 옥살이는 꺼질 줄 모르는 민족의 독립과 혁명이란 신념 땜 이였다.

그는 자신의 호인 ‘화산(火山)’처럼 독립과 혁명에 몸 불살랐다.

누군가는 그를 한국의 체 게바라라 부른다.

그가 빨치산대장이 된 곳은 이곳 민주지산에서였다.

그는 이현상이다. 난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생각할 땐 이곳 민주지산을 떠올리곤 했다. 그래서 여기를 밟고 싶어 했었다.

시대의 아픔-이데올르기의 희생자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을 해본다.

석기봉이 코앞에서 얼씬대고 가파른 내리막길은 눈이 쌓여 신경을 날 서게 한다. 바람이 자켓 속을 파고들어 소름 돋게 한다. 위안은 오직 노거수들의 우아한 자태!

미쳤다. 이런 때 홀로산행은 미친 짓이다. 미치지 않으려 얼마나 발버둥쳤을까?

거대한 갈참·물오리·자작·팽나무들이 고사목인양 까맣게 타서 허공을 가르며 겨우살이 키우기에 미쳐있다.

겨우살이 하나라도 더 키우는 게 위엄인가! 새집처럼 나지 사이에 붙들어 매진 겨우살인 그렇게 높이 있어야만 되는가? 미친 짓 아닌가. 그들 땜에 미칠 일은 나다.

그놈들이 샛노란 꽃을 피우질 안했담 오늘 민주지산에서 꽃을 볼 수는 없었을 게다.

봄은 꽃으로 명증한다고 화신(花信)은 거목 끝에 매달려 나를 미치게 한다.

겨우살이에 미치다보니 혼자란 사실도 시간도 잊어버렸다. 한 시간을 그렇게 까먹었다.

잣나무삼거리-쪽새골이 수선하다. 그쪽에서 서동요님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들은 뭘로 미쳤을까? 아마 되짚어 오는 미끄런 하산 길에 정신 잃고 미쳤을 테다. 그곳엔 겨우살인 없었기에 말이다.

그들은 민주지산의 화신도 결코 목도하지 못한 채 뭐에 미쳤을까?

겨우살이의 화신은 물한계곡까지 내려왔던지 오전의 고드름 아트페어도 파장을 준비하고 있다.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는 말로, 미쳤다고 홀로 산행 했던 미친 짓을 자위하는 거였다.

미쳐서 행복할 수만 있다면 미쳐야지.

행복한 하루였다.

2011. 03.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