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송곳과 골풀무사랑

 

-광한루-

 

1582년경(선조15) 송강은 전라도관찰사로 1년여 있을 때 남원광한루에 연못을 파고 세 개의 섬을 조성증축 하였다.방장섬에 배롱나무, 가운데 섬엔 대나무오작교 옆의 영주섬엔 연정을 짓고 호수엔 연꽃을 심었다

 

恢拓銀河弄明月

은하연못 크게 넓혀 밝은달과 노닐고

栽培塢竹挹淸風

둑위에 대를 심어 맑은 바람을 들였네

一年南國巡宣化

한 해 남녁관찰사로 일할 적에

只在淸風明月中

청풍명월속에서 지냈네

 

호탕한 풍류시인 송강이 광한루에서 파안열락하며 읊은 시다.

 

-방장섬-

 

이때 남원관아엔 앳된 진옥(眞玉)라는 동기(童妓)가 있었는데 송강의 유명세를 익히 알고 있었다.

침소에 든 송강이 잠 못 이뤄 뒤척이던 어느 봄밤, 밖에서 인기척소리에 이어 누군가가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송강이 자리에 누운 채 대답하자 장옷을 걸친 여인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녀가 장옷을 벗자 앳된 여인의 화용월태(花容月態)에 놀란 송강이 엉거주춤 일어나 앉자 그녀가 다소곶이 아뢴다.

 

 

 

"천기(賤妓) 진옥(眞玉)이라 하옵고 일찍부터 대감의 성을 익히고 글을 흠모해 왔습니다.”

송강이 다급히 그리고 의아하단 듯 묻는다.
"그래? 내 글을 읽었다니 무엇을 읽었는고?"
"제가 거문고를 타 올릴까요?"하며 그녀가 읊는다.


居世不知世(거세부지세)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을 모르겠고
戴天難見天(대천난견천) 하늘 아래 살면서도 하늘 보기 어렵구나
知心唯白髮(지심유백발) 내 마음을 아는 것은 오직 백발 너 뿐인데
隨我又經年(수아우경년) 나를 따라 또 한 해 세월 넘는구나.

 

-오작교-

 

가는 세월의 무상함을 한탄하는 외롭고 쓸쓸한 송강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시였다.
그렇게 진옥을 만난 송강은 그녀의 샘솟는 기지와 담대함과 비상한 가야금선율에 마음을 달래고 우울함을 잊었다. 하루 이틀 두 남녀의 교감은 사랑으로 점화 돼 서로를 보듬고 영육을 불태우는 거였다.

 

48세의 송강과 십대의 진옥은 세대를 뛰어넘는 사랑에 몰입한다. 영계를 품은 송강은 진옥의 머릴 얹어주고(처녀가 결혼 후에 머리를 올리는) 이름도 자미(紫薇)라  불렀다.

방장섬에 배롱나무(자미화)를 심어 자축하면서 로맨스그레이에 빠져들었다.

허나 만남은 늘 이별을 동반하듯 송강은 도승지가 되어 한양으로 떠나면서 자미에다음과 같은 시로 석별의 정을 나눈다 

 

一園春色紫薇花

봄빛 가득한 동산에 자미화 곱게 펴

纔看佳人勝玉釵

그 예쁜 얼굴은 옥비녀보다 곱구나

莫向長安樓上望

망루에 올라 장안을 바라보지 말아라

滿街爭是戀芳華

 

 

거리를 가득 매운 사람들 다 네 모습 사랑하리라

 

-詠紫薇花(영자미화)에서-

 

 

자미에게 홀딱 빠진 송강의 질투심이 홍건이 묻어나는 시다저잣거리 어느 누구 앞에도 나서질 말고 오직 자기만 생각하고 있으란 투정이고 당부였다.

 

1585, 50세의 송강은 동인의 탄핵으로 담양으로 내려가

석영정에서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쓰게 된다.

이때 사미인곡의 임은 왕을 암시하나 그실은 은연중에 자미를 그리워 하는 맘에 대비시켰지 싶다.

 

"올적에 빗은 머리 얽힌 지 삼년이라"는 대상이 왕이며 또한 자미였을테다.

송강은 1589(54)에 정여립모반으로 우의정에 발탁되어 피의 숙청인 기축옥사를 진두지휘하고, 1591년엔 광해군 책봉을 건의하다가 파직, 평안도 강계로 귀양간다.

 

 

 

그런 송강을, 첫사랑을 못 잊어 애태우던 자미는 임 찾아

고행길 보따릴 싼다. 남원에서 강계까지 수천리를 여자의 몸으로~! 몇 달 며칠이 걸렸을까? 사랑의 힘이라니!

늦가을 드뎌 두 남녀는 강계(江界)에서 해후한다.

 

山雨夜鳴竹(산우야명죽)

산에 비 내려 밤새 대숲 울리고

草蟲秋近床(초충추근상)

가을 풀벌레 소리 밤엔 더욱 크게 들리네

流年那可駐(유년나가주)

흐르는 세월 어찌 멈추랴

白髮不禁長(백발부금장)

길어지는 흰머리 막을 수 없네

居世不知世(거세부지세)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을 모르겠고

戴天難見天(대천난견천)

하늘 아래 살면서도 하늘 보기 어렵구나

知心惟白髮(지심유백발)

내 마음 아는 것은 오직 백발 너 뿐인데

隨我又經年(수아우경년)

나를 따라 또 한 해 세월을 넘는구나

           

             -한시화답문(漢詩和答文)추일작(秋日作)에서-

 

-식영정(사미인곡 등의 산실)-

 

세자 책봉 건으로 선조의 노여움을 사서 강계에서 귀양살

이할 때 어느 날, 송강이 자미와 술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송강이 목청을 가다듬어 읊는다.

 

옥이 옥이라커늘 반옥()만 너겨떠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眞玉)일시 적실(的實)하다.
내게 살송곳 잇던니 뚜러 볼가 하노라


송강(松江.鄭澈)의 노래가 끝나자
가야금을 뜯던 진옥(眞玉)은 기다렸다는 듯이 응수하기를,

 

()이 철()이라커늘 섭철(攝鐵)만 녀겨떠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正鐵)일시 분명하다.

내게 골풀무 잇던니 뇌겨 볼가 하노라

 

 

 

송강은 깜짝 놀랐다. 그녀의 즉석 화창(和唱)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송강의 시조에 자자구구, 대구형식으로 걸림 없이 불러대는 자미의 시는 정녕 뛰어난 시혼의 소유자였고,  은유적 표현 역시 탁월하였다.
반옥은 진짜 옥이 아니라 인조옥이고, 살송곳은 남자의 거시기를 은유하고 있는데 자미는 그 뜻을 쉽게 알아챘던 것이다.

 

반옥에 대하여는 섭철(鐵.잡철), 진옥(眞玉)에 대하여는 정철(正鐵.순철), 살송곳에 대하여 골풀무(아궁이에 바람 불어넣는 풀무로 남자의 거시기를 녹여내는 여자의 불구덩의 은유)란 대구는 놀라운 기지와 재치와 해학이다.

 

송강의 살송곳을 자미의 골풀무로 녹여내는 환상의 방중술이 19금화면처럼 선연하다.

 

 

 

허나 때는 임진왜란이란 혼란의 시기였다. 선조의 특명으로 15927월 전라`충청지방의 도체찰사로 송강은 다시 복직되자, 자미는 사랑하는 임 좇아 홀홀단신으로 적진을 뚫고 남하한다.

남하 중 왜군에 붙잡히고 의병장 이량(李亮)의 권유로 일신을 조국의 제단에 바치기로 결심한다.

적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을 유혹하여 평양성 탈환에 공을 세웠는데, 송강은 이듬해(1593)명나라에 사은사로 다녀온다.

 

-죽서루-

 

몸과 맘이 지친 송강은 강화도 송정촌에 머물다 채 1년도 안돼 1593(선조 26)1218일 운명한다.

대쪽같았던 성품은 먹을 게 없어 궁핍하여 술로 끄닐 때우다 아사한 송강의 고적한 최후였다.

자미는 송강을 더 이상 섬길 수 없자, 소심(素心)이란 여승이 되어 송강의 시묘(侍墓)를 하면서 임의 모함을 풀고 신

원을 복위시키려 생애를 마쳤다.

현재의 경기도 고양군 원당면 신원리 송강의 묘 곁에 그녀

의 묘도 있다고 한다.

2016. 04. 25

 

 

-오십천(관동별곡의 무대)-

 

 

-자미(강아는 '송강의 여자'란 뜻으로 자미의 딴 이름 ) 추모비문-

 

 

-죽서루-

-죽서루 겨울풍경-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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