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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봄맞이 행락

 봄맞이 행락

 

 

 

굼뜬 개구리들의 겨울잠을 깨우려는 듯

어젠 푸근한 봄비가 내렸습니다.

비는 밤새워 경칩(驚蟄)을 적시고

봄의 전령을 마중나선 나의 발길은

농무를 헤치는 행로였지요.

촉이 젖은 나목들이 희뿌연 차일을 휘감고 다가섭니다.

설한풍혹한을 버텨낸 안도의 숨결을 내뿜으면서~!

 

 

-안무 걷힌 운암산-

 

운암산을 오릅니다.

짙은 농무에 휘감긴 운암산은 구름속의 바위산이었습니다.

내딛는 발밑만이 바위일 뿐 온 천지는 구름입니다.

구름속의 산책에 유령처럼 다가서는 앙상한 나목들이

순간의 동행꾼이 됩니다.

검초록침엽으로 무장한 꼬부라진 소나무에 기대어

구름위의 항해에 들었지요.

보이는 모든 것은

축복의 세례에 감루하며 홍건이 저졌습니다.

모진 한때를 무탈하게 넘긴 자축의 숨결에 구름이 흩어졌어요.

 

 

 

S가 말했습니다.

이제 복수초 마중을 갑시다.”

봄의 전령사는 이른 아침이나 햇볕 없는 구진 날엔

행장꾸리지 않는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지요.

하여 나는

부러 운암산엘 들러 구름산책을 즐긴 후에

마중 나설 심산 이였습니다.

 

 

수목원은 지금 막 안개 옷을 벗고 있었어요.

밤새 경칩을 깨운 봄비가 골짝에 모여

긴 겨울사연 나누느라 재잘대고 있습니다.

그들의 개거뿜 이는 수다는 깊은골을 흔들고

낭떠러지에선 하얀 물기둥을 세워가며

긴 여정에 드는 거였어요.

'영원한 행복'을 찾아

 

 

 

 

그 수다 속에서 자지러들 듯 애타는 노래소리!

짝을 찾느라,

사랑싸움 하느라,

짝짓기 탄성에 연못은 오케스트라전당이 됐고,

수백 수천 개의 알꽃을 피운 봄의 향연에

개구리들 못 속으로 난 함몰됐습니다.

자연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심오한 신령스럼을 연출하여

위대한 탄생으로 세상을 여는~!

 

-수목원의 연리지-

 

개구리들의 합창을 뒤로한 채 나선 마중길

 복수초를 찾습니다.

하얀 눈이 없어 쌓인 눈두덩 속에서 핀 설연화,

얼음을 뚫고 병아리처럼 내미는 얼음새꽃

봄비에 사라진 탓이려니 하긴

넘 아쉽게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농무 걷히고 햇빛 살짝 기웃대는데도

놈들은,

몇 해 전에 골짝을 노란 황홀경으로 수놓았던

떼거리 그들은 어디에 숨었을까?

 

 

 

 

복수초(福壽草)는 추운 북해도의 이쁜 여신(크론)이었습니다.

크론에겐 죽고도 못 살 애인이 있었는데,

꼰대아빠는 막무가내로 토룡신(土龍神.두더지)에게

크론을 시집보내려 했습니다.

크론은 애인과 함께 야반에 사랑의 도피를 했지요.

성질 난 꼰대는 억척스럽게 두 연인을 찾아내

눈 속에서 사랑꽃 피어보려면 보라고 뭉개 내쳤습니다.

허나 크론은 웅크리고 있다 겨울끝자락 속에서

사랑 찾아 꽃을 피웁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꽃피움은 영원한 행복이지요.

복수초의 꽃말입니다.

 

 

-선화&서동의 오층사랑탑-

 

S가 앞서서 말 했습니다.

"우리 사랑의 궁전으로 향합시다"라고.

서동과 선화가 눈맞아 야반도주했던

'영원한 행복'을 꿈 꿨던 왕궁을 찾았습니다.

꼰대왕의 눈길 피해 꽃 피운 사랑탑이

봄비로 멱감고 우릴 맞습니다. 

사랑은 아품 속에 영그나 싶습니다.

 

내일 난 봄맞으러

복수초를 마중하러 다시 나설 겁니다.

 

이천십육년 삼월 육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