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빈처갓집에서 23

해돋이

2015. 08. 01 (토) 

그때도 일곱 여덟 물때쯤이었을 테다. 오랜만에 처가엘 왔는데 장모님이 안계셨다. 미리 소식을 한 참인데도 장모님이 안 계신 집안이 허전해 난 아내에게 물었다

어머님은 어디 가셨데?”

 

갯벌

나를 쳐다보던 아낸 짚히는 데가 있었던지 내색 없는 표정으로 엉뚱하게 장인어른께 지나가는 말투로 묻는 거였다.

엄니는 개에 가셨데요?”

 “~모르겠다.” 장인어른의 신통찮은 대답에 무표정한 아내가 난 몹시 의아했었다. 더욱이 내 물음엔 대꾸도 없는-.

 

석양의 바닷가

장모님은 바다에 나가실 때 소리 소문 없이 나가시고, 그 걸 누구도 묻거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게 개(바다)에 나가는 아낙네를 둔 어촌의 불문율이란 걸, 아내로부터 얘기 듣고서야 이해 아닌 궁금증을 삭힌 그날오후였다.

오후 여섯시인데 불볕더위는 좀체 사위어지질 않는다. 처가를 나와 선창가를 향했다. 목선 두 척을 선창가 갯벌에 뎅그러니 매달아놓고 썰물은 저만치 빠져 있었다.

 

석양

자갈밭을 한 참 거닐면 갯벌인데 갯벌과 바닷물이 맞닿은 뻘에서 장모님은 작업을 하셨다. 자갈밭가장자리에서 거기 뻘까진 가뭇해 사람도 그림자처럼 어른거렸었다. 근데 오늘은 그 그림자마저 데자뷰로 그려봐야 했다.

장모님은 바지락과 조개, 낙지와 장어도 잡아오셨다. 장모님의 그런 해산물채취는 마을사람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인 경지여서 모두가 부러워했단다. 그날도 물때가 좋고 딸 내외가 온다는데 갯일달인이신 당신께서 귀신도 눈치 채지 못하게끔 개에 나가신 건 당연지사였다. 난 얼마동안을 자갈밭을 서성대며 장모님을 기다렸었다.

 

포구불빛 건너 고마도

그러나 오늘은 기다림과는 상관없다. 장모님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에-. 아니, 오실 줄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저본다. 몸빼바지에 수건을 머리에 두르시고 작달막한 체구 한 손에 주전자, 또 다른 손엔 호미를 드신 채 땅거미 내리는 갯벌에 귀신처럼 나타나실 줄 모른다. 그럼 나는 그때처럼~.

어머님~”하고 잰 걸음으로 달려가다 발 푹 빠지는 갯벌이란 걸 자각했을 땐 이미 낭패였었다. 그럼 어머님은 그 연세에 사위보기가 뭐가 그리 부끄러워 웃음 머금은 얼굴을 외면한 채

 

 

어이 어쩌까 이~, 뭘라 여까지 나왔능가?”라고 얼머부리셨다.

주전자 주세요?”

웟따 일 없네. 얼릉 나가게

일로 주세요.” 난 반 강제적으로 뺏다시피 주전자를 낚아채 돌아섰다. 주전자가 제법 묵직했다.  장모님의 옷에  튀겨박힌 무수한 뻘자국이 갯벌에서의 고역을 말해주는듯 싶었다. 

 

처가대문 뒤로 숙승봉이 보인다

땅거미가 어둠을 끌고 와 바다를 삼키고 갯벌에 어둠의 장막을 거푸 씌우고 있지만 장모님은 안 오셨다. 선착장 부두에 수은등이 갯벌과 뭍의 경계를 알리려는 듯 안쓰럽게 명멸하고 있을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몹쓸 일은 죽음이다. 죽음은 어떤 가능성도, 기도도 꿈꿀 수가 없다.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고 불러도 대답이 없다. 끝도끝도 그런 막막한 끝머린 없다. 장모님 안 계신 처가는 처가도 아니다. 그 허전한 처가를 맥 빠진 채 대문을 들어서야 했. 아내가 쏘아댄다.

어디 갔다 오요? 휴대폰이나 갖고 가지아까 지핀 모기모닥불이 탁탁 소릴 내며 연기를 뿜고 있다.

 

  모닥불과 하현달

 열여드레 하현달이 보름달처럼 동그랗다. 칠흑어둠이 달을 낳고, 요요한 시골 밤이 달무리를 빚고, 풀벌레가 어둠속 무대에서 실내악을 연주하고, 모닥불이 탁 탁 탁 소구춤을 추는 밤풍정을 처갓집마루에 걸터앉아 감상하는 한여름밤의 낭만은 아무나 얻을 수 없을 행복이다.

화단의 정원수는 지 멋대로 자라면서 얼마나 덩치와 키를 살찌웠고, 남새밭은 온갖 잡풀이 세상 만났다 싶었던지 몇 그루의 단감나무마저 깔아뭉갤 참이다. 그 수풀의 세상이 달빛에 검은능선을 이루고 고양이가 어슬렁대며 불청객-우리들의 동태를 살피느라 살기 띈 쌍안경을 들이댄다. 여태 그놈들의 집 이였기에~?

 

풀밭 된 정원과 남새밭

우리 땜에 놈도 불안한 23일을 보내야 할 테다. 모기도 우리 땜에 모깃불연기와 모기향냄새와 싸우느라 23일을 애 좀 태워야 할 것이다.더는 살 냄새 진동하는데 방장을 뚫을 수가 없어 얼마나 앵앵대며 밤새도록 지랄연병을 떨어야 할 텐가.

우리들은 모기와의 전쟁을 하느라 매제 말따나 뜬 밤 새워야 할지도 모른다육덕 좋은 매제는 응얼댔다.

쌍열의 모기만 아니면 시골서 여름나기가 최곤디~!”라며 그는 두꺼비손바닥으로 지 장딴지를 때렸다. 그 아둔한 손놀림에 모기가 박살날 턱도 없다. 우린 방장 속으로 기어들었다. 모기와의 전쟁에 피신한 꼴이다. 하현달이 지붕을 넘는다.

 

아침의 처갓동네

2015. 08. 02 (일)

좀 일찍 일어난다는 게 늦었다. 모기와의 신경전 땜이기도 하지만 생전의 장모님 생각과 열대야에 몸 뒤척인 탓이다. 바닷가로 달렸다. 이미 여명이 밝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처갓집마을에서, 완도의 바닷가에서 여명을 접한다는 건 오늘 처음이라 흥분 됐다.

 

일출

바다 건너 고마도의 까만 능선을 불사르며 솟구치는 여명의 빛은 찬란했다. 이윽고 해가 솟고, 바다에서도 솟고, 찬란한 황금빛이 섬을, 하늘을, 구름을, 바다를, 갯벌을 물들이는 장관을, 가까이서 나 홀로 맞는 황홀은 내 생애 첨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해맞이는 언제나 가슴 뿌듯하다. 그건 오늘에 대한 다짐이며 내일에의 기대며, 자신의 건재를 확신하고 있다는 자존감에서 일 것이다. 여명 속의 세상은 정갈하고 산뜻한 그림 이였다. 슬픔, 분노, 비방, 거짓이 도무지 발붙일 수 없는 순수 무구한 낙원 같았다.

 

일출

우린 황홀한 순수에 감동 체 받기 위해 해맞이를 그리도 갈구하는지도 모른다. 문득 거짓을 밥 먹듯 하는 위정자들을 모두 끌고 와 일출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마을 뒷동산에 있는 원불교불목교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교당은 내가 오늘날 이 자리에 서있게 한 터전이다. 고교졸업 후 재수 한답시고 선친님친구(근수 선생)분소개로 교당에 머물게 됐었다. 지금은 소남훈련원으로 개장한 곳인데 당시엔 초가집과 농장이 있었다.

 

원불교불목교당

나는 낮엔 농장에 머물며 공부 겸 멧돼지 등쌀에 농사를 망치는 걸 지키고, 밤엔 교당에 내려와 동네청소년들 야학을 했었다. 그것도 잠시, 일 년 후배였던 여학생과 인사말 몇 마디 나눈 게 연애한다라고 비약하여 구설수에 올라 56일 만에 보따리를 싸야했었다.

그녀가 지금의 아내다. 참 질긴, 고래심줄 같은 끄나풀 이였던 셈이다. 그길, 그곳엘 가보고 싶었다.

내가 머물었던 교당은 없고 건물도 위치도 새롭게 태어났다. 사철나무 우거진 숲 동산에서의 옛날의 추억을 더듬고 싶어도 생소한 교당이 됐다. 이곳저곳 기웃거려도 이른 아침이어선지 인기척도 없다.

 

원불교불목교당과 숙승봉

동산을 내려와 불목초등학교후문을 통과 용소개울가를 향한다. 이 길이 교당과 농원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오갔던 길이었다. 동네사람들 입방아 땜에 교당을 떠나기 전날 밤에 작별인삿말을 했는데 어찌 알고 찾아온 처녀와 첨으로 데이트(?)한 길도 이 길이였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입방아의 희생물이 됐던 우리였다. 까마득하고 아련한 추억 속에 웅크린 첫 만남의 밤길인  것이다. 우리가 결혼까지 하게 될 줄은 언감생심 꿈도 꾸질 않은 첫 만남이자 이별의 만남 이였던~!

 

용소 삼거수

귀목 세 그루가 지금도 멋있게 폼 잡고 있었다. 놈들은 나를 알까?

"농장에 가실래요, 그냥 가실래요?" 라고 묻는 나에게 그녀는 묵묵부답이였다. 그녀는 다소곳이 내 뒤를 따르고 있었다.

아침이지만 따가운 햇살은 오늘도 푹푹 찔 날씨를 예고함이라. 일정이 바빠 어제 합류 못한 처남내외가 오늘 낮에 도착할 예정이고, 매제는 고향친구의 도움을 받아 벌초를 하기로 했다.

나는 아내와 처제를 동반하여 숙승봉등산을 하기로 일정을 짜서 간단하게 등산채비를 하여 처가를 나섰다.

 

용소 천

이글거리는 태양빛이 여간 찜통날씨를 예고한다. 소남훈련원에 들어섰다. 아내와 첫 만남을 밤 세웠던 장소는 하산길에 찾아보기로 한다.

동백숲에 들어섰다. 우측에 사랑에 빠진 포르노동백이 얼핏 눈에 띈다. 그 그림을 지나칠 내가 아니다. 녹음 짙은 상록수림 피톤치드는 바람 없는 숲길을 신선케 한다. 나는 산악회따라 두 번 숙승봉에서 상황봉까지6km를 완주했으나 아내와 처제는 처음이라.

 

 

숙승봉 아랫마을서 태어나 숙승봉을 밤낮으로 처다보며 성장했으면서 오늘 첨으로 선뵈러가는 자매의 설렘도 달떠있었다. 근데 반시간도 안 됐는데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헉헉대는 폼이 시원치를 않다.

공원이나 동네 야산을 오르는 게 고작인데 줄곧 경사오름길을 등정하느라 용쓰는 모습이 안쓰럽기보다 시니컬한 웃음이 나왔다.

쫌만 오르면 돼요. 기운 내고~!” 나의 격려와 제촉에

거짓말, 벌써 몇 번짼데?” 라고 응수하는 아내와 처제는 숙승봉턱밑 철사다리 앞에서 주저앉아 버린다.

 

귀목자연분재

갖가지 버섯도, 괴상망측하게 생긴 귀목도, 이따금 숲 사이로 내미는 바다와 마을이 그림처럼 예쁜데도 관심 밖이다. 하긴 몸뚱이 힘 부쳐 만사가 귀찮은데 눈에 보이는 게 그림의 떡만도 못할지 모른다. 버겁지 않고 맘에 여유가 있을 때야 우선순위에 밀린 관심 밖의 사물도 보이는 법이.

산행한답시고 무조건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도 올바른 산행이랄 순 없다. 등산로를 숙지하고 푸나무 숲과 멀리 원경까지 관망하는 여유로움에까지 이르려면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할 것이다. 거기에 산행지에 대한 사전지식은 필수다.

아는 것 만큼 보이는 법이다. 보일 때 기쁨이 솟는다.

 

아내와 처제에겐 덥고 지처 괴롭단 생각이왼 풀과 나무와 산과 바다는 그저 그대로일 뿐이리라. 시간 반 남짓 후에 숙승봉 너른 바위는 나를 반겨줬다. 실컷 여유롭게 산정바윌 샅샅이 밟았다.

노란나리꽃지천인 산정에서 소남훈련원과 불목저수지와 처가마을을 달린 눈길은 바다를 건너 희미한 고마도까지를 훑다온다. 태양은 따가워도 바람은 시원하다. 내 언제 다시 여기에 설수 있을까?  난 언젠가 젖가슴처럼 생긴 숙승봉을 꼭 만지고 말겠단 다짐을 하곤 했었다.

 

 

장인장모님 작고하신지 십년이 가깝지만, 처갓집은 비어있어 폐가이다시피 하지만 그렇게나마 남아있다는 게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빈집일망정 처갓집이 없으면 어찌 올 생각이나 했겠나? 재재작년부터 여름휴가철을 처가에서 보내자고 처남,처제부부와 약속하고 금년이 세 번째다.

리조트나 펜션에서 보내는 편리함과는 비교가 안 되겠지만 1년간 낀 먼지를 청소하고, 마당풀 베어 모깃불피우고, 무더위 속에 요리하여 포식하고,  그간 도회생활에 잃어버렸던 달과 별자릴 찾아 떠들다가, 방장 속으로 기어들어 모기와 풀벌레소리를 자장가 삼는 정취는 나를 청소년시절로 타임머신태우는 또 하나의 여행길에 들게 한다.

 

 숙승봉 나리군락지에서

2015. 08. 03 (월)

우리 모두 아침 일찍 남창5일장엘 갔다. 점심때면 파시라 해서 서둘렀다. 피서 철 이어선지 여간 북적댔고 물가도 좀 비쌌다. 생선 묶음이 2만원미만짜리가 없었다. 1만원이면 족할 수박도 4~5천원 더 비쌌다. 대신 생물은 신선하다고 해야할 것이다.

 

남창시장

매제가 어제 해남고향친구한테 개(犬)다리 하나를 얻어와 보신탕내지 수육이 있어 국거리나 안주거리 시장은 안 봐도 됐다. 숯불구이 할 생선과 수박과 과일 몇가지를 샀다. 더윌 피하자고 아침을 들자마자 산소엘 갔다.

매제가 어제 말끔히 벌초를 해 묘역은 한결 산뜻했다. 추석때는 다시 풀천지가 될 테지만 말이다. 장묘문화가 많이 발전해 묘역이 줄곤 있다지만 묘를 쓴다는 건 여러모로 낭비란 생각이 절실했다.

 

산소참배

장모님께서 담도암으로 별세하자 한 달만에 아내 따라가신 장인님을 매장할 때의 장대비를 잊을 수가 없다. 무슨 비가 그렇게 세차게 퍼부었던지? 차일을 치고 흙탕 속에서 묘를 간신히 쓸 수가 있었다.

아내 없는 세상은 앙꼬 없는 팥빵이 아니라 무덤같은 세상이란 걸, 열자식의 효도도 아낼 따를 수 없다시던, 아낼 그리워하던 장인님의 여위고 쓸쓸한 모습이 선하다.

 

승마장에서 본 숙승봉

독자였던 장인은 무던히도 무능했던 식자였다. 평생을 물려받은 유산팔아 야금야금 까먹는 삶 이외 생산적인 어떤 노력도 진력해보지 않은 일생이였다. 오직 장모님 그늘에서 무위도식하며 킬링타임으로 일관한 일생이지 싶었. 하여 나는 무능한 유식쟁이였던 장인님을 경원했다.

완도의 남정네들은 바닷일을 하고 여자들이 뭍일을 도맡다시피 한다지만 장모님은 그 모든 걸 혼자 짊어지셨다. 장모님은 참으로 바지런 하시고 과묵하셨. 잠시도 쉴참이 없지 싶었다. 작은 체구에 어디서 그런 끈기와 힘이 솟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아침마을과 숙승봉과 하현달

아내도 장모님을 닮아 생활력이 강한 편이다. 난 그 점을 높이 사고 흐뭇하게 여긴다. 그래 고래심줄 같은 악연(?)을 감내하며 오늘에 이르도록 늙어감이라. 내가 지금 한가하게 놀며서 걱정없이 무위도식 하는 것도 아내의 근면성실한 생활의 자세 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만 한가지 불만은 장모님이 장인 대하 듯한 경시의 눈빛을 아내가 닮아가나 싶은 것이다.

 

장모님의 갯벌

어제 낮에 도착했던 처남부부는 고1년생의 딸과 애완견을 대동하고 나타났었다. 이 더위에 무슨 꿍꿍이 속이냐? 싶었다딸이 모처럼 여행따라나서고 싶다고 해 동반했다지만 때와 장소를 생각했어야 했다.

가족여행이 아닌 세 자매부부들간의 피서휴가란 걸 주지시켰어야 했다. 더구나 애완견까지 끌고 와 방 하나를 독차지 하면 우린 어쩌란 것인가? 처남의 사려깊지 못한 처신이 여간 못마땅했다. 난 처남부부에 일렀다. 모두가 불편한 짓 삼가하자고-.

 

교당에서 농장가는 들길

오후에 가기로 한 명사십리해수욕장행도 포기했다. 워낙 찌는 폭염에 나갈 생각이 없었다. 1년생과 나는 빈둥빈둥 더윌 피하느라 뒤척거리고 모두는 고스톱에 빠져들었다.

시간죽이는 방법치곤 화투만큼한 것도 없을리라. 난 화투를 좋아하긴 하지만 좀체 손에 잡질 않는다. 돈을 따도 찝찔하고 잃으면 기분 안 좋기 땜이다. 처갓쪽은 만났다하면 화투놀이가 소일거리메뉴다.

 

이른 저녁을 먹고 매제부부와 우리는 출발했다. 처남네는 하루 늦게 와서 내일까지 머물겠단다. 작년엔 태풍나그리 땜에 일정을 망쳤었는데 올핸 너무 폭염이라서 움직이기도 싫었다. 이래저래 여행은, 집 나서면 고생길이다.

해도 굳이 떠나는 건 미지에 대한 기대감일 터다. 새롭게 마주치는 모든 것들은 양식이 되는 탓이다. 보고 느끼며 체험하는 산지식이야말로 인생을 풍요롭게 살아갈 비타민인 것이다.

 

빈처갓집일망정 그렇게라도 남아있다는 자체가 행운이고 감사할 바다.노후에  처남네가 귀촌한다지만 지금으론썬 기대 난망인 말만 앞설 뿐이다.

장모님과 장인님의 숨결과 손때가 덕지덕지 묻었기에  낡은 폐가일망정 영원히 존치했음 좋겠다. 매제는 자정 무렵 우리부부를 내려주고 서울을 향했다. 밤중에 가는 게 날 밝아 낼 가는 것보다 고생 덜 한다고-.

 

 

완도기상대

 

 

교당

 

용소천

 

 

처갓집 & 풀 속의 창고

 

불목저수지 건너편에 산소가 있다

 

포르노 동백

 

 

 

 

 

 

 

 

구불구불한 길이 처가동네와 소남훈련원을 연결하고 있다

 

 

 

 

훈련원둠벙에서의 수구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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