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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나의 싱가포르 체류기(1) - 와인,김치공수작전

나의 싱가포르 체류기(1)

 

 

-더 아트하우스 앞의 스텐원통에 비친 필자-

와인`김치 공수작전 (2015.11.27.)

아내와 난 인천공항 1830분발 싱가포르 행 KAL편에 탑승했다. 다섯 식구가 동행하지만 마일리지혜택을 이용하기 위해 둘째,막내,은이는 반시간쯤 후에 출발하는 아시아나편에 탑승하여 자정 넘어 싱가포르창이공항터미널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창이공항입국장엔 큰애내외와 윤이와 현이가 마중 나와 있을 테다. 몇 달 전부터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윤이와 현이는 우릴 보고 어떤 모습으로 달려와 품에 안길지, 갖가지 데자뷰를 해보며 땅거미내리는 공항활주로를 불빛퍼레이드를 받으며 활공한다.

 

오늘 오후1시부터 3시 반까지의 정신없이 긴박했던 정황들이 빠르게 차창으로 스쳐지나갔다. 1인당 탁송가능화물20~23kg인 우리다섯식구 몫인110kg를 초과하지 않게 화물을 꾸리느라 전투 아닌 작전을 짜야했으니 말이다. 김치와 식재료와 와인13병을 트렁크 다섯 개에 나눠 싸야했던 작업은 야단법석 그 자체였다. 와인 한 병이 1.5kg 쯤이라 20kg를 차지한다. 나머진 김치와 양념과 부식자재 만이어야 해 골머릴 짜야했다.

 

-숙소인 팔라티움아파트10층에서 본 록시호텔- 

보름 내지 달포를 살고 와야 할 우리 다섯 명의 옷가지 등의 소지품은 깡그리 배낭이나 멜빵에 짊어져야했다. 아내와 난 작전(?)의 주원인인 와인 탓 타령을 해댔지만 싱가포르큰애도 와인공수를 신신당부했단다. 와인15병은 십 여일 전 둘째가 이태리에서 구입해 온 건데 2병은 무개초과로 떼놓았다. 근데 서울서부공항 역사 화물탁송 때 또 한 병을 하중초과로 인해 떼 내야 해 12병이 됐다.

 

와인 한 병을 결코 빼놓게 했던 (둘째지인이 역사에 나와 인수해가기로 했다) 여간 깐깐하고 철두철미한 KAL여직원은 우리들의 입방아에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술맛을 모르는 난 이태리에서 술을 사서 국내로, 다시 싱가포르로 공수하는 그 엄청난 정신력(?)과 애주병(愛酒病)을 도저히 이해를 못하면서도 꿀 먹은 벙어리인양 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내말따나 우리가 술값 낸게 아니기에 입 닫았다.

 

회화나무가로수와 파스텔톤의 집-

둘째의 애주병을 때론 못마땅해 하지만 절대로 병적인 건 아니고, 식구들이 모이면 한 두 번은 치루는 와인파티를 보고 있노라면 젊은이들의 낭만이 솔깃하고 부럽기까지 해서였다. 더구나 세 딸이 모이는 싱가포르에서의 와인파티를 위해 이태리 아니라 하늘에서 공수해온데도 나는 모른 챌 해야 할 판인 것이다. 물가 비싸기로 정평 난 싱가포르에서 비싼 와인을 사먹긴 뭣할 테다. 해서 관세만 피한다면 이태리에서 공수해 올 만한 스릴 있는 작전이기도 할 것이다. 애들의 와인사랑이 못마땅하지만 말이다.

 

자정 넘어 창이 공항에 내려 아무 탈 없이 입국장으로 빠져나와 큰애내외의 환영을 받았다. 관세사수험준비 하느라 까칠했던 만 일 년 전의 큰애의 모습은 찾을 수 없이 이뻐져서 기분 좋았다. 고대했던 윤이와 현이가 안 보였다. 잠이란 놈에 붙들려 꿈나라여행 중이란다. 한껏 기대 했는데~! 우린 아시아나항공기가 도착하는 제2터미널을 향했다. 훈이는 토요타밴가드를 마련해 마중 나왔다. 우리가족의 여행을 위해 승합차구입이 두 번째다.

 

우리식구들 여행을 위해 5천만원상당의 각종세금을 물어야하는 차량등록세를 감수하면서 새로 구입한 거였다. 가족을 위한 일엔 몸 사릴 줄 모르는 훈이라 우리내왼 늘 애틋한 정감으로 감루 한다. 한 시간쯤 후 둘째와 막내와 은이와 합세했다. 말썽 없이 통과한 와인얘기를 하며 밴가드에 오른 우리식구들은 창이공항을 빠져 이스트코스트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사뭇, 미치도록 멋지게 늘어져 도열한 회화나무가로수 사이로 뻗은 고속도로와 숲 속의 각양의 아파트들은 깔끔한 싱가포르의 야경을 매혹적이게 했다. 그 환상적인 밤의 드라이브를 반시간쯤 하다 그랜드`머큐어`록시 호텔 옆의 큰애의 팔라디움아파트에 긴 여장을 풀었다. 라면조시멘트골조를 그대로 살린 흰 페인팅의 아파트는 단조롭고 천고가 높아 시원한 느낌이라 상하의 나라에 적격이다 싶었다.

 

커다란 창과 눈부신 하얀 벽들이 돋보이는 30평쯤의 아파트는 월세가 400만 원쯤이란다. 전세란 게 없는 싱가포르에서 중산층이 살아가는 생활비의 범위를 상상케 했다. 짐정리가 끝나기 무섭게 와인파티가 시작됐다. 새벽3시인데도 말이다. 독특한 향이 후각을 일깨우는 와인의 맛 또한 별미라 술맛에 둔치인 나도 서너 잔을 입속에 찔끔찔끔 넣고 오물댔다. 다섯 시가 되자 난 슬그머니 침실에 들었다. 술맛 아는 아내는 아직이다. 얼른 빠져나오질 않고~?

 

창을 열자 새벽인데도 상하의 나라답게 후덥지근한 밤공기가 창문으로 왕창 밀려든다. 록시호텔의 성탄 일루미네이션 불빛이 명멸하고 애들의 담소가 왁자지껄 새벽을 삼킨다. 애들은 보나마나 밤을 새울 테다. 싱가포르의 첫 밤이 그렇게 파안대소로 지새우는 거였다. 피곤이 쓰나미처럼 덮처왔다.

 

-팔라디움아파트의 노천수영장-

  시한폭탄 된 혈압약 (2015. 11.28. )

정오쯤에 침실을 나왔다. 애들은 취몽 속에 꿈속을 헤매느라 꼼지락도 않고 있다. 커튼을 열고 싱가포르의 첫날을 맞는다. 눈부시다하얀 고층아파트들이 숲 속에 듬성듬성 들어선 채 깔끔한 전원도시 풍이다. 얼핏 조망되는 아파트들이 우리네의 눈에 익은 각설탕이 아니라 제각기 독특한 외양을 하고 있어 멋스럽다. 왜 우린 집마져 획일적이어야 하나? 글타고 아파트값이 싼 것도 아닌데?

 

큰애가 비빔밥으로 첫 식탁을 마련했다. 그 비빔밥이 야채셀러드와 견과류가 주종을 이뤘다. 고기라곤 참치뿐인데 견과류 씹는 맛과 식감이 일품이다. 뭘 하려면 책부터 구입해야 하는 큰애가 비빕밥레시피는 어찌 익혔나?  영양가도 괜찮지 싶었다. 엊밤 기내식도 비빔밥 이였기에 싱가포르행 먹거리는 비빔밥으로 점철될까 의아해 하면서도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설친 잠에 여독도 남아 입맛이 별로였지 만 말이다.

 

 -스탬포드로드-

오후3시경에 아파트를 나섰다. 토요타밴가드는 울 식구 아홉 명을 태우고도 거뜬했다. 우리들의 여행을 위해 출혈(?)했을 훈이의 정성이 짠할 만큼 가슴 먹먹해졌다. 싱가포르는 쾌적한 환경을 위해서라도 자동차에 배보다 더 큰 배꼽을 달게 해 차구입을 자제케 한단다. 해서 자동차를 소유한다는 게 여간 만만한 수입이 없인 엄두도 못 낸다. 부유층이 감당하는 각종 고율의 세금으로 도시국가의 재정을 일정 메꾸는데 기여함 일 것이다. 우리의 소나타 한 대를 구입하려면 15천민 원쯤을 계상하여야 한다니 말이다.

 

-toast box 앞의 파스텔톤 연립주택들-

암튼 자동차구입 억제정책 탓인지 시가지의 교통흐름은 물 흐르듯 했다. 그 많은 인파와 차량의 물 흐르듯 함이 쬐그만 도시국가를 질식시키지 않고 되려 쾌적하게 하는 건 준법생활이 몸에 밴 시민의식 탓일 것이다. 이스트`코스트`웨이를 반시간쯤 남하하며 감탄한 건 너무도 잘 정돈 된 가로망과 가로수의 자연스러움 이였다.

-상하의 나라에서 성탄?-

에로부터 선비나무라 칭한 회화나무를 고 이광휘수상이 싱가포르릐 가로수로 지정 모두 교체시켜 이룬 선견지명 이란다. 그의 장기간의 독재정치가 부작용도 있었겠지만 오늘날의 살기 좋은 최선진국가로 싱가포르가 탄생케 한 건 부정부패를 발본색원시키는 정책 땜 이였다. 비록 우리경제를 살렸다고 할 박정희의 장기독재정치가 남긴 부패와 부의 편중과 지역갈등은 탁월한 지도자의 선견지명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대비 통감케 하는 사례였다.

 

-호파노천식당의 꼬맹이 삼총사-

내가 싱가포르에 발 디딘지 불과 한나절 남짓인데 이 도시국가의 매력에 맛 들리고 있음에 스스로 놀랬다. 초현대식 건물의 마리나시티 원경을 훑으며 북서진하여 도착한 곳은 호파빌리지였다. 각양각색의 푸드점들이 집단 몰을 이뤄 싱가포르본토배기들의 얇은 지갑을 열게끔 한다는 요리천국이란다. 우리네 관광회사의 주종관광인 패키지관광으론 (관광업체의)이해타산이 안 맞아 못 오는 저렴하고 풍요로운 본토배기들의 쿡`요람인 셈이다.

 

-호파 푸드코너 입구-

훈이의 설명에 의하면 일류호텔의 푸드`비용 절반으로 더 맛있고 풍요롭고 여유 만만한 서비스를 즐길 수 있는 곳이란다. 토마토첼리소스의 칠리크랩, 매콤달콤한 페퍼크랩, 생선, 야채, 고기숩 등등을 차례로 포식했다. 그 식도락(食道樂) 못잖게 시도락(視道樂)에 빠져들 게 한 건 시가지의 깔끔한 풍광이였다. 지구상의 회화나무는 모두 징발시켜 이곳에 식재한 모양이라. 

 

-싱가포르강변의 고풍스런 스위스호텔(우측)-

인위적인 조경이 세월의 두께를 입다보면 자연스러워진다는 걸 입증키라도 하듯 싱가포르의 외양은 잘 정돈 된 자연 이였다. 더불어 사람들의 삶의 패턴도 준법에 불편스러워하는 게 아니라 생활화 돼 오히려 자연스러워진 것 같았다. 국가가 모든 걸 통제하고, 촘촘한 감시망 속에서 삶의 질을 옭아맨다기 보단 양보와 배려와 절재의 미덕에서 기쁨을 더 찾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스텔톤의 건물색감이 조화를 이루는 시가지-

깨끗한 포도를 휘감은 회화나무와 야자수, 그리고 화단에서 앙증스럽게 핀 남국의 꽃들이 도시국가의 빈약한 자연과 촌스러움을 상쇄시켰다. 더구나 각기 다른 건물의 외양과 파스텔톤의 원색페인팅의 상가들이 앙상블을 이룬 도회의 색감은 남국의 파라다이스를 꿈꾸고 있었다. 아파트 앞 마리나파라시로 쇼핑몰은 우리네의 백화점이나 마트와는 분위가가 다른 여유와 낭만끼까지 느끼게 했다.

 

-아파트 앞 몰의 성탄야경-

물가는 비쌌다. 또한 몰 자체 내에서도 서민층과 중산층이상이 즐겨 찾는 스토어들이 입점한 층별로 구분돼 있다는 점도 이채로웠다. 나를 놀래킨 건 한국인을 위해 한국에서 공수해 온 한국산 물건들의 값이 눈깔 튕겨나올 만치 비싼 거였다. 속배추한 포기가 6~8천원 이였다. 이태리 산 와인도 곱빼기 비쌌다. 애들이 와인공수에 혈안이 된 사연을 알 것 같았다. 허나 비쌀 것만 같은 물가가 의외로 싼 것도 많았다. 주로 동남아 인접국가에서 수입한 농산품 이였다.

 

-둘째 현이가 다닌 유치원. 성당이다-

 저녁엔 아내의 탄식으로 시작된 걱정이 무겁게 집안공기를 짓눌렀다. 혈압약을 놓고 온 땜이다. 2개월분의 약을 조재하여 막내의 트렁크에 넣었는데 그 놈의 와인공수 탓에 트렁크를 바꿔치기 한 게 원수였다. 트렁크무개가 5kg를 넘자 큰맬빵으로 교체함서 약봉지를 잊은 거였다. 약복용을 안 하면 머리가 아플텐데? 라고 아내가 걱정태산이다. 뾰쪽수가 없다. 2주후에 귀국하는 둘째가 회사전용 파우치로 퀵`탁송시키면 이틀이면 된다고 해도 아내의 시름을 어쩔 순 없다. 아내의 걱정은 비약하여 2주후 둘째귀국 때 귀국하겠다고 선언하자 중구난방이 됐다.

 

애들이 년 말에다 방학시즌이라 비행기표가 없다고 연막을 쳐도 아낸 조기귀국을 고집한다. 나의 의견을 묻지만 아내의 눈총을 비껴갈 방법이 없잖은가? 속 다르고 겉 다르게 아내의 고집을 쫒아야할 밖에~? 싱가포르 도착 하룻밤 만에 귀국타령을 해야 하는 운명의 야릇함이라니~! 아낸 나더러 약봉지 안 챙겼다고 투정 이였다. 트렁크에 내가 넣었으니 내가 알아서 꺼냈어야 한다는 게다.

어찌 내 잘 못이 비단 이번의 약봉지뿐이겠는가? 매사를 내 알아서 꾸려야 한다. 아낸 뒷바라지로 책임을 벗으니 행위의 결과는 내 몫인 샘이다. 일순 무거워진 집안분위기는 밀려드는 피곤과 짬뽕 돼 모두 시름시름 잠자리에 들었다. 그놈의 와인이 웬수인 샘이다.

 

 

-출발직전의 인천공항k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