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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우릴 슬프게 하는 짓들

우릴 슬프게 하는 짓들

 

지난번 여수 금오산정에서 향일암을 향할 때 연초록푸나무 숲에서의 상큼한 향기가 코끝을 스치자 난 발걸음을 멈춰 그 물씬한 향에 잠시 취했었다. 어딘지 보이진 않았지만 더덕이 뿜어내는 향기였다.

더덕은 그 특유하고 진한 향 땜에 이파리 하나 없는 겨울에도 약초를 캐는 산꾼들에게 수난을 당하기 쉽단다. 그런 더덕도 사람 손길을 타 자란 놈은 향이 빈약해 건들어야 향기를 풍긴다.

전에 완도처가엘 가면 남새밭에 5~6년생도 넘은 더덕이 몇 그루 자라고 있었다. 비옥한 땅에 사람의 손때까지 보태선지 넝쿨은 무성하여 옆의 정원수를 칭칭 감은 채 꽃망울도 몽실몽실 흐드러지게 피워댔었다. 하지만 그 오묘하고 짙은 향은 별로였던 기억이 새롭다.

산야에 피는 꽃들도 마찬가지다. 야생화와 울안에서 사람손때 묻혀 핀 꽃향기는 농도와 품기(稟氣)가 다르다. 지 스스로 꽃피워 맺은 씨앗을 바람에 날려 뿌리내리고 성장한 자연산과 과학적이란 미명하에 손길로 길러낸 것을 비교한다는 자체의 어리석음을 우린 간과한다.

 

 

아니 크고 풍성함만을 추구하는 욕심의 산물이 어쩜 자연을 거스르는 죄악을 당연시해버린 탓이다. 그 죄악이 결국 부메랑 되어 우리들의 삶을 부박(浮薄)케 하여 메마르게 하는데 말이다.

고향에 가면 나의 불알친구 두 명이 소를 길러 제법 쏠쏠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시멘트마당에 조립식으로 지은 우사에 서너 평씩 칸막이를 하여 몇 마리씩 집단 사육시키고 있다. 놈들은 비좁은 공간에서 몸뚱이 비벼대며 진종일 빙빙 돌다가 끼니때 주는 인공사료를 먹고 일정한 기간이 되면 도축장에 팔려가는 시한부 고깃덩이일 뿐이다.

내 어릴 때의 소들은 봄여름가을엔 아침에 들로 나가 꼴 뜯다가 겨울엔 뜨끈한 쇠죽과 건초를 먹었고, 암놈이 발정이 나면 음부가 두툼하게 부푼 채 수놈을 부르느라 목청껏 운다. 그럼 근방의 수컷이 대답하느라 울고, 그렇게 암`수놈이 짝을 부르느라 시골의 한적(閑寂)을 깨뜨렸었다.

 

 

그래 암`수놈이 충혈 된 눈망울로 대를 붙으면 우리들에겐 신기한 구경거리가 됐고, 자연스런 성교육장 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원초적인 암내와 임신의 자유를 지금의 소들은 인간에게 빼앗긴 채 짝 찾기 울음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됐다.

암놈이 발정할 기미가 오면 수의사가 잽싸게 인공수정을 시켜버린다. 암놈은 듣도 보도 못한 수놈의 정자를 교미 없이 강제임신 당하는 꼴이다. 살 잘 찌고 빨리 성장하는 우량송아질 만들겠다는 인간의 욕심, 과학이란 비생명적이고 잔혹한 방법으로 뭇 생명들을 학대고문 제단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린 갓 난 어린애들한테서 젖 냄새를 맡을 수 없다. 모유대신 우유를 먹이기 땜이다. 엄마젖을 빨면서 엄마의 체온을 통해 사랑이 싹트는데 소젖으로 키우니 사랑이 결핍되는 게 아닐까?

 

 

무엇이든지 빠르게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법이 과학적이고 편리하단 핑계로 합리화시키고 그런 삶이 성공한 인생인양 치부된 것이다.     하여 순수한 사랑이란 인간성이 고갈되고 거짓과 모략이 판치는 슬픈 세상이 됐는지 모른다.

거짓말을 잘하고 권모술수에 능해야 더 높은 지위와 부를 향유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근면성실 했던 한 기업가가 권력에 빌붙고 술수에 능해야 수월케 성공할 수 있단 걸 알고 그 짓에 올인 하다가 좌절하여 부조리를 고발하고 죽었다. 그 자로부터 권모술수를 즐기던 권력은 사자(死者)를 파렴치범으로 매도하고 능지처참하는 거짓이 판치는 세상이 됐다.

 

정말로 우릴 분노케 하며 슬프게 하는 건 그런 거짓투성이들을 천거하고 등용하면서도 죄의식 없는 대통령과 고위정치인들인데 그들마저 거짓을 밥 먹듯 한다는 게다.

그런 비뚤어지고 가치전도 된 인생관이 성공하는 세상이기에 학교교육은 맹탕이 되고 젊은이들은 방황한다. 거짓이 진리인양 횡횡하는 현실에 냉소주의자가 판쳐 미래가 암울하다. 참됨을 도외시하고 자연을 거슬리는 삶은 몰인정의 각박한 사회를 만든다.

향기 짙은 야생화가, 암내 난 소가 울어 짝을 만나는, 젖 냄새 물씬한 어린애가, 거짓공약을 일삼는 정치인이 도태되는 선거가, 거짓말쟁이는 영원히 발붙일 수 없는 사회가 사무치게 그립다.

그걸 선별하고 걸러내지 못하는 우리들의 방관 내지 무지가 슬프다. 그 행윌 당연시하는 전도된 가치관에 분노한다. 내가 밉다.

2015. 05 어버이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