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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고흐의 길 - 송정옛길 - 달맞이길 (신곡산)

고흐의 길 - 송정옛길 - 달맞이길  (신곡산)

고흐의 길

인터넷서핑을 하다 부산에 ‘고흐의 길’이 있다는 생뚱맞은 제목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사진에 눈길이 멈췄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어떻게 ‘고흐의 길’로 둔갑됐나? 싶었다. ‘고흐의 길’은 부산환경공단 울타리와 병행하고 있어 도대체 ‘얼마나 멋있기에~!’에 홀려 나는 트레킹에 나섰다. 고흐의 길에서 시작하여 송정옛길에 진입하여 송정해수욕장 솔섬을 찍고 신곡산을 휘돌아 달맞이 길로 들어서 와우산 녹지길을 통해 원점회귀 트레킹 할 요량이었다. 들머리가 될 부산환경공단은 장산역에서 10분쯤 소요되는 위치다.

▲환경공단 공원 못(둠벙)의 이른 봄의 한 컷▼

환경공단의 조그만 공원쉼터는 ‘고흐의 길’ 나들목으로 안성맞춤이다. 수목조경 속의 벤치와 조각품, 팔뚝만한 잉어들이 노니는 연못과 잔디마당은 트레킹 족들에게 최상의 간이역인 셈이다. 메타세쿼이아는 키가 35m~50m의 직립 낙엽목이다. 평균 수명은 100년에서 400년 이상이고, 꽃말은 '영원한 친구', '위엄'. 가로수나 방재`풍림으로 애용되는 침엽수이다. 지구상에서 사라진 화석종으로 알려졌는데, 중국 후베이성 리촨현에서 ‘수삼(水杉: 수이산)’이라 부르던 나무가 메타세쿼이아속 나무라는 사실이 세상에 발표됐다.

부산환경공단

중국국립중앙대학 삼림관리과 교수 간둬(干鐸)가 수종을 개량하고 보급하여 오늘 날 세계적인 가로수와 방풍림, 관상용으로 각광을 받게 됐단다. ‘고흐의 길’로 명명된 ‘부산 메타세쿼이아 길’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풍경화 중 ‘알리스캉의 가로수 길'(Les Alyscamps)’에서 차용했으리라.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에 있는 알리스캉은 당시 공동묘지였고 가로수는 포플러였다. ‘알리스캉의 가로수 길’ 그림은 2015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6630만달러(약 717억원)에 팔렸지만 생전의 고흐는 가난한 변방의 화가였다.

고흐의 길(부산 메타세콰이어길)

1888년10월,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초청을 받은 폴 고갱이 프랑스 남부 전원도시 아를(Arles)의 고흐의 노란집에 도착하여 두 달간 동거했다. 그들은 빨간 단풍의 가을풍경이 아름다운 알리스캉의 가로길에 매료돼 비자연주의적인 풍경화를 그렸다. 그 길은 ‘연인들의 길’로 불리며 아를의 여인들이 즐겨 산책하던 길이었다. 고흐와 고갱은 사랑하는 연인들이 석양에 산책하는 장면을 그려 서로 비교해보곤 했는데 고갱이 2점, 고흐의 4점의 풍경화 중에 ‘알리스캉의 가로수 길’이 있다.

'고흐의 길'은 '부산메타세콰이어길'의 애칭이다
오리나무도 꽃술 터뜨릴 준비완료

생전에 약 2000여 점의 작품을 남긴 고흐는 세상의 외면 속에서도 치열하게 빛을 갈구하며 죽는 순간까지 그림을 그렸다. 산업사회에서 밀려난 소외된 이들과 노동자들의 고된 삶에 천착한 시대의 그늘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그는 빈자들을 위한 목사를 꿈꿨지만 뜻을 이루지 못해 대신 화가로서 가난한 이들의 삶을 세상에 알리고자 했다. 고흐의 후예들은 지금 우리사회에서도 존재하리라. 그런 인재들을 국가가 보듬어야함이라. RnD예산삭감을 성토하는 졸업생을 입틀막하는 정부에서 RnD와 AI정책이 꽃 피울 수 있을까?

만발한 매화
송정옛길

고흐는 자연의 사실적 묘사나 표현보다는 색을 통해 상상력과 감정적인 색채표현을 구사했다. 그는 언제나 낮은 곳에서 생의 본질을 이해하며 일상 속에서의 비범함을 발견하려는 시선은 인물화와 풍경화로 확장되어, 길섶의 들풀, 드넓은 밀밭, 해바라기, 올리브 나무, 싸이프로스 나무 등 별이 총총한 밤하늘까지 넓혀나간다. 고흐는 자연의 사실적 묘사나 표현보다는 색을 통해 상상력과 감정적인 색채표현을 구사했다. 2년간의 파리 생활동안 자화상을 많이 그린 까닭은 모델료가 없어서 모델을 구하지 못해서였다.

▲양지쪽엔 진달래가 꽃봉오릴 터뜨리고 꿀벌은 신명이 났다▼

신곡산 옆구리를 관통하는 송정옛길은 빡세선지 인적이 없다. 수목사이로 조망되는 송정해수욕장과 솔섬이 한 폭의 사생화라. 해수욕장으로 내려서다 빠꾸하여 달맞이 길로 향했다. 처녀산행에 인적이 뜸한데다가 송정쪽의 달맞이 길 역시 처음이라 귀로를 서둘렀다. 송정쪽 달맞이 길은 와우산 여가녹지까진 순전히 자동차도로와 병행하는 갓길이었다. 덩치 크고 뒤틀린 기형적인 벚나무와 오리나무들이 새순과 꽃봉오리를 터뜨리기 직전이라. 동해바다는 나무들 사이로 숨바꼭질하듯 나의 시선을 빼앗는다.

송정해수욕장에서 '달맞이길' 나들목

와우산 여가녹지대는 도시외곽 산골의 이색 변방지대다. 산골짝의 무허가(?) 밭뙈기들은 내 어린 시절로 타임머신여행에 들게 했다. 푸성귀들과 방죽의 생명들이 일제히 봄 햇살을 탐닉하고 있다. 톨스토이의 명단편<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에서 주인공은 하루 종일 걸어서 그 땅을 소유하는 계약을 하는데 단, 일몰까지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새벽에 출발한 주인공은 욕심을 부리다가 해가 지는 황혼녘에 헐레벌떡 돌아왔지만 지처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는다. 결국 그가 얻은 땅은 일꾼들이 땅을 파서 묻어준 묘 - 제 몸뚱어리 만큼이었다. 내가 오늘 걸은 수km 땅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2025. 03. 23

와우산 여가녹지의 만발한 매화
송정해수욕장 솔섬
▲물오르기 시작한 오리나무군락지▼
와우산여가녹지 쉼터
이 거목은 동생과 새기나무까지 연리지를 만들어선 결국엔 새끼목은 고사시켰다
▲와우산 여가녹지 둠벙의 데칼코마니▼
▲와우산 여가녹지 산골짝의 농막과 꽃피는 상추밭, 나를 타임머신 여행에 들게 하는 풍정이었다 ▼
산짐승들과의 전쟁을 치르느라 온갖 예비군을 동원시켰다
▲이 둠벙엔 튼실한 물고기가 제법 있을 법 했다▼
고흐의 '알리스캉의 가로' - 717억원을 호가하는 그림이다
고흐는 자화상을 그릴 당시 인상파 화가들과 어울리면서 과음과 퇴폐적인 생활로 건강도 악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