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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2) 금정산 석불사 & 상계봉

2) 기암괴석의 동네 - 상계봉

석불사를 뒤로하고 상계봉을 향한다. 아까 등정한 샛길 못잖게 빡세고 가파르다. 이 가파른 산길이 얼른 능선을 올라챌 것 같지가 않아 팍팍하다. 앙상한 나목들의 겨울 산인데도 앞을 막는 급경사 등산길은 전망이 가늠 안 된다. 그나마 위안은 산님들 발길이 뜸한 탓에 산 본연의 정취를 체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산악회 리본도 이정표도 없는 등산길은 처녀산행인 내겐 긴장을 배가시킨다. 더구나 부산 뜨내기 신세인 내게 심산골짝에서의 방향감각은 갈림길에선 머뭇대기 마련이다. 이따금 숨바꼭질 하는 상계봉의 흰 바위군락이 유일한 나침반이다. 이정표 없는 게 산림보호의 한 방편일지도 모른다.

▲석불사에서 상계봉을 오르는 가파른 샛길도 거목들의 전쟁터다▼
상계산 소나무도 오리나무 폼이 멋있게 보였던지 직립근성을 포기하고 갈라치기 태생이 많다
배꼽바위

높고 깊은 산은 등산객이 없는 게 자연보호다. 허물어져 끊긴 금정산성을 월담하고, 노거수가 된 사방오리나무 군락지를 관통하기도 한다. 제멋대로 활개 치는 오리나무 폼이 멋있어 보였는지 소나무들도 직립보다는 움틀 때부터 사지를 벌린 놈들이 많다. 어디선가 상수리나무 동네서는 알밤꼬투리 지름이 2cm를 넘지 싶었다. 다람쥐가 몇 알만 잘 보관하면 겨울나기 걱정은 안 해도 될 터다. 큰바위 몇 개를 쌓아 거상(巨像)을 세웠는데, 얼핏 남태평양 이스트 섬의 라파누이 모아이석상을 연상케 했다. 모아이석상은 300년쯤 됐으니까 상계산거상은 모아이석상의 몇 대조 할아버지쯤 될 테다.

▼전망대에서 줌인한 닭벼슬마을 전경▲
전망대
낙동강 건너 김해방향인듯

모아이석상을 만들기 위해 폴리네시아 원주민들은 거대한 바위를 운반하고 다듬어 거대한 인면석상(人面石像)을 세우는 걸 성업으로 여기는 축제장이었다. 기념비적인 조각예술 작업은 원주민들이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외침에 대항하는 원동력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넘 살기 편해 설까? 관용과 포용은 사라지고 극단적인 편 가르기 진영싸움으로 날밤을 세운다. 우두머리는 내란을 선포하곤 입을 싹 씻으면서 ‘호수에서 달그림자 찾는다.’고 시침일 땐다. 3백여 년 전 폴리네시아 원주민들보다도 더 미련한 바보 독불장군(?)인가 싶어 한숨이 절로 난다. 닭 벼슬바위동네에 들어서자 한 놈씩 마중을 나온다. 

해운대와 센텀시티도 조망된다
저기가 낙동강 대저생태공원 이라면 내가 하루 뭉개면서 노닥거린 곳이다
사모관대모자

반가워 사진을 찍는데 떼거지로 나와서 누구와 눈인사를 할지 헷갈렸다. 스냅사진으로 익혔던 대포바위가 바위꼭대기에 설치됐고, 왕관바위는 멀리서 봐야 실감이 났다. 멋지게 폼 잡고 있는 놈 찍으려 바위동네 고샅길 더듬느라 고생이 이만저만했다. 그러다 전망바위에 올라서서 밀려오는 원경(遠景) - 산세와 바다가 부산시가지를 보듬고 감싸 어우르는 풍정에 감탄한다. 부산은 진정 축복받은 도시다. 자연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유토피아란 생각이 들었다. 에덴동산 같은 부산에서 편 가르기에 앞장서는 정치인들을 이스트 섬으로 몇 년쯤 위리안치 시켜 원주민들의 삶을 체험시켰음 싶다.

상계봉(닭벼슬봉)이 닿을 듯 했는데 타원형의 산능선을 한 바퀴 거의 도는 산행 끝머리였다
사방오리나무군락지
샌드위치바위

상계산 정상에서 두 분 산님을 조우 상학초교방향 하산 길을 묻자 ‘전망대쪽으로 하산하면 이정표가 있다’고 친절을 베풀었다. 전망대를 지나자 이정표가 있는데 ‘상학초교’나 ‘만덕역’ 표기는 없고 그쪽 방향의 길이 보인다. 좀 흐지부지한 산길을 헤치는데 아래 바위무더기 밑에서 한 쌍의 커플이 올라오고 있잖은가. 40대쯤일 서양인 커플이었다. 서툰 콩글리쉬로 ‘상학초등학교 쪽에서 오느냐?’고 묻자 미소 지으며 ‘오케이’다. 근디 저만치에 ‘등산로 폐쇄’라는 표찰을 매단 금줄을 가리키자 계면쩍게 웃으며 ‘아이 노우’한다. 저 아래 아파트집단이 만덕동이란 예측이 들고, 샛길일 것 같은 생각에 발길을 땠다. 그렇게 우린 상대편이 왔던 길을 교차하며 헤어졌다.

남태평양 이스터 섬 라파누이의 모아이(moai) 인면석상(人面石像)을 연상케 한다
새끼 업은 거북바위

전망바위군락을 내려서자 급강하 하산길이 장난이 아니다. 여기만 내려서면 괜찮을까? 하는 기대는 그냥 기대일 뿐이었다. 바위와 돌멩이와 마사토 위에 낙엽까지 쌓여 스틱으로 헤치며 아장아장 내딛는다. 십분 쯤 하산하다 멍석바위에 걸터앉아 되돌아설까말까 고심했다. 미끄러져 장애자 될 바엔 즉사하는 게 죽음 복이라고 염불하면서도 불안에 가위눌린다. 나의 오늘 행선지는 귀신도 몰라 만약 낙상사(落傷死) 될 경우 시신은 자연의 보시물(普施物)이 될 터다. 나는 산행지를 아내에게 자세히 말하지 않을 때가 많다. 더구나 부산에선 홀애비(?)가 아닌가. 하여 산행 중에 사고가 나면 휴대폰충전 끝과 동시에 나의 행적도 미궁이다.

석불사~상계봉산행에서 처음 마주친 인공물인 데크계단
백양산?(좌)과 상계봉 계곡의 아파트단지는 낙동강에 숨통을 드밀고 있다

참 무모한 산행을 여태껏 용케도 잘 이어오고 있으니 여간 다행이다. 위험한 만용을 절감하면서도 홀로산행을 고집하는 건 동행할 만한 산님이 없고, 혼자만이 누리는 자유만끽에 길들여져 그런 일탈을 탐닉한다. 숲속이란 에덴동산에서의 거칠 것 없는 자유인이다. 고요하고 맑은 피톤치드 숲에서 천상천하유아독존을 향유한다. 그게 심신의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 자부한다. 그래 아내는 나더러 ‘속없는 개넋살 탓’이라고 일침 놓곤 하지만. 암튼 나는 오늘 이렇게 위험한 산행에 반신반의 하면서도 또 다시 홀로산행을 이어갈 것이다. 다만 산행 중에 죽으면 시신이 빨리 발견되어 ‘시신기증서약’이 성사되기를 바라고, 그게 진정으로 바라는 죽음복이라 생각한다.

사직야구장(?) 뒤로 부산항만, 그 뒤로 영도일듯 싶다
해운대방면
금정산성 저 멀리 상계봉이 보인다. 여기서 모처럼 안내이정표를 마주쳤다

급살 맞다싶은 급강하 산행을 반시간쯤 강행하다 드뎌 정규등산로에 들어섰다. 오늘 위험을 감수한 쌉쌀한 샛길산행의 맛은 두 다리와 두 손의 스틱 덕이었다. 산행의 50%역할은 스틱이 한 셈이다. 스틱은 산행의 필수 휴대품이다. 이젠 어떤 경우든 샛길산행은 외면할 테다. 상계봉엔 철쭉군락지도 심심찮게 보였다. 늦은 봄 철쭉꽃 리본으로 단장한 닭 벼슬마실 구경을 해보고 싶다. 산은 건강을 담보할 신약을 무상제공하는 보고다. 부산이나 서울은 신약의 보고청인 산록이 지근거리에 산재해 있는 행운의 삶터다. 부산은 더듬을수록 알차고 은근한 매력이 무진장한 도회지다. 부산사람들은 행운아다.          2025. 02. 25

못생긴 사각돌맹이 자식 하나를 보호하기 위한 큰 바위들의 모성(?)이 눈물날 지경이다
가까이다가서는 상계봉, 이정표 뜸한 처녀산행에서 나의 나침반노릇까지 했다
▲4층바위▼
5단짜리 스페셜 샌드위치
허물어진 금정산성을 월담하고~
조물주만이 가능한 석축예술이다
두꺼비바위
▲대포바위▼
암송의 연애질은 닭벼슬 동네서도 공인 됐다
낙동강 건너편이 화명생태공원인듯 싶고?
소나무를 연인 겸 불침번 세운 촛대바위
뿔바위
쌍석대
왕관바위
남근과 공알
상계봉정상
건너갈 수 없는 별궁의 망부석과 촛대바위
끝머리 섬은 영도일까?
해운대와 마린시티?
영도와 부산항만
날머리인 만덕동 아파트촌일까?
좌측에 황령`금련산인가 싶고 중앙의 섬은 영도
비공인 등산로 - 샛길입구에서 조우한 서양인 커플과의 어설픈 콩글리쉬가 없었다면? 하는 자책과 후회를 하산길에서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