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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1) 금정산 석불사 & 상계봉

1) 론리 플래닛이 소개한 석불사 

▲석불사 전경▼
론리 플래닛에 등재된 우리나라 관광명소는 지리산,설악산,한라산.북한산,다도해,경주인데 석불사가 소개됐다

내가 오늘 금정산 석불사(石佛寺)와 상계봉(上鷄峰 닭벼슬바위봉)등정에 나선 건 요 근래에 들어 가장 짜릿한 희열과 긴장의 산행이었지 싶다. 며칠 전까지도 나는 석불사에 대해 일자무식했는데 웹상에서 어쩌다가 마애불상에 어필되고, 이어 론리 플래닛에 등재됐다는 기사를 접하고 마음은 곧 석불사로 달렸다. 게다가 연계된 닭벼슬 바위동네의 기암괴석들은 겨우내 움 추려든 산행바람을 부채질했다. 오늘 4시간여의 산행은 정규코스를 벗어난 샛길 - 오살 맞게 가파른 75도 이상의 된비알코스를 두 번이나 탐험(?)하듯 만용을 부려 몇 번이나 후회한지 모른다.

너덜갱지대, 여기서 친절한 두 분의 산님을 조우 석불사등정 단축코스를 소개 받았다

 산행시작 반시간쯤 후에 너덜갱지대 앞에서 산님 두 분과 조우해 인사말을 나눴는데 석불사등정 샛길코스가 있다며 이따 가르쳐주겠다고 했는데 귀담아 듣지 안했다. 해찰하느라 뒤처진 나는 한참 후에 체육시설 쉼터 화장실에서 두 분을 재회했는데 석불사 샛길은 이미 지나쳤단다. 임도를 따르는 정규코스는 엄청 우회하니까 50m쯤 빠꾸하여 샛길로 오르란다. 산을 좀 타는 산님은 백번 그 샛길을 이용한단다. 친절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그 분들 말따나 온 길을 되짚어 샛길을 발견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빡세게 가파른 샛길은 5분도 안되어 숨이 차올랐다.

다행인 것은 거목들이 고사하거나 풍우에 꼬꾸라진 진풍경을 전시장처럼 펼치고 있다는 산 본연의 멋과 맛을 탐닉한다는 흥분이었다. 벼랑에 설치한 밧줄이나 흔해 빠진 산악회리본 하나 없는 날것 자연산길(?)이 줄곧 이어졌다. 산꾼 몇이 즐길 산행길이지 단체산행은 애초에 시도하지 않는 게 현명한 루트였다. 한 분도 조우하지 않은 반시간여의 산길은 드뎌 석불사원경을 비춰졌다. 거대한 하마바위 절애 밖의 종루(鐘樓)만이 절을 상징하고 모든 불사는 동굴 속에서 이뤄졌다. 국내최대의 마애불전이라는 16나한과 29개의 마애불상은 하마아가리 볼 암벽에 돋움 새겨졌다.

석불사 일주문과 전경
석불사종루에서 조망한 금련산방면
고적한 단애병풍 경내에 종각 옆의 유일한 소나무는 사파세상과 이심전심 하는 소통수이다

정면에 십일면관음보살 입상, 상단엔 미륵존불 좌상이 있다. 우측암벽에 약사여래불상과 사천왕이, 좌측암벽엔 사천왕과 비로자나불상이 돋을새김 됐다. 서쪽계단을 오르면 왼쪽에 팔나한과 석가모니불상, 오른쪽에 팔나한이 있는 총 십육나한과 29위의 불상이 있다. 십일면관음보살상은 불상조각가 배판수작으로 ‘부처님이 아닌 마음속에 품은 여인을 새길 테니 용서해주세요’라며 조각했단다. 자애로운 여인의 미소라! 바위와 바위 사이를 석불조각으로 이어 붙여 마치 병풍을 휘두른 듯한 마애불의 위용 앞에서 불교예술을 꽃피운 장인스님의 불심에 언어도단이라! 예술에 문외한인 내가 탄성이 절로 났다. 

왜 ‘석불사’로 명칭 했는지를~! 왜 ‘병풍사(屛風寺)’라는 별명이 붙었는지를~! 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외국의 여행객들 90%가 여행 시에 소지하는 필수가이드북인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 Publication)에 한국관광지로 소개했는지를 추론케 한다. 나는 관음보살상 옆 혼자만이 래왕할 수 있을 45도의 바위계단을 올라 독성산영각에 섰다. 하마목구멍 속에서 귀로 뚫린 숨구멍도 있다. 하마 입-단애협곡에 돋을 새김 된 16나한과 29개의 마애불상은 음영에 따라 표정도 다르다. 좁디좁은 단애협곡에서 조망되는 사파세계가 한 폭의 수묵화다.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독경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독성산영각에서 내려온 보살님 말고 스님은 어디 계실꼬? 인기척이 없다.

십일면관음보살입상과 미륵존불 좌상, 아름답기 그지 없다

두 팔 벌리고 종각을 지키는 외톨이 소나무침엽에 바람이 머문다. 스님은 소나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지 모르겠다. 적요한 바위굴에서 스님은 소나무에 머무는 바람결에 사파세계와 이심전심하나 싶다. 침엽에서 가녀린 휘파람소리가 난다. 봄이 가까웠다는 신호일까? 초록침엽에 파란하늘이 내려앉고 부신 햇살이 미끄럼 탄다. 해도 스님은 보이질 않는다. 일주문 앞마당에 SUV차 한 대가 주차를 한다. 가파르고 꼬불꼬불한 임도를 한참을 올라왔단다. 아닌 게 아니라 아까 나처럼 올라오기란 언감생심일 테다.

▲사천왕과 비로자나불상(좌), 약사여래불상과 사천왕(우) ▼
▲ 사천왕과 비로자나불상 ▼

내게 샛길을 알려준 두 산님이 새삼 고마웠다. 그 분들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첫 산행지에서 나홀로 산님한테 제일 반가운 건 조우하는 산님들과의 인사다. 자연스럽게 궁금한 점을 묻게 되는데 허투로 싱거운 대답을 해선 안된다. 잘 모르면 그대로 말하면 된다. 산행 중에 산님으로부터 얻는 정보는 실시간의 생중계 GPS인 셈이다. 일주문을 나서 석불사 우측의 상계봉을 오르는 된비알 산길도 아까 왔던 샛길의 복사판이었다. 능선에 올라서야 전망이 가늠될 텐데 가파른 산길은 끝이 없다. 인적도, 산악회의 산행리본도 없다. 덩치 크고 노쇠한 소나무, 참나무, 오리나무숲들이 전쟁터의 노병들처럼 무심하게 쳐다보고 있다. 아, 순간 하얀바위 무더기가 흝어진 산정이 보인다.  닭벼슬봉우린가 보다.           2025. 02. 25

독성산영각을 오르는 바위계단은 좁고 가파르고 층고가 높아 오르내림이 곧 행선이다
바위협곡 독성행신각에서 조망되는 사바세계는 압권이다
약사여래불상과 사천왕
독성각에 뿌리를 내린 거목은 석불사의 명품이라! 16나한과 29마애불이 사계를 알아채 즐기는 하늘나무다
금련산과 황령산이 압축되어 수묵화 한 폭이 됐다
사천왕 중 우측 2천왕과 부처입상
일주문 앞의 노송 사이 샛길이 상계봉을 오르는 자연스런 옛 산길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