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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신곡산 - 두타사(頭陀寺)의 봄의 향연

신곡산 -  두타사(頭陀寺)의 봄의 향연

엊그제 트레킹 했던 송정옛길은 일제 때부터 해운대 좌동과 송정주민들이 신곡산(230m) 고개를 넘나드는 주요 산길이었는데, 한국전쟁 때 군수창고가 설치되면서 주민 통행을 제한하여 망각의 길이 됐다. 2020년 신곡산의 군시설을 폐쇄하고 주로 탄환을 보관하던 폐허화 된 군수창고를 ‘기억쉼터’로 단장하하면서 전망대 등 편의시설을 설치하여 걷기 좋은 숲길로 복원한 것이 ‘송정옛길’이다. 앞서 송정옛길 트레킹에서 아껴뒀던(?) 신곡산정상과 전망대와 두타사를 찾아 옹골차게 즐기려 오늘 길을 떠났다. 길은 나의 삶의 나침판이고 역사다.

매화와 조팝나무꽃 울타리 속의 두타사

송정과 해운대를 잇는 4km남짓의 고갯길은 반농반어촌인 송정주민들이 해운대들녘에서 농사짓고, 송정 앞바다에서 생산한 해산물들을 팔기위해 넘나들던 산길이었다. 송정의 유명한 쫄쫄이 미역과 멸치 등의 해산물은 동래장터까지 운반해야 했으니 얼마나 힘 부쳤을꼬? 고갯길에 간간이 있는 개울과 둠벙의 도룡뇽과 새우, 밤길을 밝히는 반딧불이, 방정떠는 직박구리 등의 눈요깃거리도 힘겨운 고갯길에 길손이였지 싶다. 고갯길 위에 전망대가 있는데 송종해수욕장과 죽도, 오시리아 해변까지 조망되는 멋진 오션`뷰다.

▲신곡산정상 - 개나리가 한창 꽃망울을 터뜨렸다▼

송정해수욕장 좌측의 죽도(竹島)는 송정강에서 쓸려오는 모래톱이 쌓여져 육계도가 됐다. 죽도 앞 거북바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6.25때 영국군이 송도에 주둔하면서 사격연습 표적으로 사용하여 총알받이가 됐다. 그 비운의 소나무가 유명한 일송정(一松亭)의 어원이었는데~! 죽도를 육계도로 만든 송정강 위에 카리캉다리는 철공판다리라 건너면서 발을 구르면 쾅쾅소리가 나서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어린이들의 놀이터로 인기였다. 전망대 바로 밑의 구덕포는 우리나라 양식미역의 최초 생산지로 바다엔 미역양식장이 듬성듬성 붙박였다.

전망대에소 조망한 송정해수욕장과 죽도, 뒤로 오시리아해변과 멍두산과 시랑대가 펼처진다
신곡산도 이산(李山, 이왕가 산)표석이 군데군데 있다. 여기 소나무는 배 건조와 건축재로 사용됐단다

송정옛길 막바지 해수욕장진입 전 언덕배기에 OO카페가 있고, 그 뒤에 단청도 안한 절간 한 채가 묵언수행 하듯 단촐 하게 있다. 텅 빈 경내는 봄빛 머금으며 활짝 웃는 온갖 봄꽃들의 전당이다. 문 닫힌 법당은 목탁소리도 없고 경내는 쥐죽은 듯 조용해 과연 스님이 계신지 의아케 한다.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걷는 나는 만개한 야생화들을 탐닉하느라 황홀경에 빠졌다. 바지런한 벌 두 마리가 매화꽃과 연애질하고, 조팝나무가 하얀 튀밥을 뒤집어썼다. 돌담 귀퉁이엔 샛노란 수선화가 방긋 웃는다. 돌담 틈새에서 머위대가 긴 모가지에 매단 꽃망울로 안간힘을 쏟는다.

수선화도 내 볼짝에 뽀뽀를 했다
밴년초와 조팝나무 꽃

이놈들 봐라! ‘백두옹(白頭翁)’이라는 할미꽃이 석축(石築)에서 고갤 숙이고 고혹(蠱惑)의 꽃술을 터뜨렸다. 털 보송보송한 자주색 초롱꽃봉은 부끄러워(?)설까 고갤 푹 숙였다. 그러다 어느 날 꽃잎을 떼놓고 의미심장한 백발꽃술이 할머니의 흰 머리카락이 되고, 그 백발은 민들레홀씨가 되어 할미꽃은 두타의 그 무언가를 상상케 한다. 할미꽃은 특히 무덤가에서 잘 자라는데 전래동화<할미꽃 전설>에선 셋째 딸집을 가던 할머니가 눈밭에 쓰러져 죽은, 그 할머니 묘소에 핀 자주색 꽃이 하얀 수술로 변하자 할머니의 넋이 핀 할미꽃이라 했다. 꽃말은 ‘슬픈 추억’, ‘충성’이다.

돌단풍 & 바위나리?

옛날 어느 산골에서 청상과부가 된 여인이 온갖 고생을 하며 세 딸을 키워 시집보내고 백발이 된 어머니는 거동도 불편한 몸이 됐다. 다행이 세 딸은 잘 살고 있어 궁리 끝에 큰딸 집에 의지하려고 소식하자 환영한다. 그래 큰딸 집에서 며칠째 머무는데 구박받는 어미가 됐다. 안 되겠다싶어 둘째한테 연락하자 얼른 오시란다. 그렇게 둘째딸 집에서 며칠을 보낸다. 둘째눈치도 섭섭했지만 두 손녀의 냉대는 참을 수가 없었던 할머니는 눈물을 삼키며 셋째 딸집을 향했다. 엄동설한에 막내 집을 향하던 어머니는 기진맥진하여 눈밭에 쓰러져다.

머위대 꽃망울
수양단풍나무

하마 도착했을 어머니가 소식 없자 막내는 어머니가 오실 길을 찾아 나섰다. 근데 어머니는 산밭언덕길에 눈 덮인 시체로 변해 있었다. 양지에 눈을 치우고 장사지낸 어머니묘소는 이듬해 봄날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고개 숙인 자주꽃봉오리가 어느새 하얀 백발이 되자 사람들은 ‘할머니꽃’이라고 - 할미꽃의 내력이다. 할미꽃이 두타사 동쪽마당가에 여기저기서 숨은 듯 고갤 숙이고 있다. 결코 부끄럽지 않은 일생이었는데 자식들 땜에 고갤 들수가 없는 고독사였다. 그나저나 스님은 어딜 갔을꼬? 걷는 게 삶이고 인생이다. 걷는 길속에 우주가 있고 역사가 수놓아 진다. 삶은 걷기의 역사다. 2025. 03. 29

대수리꽃
조팝나무꽃

두타사전성기에는(頭陀寺全盛時) / 전각은 마치 하늘에 사다리를 걸친 듯 했고(宮殿梯空級)

성에서 금빛 찬란한 전각을 바라보면(城中望金碧) / 구름 저 밖에 많은 승녀들이 보였다(雲外僧角濈濈)

민들래

지금은 승려도 없고 경전도 없으며(人亡經禪盡) / 전각은 무너져 부처는 울고 있는데(屋破龍象泣)

옛날에 만든 두타사 비문만 남아있으니(唯有簡栖碑) / 그 문장만 지금껏 의연히 서있네(文章巋然立)

죽림
돌계단 트매로 고갤 내미는 야생화
천리향
옛날에 대나무는 가정의 실실한 재산목록이었다
두타사 뒤 조붓한 산책길
오리나무숲길
유채꽃밭
도룡뇽과 민물새우 서식지였단다
자주꽃이 백발홀씨로 변신하여 드뎌 할미꽃이 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