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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영춘화에 핀 러브스토리

 영춘화(迎春花)에    러브스토리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땅속에서 동면하는 개구리가 지상으로 뛰어나오고, 봄맞이꽃들이 꽃잎을 움틀 텐데 겨울이 앙탈을 부린다. 시국이 하 수상쩍어 망상에 젖은 사람들한테 참살이란 걸 깨우치려는 자연의 죽비인가 싶다. 살얼음 엉키는 이슬비속을 산책한다. 와우산자락 청사포 어느 카페 뜰안에 앙증맞게 작은 노랑꽃 두 송이가 이슬바람에 도리질친다. 가까이 다가섰다. 얼른 꽃의 정체가 가늠이 안 됐다. 내 키만 한 꽃나무는 수많은 가지에 꽃봉오리가 우수수 맺혔는데 딱 두 송이가 봄의 전령사로 꽃잎을 터뜨렸다. 그나저나 이름이 궁금해 폰카에 잡아넣고 검색을 하니 아! 이놈이 영춘화(迎春花)라!

영춘화

봄맞이꽃으로 매화와 선두자릴 다투는 놈이다. 이슬비에 젖은 놈한테 콧등을 내밀었더니 향을 숨쉰다. 추위 속에 꽃 피우기도 힘겹지만 매파 초대는 더 난망해 향기로 유혹할 테다. 영춘화의 꽃말은 사모하는 마음, 희망이다. 물푸레나뭇과 관목`관상용으로 중국원산지에 우리나라와 일본(황매)에 많이 자생하며, 서양에선 겨울 자스민(winter jasmine)이라 부른다. 설중사우(雪中四友) 중 하나로도 꼽히는 영춘화는 조선시대 장원급제자의 머리에 꽂는 ‘어사화(御史花)’로 쓰였는데, 매화와 같은 시기에 꽃을 피워 ‘황매(黃梅)’라고도 불린다. 고귀한 영춘화엔 감칠맛 나는 러브스토리가 있다.

로즈메리

옛날 중국 동북지방 산촌에 가난한 노총각이 살고 있었는데 이른 봄날 나무 한짐을 지고나가 장터나루에서 팔고 홀어머니 속옷을 하나 살려고 옷가게에 들었다. 근디 가게 처녀가 상냥하고 예뻐 첫눈에 반해서 시간을 끌면서 수작을 벌렸다. 대화도중 처녀가 과히 싫은 기색이 아니란 걸 직감한 노총각은 담 장날 다시 오겠다고 일방적인 약조를 한다. 장날을 기다리는 닷새가 그리 더딜 줄이야. 나무 한 짐을 지고 옷가게를 찾아간 총각은 당황하는 처녀에게 나무헛간을 가르쳐달랬다. 처녀의 안내로 나뭇간에 나뭇짐을 부린 총각은 처녀가 주는 나무값을 사양했다.

백리향

처녀가 정색을 하며 ‘그러면 나무 안 살래요’라고 하자 총각이 ‘정 그렇다면 울 어머니 버선 한 벌 주시면 어떠냐?’고 제안하자 처녀가 비시시 웃었다. 버선을 싸주는 처녀에게 총각이 망설이다 얼굴을 붉히며 “지난 장날 낭자를 보는 순간 내 아내로 맞아야 되겠다.”고 다짐했다며 정식으로 프로포즈를 한다.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모르던 처녀가 작고 분명한 어조로 “진정이시면 매파를 저의 집에 보내주시지요”라고 호응하는 거였다. 하늘을 나는 기분으로 귀가한 총각은 며칠 후 처녀 집에 매파를 보냈는데 처녀부모가 “생전에 얼굴도 모르는 놈과 혼사라니?”하며 노발대발하자 처녀가 자초지종을 얘기한다.

처녀부모님이 다소 진정을 차리고 “지금은 바쁘니 김매기가 끝나면 선을 보자”고 매파를 타일러 보냈다. 매파한테 얘기를 들은 총각은 기분 째지게 좋았지만 김매기 끝나려면 두 달여 이상 기다려야 해서 싱숭생숭 일손도 안 잡히고 오만 잡생각에 하루가 여삼추였다. 상사병일가 싶게 총각이 열이 나고 탈진되어 자리에 누워 헛소리까지 하게 된다. 열흘도 넘게 앓다가 보름달이 환한 한 밤중에 동구 밖까지 나가 처녀네 집쪽을 향해 “병이 나아야 만날 수 있다”며 기도를 했다. 그렇게 간절한 기도의 밤을 며칠째 하던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눈썹마저 몽땅 빠져버린 게 아닌가.

팔손이

누구한테 모질게 하거나 욕먹을 짓 한적 없이 살아왔는데 낭패였다. 허나 내일은 처녀집에 가기로 약속한 날이다. 날이 새자 숯검정으로 눈썹을 그리고 처녀네 집을 향했다. 날씨가 무더워 땀에 눈썹이 지워질까봐 신경 곤두섰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낙비가 쏟아졌다. 숯검정 눈썹이 온전하겠는가? 처녀 집에 가는 걸 포기하고 귀가하여 마루에 걸터앉아 신세한탄하고 있는데, 뜬금없는 노인이 나타나 위로를 한다. “여보게 총각, 고민할 거 없네. 총각 마음씨가 곱다는 건 세상이 다 알고 있어, 내가 귀한 꽃 몇 송이를 줄 테니 한 포기를 물을 끓여 목욕을 하면 열이 내리네.” 유심히 쳐다보던 노인이 말을 잇는다.

비파나무

“다른 한 포기 꽃은 눈썹부위를 정성껏 문지르면 눈썹도 며칠 후면 생겨나 자랄 걸세” 라고 일러주며 되돌아서자 “고맙습니다, 노인장은 뉘시고 꽃 이름은 뭐랍니까?” “내야 알 것 없고 꽃 이름은 봄을 맞아 피어나는 영춘화라네” 총각이 ‘영춘화’라고 외우는 순간 노인은 사라졌다. 인사도 못한 총각은 얼떨떨 미안했지만 재빨리 정신 차려 노인의 주문대로 서둘러댔다. 이게 웬일인가! 열이 내리면서 몸도 가뿐해지고 눈썹도 거짓말같이 생겨나는 게 아닌가! 눈썹이 살아나자 총각은 처녀네 집을 찾아가 결혼승낙을 받는다. 상견례자릴 빠져나온 총각한테 처녀가 넘 늦게 왔다고 애정 어린 투정을 부리자 총각이 자초지종을 실토했다.

▲경칩에 개구리의 산란▼

아뿔사! 홍당무가 된 처녀가 몸 둘 바를 모르면서 “사실은 저도 눈썹이 없답니다. 그래서 이렇게 가짜로 그릴 수밖에요.” “아니, 원래부터 눈썹이 없었소?” “아니에요, 저도 당신을 그리워하다 보니 열병에 걸려 빠져버렸나 싶어요.” “아, 거참 우린 천생연분인 게요. 걱정 말아요. 지금 곧장 가서 그 신비한 봄맞이꽃을 구해 보낼게요.” 집으로 돌아온 총각은 영춘화를 찾아 산천을 누비다시피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꽃을 구해 처녀에게 보냈다. 영춘화를 받아든 처녀는 꽃 한포기를 약물로 써서 건강이 회복됐고, 한 포기는 눈자위를 마사지하여 눈썹도 생겨났다. 이때부터 영춘화는 관상용과 약용식물로 인구에 회자되었다. 2025. 03. 07

팜파스그라스의 겨울나기

* 영춘일화 인래백화개(迎春一花 引來百花開) ; 영춘화는 모든 꽃으로 하여금 꽃을 피워도 괜찮다는 신호를 알리는 봄의 전령사이다.

영춘화(작년 봄)
홍매화와 변산 바람꽃
청사포
▲청사포 해안을 기어가는 스카이웨이 캡슬카와 파크레일 전동차▼
▲청사포 커플등대▼
청사포 어느 카페
닥나무(한지원료로 겨울에도 고엽을 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