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 왕비와 스님의 스캔들


잿빛하늘은 이슬비를 뿌리며 정월대보름 아침을 열었다. 시국이 하 을씨년스러워 대보름날 빗발이 서우(瑞雨))이길 바랬다. 창밖 해운대백사장엔 거대한 달집과 공연무대가 마련됐다. 오늘 밤 달맞이와 달집태우기를 하며 소원성취를 빌고 풍요(豊饒)을 기원하는 굿 한마당을 벌릴 참이라. 지신밟기·용궁맞이·쥐불놀이·사자놀이·줄다리기·볏가릿대세우기·용알뜨기·놋다리밟기 등 세시풍속(歲時風俗)은 농경사회 사람들의 일체감을 조성하면서 양반과 서민의 격차를 좁혔다. 달빛으로 농사의 풍작를 점쳤는데 밤엔 하얀 보름달이길 기대해본다.


정월 보름날을 '오기일(烏忌日)'이라 부르게 된 ‘왕비와 스님의 불륜’이야기는 신라시대 보름날의 달맞이나 탑돌이 축제가 프리섹스의 요람이 됐음도 시사한다. 21대 소지왕(炤知王)10년(488) 정월 대보름 날에 들통난 승려 묘심(妙心)과 선혜 왕비 간통사건은 신라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스캔들이었다. 스님은 참수사형, 왕비는 폐위된 희대의 간통사건은 소지왕이 정월대보름 날 천천정(天泉井)에 행차했다가 까마귀가 하는 말을 따라 궁궐로 돌아와 거문고 보관상자(사금갑 射琴匣)에 화살을 쏘아 터졌다.


소지왕이 경주 남산 천천정 산책을 하고 있는데 쥐와 까마귀가 다가와 쥐가 ‘까마귀를 좇아 가보라’고 사람처럼 말하자, 왕이 병사를 시켜 까마귀를 따르게 하니 한 노인이 나타나 왕에게 올릴 글을 바쳤다. 봉투를 열면 두 사람[백성]이 죽고, 안 열면 한 사람[소지왕]이 죽는다는 글을 신하가 왕에게 아뢰어 급히 환궁하였다. 사금갑 앞에 도착한 왕이 거문고상자를 향해 활을 쏘자 사금갑 안에서 보듬고 뒹굴던 왕비와 승려가 비명을 지르며 알몸으로 뛰어나왔다. 선혜왕비로 간택 된지 2년차인 신부였고, 묘심은 이목이 수려한 바람둥이 승려였다.


왕비와 스님사이엔 오도라는 딸까지 있었다니 타고난 색골(色骨)묘심 못잖게 왕비도 색정(色情)녀였지 싶다. 소지왕은 간통사실을 알려준 까마귀에 보담하려 정월 보름날을 오기일(烏忌日)이라 명명하여 찹쌀로 밥을 지어 까마귀에게 제사지내자 풍습이 됐다고 <화랑세기>는 전한다. 소위 약밥의 유래를 설명하는 이야기다. 오늘 밤 해운대백사장 대보름축제에 휘영청 밝은 달은 뜨질 않았지만 달집태우기와 강강수월래 축제마당엔 인파가 파도처럼 넘실댔다. 봄을 여는 축제마당에 선남선녀 눈빛이 예사롭지 않을 게 고금을 관통하리라.


대보름 날 달빛이 희면 비가 많이 내리고, 붉으면 가뭄이 들며, 달빛이 진하면 풍년이 오고, 흐리면 흉년이 든단다. 그렇잖아도 을씨년스런 새해인데 대보름날 흐린 밤이라서 어째 신명나질 않지만 기우이려니 하고 맘 고추 먹었다. 달이 없는데 달그림자 쫓는 한심스러운 작자들이 발광 떨겠는가? 더 우려스러운 건 달그림자 쫓는 작자들을 매스컴에 띄우고 발광하는 사이비언론과 유튜버들이다. 국론갈라치기로 돈벌이와 유명인(?)이 되기 위한 망상이 서글프다. 달집태우기 앞에서 화장한 봄날이 빨리 오기를 기도한다. 2025. 02. 12













'느낌~ 그 여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춘화에 핀 러브스토리 (0) | 2025.03.06 |
---|---|
영화 <6888 중앙우편대대> (0) | 2025.02.22 |
달그림자를 쫓는 한심한 작자들 (0) | 2025.02.08 |
개구리알이 망상치료제라면 좋겠다 (0) | 2025.02.02 |
고구마예찬 (0) | 2025.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