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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금정산 범어사의 단풍

금정산 범어사의 단풍

오늘아침 창(窓)이 유난히 밝다. 물러서는 가을햇빛이 푸른 바다에 미끄러지면서 통유리 벽을 투명한다. 수평선에서 솟는 뭉게구름 사이로 아침햇살이 파란하늘로 빗살 친다. 산사(山寺)의 단풍이 생각났다. 한창 물들었을 나뭇잎에 투영하는 빛깔의 아름다움을 나무들은 어찌하고 있을까? 황홀한 단풍페스티벌에 산사는 덩달아 축제마당이 된다. 팔작지붕처마의 고운 단청들은 화사한 단풍나무들 속에서 얼마나 더 멋을 부리고 있을까? 바람도 잦아들었다. 따스한 가을햇살이 낭창하다. 배낭을 챙겼다.

부도밭도 이제 막 단풍소식이 전해진다
범어사 조계문 보도에 낙엽이 깔려 가을정취에 젖게 한다

범어사(梵魚寺)를 향한다. 온갖 바윗덩이계곡의 울창한 수목사이를 흐르는 명경같이 맑은 물길을 두텁게 감싸고 있을 범어골짝 단풍이 나를 불렀다. 산사입구 하늘을 덮은 수림은 지금 막 단풍 물드는 초록세상이다. 범어천을 흐르는 물길소리도 낭창하다. 계절의 초병인 벚나무만 만추의 스산한 폼인 채 단풍나무와 은행나무의 단풍을 안내하고 있다. 미풍 한 자락에 빨강단풍잎과 노랑은행잎이 여행을 떠난다. 절 경내로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단풍이 번지면서 가을 냄새를 풍긴다. 가을사냥꾼들 발걸음이 나무늘보 못잖다.

독보적인 범어사 조계문
범어사의 보믈인 600살의 단풍나무가 황금빛 가사를 걸치고 한껏 위풍당당하다

절 고샅길은 누가 말끔하게 쓸어냈을꼬! 가을엔 도보에 누운 낙엽은 그대로 놔두면 좋겠다. 낙엽 밟는 소리와 밟히며 신음하는 낙엽소리와 그런 낙엽의 몸부림에서 느끼는 전율과 냄새는 마음을 텅 비우게 한다. 자연에의 동화는 스산한 가을이 주는 스페셜메뉴다. 가을 단풍숲길의 산책은 나를 깨우고 살찌우는 대박찬스다. 범어사 단풍나무는 노랑가사를 걸친 채 이름값을 하고, 가람을 휘도는 산세준령들은 은근한 천연색 색동옷으로 치장했다. 범어사에서 금강암에 오르는 골짝숲길은 환장하게 멋지다.

아름드리 활엽수터널 속을 바위들이 쓰나미에 밀리듯 흐르고, 바위사이를 흐르는 물소리는 숲속의 아리아가 된다. 그 바위물길을 징검다리 건너듯하면서 물들기 시작한 단풍을 감상하는 희열은 아무나 체감할 수 없으리라. 금정산이 아주 깊고 웅장한 산세가 아닌 바위너덜겅인 듯싶은데 유수가 맑고 풍부하다. 애초에 바다가 화산폭발로 융기되면서 생긴 소백산맥 남단의 금정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금빛 나는 물고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우물에서 놀았다고 해서 산 이름이 금정산(金井山)이라 했다.

설법전 뒷산은 색동옷으로 갈아입느라 밤새워 쥐죽은 듯 조용했다

금정산정 고당봉 옆구리 바위에 금정(金井)이란 물웅덩이가 있다. 물색이 금빛인 바위웅덩이는 아무리 가물러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그곳 금정에서 발원한 물길이 흐르는 금정계곡에 사찰을 지어 범어사(梵魚寺)를 건립했다고도 기록하고 있다. 1주일 후면 금정골짝의 단풍은 신비경을 이룰 것이다. 다시 와야 함이다. 범어사는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와 더불어 영남의 3대 사찰이다. 사찰 중에서 유일하게 국보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소장하고 있다. 허나 삼국유사보다 더 보물은 금정바위골짝의 물소리와 나무이파리가 살랑대는 바람소리다.

▲설법전 경내의 행목과 칠층석탑▼

범어사는 바다건너 왜구들이 배고팠다하면 신라를 침략해 소란을 피우자 문무대왕은 걱정이 깊어져 불면의 밤을 보내곤 했다. 근디 어느 날 꿈결에 기인이 나타나 “대왕이시여, 근심하지 마십시오. 태백산 산중에 의상스님이 계시는데 3천 명의 진솔한 대중을 거느리고 화엄법문을 연설하여 여러 신과 천왕이 항상 떠나지 않고 수행합니다. 또한 동쪽 해안에 있는 금정산 산정에 높이50여 척되는 바위 우듬지에 항상 금빛으로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웅덩이 물 - 금샘이 있습니다.

▲차창에 내려 앉은 가을의 서정!▼

그 금샘에는 하늘나라에서 오색찬란한 구름을 타고 내려온 한 마리의 금빛 물고기가 헤엄치며 놀고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의상스님과 함께 그 산의 금샘 바위 아래서 칠일 칠야 동안 화엄 신중을 독송하면 그 정성에 따라 동해의 왜병들을 진압할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문무왕 18년(678년)에 있었던 기적의 꿈이다, 문무왕은 신하들을 입실케 하여 간밤의 꿈 이야기를 하고 의상대사를 모셔오게 하였다. 의상대사가 도착하자 문무왕은 함께 금정산으로 친림하여 칠일동안 주야로 독경했다.

이때 경천동지하면서 홀연히 여러 부처님과 천왕, 신중 그리고 문수동자들이 모두 병기를 들고 동해의 왜적들 토벌에 나서 섬멸시켰다. 대승을 거두고 돌아온 문무왕은 크게 기뻐하여 의상스님과 함께 금정산 아래에 큰 절을 세우니 바로 호국비보사찰 범어사다. 이 얘기는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동래부지>에 기록 된 창건설화다. 범어사는 해동의 화엄십찰(華嚴十刹)로 창건한 사찰로써, 소장한 <삼국유사>의 판본 중 권4의 5편에 들어 있는 <의상전교(義湘傳敎)>에 의상대사가 열 곳의 절에 교를 전하게 해 화엄십찰을 창건하는 내용이 나온다.

출입금지인 요사채처마 사이의 죽림

이 가운데 '금정지범어(金井之梵魚)' 즉 금정산 범어사가 들어있음이 언급되어 있다. 어리석은 중생의 마음을 부처님의 마음으로 변화시키는 곳이 선수행 도량이다. 양산 통도사가 불보종찰이요, 합천 해인사가 법보종찰이며, 순천 송광사는 승보종찰이다. 범어사는 선종본찰로서 마음의 근원을 탐구하는 수행도량이요 선찰대본산의 의미이다. 주지 성월스님은 범어사를 선찰대본산으로 명명하고 당대에 최고 고승 경허스님을 범어사 조실스님으로 초빙한다.

▲가을은 지금 막 범어사를 침입하고 있다▼
요사채 고샅 - 뉘가 가을을 내쫓았을꼬? 가을엔 고샅 길의 낙엽을 안 쓸면 더 좋을 텐데~!

범어사와 금강암을 잇는 금천숲길은 무릉도원에 드는 소요의 길이다. 금강암 대자비전 뒤 동굴약사전과 나한전의 숲은 단풍의 극치미를 연출하고 있다. 자연이 창조하는 아름다움이란 언어도단이란 걸 실감케 하는 곳이다. 나는 나한전에 오르는 참 꾸끔스런 바윗길 단풍 숲에서 배낭을 내려놨다. 황홀한 만추의 서정으로 배터지게 포식 하고팠다. 아름다움은 아무리 먹어도 식상하지 않는다. 한참 후 어떤 보살님이 바로 아래 삼성각에서 예배하고 나오더니 나를 보고 놀라 숨었다.

굴뚝까지 불붙는 범어사의 가을
대웅전 앞 국화길

내가 일어섰다. 보살님이 다시 모습을 나타낸다. 배낭을 짊어지고 자릴 비켜드리려 하자 손사래 친다. 누가 왜 미안해하는지는 찰나였다. 곱디고운 서정에의 공감대가 모든 걸 생략했다. 그렇게 스냅사진도 생겼다. 보살이 먼저 자릴 떴다. 단풍삼매경을 훼방 놓아 미안타고 내빼다시피 떠났다. 황송한 마음까지 더 보태준 황홀한 단풍삼매경은 다시 온전히 내차지가 됐다. 하얀 구름이 파란하늘 길을 최촉한다. 하늘도 눈부시게 파랗다. 가을엔 먹을 것도 많다. 그냥 숨만 쉬고 있어도 배고픔을 잊는다.

대웅전 단청에서 모티브를 차환했을까? 국화당주의 꼬깔무늬가 말이다

범어사 부도 밭에서 템플스테이 가는 바위숲길은 등나무 숲길과 잠시 포개지는데 이만한 치유의 숲길이 어디 있을까? 싶은 유토피아를 이룬다. 하늘이 안 보일만큼 우거진 울창한 태곳적 숲은 인적도 뜸해 적요의 극치를 이룬다. 스산한 만추의 으스스한 분위기를 달랠 수 있는 건 바위사이를 흐르는 금샘의 밀어들이다. 물소리에서 나를 의식하고, 한 걸음 발자국에서 나를 인지하는 행선(行禪)의 소요다. 초여름엔 보랏빛 등꽃다발이 연등처럼 매달려 숲길에 매혹적인 향기까지 만당 시키던 이길 - 그 많은 벌`나비들은 다 어딜 갔을꼬?           2024. 11. 11

범어사 스님들은 앞 뒷산만 보고 있어도 배가 부를 테다
월담 뒤의 팔상독성 나한전과 단풍이 기막힌 풍경세밀화 한 폭을 창조했다
쫌만 더 있으면 지붕에 불 났다고 범어사는 119전화를 할지도 모른다
▲금강암과 대성암을 오르는 바위숲길▼
대성암계단 문
용마루의 쌍용이 금방 승천할 요량인데 파란 하늘이 넘 푸르러 빗발 날리는 때를 기다리는가!
대자비전
템플스테이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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