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숙도 생태`철새공원의 가을
벼르고 벼르던 을숙도(乙淑島) 탐방길에 나섰다. 낙동강 하구둑 아래 다대포와 몰운도엘 몇 번 하이킹하면서 지척에 있는 을숙도는 늘 미지의 땅이자 동경의 섬이었다. 그럴 것은 사람들보다 철새들한테 더 잘 알려진 새들의 낙원이란 소문 탓이었다. 하단역사(驛舍)를 빠져나온 나는 낙동강하굿둑을 향했다. 길이 2,230m, 최대높이 18.7m의 토언제(土堰堤) 하굿둑은 부산 하단과 경남 명지를 잇는 둑이고 육교다. 나는 오리길이 넘는 하굿둑을 걸으며 낙동강을 온전히 눈 안에 넣고 싶었다. 하굿둑은 대단했다.
끝이 안 보이는 하굿둑은 사람 하나 없는 차량행렬의 전쟁터였다. 차량이 내는 소음은 낙동강물소리를 삼키고, 진동은 지축을 흔든다. 그나마 가뭄에 콩 나듯 휙 지나치는 바이커들이 위안이 됐다. 이 차량들의 전쟁 속에서 불상사가 날 때 얼른 도움을 청할 사람은 바이커 뿐 아닌가? 낙동강 물은 흐르기는 하는 걸까? 을숙도대교 쪽을 향하는 강물의 윤슬로 가늠한다. 가마우지 한 마리가 물속으로 들더니 사라졌다. 익사한 걸까? 놈이 물고기를 물고 나타나길 5분여를 기다리다 포기하고 발길을 땠다.
근디 엉뚱한 데서 가마우지가 솟는다. 멀어서 고기를 낚았는지 모르겠고, 아까 그놈이 그놈인지도 모르지만 딴 놈이 없었으니 10분쯤 걸렸을 놈의 잠수실력에 경탄을 했다. 낙동강은 함백산에서 발원해 영남 전역을 휘저으며 남해로 약 510km 흐르면서 강 하구에 퇴적 토사로 삼각주 섬을 만든 게 을숙도다. 비옥한 퇴적물은 김해평야를 낳아 겨울 철새들의 풍요로운 쉼터가 됐다. 을숙도는 하단부에 철새공원, 상단부는 생태공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을숙도철새공원은 문화재보호구역(낙동강하류철새도래지)이다.
11월 중순에 백조(큰고니)는 시베리아에서 남하하는데 천연기념물 201호 고니 1천여마리가 같이 월동한다. 퇴적지인 비옥한 토양에는 갈대와 수초가 무성하고 짠물과 민물이 뒤섞여 어패류도 다양하여 철새들이 쉬어가기 좋은 조건이다. 1950년대 동양 최대 철새 도래지인 을숙도는 196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다. 과거에 을숙도는 경작지, 분뇨처리장, 쓰레기매립장, 준설토적치장 등으로 이용되던 곳을 1987년 낙동강하구둑이 완공되면서 상단 일응도와 하단 을숙도가 하나의 섬으로 공원화됐다.
2005년부터 5년간의 복원공사를 통해 을숙도는 철새공원과 생태공원으로 태어난다. 날씨가 쌀쌀해지는 10월 말부터 겨울 철새들이 찾아 들기 시작하고, 큰고니며 재두루미 등 겨울 철새들은 먼 길을 떠날 것이다. 드넓은 야생 갯벌에 철새들의 울음소리로 겨울축제가 열릴 텐데, 지금 뭔 공사 중이라 출입통제여서 피크닉공원만 한 바퀴 소요하는 아쉬움으로 만족해야 했다. 피크닉공원에 하얀 면사포 휘날리는 너울 춤꾼 팜파스그라스가 없었다면 오늘의 철새도래지 탐방은 실망 그 자체였을 테다.
을숙도 상단 생태공원탐방에 들었다. 부산현대미술과 뒤 을숙도조각공원에서 한참을 아장댄다. 작가가 빚은 작품의 뉘앙스를 엿보려하지만 멍청한 나는 탐구력시험을 하다 포기하기 일쑤다. 여기저기에서 하얗게 파도치는 갈대숲에 발길이 이끌렸다. 을숙도공원은 낙동강퇴적지형이라서 그냥 무작정 펼쳐진 평지다. 포장길이나 데크로드가 아닌 자연생태길이라 산책하기 그지없는 치유의 길이다. 낙동강바람이 일깨우는 수풀들의 산소와 야생화의 유혹은 광대한 우주를 다 품고 유유자적하는 나 홀로의 사유에 빠져들게 한다.
갈대숲에 듬성듬성 더불어 기생하는 골드로드의 선연한 노랑머리칼은 단연 이색적이다. 놈들은 하얀 대가리에 번진 버짐처럼 지금 막 자리 잡아 번지기 시작했나 싶었다. 을숙도 위 화평생태공원에 둥지를 틀었던 골드로드가 낙동강바람을 타고 남하하여 을숙도에 침범했을 터. 놈들의 샛노란 파도물결이 희뿌연 갈대 너울춤보다 단연 돋보여 매력적이지만 토종갈대숲을 잠식하는 외래종의 번식력이 다소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아까 철새도래지에서 작업하던 일꾼들 말로는 핑크뮬리 서식지를 공들여 파괴시키기도 한단다.
세상은 온통 전쟁터다. 적자생존의 법칙은 우주의 질서지만 인위적 잘못으로 생태계를 파괴하는 짓은 불행을 자초하는 만행이다. 어쩌던 간에 을숙도는 지상낙원이다. 강물이 사위를 흐르면서 비옥한 퇴적층을 넓히고, 수풀이 우거져 온갖 생명들이 보금자릴 튼다. 거기에 깃든 생명체들과 교감하는 산책은 영혼까지 살찌운다. 눈발 휘날릴 때 이 파라다이스를 다시 소요하고 싶다. 그땐 철새도래지도 맘껏 안을 수가 있을 것이다. 겨울갈대는 어떤 춤을 출까? 팜파스그라스는 어떤 모습일까? 아마 골드로드 모습은 볼품이 영 파이일거다. 2024. 10. 25
# 팜파스풀(pampas-, 학명: Cortaderia selloana 코르타데리아 셀로아나), 팜파스그라스(pampas grass)의 꽃말은 ‘당신의 사랑을 기다립니다’ ‘나의 사랑을 받아주세요’란다. 우리나라 억새와 비슷한데 키가 훨씬 크고 은색의 꽃 이삭이 풍성해서 귀품있는 서양인을 연상시킨다. 남미(南美)가 원산지로 가늘고 긴 줄 모양의 잎은 날카로워 조심해야 한다. 꽃은 8월~11월에 피고 암꽃이 숫꽃보다 더 풍성하다.
출처: https://pepuppy.tistory.com/536788 [깡 쌤의 내려놓고 가는 길:티스토리]에서 팜파스그라스를 더 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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