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하는 사람아

누님

누님

내 바로 손위 누님께서 낙상하여 군산요양병원에 입원가료 중인데 허리통증으로 침대에서 일어나질 못하고 계신다. 네 댓 시간 걸린다는 부산~군산간 교통편이 그마져 뜸해 문병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내가 죄송스럽고 한심하단 생각이 든다. 손위 누님이지만 아홉 살 터울이라 어머니 같이 의지해 왔는데 중환자신세로 저승길 예약을 한 셈이라니 맘 아프고 심난하다. 나이 들면 죽음이란 숙명 앞에 무능한 인간의 한계를 통감(痛感)하게 된다. 가난한 살림살이 꾸리면서 4남매를 대학졸업 시켜 두 명의 의사와 선생으로, 고명딸은 호주시민으로 입신시킨 열혈누님이셨다.

내 고교시절 누님은 이맘 때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며 애들 키우기에 분골쇄신하던 농촌아낙의 모습이 아른댄다. 며칠 전 둘째가 금년을 어찌 나실까 싶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알려줄 땐 누구한테 한 대 얻어터졌나 심게 멍했다. 누님의 죽음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허리아파 거동이 불편하시긴 했지만 죽음은 언감생심이었다. 누님께서는 슬하에 나름 성공한 자식들 - 의사가 두 명이나 있어서만은 아닌 천성이 순박하셔서 남들이 좋다는 대로 무탈하게 살아오신 천성에 낙천적인 성품이 내겐 천수를 누리실거라고 여긴 땜이다.

자식은 제 깐에 잘 나가 자립했다 싶으면 부모한테 무심하기 쉽지 싶다. 그렇지 않아도 누님 네 자식들은 천성이 살갑지가 않아 불효하나 싶어 나는 속으로 불만일 때가 많았다. 사실 교사인 둘째내외가 아님 누님은 여간 팍팍한 삶을 살고 게실 테다. 의사아들과 호주에 사는 딸은 내 눈엔 얄밉기 짝 없게 불효하나 싶어 누가 그런 속내를 알까 걱정되는 거였다. 불효자식이라 욕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누님께선 그런 무심함을 인정하시면서도 한 번도 불효라고 볼멘소리 하는 걸 나는 들은 적이 없다.

나는 결혼 전엔 짬만 나면 찾아가 누님을 뵙고, 맘고생도 시켰었다. 친자식처럼 행동하여 누님의 고단한 생활을 익히 엿볼 수가 있었던 거였다. 누님께선 50대 후반쯤 허리디스크가 발명했으니 그때 적극적인 수술치료를 했어야 했다. 시골아낙네라 후유증으로 더 고생할까 봐 포기하셨다. 의사자식이 두 명인데도 지들 엄마의 지병을 몇 십년동안 방관(?)하여 병세를 악화시킨 셈이어서 나는 두 조카(의사)가 밉다. 무심한 게 아니라 무능한 의사이며 자식인 게다. 누님은 몇 해 전 수술 안 한걸 후회하고 계셨다.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의술을 믿고 수술하자고 건의했지만 이미 때 늦어다 고 포기한 자식들이었다. 누굴 탓하거나 원망할 줄을 모르는 삶을 사신 누나의 일생은 행복과 불행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지 딴 데서 오는 건 아님을 유추케 한다. 누님은 늘 자기의 주변에 있던 하찮은 것들이 행복의 소재였음을 챙기셨고, 거기서 얻는 소소한 기쁨을 주위사람들과 공유하는 걸 당연시 했던 보살님이셨다. 매형 돌아가신지 20년쯤 되는가? 유지 이어받은 원불교도회장 몫을 여태까지 감내하고 있음도 제반사에 분별 짓지 않는 도량 땜일 테다.

남들과 비교하며 외부에서 찾으려는 행복에의 욕망이 불행의 주범일 것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대상을 빗대어 내려놓아야 할 기대치를 과욕부리는 것이 불행의 씨앗이다. 누님의 행복은 항상 단순함을 숙주삼지 싶다. 문득 부질없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신화속의 메데이아(Medea)란 마법사가 떠오른다. 메데이아는 지구상의 모든 영약을 만들어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하며, 시아버지와 할머니를 회춘시킬 약을 만들어 복용케 하여 젊어지게 했었다. 2천 년 전에 있었던 기적 같은 일이 우주여행을 하는 지금은 못하고 있다니?

어느 때라도 달려가면 백발의 누님이 굽은 허리 가까스로 펴는 척(?)을 하시면 미소로 반겨주시던 모습 - 영원할 것만 같은 착각이었을까. 화해리 마동의 누님집이 - 누님께서 대문 박에 서계신다. 이젠 내가 가야할 곳, 암 때나 찾아가서 흉금 털던 곳이 사라질 판이다. 아니 가고 싶은 정겨운 곳이 가지 못할 곳이 될 것이다. 병상침대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누님이, 짠한 누님이 아른댄다. 낼 모래라도 문병가야 한다. 그저 눈이라도 마주쳐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를 덜 수가 있을까 싶다. 한심한 동생이다. 쾌유를 빌어본다.       2024. 10.

# 위 그림은 누리마루APEC정원과 진입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