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복쟁이들의 여름사냥
사람은 스스로 부족함이 많다는 걸 알기 땜에 나약해지기 쉽고, 그래 그런 나를 알아주는 절친이 있기를 소망한다. 서로 흉금을 털고 공감대를 이뤄 삶의 의욕을 충전하지만 어떤 땐 실망해 의기소침해 지드라도 좋다. 지기지우(知己之友)와의 소통에서 나를 되돌아보는 관조의 자세가 행복인 걸 깨닫는 소이다. 희열과 보람은 내 자신에 있음을 되짚는 시간이어서 이다. 깨복쟁이 G와 C가 해수욕장 피서를 핑계(?)로 나를 찾아와 4박5일 뒹굴면서 폭염사냥을 했다. 금란지교(金蘭之交)를 생각게 하는 시간이었지 싶다
상꼰대인 우리가 해수욕장에서의 피서란 게 까실까실한 모시옷 입고 엉거주춤한 기분이 든다. 그래 대낮에 백사장에 몸뚱이 섞는 용기를 언감생심(焉敢生心)한 채 거실 창가에서 온갖 얘기꽃으로 여름을 죽였다. 우린 아니 C와의 만남이 하도 오랜만이어서 꼬장꼬장 묶어뒀던 얘기보따리 푸느라 폭염을 잊었다. 할 소리 안할 소리 죄다 쏟아 내다가 오버했지 싶으면 아차! 하고 연막을 치려다 깨복쟁이란 단어로 얼버무린다. 낼`모래 죽을지도 모른다고 ‘늙음’을 양념비빔해 삼키며 ‘노인’이란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으면서다.
우린 그렇게 서로를 쳐다보며 은근히 공감대를 형성하는 거였다. 피서 온 깜냥에 뜨겁다는 혹살로 거실에 에어컨 튼 채 나흘간을 이빨 까다보니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까지 다 뱉어냈다. 피서가 별 거냐? 뭔 짓을 해서든 더윌 피할 수 있음 된 기라. 그래도 해수욕장바닷물에 발목은 적셔야 된다고 해질녘엔 백사장을 향한다. 뜨뜻한 바닷물이 파도를 앞세워 학익진을 펴며 달려와 하얀 거품을 토하는 찰나(刹那)를 사랑한다. 그 파도경계선을 넘나들며 우린 소년처럼 물장구를 쳤다. 바다모래 맨발걷기는 황토걷기 보다 훨씬 건강에 좋다고 추임새까지 넣는다.
G는 해운대해수욕장을 반세기만에, C는 20여년 걸려 왔다고 했다. 나름 자수성가로 이룬 탄탄한 중산층인 그들이 해운대를 못 온 이유야 있겠지만, 한 편으론 얼마나 바지런 떤 삶인가를 유추해 보게 했다. 주택건설업의 G, 안경업계 성공신화인 C의 생애는 자수성가의 귀감이다. 이젠 죽음에 이르는 길을 모색해야 할 우린 나름 성공한 인생이었다고, 오늘의 우릴 만든 건 아내의 역할이 90%였다고, 이제 우리의 여생은 아내의 충직한 보디가드 삶이라고 삼구동성(三口同聲)했다. 후생에 태어나면 지금의 아내와 살겠다는 바램도 삼위일체였다.
근디 문제는 아내의 생각이다. 내 아내는 ‘같은 나라에서도 안 태어난다.’고 폭탄선언을 하여 무참해지곤 하는데, G의 아내도 G의 후생에서의 재회를 완강하게 반대한단다. C는 유구무언 하는 게 후생에서도 다시 부부로 살기를 약속했지 싶었다. 암튼 내 아내나 G의 아내나 입`서비스일망정 ‘후생에도 부부 좋다’고 하면 혀에 종기라도 날까봐 부정하는지 모르겠다고 우린 궁시렁댔다. 부부가 되어 반세기이상을 동고동락하는 삶은 수도승의 일생이기도 하다. 아내의 우주는 남편이고 애들의 우주는 아내(엄마)다.
결혼생활은 하나의 우주를 생성시켜 영속성을 기약하는 성스런 약속일 테다. 우린 아내 예찬론자가 되고 있었다. 그런 공감대는 ‘우리들은 현재 행복한 인생말년을 살고 있다’는 자기 확신이었다. 이 행복은 전적으로 아내의 선물이라고 맞장구를 치면서였다. ‘장가 잘 잔거야!’라고 대못 박으려 들었다. 결론은 ‘부부는 서로가 좋은 사람 만나야 함이고, 좋은 사람은 내가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전제 되어야 한다며 웃었다. 내일을 밝히려 백사장도 인적을 끊고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언제 또 우리 셋이 이렇게 만날 수 있을까?라고 자조한다.
20년이, 50년이 눈 깜짝한 순간처럼 지나쳤다는 ‘속절없는 세월’의 무심에 허탈하고 있었다. 아니 그 무심함이 덮쳐올 중압감에 가위눌리고 있었다. 자정이 되도록 입씨름 하듯, 특히 나와 G는 까발리고 까발리다 창시 끝까지 뒤집으며 얘기꽃을 피웠다. 내 지기(知己)여서가 아니라 G와 C는 심성이 곱고 건강하고 바지런해 행복한 삶을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 주위 누군가로부터 욕먹지 않은 삶을 살아온 자체가 성공적인 일생이라. 그런 좋은 친구가 있다는 뿌듯함은 노년의 삶에 얼마나한 기쁨인가! 나의 행운이라. 못다 한 얘기 명년 망서(忘暑)의 레시피로 아끼자며 헤어졌다. 2024. 08. 30
'사랑하는 사람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님 (3) | 2024.10.08 |
---|---|
에브리버디 파인 - 울`집 얘기 (12) | 2024.10.03 |
정월보름날 열여덟 봉황이 오곡 - 복쌈을 (0) | 2024.02.26 |
리오자 란 리세르바(Rioja Lan Resrva)를 음미하며 (1) | 2024.02.17 |
설날 구순 (九旬) 누님의 사랑 앞에서 (0) | 2024.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