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버디 파인(Everybody's fine) - 울`집 얘기
프랭크의 일생은 나와 엇비슷한 가부장적인 삶이어서 영화는 나의 이야기지 싶을 정도로 찡한 여운을 남긴다. 전화선에 PVC를 씌워 코팅하는 직업에 자긍심이 대단했던 프랭크(로버트 드 니로)와 가사 및 네 자매의 양육을 전담한 아내가 일궈낸 가정은 단란하고 평범한 중산층이다. 애들이 건강하고 공부 잘 해서 소질 따라 성공하기만을 바라며 직장에 충실했던 과묵한 아버지는 어쩜 우리들일지도 모른다. 그런 가정에 8개월 전 아내가 죽자 프랭크는 홀로생활이 덧없어 모처럼 가족모임을 계획하고 4남매에게 알린다. 모임당일,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달뜬 프랭크는 애들이 하나둘씩 못 오겠다는 전화를 받고 허탈해 진다.
다소 실망했던 프랭크는 궁금증 땜에라도 애들을 찾는 여정에 오른다. 극적인 방문으로 애들을 놀래 키고 싶어 부러 예고 없이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뉴욕에 사는 첫째 데이빗은 아버지를 실망시켜선 안 된다는 부담감에 가위눌린 장남이었다. 유명 화가로써 자랑스러운 아들이고 싶었을 데이빗이 집에 없자 프랭크는 밤새 밖에서 기다린다. 비밀스럽게 찾아가는 여정이라 애들한테 전화도 못한 프랭크는 자전거를 타는 어릴적의 데이빗의 모습을 기억한다. 담날 그는 4남매에게 하나씩 주려고 준비한 봉투 하나를 현관문틈에 밀어 넣고 둘째한테 향한다.
짠한 프랭크의 모습에서 나를 연상해 봤다. 둘째인 딸 에이미의 집을 향하는 버스 속. 태풍 앨리스가 뒤쫓아 오는 불길한 차창엔 데이빗이 멕시코에서 마약소지로 체포됐다는 애들의 긴박한 통화가 소녀시절의 에이미로 오버랩 된다. 에이미가 누군가와 통화 중에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 데이빗의 불행과 아빠의 느닷없는 방문을 동시에 감당하려는 에이미의 불안한 표정은 프랭크가 손자 잭에게 공부 잘해야 된다는 다짐으로, 그렇게 4남매가 어릴 적에 느꼈을 중압감으로, 그런 부담을 나 역시도 우리 애들에게 했지 싶게 화면이 전개된다.
하지만 잭이 공부보다는 사위(친아빠가 아님?) 제프와 살갑지 않다는 점이 프랭크를 심난하게 했다. 에이미가 말한다. 돌아가신 엄마도 잘한 것만 얘기하고 못된 일은 친지 누구에게나 얘기하지 않았었다고. 아빠도 이젠 좋고 나쁜 일 전부 얘기해 주시라고. 에이미는 내일 출장가야 된단다. 프랭크는 둘째한테서도 하루도 못 쉬고 떠나야할 처지가 됐다. 에이미의 출장은 사실 데이빗의 사고를 수습하려 멕시코에 가는 거였다. 담날, 프랭크는 직장에 출근하는 에이미와 동행하면서 스냅사진을 찍고, 그녀는 은근히 회사의 임원임을 자랑한다. 헤어지면서 프랭크가 묻는다. ‘행복하냐?’고. ‘예’라고 대답하는 에이미는 역시나 어릴 적 모습이다.
셋째 로버트의 오케스트라 공연장을 찾아가는 프랭크는 벽에 붙은 오케스트라 포스터의 지휘자 사진을 찍으며 상기 된다. 지휘자 로버트는 아버지와 그가 소년시절부터 꿈꾸었던 바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창 리허설 중인 오케스트라무대에 들어서며 기대에 찬 프랭크. 근디 지휘자는 로버트가 아니다. 맨 뒤 드럼을 치고 있는 아들을 발견하고 의아해 하는데 로버트는 리허설도중 빠져나와 아버지를 맞이한다. 프랭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너 지휘자가 아니었냐?”고 묻는다.
로버트는 지휘자라고 한 적이 없다고, 드럼이 취향에 맞아 스트레스도 덜 받고 재미있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프랭크는 지금까지 쏟은 교육열과 재능이 낭비된 것 같아서 실망한다. 그래 지금도 늦지 안했다면서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겠다고 역설한다. 로버트는 이게 내가 원하는 자리라면서 내일 유럽공연 출장 간다고 핑계를 댄다. 데이빗이 약물복용으로 체포된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 아버지한텐 비밀로 하자는 3남매들의 통화너머로 프랭크는 뭔가를 속이고 있단 걸 눈치채고도 어쩔 수 없이 일어선다. 행복하냐는 아빠의 물음에 로버트도 행복하다고 대답한다.
넷째 로지(드류 베리모어)를 찾아가는 라스베가스행 버스를, 미국 동부 중부 서부의 시차시간을 까먹은 손목시계 탓에 놓치고 숙소 찾아 밤거리로 나선 프랭크는 노상의 어린부랑자를 도우려다 봉변당한다. 설상가상으로 폐 약까지 짓이겨져 그 가루를 주머니에 담아서 먹는 노익장 또한 나일 수도 있다. 아빠의 희망대로 댄서가 되고 싶었던 로지는 리무진으로 아빠를 마중 나오고, 호화아파트에서 스트라토스피어 타워 위 레스토랑에서 아빠와의 저녁을 먹자고 수다를 떠는데 친구 질리가 갑자기 아이(맥스)를 맡기는 바람에---.
스파게티 먹는 로지도 어릴적 소녀로 보인다. 애들과 친해지며 아내처럼 하고 싶은 아빠는 너희들이 엄마에게 했듯이 자기에게 얘기도 하고 전화도 해달라고 한다, 새침때기 로지가 그래서 아빠 서운했어? 우리들이 전화할 때 아빠가 받으면 얼른 엄마를 바꿔주라고 재촉했으니까. 그건 엄마하고 말하기가 편한데다 아빠는 모든 게 완벽하지 않으면 걱정하시니까 그랬다고 변명하고 있었다. 글면서 데이빗이 가장 힘들었을 거라고 했다. 로지가 묻는다. “아빠는 젊었을 때 뭔가를 성취 하고픈 계획이 없었냐?”고.
그냥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는 프랭크. 로지가 아양 떤다. 참 성실하고 완벽하셨던 거지라고. 그녀는 사실은 라스베가스 댄서가 아닌 레스토랑 종업원 차림의 화면으로 얼핏 겹친다. 집으로 향하는 비행기 속의 프랭크는 폐 약이 없어 실신한다. 병원 침대. 비몽사몽 속의 프랭크는 어린 4남매와 즐거운 식사를 하는데 폭풍우가 몰려온다. ‘너희들은 왜 나한테 쉬쉬 거짓말을 하냐?’고 프랭크가 묻자 애들이 실토한다. 에이미는 제프와 별거중인데 역(驛)에서 뵌 남친 탐은 소개하려던 참이었다고.
로버트의 유럽순회는 거짓으로 아빠와 같이 있어도 됐는데-. 모든 게 결코 아빠를 맘 아프게 하려고 부러 꾸민 거짓은 아니라고 실토한다. 로지에게 맡긴 애는 사실은 로지의 애이며, 로지는 동성애자로 애 아빠를--하며 고백하자 로지의 임신사실을 속인 아내가 야속해진 프랭크의 상심! 하지만 ‘옛날 엄마가 그랬듯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하면 괜찮다’면서 로지는 ‘엄마한테도 아무것도 말하지 말고 모두 다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란다. 병상에서 깨어난 프랭크 앞에 선 에이미, 로버트, 로지.
‘너희들이 엄마한테 말했듯이 나한테도 사실을 말해주라’고 프랭크가 요청한다. 데이빗이 약물과다로 죽은 걸 에이미가 확인했으며 그일 땜에 거짓핑계를 댈 수밖에 없었다고 애들이 울먹인다. 프랭크가 헤어지면서 4남매에게 줬던 봉투는 금년 크리스마스에 만나자는 메모와 애들이 어릴 때 찍은 크리스마스 사진이 들어있었다. 죽은 데이빗의 그림을 구입하러 다시 뉴욕에 간 프랭크는 전화선과 전봇대들을 그린 큰애의 다른 그림을 찾아낸다. 행복은 각자 나름의 생각이라는 어른이 된 애들과의 크리스마스 모임은 가슴 먹먹하고 찡하다. 어쨌거나 모두가 행복을 찾아 열심인 것을 공유한다.
프랭크의 독백, ‘Everybody's fine (다 괜찮아)’엔딩자막이 명멸한다. 명절에 온 가족이 감상하길 추천하고픈 명화다. 고유전통문화가 다른 우리와 미국인 가족들의 엇비슷한 삶의 공감대 속에 짙은 여운을 남기는 건 ‘가족의 행복’이란 공통분모를 향한 노력과 헌신일 테다. 그런 행복은 내 마음속에 항상 움터 자라고 있음을 ‘모두들 잘 있지, 다 괜찮아’로 갈무리 한다. 가족애의 끈끈함을 되새김질 하게 하는 잔잔한 감동으로 숙연케 하는 가족영화! 나도 애들에게 부탁한다. ‘너희들이 엄마한테 말했듯이 나한테도 사실을 말해주라’고. 2024. 09 추석
# 위 영화 <에브리바디 파인> 이외의 그림은 해운정사 뒤 테마공원에서 촬영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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