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산(선암사-예진봉-유두봉-삼각봉)
얼마 전에 대저생태공원 산책을 하다 낙동강 건너편의 산 능선정상의 바위무더기의 햇빛역광이 나를 붙들어 웹`검색을 해봤더니 백양산(白楊山 642m)이라. 익히 알고 있는 전라도 장성백양산 탓인지 친근감과 등정욕심이 부풀었다. 부산 백양산은 남하하는 태백준령이 솟구쳐 금정산과 백양산 영봉을 바위로 쌓아올리고 다대포(多大浦)에서 끝맺음 하는 막바지 산세다. 동쪽 기슭의 성지곡(聖池谷)은 경상도 제1경일만치 경관이 수려하다. 엊그제 소요했던 성지곡수원지 일대는 편백나무와 삼나무, 전나무를 비롯한 참나무수림이 울창하여 치유의 낙원이었다.
오전9시, 버스에 탑승 어린이대공원에서 하차하여 성지수원지 녹담길에 들어서 상큼한 청정기운에 일상을 씻어내며 바람고개로 향하는 골짝산길 트레킹에 올랐다. 골짝길섶엔 상수리 꼬투리와 밤 껍질이 지천이고 호숫가 두루미처럼 엉금엉금 숲을 기웃대는 상수리사냥꾼(?)도 눈에 띄었다. 약수터에서 선암사길을 묻는다. 숲길을 곧장 오르면 임도가 나오고 좌측 길을 택하면 바람고개에 닿는단다. 밤송이 두 개를 발견해 알밤 다섯 개를 횡재했다. 금년 추석 때 서울 안산산책길에서 맞본 햇밤에 이어 두 번째다.
산에서 먹거리를 횡재하는 흥분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다. 서울에 있다면 지금쯤 알밤 몇kg는 주었을 떼다. 아내와 난 알밤 줍는 횡재의 맛깔과 흥분을 즐기려 가을산행을 더 즐기곤 했다. 도토리나 알밤 줍는 쾌재를 즐기는 내가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라듯 도토리 줍는 사람을 경원 하는 게 꼴깝 떠는 짓인데 공원 안에서 줍는 건 아니다 라고 강변한다. 바람고개 산허리를 돌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선암사(仙岩寺)를 향한다. 임도 갓길에 황톳길 공사가 한창이다. 근디 임도가 때론 시멘트길이어서 지자체행정의 난맥상에 갸우뚱해진다.
675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선암사 경내에 들어섰다. 무슨 행사가 있는지 많은 불도(佛徒)들이 분주하다. 창건 당시엔 견강사(見江寺)라고 불렀는데 절 뒷산 단애위에서 화랑들이 무술을 연마하면서 선암사로 개명했단다. 대웅전, 극락전, 소림당(小林堂) 칠성각(七星閣) 산신각, 독성각(獨聖閣) 삼성각(三聖閣) 등 전각 중에서 독성각의 나한상(羅漢像)은 500년 이상 된 고불이다. 극락전 마당에 석탑 옥개석 3개는 신라시대 석탑부재라나? 그 무렵의 초상화와 불화가 있었다는데 행방이 묘연하단다. 대웅전 뒤 용왕단(龍王壇)에 올랐다.
대웅전 뒤 단애 앞 용왕은 불법(佛法) 수호신으로 인도의 용은 발톱이 6개, 중국은 5개, 우리나라는 4개, 일본은 3개로 어째 나라마다 용 발톱이 다를까? 극락전엔 원효대사가 인도에서 모셔온 철불(鐵佛)석가모니상이 있었다고 1969년에 발행된 부산의 고적과 유물에 기록됐다. 그 역시 행방을 알 수 없단다. 150여년 된 원효대사 초상화는 선암사의 자랑이며 아이콘이다. 석간수로 갈증을 달래고 애진봉(愛鎭峯)을 향한다. 줄곧 완만한 임도는 주변 경관을 즐기는 트레킹 최적의 코스다. 철쭉군락지로 유명한 정상엔 9월의 마지막 태양빛이 가을바람을 일깨우고 있었다.
야생화와 나비의 스킨십을 짓궂은 가-ㄹ바람이 방해한다. 뭉게구름은 파란하늘을 트레킹중이다. 백양산은 우람하게 돌탑을 쌓아놓고 나를 맞아준다. 동서남북 할 것 없이 부산전경을 파노라마 시키면서다. 푸른바다는 산록을 파고들어 피오르드를 만들고 낙동강은 거대한 구렁이처럼 물살을 헤치면서 들녘을 파고든다. 바다와 강과 산록이 맞대어 피어낸 부산시가지는 사뭇 아름답다. 부산이 미항(美港)이란 걸 백양산은 자랑하듯 나에게 뽐내고 있다. 벤치에 앉았다. 북서풍이 그리 시원할 수가 없다. 벌개미취가 환하게 웃는다.
놈들이 한들거리면서 미소 짓는 까닭인즉 내가 아닌 나비를 유혹하는 추파(秋波)였다. 해도 나는 폰카에 그들의 연애 씬을 몰래 찍는 불청객이 된다. 어쩜 대낮 하늘 밑 산꼭대기에서 스킨십 하는 꽃과 나비가 불순(?)하다. 북동쪽에서 아득히 보이는 금정산이 아는 챌 한다. 아까 온 길로 하산하는데, 날씬한 여(女)산님이 뛰어오듯 산정을 올라오고 있다. 글고 10분쯤 흘렀을까? 그 여산님이 다람쥐 같이 나를 추월하며 하산하는 게 아닌가! 놀래 비켜서다 멈칫한 나는 “아주머니 위험해요” 라고 헛소릴(?) 질렀다.
그녀가 뒤돌아서 “예, 익숙해서 괜찮아요.”라며 대꾸 하는데 마스크얼굴은 두 눈만 빼꼼하다. 마스크(여인)은 애진봉 아래 신라대 부근에 사는데 매일 그렇게 백양산등정을 하고 있단다. 나의 기우(杞憂)에 찬 참견이 그녀와의 소통의 가교가 되고 있었다. 그녀의 주 트레킹코스인 ‘백양산-애진봉-유두봉-삼각봉-삼각정을 잇는 등산로’는 백양산등산코스 중 제일 멋진 코스란다. 나는 멋진 미답길이란 궁금증과 유혹에 그녀의 말꼬리에 매달리며 왈, “내가 뒤따라 동행해도 괜찮아요?”라고 묻는다. 그녀는 서슴없이 ‘예’하며 경주하듯 앞서고 나는 그 뒤를 쫓는다. 애진봉에서 유두봉을 주파하는 바위동네 고샅을 통과하는 그녀를 따라잡느라, 스냅사진도 찍느라 헉헉댔다.
어지간히 해찰부리는 나를 앞장서 내달리던(?) 그녀는 이따금씩 기다려줘서 미안했다. 삼각봉에 섰다. 그녀의 산력(山歷)은 30여년을 넘긴 등산 마니아였다. 회갑을 막 넘겼다는 그녀는 등산이 건강유지 하는데 어떤 운동보다도 최선의 비결이라 했다. 더구나 나이 들어 애들 뒷바라지에서 벗어나 산행을 취미생활로, 건강을 담보하는 즐거운 시간으로 소일함은 행운이란다. 이번 주말엔 오색-대청봉 무박산행을 예약했단다. 빡쎈 코스를 그녀는 거뜬히 해낼 거라고 내가 격려했다. 신라대방향 갈림길 표지판에 닿았다. 여기서 나는 해운대행 버스나 전철방향을 택해야 한단다.
내가 머뭇대자 그녀가 웃으며 ‘인연 있으면 또 만나겠지요.’라며 손을 흔들었다. 흔히 아쉬움이 남는 헤어질 때의 궁색한 핑계를 예의 그녀도 읊었다. ‘안무 낀 날의 삼각봉-백양산코스는 몽환적일만큼 멋있다’고 한 그녀의 뒷모습을 다시 되돌아봤다. 산행 중에 만난 산님과의 짧은 동행은 산행의 스페셜희열이 된다. 한 시간쯤의 산행은 그녀 말마따나 백양산 등산코스 중 젤 아기자기할 것 같았다. 다시 홀로산행이다. 풀벌레와 새소리도 없는 칙칙하고 음산한 골짝 돌무더기 숲길을 더듬는 초조감을 어쩌질 못한 채였다. 그녀가 아른댔다.
인적 뜸한 곳에서 자빠지면 큰 낭패라는 기우를 어찌해 동네가 보이자 안심이 됐다. 홀로산행의 고독이 짜주는 당의정의 맛에 모험(?)을 기꺼이 하는 난 좀 유별나다. 오늘 처녀지 산행을 그녀와의 짧은 교감으로 더욱더 기억에 남을 옹골참이었다. 다음엔 성지곡수원지 둘레길 전 코스트레킹에 나설 참이다. 벚나무들은 벌써 만추살림살이에 들었다. 파란하늘이 내 키만큼은 높아졌지 싶고. 나는 금년에 얼마만큼의 키가 오그라들었을까? 10월이 코앞이다. 석 달 남았다. 금년이~! 세월 참 빠르다. 2024. 0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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