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 길 - 옛 숲길 삼십리
보름이상 달달볶는 불볕더위에 후끈 달궈진 바닷바람에 쫓겨 온 파도도 뜨뜻하다. 게다가 36°C몸뚱이 수만 개가 뒤엉킨 해운대해수욕장의 여름밤은 불면의 밤이기 십상이다. 열대야의 여명에 동창이 밝아지길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어설픈 잠꼬대로 눈 비비면서 달맞이 길로 향한다. 와우산자락 숲속은 5시만 되어도 숲길을 연다. 달맞이 길과 바통을 주 받는 옛 숲길을 밟는 얼리`트레커들이 새벽을 깨운다. 새벽산책! 여름밤은 짧아졌는데 새벽을 밝히는 생명체는 많아졌다. 나도 덩달아 발걸음이 빨라진다.
아니 숲의 고요를, 적막을 깨우는 새벽의 코러스단원들이 있다. 매미들의 합창이다. 지상의 생물이 발성(發聲)할 수 있는 최고의 청음과 고음의 오케스트라다. 뜬 밤을 새웠을지 모를 놈들의 청량한 음색은 짝 찾기 위한 애달픈 세레나데다. 수컷의 구애의 세레나데는 가슴을 후빌 만큼 처절하다. 7~17년 동안 땅속에서 일구월심 연마한 울음소리가 아닌가! 오직 짝꿍을 찾아 지난 7년여의 내공을 전수하려는 위대한 생명의 혼에 감동한다. 나의 새벽트레킹의 아름다운 동반자다. 청정한 아침을 선물하는 전령이다.
“ -전략-
17년의 어둠을 / 스무 날의 울음과 바꾸려고 / 매미들은 일제히 깨어나 나무를 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무에서 나무로 옮겨 앉을 뿐 멀리 날 수도 없다 / 울음을 무거운 날개로 삼는 수밖에 없다
저 먹구름 같은 울음이 / 사랑의 노래라니 -후략- ”
나희덕의 시 <매미에 대한 예의>가 생각났다.
수컷은 짝을 찾는 이상적인(?) 울음소릴 위해 매미로 우화해서도 이슬과 수액만을 먹고 산단다. 짝만 찾으면 성공한 일생이라! 놈들의 일생이 나보다 훨씬 더 고결하고 찬란하단 생각이 든다. 그 뉘한테 해(害)나 누(累)끼치지 않고 오직 종족보존이란 사명감만을 좇는 매미들의 세레나데 속에 기분 좋은 아침산책을 한다. 매미들의 합창이 절정인 숲속무대에 뉘엿뉘엿 아침햇살이 기웃댄다. 숲 바닥의 가녀린 푸나무들이 생기가 넘친다. 아침 이때 아니면 햇살이란 생명의 에너지원을 챙길 수가 없어선지 숲 바닥은 미동한다.
키 크고 덩치 큰 푸나무들은 빨리 성장하여 숲 바닥에 햇빛을 통과시킨다. 탄소동화작업이란 자연의 법칙과 섭리를 숲 모두가 공유하려는 삶이라. 자연의 섭리를 거슬리면 공멸한다는 걸 안다. 인간도 법과 상식을 외면하면 도태되기 마련이다. 매미의 일생에서, 푸나무들의 숲속의 공생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자연의 법칙을 읽는다. 요즘 뉴스는 폭염보다 더 짜증난다. 상식과 전통이 매몰됐다. 용산 이너서클은 어쩌자고 분란만 일으킬까? 이슈 만들어 헷갈리게 하는 정치가 윤석열식 민생정부인가? 정치는 본시 재밋는데 윤석열정치는 더럽게 재미없다.
구덕포구 철길 밑을 통과하는 아치형 굴이 있단 걸 오늘 알았다. 눈에 잘 안 띄는 굴을 통과하면 산골짝에 있는 옹색한 텃밭 쉼터에서 부부가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무허가 경작지여선지 궁색하고 어설픈 밭뙈기지만 토양이 좋아선지 작물상태가 좋아보였다. 뜬금없는 불청객에 놀란 부부에게 나는 “취미생활 삼아 경작하시면 농작물도 수확하며 좋으시겠다.”고 인살 했다. 나이 들어 산골밭뙈기에서 소일거리로, 운동 삼아 좋긴 한데 피곤하다고 남자가 엄살(?)을 부렸다. 부인은 내게 팔목만한 오이 하나를 깎아 준다.
한 입 물었더니 수액이 뚝뚝 떨어진다. 반세기 전에 고향에서 먹었던 재래종 오이 맛에 추억까지 음미했다. 난 그 부부가 부러웠다. 남자 말따나 힘들 때도 있지만 싱싱한 푸성귀와 건강한 삶을 챙길 수가 있잖은가! 화단에서 푸성귀를 가꾸는 소소한 재미를 울`부부도 십여 년 전에 익히 경험했었다. 모든 작물은 애정의 손길 속에서 풍요로울 수 있단 걸 체득하는 과정이 삶의 희열이기도 했던 것이다. 구덕포 산골 부부의 질박한 행복의 미소 속에서 엉뚱하게 새벽 트레킹의 달달한 맛깔까지 챙겼다. 햇볕이 울창한 숲속을 골고루 비집는다. 2024. 0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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