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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아

부부로 산다는 게?

                               부부로 산다는 게?

여보!

어제 밤에 전화로 얘기했듯이 오늘 K의 부인 장례식장인 광주천지장례식장엘 찾아 문상하고 오는 열차 속에서 참으로 많은 생각들을 했소이다.

사람의 한평생이란 게 허망하고, 악착같이 살아보겠다고 이를 악문 삶이 어쩜 부질없는 짓이란 생각도 듭디다. 아깝다면 아직 한창 아까울 나이인 예순다섯 살로 생을 마감한 영전에서, 상주들의 표정이 마냥 슬퍼 애통해하는 느낌을 얼른 감지하지 못해서 만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기엔 부인의 투병(신장암)기간이 2년3개여 월이라 가족모두가 지칠 만도 했겠다싶으면서도, 점심상을 마주한 망나니 같았던 절친K를 빤히 쳐다보며 태연한 척하는 그가 쓸쓸해 보이는 짙은 그림자를 떨치지 못하고 있어서였지요.

경황 중이라 그럴 테지만 내일 장례식을 치루고 며칠 후면, 그는 심장을 오려내는 고독에 몸부림칠 게 뻔합니다. 당신도 짐작하겠지만 K가 입만 살아서 함부로 나불대지 심성은 여린 놈 아니던가요.

K는 이제 술 한 잔 거나하게 걸치고 목쉬도록 불러도, 싸우고 싶고 보고파도 다시는 지 마누라를 마주할 순 없는 세상이지요. 열차 속에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제 아침 당신과 애들의 눈빛을 외면한 채 매몰차게 귀가한 내 스스로를 반추해 봤답니다.

내 일신 좀 편하자고, 바빠 힘 부칠 당신과 짐 떠안긴 큰애의 편치 않을 맘을 모른 채하며 떠나왔으니 말이외다. 고백컨대 어제 아침 서울을 떠나오며 나는 여간 홀가분했어요. 더는 그제 오후 한 나절 당신에게 품었던 불만을 이렇게라도 앙갚음 할 수도 있다싶어 고소를 즐겼답니다. 무슨 소리냐? 구요. 알고 보면 시시껄렁한 얘기죠.

‘나 없이 혼자 애들 뒤치다꺼리하며 살아봐라,’라고 당신 염장 지르고 싶었던 게지요.  그럼 당신은 ‘별 요상한 걱정을 다 한다’고 예의 아무런 척 하고, 버릇처럼 나를 무시하려 들 거란 걸, 그 알량한 당신자존심 탓에 당신 스스로 가슴앓이 할 거란 걸 잘 알기에 나는 일부러 서울을 떠났던 겁니다.

당신 못 된 건 비단 그제 오후뿐 만은 아님을 스스로 알 테지요.

휴일이라 식구모두 막내 집에 모여 애들을 키즈랜드에 맡기고 트레킹 한 후 양곱창구이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할 때 후식으로 내가 냉면을 주문하자 당신은 “후식도 비싼데 (배)안 차서 더 시켜?” 라고 쏘아붙였잖소? 비싸면 냉면이 얼마나 비싸기에 말이오. 더구나 앞서 공기밥을 시킨 민주는 어느 쥐구멍에 숨어들라고?

먹을 것도 없이 오살 맞게 비싼 양곱창구이기에 둘째 주머니 생각해서(애들몫까지 8인분을 개눈 감추듯 해서) 무심코 한 소리겠지만, 부실한 고기 몇 점으로 시장기 채우기엔 뭣해 주문 한 건데 밥상머리에서 면박 준 당신은 백 번 잘 못한 거지요.

그런 후, 트레이더스에서 쇼핑할 때 내 트레킹화를 사면서 당신은 생각지도 않았던 트레킹화를 나의 권유로 하나 챙기지 않았소. 난 쇼핑할 때마다 입·서비스 일망정 당신 몫 챙기는데 여태 당신은 내게 ‘필요하면 사라’고 적극 권유한 적 한 번이라도 있었소? 오히려 ‘뭐 하러 사느냐?’고 통박하고 훼방 놓기 바빴지요.

내꺼 사는 게 돈 아까워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게 버릇이 돼 무의식적으로 하는 소리란 걸 내 잘 알지요. 그렇더라도 난 당신의 극성스런 훼방에 정머리가 떨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답니다. 내가 어디 헤프게 낭비하는 위인이 아니란 걸 잘 아는 당신이기에 더 서운 한 게지요.

또 유니클로에서 당신과 애들의 발열내의를 사갖고 왔을 때도 내 꺼가 없어 섭섭합디다.  더구나 꼬맹이들 옷 치수가 안 맞아 교환하러 갈 때, 내 하의도 하나 사오라고 하니까 당신은 냅다 ‘아빠내의 있다’고 쏘아붙여 식구들을 어벙하게 만든 일도 결코 잘한 게 아니지요.

내 내의란 게 2~30년 전에 산 진자주색면내의인데 여태껏 입지를 않다가 작년겨울 태백산등산 갈 때 입었다 땀에 절여 나중엔 차가워 고역이었단 얘길 했잖소? 그래 기능성내의가 한 벌 있슴 좋겠단 생각에, 그것도 하의만 주문한 건데 면전에서 야박을 해서야 되겠소?

산이 좋아, 특히 겨울산이 좋다고 쏘다니는 내게 그쯤은 당신이 내 몰래 사서 선물로 생색낼 수도 있잖소 말이오. 당신은 주부로썬 남 비교할 수 없이 훌륭한데 아니, 남한텐 엄청 친절하고 베푸는데 유독 내게 튕기며 배려하지 않는 것은 큰 오점이오.  당신친구들은 그런 당신을 나를 넘 사랑해서라고 대변해 줍디다만-. 

부부일수록 튕기면서도 소소하게 맘 쓰는 걸 인색해 해선 애정이 식는 법이오. 젊었을 땐 살 비벼대는 짜릿함에 살았담, 나이 들면 입·서비스라도 조곤조곤해야 부부사이가 삭막해지지 않겠단 생각을 해보오.

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콧방귀부터 끼려는 당신의 못된 버릇 이젠 고처야 되오. 젊었을 땐 이쁘고 살대는 재미로 삭혔지만 이젠 밉고 신물 난 것만 보여 날선 말 한마디에 심사가 뒤틀리지 뭡니까? 당신도 마찮가지일 테지만 말이오.

요즘 황혼이혼이 많은 까닭은 서로를 배려하지 않고 막말하며 인격을 무시하려는 땜이라 여겨지오. 페미니즘이 만연한 세상이라고 여성분들이 동안 남편한테 억눌린 기를 펴며 살겠다고 목에 힘주는 탓도 크다고 여겨지오. 당신한테 그점이 농후하담 삐질게 뻔하오만.

담·담 주말쯤 김장하러 귀가 하겠지요. 그제 귀가할 땐 심사가 삐져 김장도 안 거들고 싶었는데 장례식장엘 다녀오면서 요용이창세기 같은 찌질이 짓 않기로 했소.

지지고 볶으며 아웅다웅 싸울지라도 그럴 상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거라는 걸 친구부인의 죽음 앞에서 곱씹었소.  아무리 미워한 부부도 막상 누군가가 사라지면 그 그림자라도 밟고 싶은 게 상정이란 말은 진실일 거요.

당신이 늘 내가 못 미더워 퉁명스레 쏘아대듯, 나도 때론 당신의 사유가 유치수준이라고 무시하며 토라지는, 그래 비약 된 냉전 속의 증오심도 서로가 마주보며 존재하기에 가능한 애증싸움인 게지요. 싸울 수 있을 때가 좋은 시절일 것 같구려.

정말 늙어 싸울 기력도 없고, 더는 누군가 죽어 상대도 없으면 살아있어도 죽은 거나 마찬가지지요. 당신 말따나 내 창자 속까지 훤히 꿰뚫어 별 볼 게 없어도, 우리 서로 그 창자 속에 아직 무슨 비밀이 남아있나? 하는 애정의 시선을 놓지 맙시다.

내 맘 속에 당신이 모르는 비밀창고 아직 있다 말다요! 관심은 사랑입니다.

당신을 사랑하오.

2013.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