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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자식이 웬수?

큰애야, 미안하다.

                     -8층옥상공원에서 본 브라운스톤`서울의 트윈아파트-

9월초 어느 날, 싱가포르 큰애로부터 전화가 왔다. 생뚱맞게 관세사시험1차에 합격했다는 거다. 지난 4월초순 귀국하여 13일에 시험을 봤는데 요행 합격하여 명년에 2차 시험을 보겠단다.

엉뚱하고 대견하여 ‘축하한다.’는 말에 이어 ‘관세사 됨 그곳에 사무실 낼 거냐? 거기선 영어달인이나 가능할 텐데? 그래 성훈이가 도와주면 되겠구나.’ 라고 기뻐 맞장구를 쳤었다.

관세사시험이란 게 어디 만만한 국가고시인가? 또 합격한들 싱가포르에서, 지가 영어강사를 했다 처도 언어장벽땜에 꿈일 뿐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성훈일 끌어당기자 월급쟁이로 채용한다나? 해서 우린 웃으면서 전활 끊었었다.

암튼 큰애의 학구열은 알아줘야 한다. 그렇다고 특별한 뭔가를 이룬 건 없지만 향학열만큼은 자못 하다. 뭔가를 하려면 우선 책부터 구입하는 버릇도 남다르다. 싱가포르가 무역도시국가다보니 관세사란 직업이 잘나가나 싶었던지 또 욕심을 부렸던가 보다.

이제야 안 사실이지만 4월에 귀국하여 수험을 치루면서 우리내외에겐 비밀로 한채 지들끼리만 주둥일 맞췄단다. 그 후 서울애들과 전화통화 하면서 애들 땜에 수험준비가 상당히 복잡하단 걸 알게 됐다. 기왕 응시할 바엔 합격을 위해 조기 귀국하여 반년이상 학원수강도 들어야해 애들을 이곳으로 전학시켜야 한다는 거였다.

금년 갓 입학한 초등1년생인 윤이와 유치원생인 현이를 서울로 전학시키면, 누군가가 그 애들의 등하교를 도움이 해야 한다는 사실에 희생양은 우리부부일 밖에 없음이다. 아직 큰애로부터 어떤 제안도 듣진 안했지만 외할배로써의 난 쾌히 응낙할 수 없는 번민에 빠져들었다.

아내는 딴 방법이 묘원하니 죽으나 사나 한다고 벼르지만, 난 장장8개월간을 천방지축 두 놈을 따라다니며 얽매이는 생활은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일도 내집이 아닌 서울서라니. 서울애들이 아무리 잘 해준다도 며칠 지나면 귀가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 지난한 문제를 우리부부는 피할 수 없는 숙제로 떠안은 채 13일 상경 하였고, 둘째가 저저지난주 호주출장 후 귀국길에 싱가포르 큰애 집을 방문하여 1주일 머물면서 지들끼리 기정사실화 한 모양이었다.

추석전전날 이었다. 우리가 사는 브라운스톤·서울은 38층 쌍둥이아파트를 연결한 8층짜리 오피스텔옥상에 백 평쯤의 옥상정원이 있다. 불야성 서울은 별빛하나 없는 쥐색벨벳하늘을 만들어 트윈빌딩위에 걸쳐놓고 딱 보름달 하나만을 붙박아놨다.

우리식구들(아내와 둘째와 막내)은 옥상정원 한쪽에 돗자리를 펴고 다과와 맥주를 곁들인 밤풍경을 즐겼다.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가 큰애의 관세사수험준비로 화제가 옮았다. 10월말쯤, 빠르면 중하순에 귀국할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까닭은 싱가포르 초등학교졸업반은 중학교진학이 평생의 직업을 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에 중학시험이 여간 중요하고, 그래 초등학굔 졸업생의 진학준빌 하느라 10월 하순은 일주여일쯤 방학에 든단다.

애들이 귀국하면 윤이는 500m쯤 떨어진 M초등교에, 현이는 근처에 결원인 유치원이 없어 광화문교보 뒤 유치원에 자리가 있단 데 스쿨버스가 없단다. 윤이 등교 때 현이도 데리고나가야 하고, 다시 윤이의 하교에 맞춰 애를 영어학원엘 데려다주고, 현이를 데리고 와야 하는, 초교-유치원-초교-학원-유치원-학원을 다람쥐 채바퀴돌듯한 일정을 가상해보느라 우리식구들은 웃다가 난 종내 시무룩해졌다.

둘째야 출근하고, 막낸 한참 먼 죽전 지 집에서 지 생활하기 바쁘며, 큰애는 수험공부 한답시고 도시락 챙겨 아침 일찍 학원엘 가 늦은 밤에 귀가하면 애들 뒷바라지는 고스란히 우리부부 몫일 테니, 애들한테 붙들려 옴짝달싹 못하는 머슴 아닌 종노릇생활(?)을 장장 8개월 동안 해야 함이다.

둘째와 막낸 우리 모두가 적극 큰애의 수험준비를 돕자고 의기투합 건배를 제안 했지만 난 시큰둥한 채 빌딩 뒤로 사라지는 보름달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내 막내가 종이컵에 캔맥을 가득따라 각자 앞에 놓곤 '건배'를 선도하자 우리 모두는 거품 넘치는 맥컵을 들어 "건배!" 라고 외쳤다.

 '건배!'는 우리내외더러 열심히 꼬맹이들 챙기라는 다짐인 셈이다. 마흔 살 넘긴 딸애가 뜬금없는 고시준비로 노인네에게 부담 주니, 몹쓸 짓의 불효가 아닌 어쩜 즐거워해야 할 경사(?)라고 억지춘향노릇을 바람인데 난 도저히 쾌재만을 토할 순 없는 심정이었다.

1차 시험합격을 축하하고 격려하는 기쁨의 댓가로 감당해야하는 역할이라면 더더구나 싫다.

나의 지론인 ‘자식은 대학공부 시키고 더해 결혼시켰으면 부모노릇 끝’이라고 입방아 찧으며 여태 그리해왔는데, 축하해주면서 덤으로 고생 하나 떠안아야하니 ‘자식이 웬수(?)’란 말이 새삼스러워졌다.

성훈이도 느닷없이 식구들과 생이별해야 해 달갑지 않은 심사였다,는 둘째의 전언이 아니어도 지 집에서 살면서 수험준빌 했으면 좋으련만 하는 간절함 앞선다. 까짓, 관세사 안 됨 생활에 지장 있나? 성훈이 능력이면 걱정 붙들어 매고도 남을 텐데~!

혹 관세사합격하면 사 십대에 싱가포르에서 취업할 텐가, 아님 개업할 텐가? 살림 잘 하면 전업주부도 어엿한 직업인데! 주위사람들 난처하게 만들며 굳이 귀국하여 수험준빌 해야만 하는지 나는 쌍수로 환영하고 싶지가 않다.

여자이기에 앞서 나이가 들수록 능력 있는 전문직의 지성인이 된다는 건 꼭 필요한 삶의 지향점이다. 더구나 퇴출걱정 없는 전문직 여성이라면. 하여 울 욕심은 1차 때처럼 큰애가 귀국하지 않고 싱가포르에서 수험준빌 하여 2차시험에 응시해주면 하는 바람이 나와 아내의 속내다.

우리부부가 협조 안 해 낙방하여 원망한들 기꺼이 감수하고 싶다. 근데도 아낸 자식이라 어쩌질 못한다는 식이다. 어쩜 나만 몰인정한 애비가 되는 판이다.

옛날, 녀석들의 대입시 때보다 더 마음잡기 난망이다. 자식은 그래서 잘하던 못하던 평생 웬수짓 한다는 말이 결코 허언만은 아닐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자식이 잘못됨 당연지사지만 잘 되도 걱정이다. 잘 나가는데 따르는 여건이 만만한 것만은 아니기에 말이다. 무자식 상팔자란 말이 솔깃하다.

하여 나는 추석 담날 식구들 앞에서 큰애의 뒤치다꺼리 못하겠으니 너희자매들이 상의해서 결정하라고 폭탄선언을 했다. 애들은 짐짓 놀라는 표정 이였다. 손자들 시중들며 마음 고생하긴 싫다.

기껏 하다가 도중에 그만둘 순 없기에 애초에 물러섬이 모두에게 이로울 것 같아서다. 또한 그래야 달리 방안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다.

큰애야, 미안하다. 현명한 결단을 기대한다.

2013. 09. 21

#관세사시험과목

1차; 4/13수험. 5/15발표. 

       1교시-관세법, 무역영어.   2교시- 내국소비세법

2차; 2/27원서접수. 6/7공고.  6/22수험.  9/25발표.

        1교시-관세법.  2교시-관세율표 및 상품학

        3교시-관세평가.  4교시-무역실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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