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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넋 뺏기고 나를 찾고 - 소백산 비로봉

비로봉서 넋 빠져봐야 산꾼 된다- 소백산

파란하늘에서 쏟아지는 따스한 햇살, 바람 한 점 없는 소백산 어의곡들머리에 들어선(오전10시반) 난 다소 맥 풀리긴 했지만, 빙판길에 쌓인 눈을 밟으며 산정에 오르면 상고대는 아니어도 눈꽃정돈 마주하겠다 싶어 기대를 부풀렸다.

깨 벗은 삼나무가 군락을 이뤄 반긴다. 바늘 같은 침엽 하나 남기지 않고 알몸으로 겨울과 맞장 뜬 훤칠한 기개에 감탄한다.

나무들은 왜 깨 벗고 추위에 덤빌까? 가진 걸 최소화해 몸뚱일 홀가분하게 해야 동장군의 칼날을 피하기 쉬울 것이다.

놈들의 꿍꿍이속을 헤아리고 있는데 이젠 무성한 초록이파리로 햇살을 차단한 주목일당이 앞을 캄캄하게 막아섰다.

놈들의 깡다구에 기가 질렸다. 놈들도 최소한의 이파리만 달고 있을 테지만 그 기상이 겁난다. 암튼 놈들은 겨울추위에 아파서 오지게 데고 덴 자국을 남겨야 살아남는다.

깨 벗은 놈들보다 최소한의 옷일망정 걸친 체 추위와 싸운 사철나무가 나이테(덴 흔적)가 선명하고 더 장수함은 자명함일 것이다. 여기 울울창창한  주목들이 그걸 증좌한다.

버릴 걸 흔쾌히 내려놓고 때를 기다리는 나무의 삶은 사람보다 더 현명한가 싶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한 시간쯤 눈길을 헤치니 이젠 적설량이 많아 푹푹 눈 속에 발이 빠진다.

푹푹 빠지는 눈은 어젠 얼마나 푹푹 내렸을까? 문득 백석(1912~1995)시인이 생각났다.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백석이 생전에 소백산엘 왔었을까? 소백산은 눈도 많이 내리고 골도 많아 그가 말한 산골이 여기 어느 쯤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해본다.

그가 푹푹 눈 오는 날, 눈 속에 푹푹 빠지며 산골을 찾는 까닭이 세상에 져서가 아니듯, 오늘 나 또한 아더매치한 일상이 지겹고 신물 나 버릴 수만 있다면 잠시 동안이라도 세상을 버리고 싶어 소백산을 찾은 게다.

내겐 나타샤가 없어도 세상을 피하고 싶은 나를 맘으로 편들어 줄만한 누군가도 있을 것이다.

오늘 여기서 눈에 푹푹 빠지며 소백산을 오르는 산님들 중 누군가도 시니컬한 세상이 역겨워 잠시 벗어나고파 온 분이 있을 테다. 백석을 이해할 만하다.

나타샤 - 통영의 박경란과 대원각의 김영한이란 여성 중 누굴까?를 생각하다 휘파람소릴 들었다. 아님 그의 고혼의 독백을 슬퍼하는 울음소릴까?

입산한지 두 시간쯤 됐나. 능선에 오르니 휘파람은 포효소리로 변한다.

산님들이 무서워선지 웅크리고 기면서 모두 고슴도치 흉내를 낸다. 차라리 눈 속으로 두더지처럼 들어갔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허공은 온통 기괴한 울음소리로 가득 차서 고막을 찢는다, 모든 게 미처 날뛰는 광란의 무대가 비로봉 아래에 펼처졌다. 

두서너 그루 관목이 30도로 허릴 꺾고 미처 날뛴다. 광풍에 휘말린 눈 알갱인 회오리로 공중재비 치다 분패가 돼 골짝을 분탕칠 치고 있다.

네발이 돼 편리하던 스틱이, 배낭이, 모자가, 바람 새는 재킷이, 몸뚱이가 그리 부담스런 짐덩이가 됐다.

눈꽃, 상고대가 남아있을 턱도 없겠거니와 그걸 찾는 눈과 맘의 사치도 살고 나서나 부릴 호사다.

정신을 차릴 수가, 넋을 완전히 빼가는 비로봉 오르는 능선은 지옥의 아수라장 같았다.

나무계단 밧줄이 아님 회오리에 묻혀 승천했을 산님들이 몇 분은 됐을 테다. 이 무서운 광풍과 호곡소린 어디서 온 걸까?

별나게 춘 금년 겨울 나느라 아팠던 초목의 울음소린가, 미친바람의 치매기인가, 비로봉이라고 딴 산의 비로봉과 싸잡아 생각하는 산님들을 혼쭐내기 위함인가?

나, 소백산의 칼바람 맞으러 서너 번 왔지만 오늘 같은 넋 빼는 소백산 일진 상상을 절했다.

기어왔는지 날아왔는지 몽롱한 의식에 비로봉 표지석이 광풍에 뺨 맞느라 호곡소리가 절정이었다. 무엇땜에 여길 올라야 했을까?

달리 갈 길이 없어서일 것이다. 비로봉을 통과하는 '원 웨이 티켓'을 달랑 한 장 들었으니 포복해서라도 와야했다. 허나 등산이란 극한의 아픔을 인극할 때 나를 재 발견한다고 했다.

인증 샷을 해야 하는데 몸뚱일 가눌 수가 없고 광풍 피하느라 떼거리 지는 산님들 탓에 더 버틸 엄두도 못 냈다.

‘인증 샷’이란 욕심도 죽기 살기로 정상에 서니까 생긴 거다. 아까는 몸뚱이도 짐이라고 버리고 싶었는데 마음이란 게 그리 간사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간사한 마음 내려놓으라고, 혼쭐 좀 나보라고, 넋 빼기 위해 소백산은 오늘 작정을 한 게 틀림없다.

이런 생각도 연화봉과 천동리행 갈림길에 닿아서야 숨 돌리며 할 수가 있었던 거였다.

오후 두시가 넘었다. 웬지 배고프지도 않았다. 하긴 넋 빠진 놈이 시장기를 느끼겠는가.

이젠 입가심을 하고 싶어도 적설 땜에 자리가 없다. 눈 위에서 먹기도, 더는 춥기도 해서 그냥 하산했다. 산행하며 싼 점심 안 먹기도 처음이라.

이상한 건 넋 나가선지 배가 고프질 안했다는 사실이다.

부산에서 온 산님이 동료에게 죽는 줄 알았다면서 ‘작년여름의 태풍 볼라겐은 소백산칼바람 앞엔 명함도 못 내민다.’라고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산엔 뭣 땜에 오르는가? 세상이 싫어서도, 세상에 저서도 아닌, 잠시 동안 세상을 등지며 내 넋을 놓아보기 위해서가 아닐까란 생각을 해 본 비로봉 이였다.

소백산칼바람 맞아야 겨울 났다는 말은 산님들의 괜한 푸념이 아님이다.

고생을 해야 나를 놓을 수가 있다. 평범한 산행은 운동은 될망정 나를 돌아보기엔 약발이 떨어질 것 같다.

여행도 고생하며 난관을 통과해야 짜릿한 추억으로 맘을 살찌운다.

소백산의 비로봉은 여느 산의 비로봉과는 약발이 다른 비로나자불이 머물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넋 뺏긴 소백 산행을 난 눈감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버스좌석에 푹푹 파 묻혀 눈 쌓인 소백산을 푹푹 빠지며 다시 오르는 꿈을 꿨다.

광란의 비로봉에 넋 뺏기고 내려와서 되짚은 허탈함, 허나 꼭 허탈한 것만은 아닌 그 허허로운 마력에 이끌려 미친 놈이 돼 비로봉에 다시 오르고 싶었다. 

그 때도 난 백석의 시를 읊으며 소백을 찾을 거다. 나타샤 대신 누군가도 생각하며-.

2013. 0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