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걸어가는 길 - 산행기

눈꽃의 삼각산 송년산행 - 비봉`향로봉

눈꽃의 삼각산 송년 산행-비봉`향로봉

 

오전10시, 구파발 전철역사를 나서 한참을 걸어 들어선 하얀 눈 세상에 파묻힌 깔끔한 은평뉴타운 신시가지 건물들은 서울 같지 않은 쾌적함을 주는 거였다.

시가지를 관통하여 하나고교 우측에서 방향을 틀어 북한산자락을 찾아들면 수많은 구부정한 적송들과 어울린 일주문이 손짓을 한다.

아까부터 혼자였는데 일주문을 들어서 해탈문, 그리고 250여년을 문지기 선 느티나무 두 그루가 하얀 눈을 등허리에 가득지고 나를 맞아, ‘삼각산진관사(三角山津寬寺)’정문으로 안내하기까지 누구의 그림자도 없다.

대웅전을 향하는데 철 잊은 연등만이 울긋불긋 절 마당에서 인적을 말할 뿐 숨소리도 없다. 템플스테이 중이어서일까?

진관사는 비구니의 요람이며 오랜 수륙제(水陸齊)를 여는 사찰이다. 수륙제는 외로운 영혼과 아귀들에게 불법을 설하고 음식을 베풀어 구제하는 의식인데 조선을 창건한 이태조는 다섯 번이나 참례하였다니 이성계의 발자국 위에 오늘 내가 족적을 포개는지도 모르겠다.

마당을 한 바퀴 돌면서 고려목종 때의 왕세자 대량원군을 생각해봤다. 왕자가 12세 때 정쟁에 휘말려 이곳 암자로 피신을 하게 됐다. 마침 진관대사가 홀로 수행 중이었는데 왕자를 살해할 자객이 나타나자 대사는 법당 본존불 아래 굴을 파고 왕자를 숨겨줬다.

후에 대량원군은 현종으로 즉위하고 여기 암자에 진관대사를 위한 사찰을 지으니 진관사라.

그래 고려의 국찰로 보호받다가 이태조의 수륙제 거행으로 번창을 하였으며, 그때의 조촐한 음식 만들기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신채(마늘,파,무릇,달래,부추)를 넣지 않은 진관사음식은 절미 유명하단다.

소담스럽게 내린 눈발 속에 묵언하고 있는 고찰을 조신하게 기웃대다 비봉을 향하는 산행길에 들었다. 북한산이 바위산이듯 첨부터 가파른 바위길은 눈까지 덮고 있어 심난했다.

장비로 중무장은 했지만 빙판 위에 눈 덮인 길은 어찌나 미끄럽고 팍팍하여 계속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드는 거였다. 아이젠은 비틀대는 몸뚱일 잘도 받쳐주었고, 되돌아서서 관망하는 설경에 빠져들다 보면 그 낭만의 멋에 취하는 맛은 일상에서 느끼긴 어려운 거였다.

겨울에 마주하는 자연의 얼굴은 경외감을 느낄 때가 많다. 무생물도 겨울엔 소복성장을 한다. 만물이 하늘을 우러러 몸뚱이 내민 만큼만 하얀 눈을 선사하는 게 겨울이란 계절이다.

어디선가 딱따구리가 나무 쪼는 소리로 골짝의 고요를 침탈하고 있다. 한 시간쯤 고군분투 하니 비봉과 향로봉이 목화송이 사이로 웅장한 자태를 들어낸다. 가파른 철계단을 오르자 산님 한 분이 설인마냥 다가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오늘 처음 만나는 산님 이어서였을 테다. 바위길이 장난이 아니라고 서로가 조심할 것을 당부하고 헤어진다.

엄청 큰 바위가 흰 마스크를 하고 엄청 큰 목화송이 밭을 만든 절경 속에 배낭을 풀고 빵과 과자, 과일로 설상의 오찬(?)을 즐긴다. 등허리 땀이 식느라 한기가 일어 냉큼 일서섰다. 홀로 하는 겨울산행, 더구나 진관사에서 삼각산을 오르는 길은 초행이기까지 하여 내심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 채여서 비봉이 코앞에 다가서자 안도감도 드는 거였다.

사모바위가 네모바위로 또렷하게 얼굴을 내밀며 승가봉, 나한봉에 추파를 던지고 있다.

비봉능선에 오르자 비로써 산님들이 삼삼오오 이어진다. 한 시간 반쯤 소요 된다는 길이 두 시간도 넘겼다. 비봉정상을 에두르고 향로봉을 밟은 후 탕춘대능선을 따라 하산키로 했다.

무릎보호대를 찼지만 무릎이 시고 당긴다. 아직 가파른 하산길이 창창한데 걱정이 인다.

급살 맞은 바위길은 눈이 녹아 좀 질퍽댄다. 여기만 해도 남향받인데다 줄곧 이어지는 등산객들로 영하의 날씨지만 쌓인 눈이 짓물러지고 있는 거였다.

아까 진관사쪽 등산로는 서북지역이어 전에 좀 눈 녹은 빙판위에 적설인지라 산님들이 오늘 같은 날엔 기피하여 인적이 없었던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탕춘대능선에 펼쳐준 서울의 모습은 안무속의 실루엣일 뿐이라. 뿌연 회색 시계는 간혹 고층빌딩 꼭지를 엿보이고 있었다. 이렇게 햇빛 쨍쨍한 날 거대한 서울이 통재로 사라지는 모습도 세모여서 연출함인가! 서울에 삼각산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천행이라.

하긴 정도전이 이태조를 꼬드겨(?) 도읍을 정한 소이를 맹물인 나도 쬠 가늠이 되니 말이다. 급경사바위길을 더듬는 나의 무릎은 심상치가 않다. 탕춘대지킴이터에 닿으니 안도감 땜인지 심신이 늘어졌다. 오후3시가 지났다. 무리한 산행이었다.

눈 덮인 겨울산행은 더구나 초행산행은 아니해야 함인데 무모함이 빚은 탈진이라. 아내의 쏟아질 지청구가 (엊그제 좀더 예뻐지겠다고 피부크리닉을 찾아 얼굴잡티 제거시술을 받아 마마자국처럼 상처가 덕지덕지 있어 집을 나설 때 아내의 뜨거운 눈총환송을 받았다) 어떠하리란 건 뻔할 뻔자다.

삼각산이 설산이 되고 그 산을 넘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서울을 찾느라 두리번거린 송년 산행은 피곤함만큼 기억에 깊은 골을 새길 것이다.

아~듀!  2012년.

 

 

 

 

 

 

2012.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