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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바다 속의 진달래축제 - 거제 대금산

바다 속의 진달래축제 - 거제 대금산

1년 중 가장아름다운 날들은 4월에 촘촘히 박혀있다.

동토의 땅은 밤마다 서릿발을 내밀어 몸을 풀고, 죽음 문턱에 이른 나무도

꺼운 껍질을 열고 새싹을 내밀어 산야를 연두색 파스텔톤으로 색칠하는

가 하면,

어느 순간 꽃봉오리를 통통히 살찌워 아침마다 터뜨려 황홀한 생명의 찬가

를 노래하는 - 잔인한 날들이 4월을 수놓아서다.

4월은 잔인한 달 - 가장 아름다운 달이 아니던가!

4월 둘째주말의 거제도 대금산은 선혈로 낭자했다. 푸른 창해에 둘러싸인

산야는 빨간 진달래로 도배질 하다못해 물러 터져 검붉게 얼룩지고 있었다.

4월이 시작되면 남녘의 땅들은 하얀 벚꽃으로 단장하고 틈새엔 빨간 진달

래로 봄을 탄생시킨다.

지난겨울, 혹독한 추위에 바스러졌던 누런 대나무 숲도 노랑과 초록이 녹

아난 생명의 색을 틔워 세상에서 가장 탄복할 옷을 입고 있었다.

그 대나무 숲에 앉아 바람과 속삭이는 그들의 봄맞이 밀어를 듣다보면 때

절은 나의 마음의 독살도 씻어내는 거였다.

망망 창해를 달려온 바람이 대나무 숲을 흔들며 봄을 노래하는 정령들의

밀어에 귀 기울려보라. 마음도 완전히 봄의 녹초에 빠져든다.

이 대나무 숲에서 여기 출신 청마(유치환시인)는 <깃발>를 노래했는지도

모른단 생각을 해봤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진달래꽃밭 대금산정상(438.4m)에서 좁은 가슴 찢어가며 안는 안무속의

바다는 몽환적이다. 신비한 풍광에 미쳐 내가 발 디든 땅 한 덩이가 떨어져

나가 바다를 향하다 섬이 된성싶은 이수도.

그 앞을 통통 배 한척이 바다 가슴팍을 가르며 하얀 상체기를 내며 달리고

있다.

저 멀리 저도와 가덕도를 횐 동아줄로 매달은 5주탑사장교는 아스라해 환

상적이다.

저 아지랑이 안무는 바다가 내 쉰 깊은 숨결인가!

바다나 되기에 가슴팍 찢어 길을 내도 아무 말이 없다.

바다나 되기에 속살 깊숙이 말뚝 박고 다리를 놔도 암소리 않고 껴안는 거다.

바다나 되기에 비오면 온갖 구정물 다 품어 세상을 정화시킨다.

바다나 되기에 우리네가 훼손하는 자연의 상처를 치유시키느라 속 푹푹 끓

이면서 한숨 포말로 바닷가에 뿜어내며 홀로, 혼자 삭히는 거다.

바다는 우주의 어머니다.

세상의 모든 허물 품어 안아 암소리 않고 삭히는 엄마인 것이다.

그 엄마를 따라 대밭에 들렀다가 상금산으로 향했다.

흑갈색 나목들이 온갖 형상을 한 채 어우러져 공간을 거미줄치고 있다.

이조 때 생명력 강한 나무를 오리(2km)마다 심어 이정표로 삼았다서 오리

나무로 명명된 오리나무가 5미터도 안 되게 빽빽하게 자생하며 그들만의

천국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이 만든 부엽토의 쿠션은 내 맘을 뺏는데, 수명 다한 놈은 시목 그대로

서서 으아리꽃대가 돼 아름다운 꽃나무로 거듭나고 있잖은가!

뿐이랴, 두서너 놈이 서로를 연모하다가 엉켜 붙어 한 통속이 된 연리지가

됐으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가 여기 있었다.

놈들이 겨드랑이를 찢어 연초록이파리를 내밀며 허공을 붓칠하고 있으니

4월이 아니곤 상상이 안 됨이라!

아, 자연은, 4월은 아름답다. 4월엔 행복하여라.

청마의 시 <행복> 한 소절을 읊어본다.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뜻한 연분도

한 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중략)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2013. 0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