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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꽃들의 허망한 프로노그래피 - 운암산

꽃들의 허망한 프로노그래피 - 운암산

뾰족뾰족 날 새운 바위능선들의 키가 겨우597m인데 구름을 이고 산데서 운암 산이란다. 설악산 울산바위 한 쪽을 옮겨놓은 듯한 칼바위능선에서 조망하는 사위는 설악이 흉내 낼 수 없는 산호림(山湖林)으로 기똥차다.

운암산을 에워싼 대아호, 동상지, 용암댐, 경천저수지들이 쪽빛 호반을 일궈 연둣빛 산록들을 수반위에 올려놓고 때때로 운무로 감싸니 운암산이라.

꼬불꼬불한 732번 지방도를 타다 들머리인 대아댐 새재고개에서 시작한 산행은 운암정상까지가 고작 2.75km이기에 쪽빛호반과 연초록산록 정취에 푹 빠져 느긋하게 여유부리기 좋다.

죽여주는 풍경에 빠져 오지게 해찰부리다보면 몸도 맘도 선계에 들게 된다. 칼바위 기암(奇巖)들이 골수를 짜 먹이며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우람·해괴한 소나무들은 호반이 뿜어내는 상큼한 이슬을 마시고 있어선지 덩치와 위용이 얼마나 멋들어진지!

 

그 멋진 품새 사이로 숨바꼭질하는 쪽빛과 연둣빛의 파스텔톤의 산수는 발걸음을 절로 멎게 하고, 각각의 호수들이 토하는 물길은 실개천에서 만경강을 이뤄 김제평야의 젖줄이 된다.

그 만경강이 새만금에 막혀 바다의 보고인 갯벌을 잃었으니 자연생태파괴의 주범은 우리들인 것이다. 아까 들머리엔 ‘토종벌 멸종의 위기’를 알리는 경고판이 세워졌었다. 씨 없는 곶감단지로 유명한 이곳 동상면이 토종벌의 급감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는 거였다.

문득 아인슈타인의 경고“지구상에서 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3년을 버티기 어렵다”다는 말이 생각났다. 아니 그건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 됐다.

미국과 서구나라의 통계수치는 지난 25년간 꿀벌의 개체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단다.

인간이 먹는 식량 중 63%는 식물의 수분(受粉)작용에 의한 열매고, 그 수분의 80%는 꿀벌에 의존하기에 꿀벌 없는 세상은 배곯아 죽는 세상이 된다는 게다.

해서 유럽연합(EU)은 4월29일자로 향후 2년간 살충제(네오니코티노이드 계)3종의 사용을 금지 했다. 살충제가 꿀벌의 개체 수 감소의 주범 이어서다.

근데 우리나라는 2년 후의 EU를 보고 그때 가서 논의해 보겠단다. 창조경제치곤 징글맞게 굼뜬 꼴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에 간간히 진달래, 병꽃, 이팝꽃, 민들레, 현호색이 화사하게 웃으며 향을 뿜어 벌·나비를 유혹하는 장면과 마주쳤으나 충매는 그림자도 없는 허망한 프로노그래피를 연출하고 있는 거였다.

종(種)을 보전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허망한 프로노그래피를 우린 무작정 보기 좋다고 낄낄대니 꽃들의 입장에선 인간이 미친년·놈으로 보일게다.

저 아래 동상면주민들의 걱정 - 감꽃이 허망한 프로노그래피가 아니기를 기원해 봤다.

꿀벌 없는 세상은 인류의 종말이라! 이 죽여주는 풍광 속에 벌·나비가 윙윙대는 꽃들의 프로노그래피까지 볼 수 있담 산행의 멋과 맛은 어떤 환장할 것과는 비교가 안 될 것이다.

운암정상에 서면 인간이 빚은 담수호의 멋이 자연과 얼마나 잘 어울려 우릴 환장하게 하는 지를 실감나게 한다.

발밑 바로 아래 흉터처럼 솟은 조력발전소의 거대한 물탱크마저도 더 이상 자연파괴 아닌 문명의 이기기에 감탄으로 돌아선다.

운암정상(597m)에서 대아수목원으로 하산하는 길도 대저 엇비슷하다. 굼뜬 짓 별게 다해도 대아수목원에서 멋들어지게 숲에 취할 수가 있어 산님들이 하루를 온통 자연에 빠져들게 한다.

난 일행과 또 하나의 숲·공원인 동상휴양림을 찾아 들었다.

5월1일, 근로자의 날이라 공원과 유흥지는 이산인해인데 휴양림만은 적요했다. 연둣빛물감이 뚝뚝 떨어지는 싱그런 숲길은 얼마나 상큼했던지!

아아, 지천으로 핀 현호색과 민들레의 프로노그래피가 결코 허망하지 않았음 싶었는데 벌·나비 한 마리도 보질 못해 아쉬웠다.

꽃들의 화사함은 절실한 그들의 프로노그래피일뿐 결코 우리네의 눈으로 어떻다고 틀에 가두는 건 실례란 생각을 해 보기도 한 하루였다.

                                        2013. 05.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