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나무 숲 최상의 피서트래킹 - 사명산
서울춘천60번, 55번 고속국도를 타다 춘천에서 46번 국도를 이용 양구군 웅진리 양구학생야영장에서 사명산 오르는 산도에 진입, 금강사에서 숲길에 들어선 시각은 오전 11시 반 이였다.
긴 장마로 축축한 등산로는 짙은 녹음터널 속으로 빠져드는데 들면들수록 숲을 울리던 물소리는 웅혼한 교향악으로 다가와 골짝을 뒤흔든다.
장엄하기까지 한 우뢰소리는 생명력 왕성한 물이 골짝에 있는 모든 것들-바위, 돌멩이, 이기 낀 나무, 썩어가는 시목까지도 일켜세워 단원으로 만들고 온갖 소리를 내게 하는 거였다.
골짝을 달리는 물은 눈부시게 하얗고 바위에 부딪치면 포말로 개 거품을 일으키다 두터운 녹음을 뚫은 빛살을 안고 곤두박질 떨어져 비취소에서 몸 푼다.
그 굉음이라니! 고막을 찢는 파열음이 왜 싫지가 않는 걸까?
태고의 원음-소리의 시원을 찾는 자연스런 인간의 본성 탓일 거란 생각을 해봤다. 자연의 태초소리에 귀의하려는 동일체 현상이 아닐까? 하는 ---.
그 교항악에 홀려 땀벌창 된 채 가파른 길 더듬으며 반시간을 가벼이 올라 선정사에 닿았다.
떨어진 호도가 발길에 간간히 체일정도로 호두나무가 지천이고,
갈라진 거북등걸 위에 수백 년의 풍상을 푸른 이끼 옷으로 걸친 거대한 소나무와 갈참`굴참나무들~!
가늠할 수 없을 세월을 몸만들기 한 극기의 생은 천태만상 기괴하기까지 하다. 아니 그 위용에,
당당한 품새가 반죽음에 이르러서도 그렇게 멋질 수가 없고, 죽어 썩어가는 시목 그대로의 모습도 나를 환장하게 감탄케 한다.
4.7km를 그놈들한테 눈멀고 마음까지 뺏겨 오르다보니 사명산정상(1198m)이 발아래 깔렸다.
오후1시20분. 엷은 안무 탓인가?
거목들한테 눈 판 땜인가? 소양호와 파로호가 긴 가민가 침침하다. 한 떼의 서풍이 달려와 정상에 오른 자를 환대한다.
오늘 동행한 이(동호)사장이 아까부터 배고파 죽겠단다. 그가 배고프단 소린 매 시간단위인 것 같다. 알고 보니 당뇨가 있어 수시로 허기를 채워야만 한단다. 무리한 산행 같다고 찜찜해 한다.
근래, 장거리 산행경험도 별로인 그가 오늘 나를 따라나섰기에 다섯 시간쯤 잘 견뎌줬음 싶은데 어찌 될지 맘이 안 놓인다.
실은 그가 오늘 산행얘길 내게 뜬구름 잡듯 꺼냈고 그래 사명산은 내게 처녀옷을 벗고 있는 셈이다.
산능의 굴곡은 완만하고 푹신한 육산인데다 울창한 숲 길속에 장마뒤꿈치라 상큼한 기운은 몸을 녹초 만들 것 같지는 않다.
간혹 소슬바람까지 우수수 이파릴 때리며 몸에 감기는데야~!
아~!, 이렇게 멋진 피서트래킹 코스가 어디 또 있을까?
두터운 녹색실크 천으로 도배한 숲길엔 야생화와 온갖 버섯이 군데군데 깔렸다. 이럴 땐 버섯에 대한 무식이 한없이 후회스럽다.
오지속의 오지, 산중속의 산중, 백두대간 후미진 깊숙한 사명산등산로는 산님들 뜸한 육산이라 호젓해서 좋고 다양한 식생-푸나무의 전시장이라 눈 팔기 딱 이다.
한도 끝도 없이 나타나는 늙은 홍송과 참나무 거목들, 그들이 훈장인양 매달고 있는 옹두리와 겨우살이, 생의 최후는 어찌해야 하는지를 암시하려는시목의 미학에 이르기까지 다섯 시간 내내 자연의 신비에 푹 빠지게 하였다.
여름엔 산을 찾을 일이다. 진정한 피서는 푸나무와 동행하며 자연에 동화되는 순간일 것 같다.
지친 심신을 치유해 주는 피서여행으로 산 만한 곳이 있으랴.
문바위봉(992m)은 자연의 신비를 되새김질 시켜주는 절경의 쉼터였다.
문 위를 가로지른 출렁다리는 어쩜 하늘로 오르는 사닥다리였나?
마음 깨끗한 자만이 저 사닥다리를 하나씩 밟고 천상에 이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감히 누구도 거기에 발 들여놓지를 못할 것 같았다.
마음을 비운 자만이 홀가분하게 사다리를 밟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봤다.
사닥다리를 건너뛰려던 소나무도 그 자리에서 죽어 고사목이 됐다. 멀리 소양호가 엘도라도깃발처럼 감감 손짓한다. 바위에 앉아 한참을 뭉그적대며 만족감에 대해 생각해 봤다.
오후 3시반,
날머리를 향한 770고지 울창한 수목 아트홀에서 백발성성한 노익장 산꾼님과 잠시 동행했다. 후미지만 결코 서둘지 않고 쉬지도 않은 조신한 트래킹은 님의 산꾼이력이 만만찮음을 느끼게 했다.
작년에 지리산자락에서 송이를 예닐곱 송이 채취했다는 老산님은 사명산자락도 송이버섯의 보고일 것 같다고 역설했다.
송이는 활엽수가 왕성한 완만한 경사지에 소나무가 듬성듬성 있는 부엽토속에서 발아하는 데 여기 산세가 적지란 게다.
얘길 듣다보니 켜켜이 쌓인 낙엽을 들치고 앙증맞은 송이가 솟을 것만 같았다. 죽은 나무의 꽃들!
곰팡인 천태만상으로 피어나 아름다운 버섯꽃 전시장을 일궜다.
아닌 게 아니라 몇 해 전 가을, 저 아래 소양호를 건너 청평사를 찾아갈 때 산사길 가게에 탐스런 송이가 목젖을 간질거려 몇 송이 생식했던 기억이 새로워졌다.
가깝다면 가을에 송이 채취와 트레킹을 겸한 나들이를 왔음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울긋불긋한 홍엽세상을 트래킹하다 송이라도 하나 조우한다면 그 환호 어떻게 작약할 것인가!
이래저래 푸나무 숲은 신비롭다.
생과 사, 삶과 주검이 경쟁하듯 일상화 된 곳이 숲이고 생동의 신선과 시신의 부패가 공존하여 썩는 악취가 진동할 텐 데도 청량하며 상큼한 향기까지 내뿜는다.
욕심꾸러기들의 우리세상과 베푸는 수풀의 세상을 극명하게 체감할 수 있는 산은 그걸 자각케 함 만으로도 위대하다.
부패의 늪에서 서생 하는 온갖 병균과 곰팡이의 침투를 막아내며 몇 백 년을 살아남는 나무의 신령한 비결은 스스로 내뿜는 피톤치드란 항생제 땜이라고 어느 식물학자는 말했었다.
천행은 그 피톤치드는 인간에겐 속병이란 부패의 치유제로 아무리 포식해도 배탈날 게 없다는 게다.
숲을 찾음은 피톤치드란 항생물질을 호흡하여 심신을 치유하는 천혜의 여정인 셈이다.
한 없이 주기만 하는 나무들의 은혜!
우리가 나무 앞에서, 푸나무의 터울 산에서 겸손해져야 하는 이유다.
추곡약수터에 닿을 무렵 노산님은 인근 화천에서 군생활 때 접했던 슬픈 에피소드 한 편을 들려줬다. 낼 모래가 정전협정 60년이라 먹먹했다.
6.25발발 13년 후인 1963년 무렵.
그분은 화천댐 부근 12사단 포병대에서 군생활을 했었는데 당시 그곳 주민들은 화천골 청정냇물에 서식하는 물고기를 먹지를 안했다는 거였다.
6.25때 중공군과 아군의 격전지였던 화천골엔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 부패의 균에 오염된 냇물 속 물고기를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는, 처참했던 트라우마에 갇혀 살던 원주민의 슬픈 얘기를 했다.
그래서였다. 6.25란 살육 전쟁이 종전이란 비극으로 끝난 후에 이승만대통령은 화천호수를 파로호로 명명했었다.
중공군 2사단을 아군이 육탄전으로 막아내 승리한, 적을 격파하고 많은 포로를 생포한 전적지였던 호수, 그 피맺힌 사연의 호수 말이다.
그 처참한 전쟁의 상처를 십년인들 아니 백 년이 흐른들 잊을 수가 없기에 일급수물고기도 먹을 수가 없을 테다.
노산님은 아련한 기억 속을 해메느라 서북쪽을 향한 눈길을 돌리지를 못했다. 오후5시,
추곡약수터에서 갈증을, 아까 들은 파로호 원주민들의 트라우마삶을 떨치기라도 해야겠다고 약수 한 모금을 삼키려는데 향과 맛이 영 물맛이 아니다. 탄산수가 농해서 라나!
날머리, 한솔님들이 걸판지게 뒤풀이를 하고 있었다. 회장(김윤수)의 인심이 여간 푸짐하다. 해서 주중에도 만석을 이루나 싶기도 했다.
이사장이 귀뜀해준, 오지게 꾸꿈스런 곳의 산이라 쉬이 갈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첨으로 한솔에 끼어들는데 알만한 노산님들께서 자리하여 솔깃하고 품도 만족스런 게 이만저만했다.
피서치곤 오늘 참으로 좋았다. 가파르지 않는 푸근한 육산은 다양한 식물의 보고로, 우람한 거목들의 보디빌더장으로써 편안하게 안아준다.
사계절 아니, 힐링트래킹코스로 최상의 산임을 강추하고 싶다.
산꾼들 입소문 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찾고 싶었다.
회장은 귀로에 소양댐의 만수를 눈요기시키는 아량을 베풀었다. 쉬운일 아닌데-. 2013. 0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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