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인봉(峯)과 노인붕(朋)(오대산)♦


“예~, 다섯 시 십 분인데 일어나세요.”

“······으~응.”

5시에 깨우기로 했던 아내는 나에게 10분을 선물(?)하고도 내키지 않는다는 듯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래가지고 어떻게 갈 수 있겠어요?”

“응~, 괜찮아”라며 일어서는 나의 몸뚱인 나사가 몇 개가 풀렸는지 가눌 수가 없었다.

4일간의 농활 끝에 어제오후 늦게 귀가한 나의 몸은 아직 피곤에 절여 있었고, 그런 몸으로 산행하겠다는 나의 집착을 못마땅해 하는 아내의 눈길을 외면한 채 집을 나섰다. 피로가 눈까풀을 물고 늘어져 스르르 감아진 눈을 떴을 땐 버스는 진부령을 통과하고 있었다. 진고개 길을 더듬는 차장엔 가을이 색동옷을 입고 환영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다.

진고개 주차장에서 버스는 나를 내쫓는다. 쫓겨난 난 펼쳐진 진풍경 땜에 피곤을 잊는다. 빼곡히 들어선 차량과 노인봉을 오르는 등산길을 덮은 인파의 장사진에 놀라서였다. 나도 허겁지겁 그 인파에 휩쓸렸다. 헌데, 가을이 없다. 가을이 증발이라도 한 건가. 산을 점령한 신갈나무와 덩치 큰 졸참나무의 앙상한 가지만이 파란하늘에 무수히 금을 긋고 있을 뿐 가을은 없다. 흑갈색 나목들은 발부리에 갈색 이파리 옷을 홀랑 벗어 놨다. 그 옷 나부랭이들이 갈수증(渴水症)에 걸려 밟으면 바사삭 소리를 내며 부서지고 있다. 무미건조한, 먼지 푸석거리는 이 산길을 무슨 볼일이 있다고 사람들은 줄기차게 오르고 있는 걸까? 노인봉 정상쯤 어딘가에서 갈 잔치가 열리고 있다는 걸까~!


실망감이 스멀스멀 발효하려든다. 동행한 4총사들도 구시렁거린다. 그들을 앞세우거니 뒤서거니 하며 증발한 가을이 아쉽다고 푸념을 하며 노인봉을 향했다. 그래도 노인봉은 하나의 눈요기 거리는 잊지 않고 있다. 삐쩍 마른 흑갈색 나지들 사이에 은빛 드레스로 치장을 한 사스래나무가 숨바꼭질을 하며 시야를 즐겁게 하고 있었던 거였다. 태양은 흰 드레스의 사스래나무를 눈부시게 성장시켜 가을무도회장으로 안내하고 있음인가. 그 부신 옷에 홀려 시간 반을 좇다보니 노인봉에 이른다. 그러나 노인봉도 사라졌다.

백발이거나 하얀 민둥바위 머리일 노인은 없고 울긋불긋 산님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정상을 점령한 탓이라. 만약 하늘에서 노인봉을 찾으려한담 헛물켜기 십상일 테다. 그 북새통 속에서 기념한답시고 디카에 몸을 집어넣었다. 떠밀리다시피 내려와 잣나무 밑에 점심자리를 깔았다. 문득 ‘조변석개(朝變夕改)’와 ‘상전벽해(桑田碧海)’란 사자성어가 생각났다.


아침엔 분명 노인봉은 있었을 게다. 해가 중천에 오를 무렵 산님들한테 쫓겨나 해질녘까진 억지 고깔 옷을 입다가 밤에야 제 모습 되찾기 까진 말이다. 그런 노인봉의 조변석개도 십여 년 전엔 상상이나 했겠는가. 십년의 세월은 뽕밭을 바다로도 만든다고 했다. 지금 전국의 명산은 인파로 뒤덮였을 터. 십 년 전 이맘땐 산이 아닌 들판이 사람들로 붐볐을 텐데, 농촌은 농번긴데도 노인들만이 농기계 옆에서 힘겨워 하고 있다. 여기 노인봉의 젊은이들은 어쩌면 농촌의 들녘에 있어야 함이다.

나는 어제까지 나흘간 농촌에 머물면서 사람이 그리운, 젊은이가 너무 보고 싶어 환장할 가실마당을 통감하고 왔다. 노인봉의 노인은 농촌들판에, 농번기 들녘에 있어야 할 젊은이들은 이곳 노인봉에 넘치고 있으니 상전벽해도 도가 지나쳤다싶다.

나의 농활은 4년째다. 공직을 명퇴한 고향친구가 야산을 일궈 과수원으로 조성하고 축사를 지어 소를 키우기를 일년, 그는 불운하여 요통을 앓게 됐고, 부득이 디스크 수술을 해야 했다. 그의 딱함을 모른 채 할 수가 없어 친구 몇이 짬 내어 힘 보태다보니 농번기엔 연례행사가 됐다. 내가 일년 중 가장 몸뚱이가 힘 부칠 때란 바로 친구집에 머무는 농활동안이라.


보다는 나를 우울하게 했던 점은 소 값이 절반으로 덜어졌다는 사실도, 사료 값이 곱빼기로 폭등하여 사료값을 절약한답시고 볏짚 묶어 날라다 창고에 쌓는 피곤이 아니라, 돈 주고도 구할 수가 없는 농촌의 인력난 이였다. 참으로 팍팍한 농촌이 돼가고 있는 현실이라. 아침까지도 무릎과 팔굽치가 아리였는데 노인봉의 인파는 그 통증을 잊게 해주고 있다.

어제완 전혀 다른 곳에서, 성분 다른 땀을 흘리고 난후의 시장기와 식사의 맛도 다름은 당연함이지만, 오늘 산행을 핑계(중요모임이 있다고)로 빠져나왔음이, 그런 나의 간교함이 목에 걸리기도 했다. 4총사의 푸짐한 먹거리로 포식을 하고나니 오후 1시 반, 우린 금강골로 접어들었다.

반시간쯤 하산하니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 빨간 토혈을 하고 있는 당단풍이 소금강엔 가을이 한창임을 웅변하고 있다. 노랑에서 빨강까지 오색의 물감을 골고루 채색한 이파리들은 천길 벼랑사이로 이어지는 협곡에 원색의 파노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햇살에 하얀 속살 들어낸 돌멩이들은 계곡을 흐르는 좁아진 청수 대신 흰 석류(石流)가 됐다. 낙영폭포가 이름처럼 실 날 같은 그림자물길을 트고 있다. 율곡은 노인봉 일대를 답사한 후에 청학산기(靑鶴山記; 이곳의 10월 축제명 ‘청학제’도 여기서 따옴이다)를 남겼고, 이 골짜기가 금강산을 축소했다 해서 ‘소금강’이라 했다. 그 소금강이란 휘호를 율곡은 영춘대 바위에 새겼다는데, 시간 없어 지나쳤다. 광폭포, 백운대, 만물상을 관조하며 구룡폭포에 이르는 두 시간여의 소금강은 지난번 설악산의 천불동계곡과 흡사했다.


가을의 금강산을 가보질 못하여 비교할 순 없지만, 몇 년 전, 봄에 관광했던 금강산의 풍경보단 화려함이 더했다. 가뭄 탓에 최상의 단풍이 아닐지언정, 계곡을 뒤흔들 우렁찬 오케스트라의 물 흐르는 소리가 아니어도 가을의 아름다운 정취에 흠뻑 빠져들었다. 노인봉에 이르기까진 실종된 가을을 찾아온 게 아닌가 하는 실망감은 금강골에서 ‘엥겔의 법칙’을 절감케 하기위한 술수였던가?

눈감으면 한 폭포소린데 눈뜨면 아홉 폭포라는 시구에서 땃다는 구룡폭포는 가뭄을 이겨내느라 가느다란 소릴 내며 힘겹게 낙수하고 있다. 헐떡거리는 폭포에 산님들은 자기까지 보태어 사진에 담느라 부산을 떨고 있다. 나라고 그냥 갈 순 없지 않는가. 짐짓 벼르긴 구룡폭포 위의 산정에 있다는 아미산성(峨眉山城)을 답사하려 했지만 그 또한 시간의 덫에 포기하여야 함이라. 나는 마의태자(김일;金鎰)를 사랑한다. 보다는 그를 절절이 연민한다.

그가 여기 구룡폭포 위에 쌓은 성이 아미산성이다. 그 산성은 태자 자신의 외적(外敵)을 막기 위함보다는 내적(內敵)을 막기 위한 ‘내공(內功)의 탑(塔)’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태자의 내적은 아버지 경순왕에 대한 경원과 울분 이였으리라. 경순왕은 후백제의 견훤에 의해서 왕위에 올랐다. 신라를 침입한 적장이 그에게 곤룡포를 입혀준 거였다. 그 왕위를 경순왕은 왕건에게 스스로 바치며 신라의 운명까지 덤으로 줬다. 감격한 왕건은 자기의 맏딸, 낙랑공주를 경순왕에게 주어 사위로 삼는다. 졸지에 나라까지 잃고 새파란 낙랑공주를 어머니로 불러야했던 태자는 통한을 달래기 위해 금강산으로 입산(935년)하였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삼(麻)으로 옷을 기어 입으매 후세에 그를 마의태자라 했다.

그가 금강산에서 남하하여 머문 곳이 여기 구룡폭포 위였고, 거기서 그는 돌을 쌓았던 것이다. 어찌 그를 연민하지 않을 수 있으며, 아미산성을 보고 싶지 않겠는가? 그 아쉬움에 머뭇거리다 청심대와 식당바위를 향해 구룡폭포를 떴다. 다시 이어지는 한 시간 여의 금강골 경관은 나를 황홀, 감탄의 농간에 빠져들게 하였다. 강원도의 가을이 몽땅 여기에 모여 들었나 싶었고, 그 절정의 가을을 지키느라 금강송은 도도한 자태로 한껏 더 푸르게 우뚝 서서 미동도 않고 있다. 추색미의 아름다움을 어찌 글로 표현 할 수 있고, 맘에 다 담을 수가 있을까! 기우는 햇살이, 흐르는 시간이 나의 애를 태운다. 또 우리들, 사총사와 난 꼴찌란 불명예를 감수해야 할 참이라.

소금강 주차장에서도 훨씬 내려간 새익산인들의 뒤풀이 장소에 닿은 시간은 오후 5시를 넘겨 서였다.

pm6시, 땅거미가 소금강의 가을을 가두려들고 버스는 그 땅거미를 벗어나기라도 하려는 듯 숨을 몰아 내달린다. 어둠이 버스 속을 스멀거리는데 산님(여) 한 분이 장염에 우거지상이다. 소화제 찾는 소리에 여기저기서 구급약이 동원됐다. 진정됐을까 싶었으나 좀 뜸 들이다가 다시 배앓이는 재발하여, 이번엔 동행한 한의사산님이 계셔 침술치료를 받고 진정이 됐다. 다행이라. 환자 본인의 고통이야 말 할 수가 없겠거니와 위기처방에 나선 집행부나 동료들의 정성에 난 맘이 쏠렸다.

모든 돌발현상이 소리 없이, 산님들의 지극한 배려 속에 진정 돼가고 있음에 난 감격했다. 접때도 이미 감지한 바지만 정상조 부회장의 친절과 포용성이 맘에 닿았다.

기분 좋은가-ㄹ 단풍사냥 이였다.

08. 10. 19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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