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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내려놓는 우리명산 답사기

환상의 섬-소매물도

환상의 섬, 소매물도 스케치


네여 시간을 달려온 나의 시선을 붙잡은 풍경은 전혀 엉뚱한 그림 이였다. 거제 내항 깊숙이 파고든 암청색 바다는 수백만 마리의 백조의 서식지가 되 있었다. 검초록 섬들이 들락이는 리아스식 해안에 군데군데 떼 지어 떠있는 백조 떼의 장관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한 장면과 흡사했다.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경비행기를 타고 케냐의 나쿠루 호수(Lake Nakuru)위를 비행할 때 수백만 마리의 풀라맹고(홍학)가 일제히 비상하며 군무를 이루던 장관 말이다.

홍학이 백조로 나쿠루가 거제만으로 둔갑했을 뿐, 나도 경비행기를 타고 저 위를 날면 백조 떼가 일제히 비상할 것만 같았다. 나쿠루의 홍학부부가 염습지(鹽濕池)에서 꼭지를 잘라낸 원뿔형의 둥지위에 한 개의 알을 낳아 부화시키느라 머물고 있다면, 이곳 백조는 스티로플 부표가 되 어각류(魚殼類)를 양식을 하느라 비상할 수 없다는 태생적 비극이 있긴 하다.

암튼 그 백조(?) 떼의 서식지는 깜짝 볼거리를 만들었고, 반시간을 더 달려 저구선착장에 도착했을 때도 저만치에서 나를 맞고 있었다. 11시10분발 여객선에 오르기 전의 저구마을 파출소 경찰님들의 친절도 나를 기쁘게 했다. 관광안내도를 구할 수 있는 곳을 묻자 ‘민중의 지팡씨’는 나를 파출소 안으로 데리고 가서 선물하였고, 왕조 산을 묻자 또 다른 지팡씨는 밖으로 나와 나를 안내하며 가르쳐주려 하지를 않나! 미안하여 극구 사양하며 뿌리쳤다.

여객선이 방귀를 뀌며 저구포구를 떠날 때 나는 갑판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땅에 바짝 엎드려 주위 어촌사이에 끼여 있는 파출소를 발견하곤 한동안 따뜻한 시선을 멈춰야 했다.

매물도의 첫인상을 체면 구기고 있음은 나만의 시각일까.

검푸른 바다에 면한 초록의 섬에 박힌 산뜻하고 밝은 색조의 건물들 이였다면 그것만으로도 한 폭의 수채화일 텐데 하는 아쉬움을 어쩔 수가 없다. 어촌은 황폐화 되어가고 있었다. 늘어나는 관광객등살에 주눅 들었단 말인가. 어촌 고샅길을 따라 가파른 고갯길을 20여분 오르니 폐 분교가 나일론 띠로 묶여 있다. 힐끔 보다 10여분쯤 경사로를 오르니 둥근 돔을 얹은 하얀 원형의 시멘트집이 마중한다. 허나 그는 인부들에게 속내를 몽땅 뜯기고 있다.

그도 세월의 덫을 헤어나지 못하고 현대화의 물살에 떠내려가는 거였다. 밀수감시소였다. 나는 인부의 양해를 구해 뜯겨져 휑한 초소의 속내를 일별하다, 비좁아 한사람이 간신히 오를 나선형 계단을 통해 옥상 전망대에 이르렀다. 원형의 집 옥상은 조망탑 주위를 빙둘러가며 사위를 조망할 수 있고, 탑엔 망원경과 안테나가 있었는데 그걸 철수하는 중이였다.

홍도와 대·소병대도가 짙푸른 바다위에서 고독하다. 8월의 끝자락은 바다를 검푸르게 하는 여름햇살에 녹아들고 있다. 염분을 품은 해풍도 그리 시원할 수가 없다. 이 초소를 ‘추억의 창고’로 개조하여 당시의 밀수선 내지 간첩선의 현장자료와 사진을 전시하여, 옛날을 되새김질하며 쉬어가는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정상의 초소를 뒤로한 내리막길은 경사가 심했는데, 발아래에 깔린 그림은 익히 눈 익은 등대섬이라. 초록초지 동산은 갈지자 나무계단을 걸치고 있고, 계단 끝엔 하얀 등대가 검푸른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에 자리한 채 밤이면 바다와 하늘 길을 이으려 몸태우고 있겠거니-.


정오가 지났나보다. 소매물과 등대섬이 하나의 뭍이 됐다. 여기저기서 사진에 담느라 시간을 붙잡고 있다. 나도 70여m의 열목대자갈길(모새의 기적)을 걷는다. 이곳 몽돌은 왕 돌들이다. 하루 두 번의 모새의 기적을 연출하느라 왕 돌들을 닳고 닳아 반들반들하다. 등대섬 나무계단을 오른다. 우측에 주황색지붕 세 채가 초지에 들어 누었는데, 옆의 태양열 집열판도 멋을 보탠다.

드디어 등대 옆에 섰다. 잠시 시간을 멈췄다. 푸른 바다, 하늘, 구름 한 조각까지 멈춘 시간에 붙들어 맸다. pm1시가 넘었다. 해풍에 묻혀오는 청량제를 맘껏 들이키고 나무계단을 되짚는다. 초록초지에 오찬파티를 하기로 했다. 백제 여사총사와 그들 중 햇살,평화님의 두 낭군이 같이한 오찬에 몽돌 같은 내가 끼어들어 일곱 명이라. 시원한 해풍이 넘 좋다. 탁 트인 검푸른 바다가 넘넘 좋다. 옅은 구름 뒤로 살짝 숨은 높은 하늘도 해님도 넘넘넘 좋다. 진초록 풀잎의 웰빙 쿠션이 넘넘넘넘 좋다. 좋은 것만 하 많으니 밥 안 먹어도 기분이 충일 한다.

내 언제 이렇게 초지위에서 이토록 여유로운 점심을 먹었던가? 또 언제 이 낭만적인 ‘풀밭위의 점심’을 즐길 텐가! 한 시간을 낭만 속에 파묻혔다. 전혀 때 묻지 않은 자연까지 포식한 등대섬의 점심은 내가 기억상실증에 걸리기 전까진 뇌리에 각인되리라.

등대섬을 뜬다. 몽돌 열림길에서 관조하는 섬 아닌 뾰쪽 바위섬들과 수억 년을 바다와 바람의 손길이 조각한 기상천외한 모습들이 언어도단이다. 섬 아랫도리는 파도와 싸우느라 살점은 몽땅 떨어져나가 누런 뼈대만 앙상하게 해식애(海蝕厓)를 만들었다. 그 벼랑이 천 길이다.

소매물도 옆구리 잔등을 넘어 고래등바위에 오르면 소매물도 최상의 진경을 관망케 한다.

고래등에서 관망하는 바위 총석층과 해식애의 기이함은 소매물이 주는 자연미의 백미인가.

가파른 소매물 잔등을 오른다. 따가운 태양에 빡센 걸음은 땀을 연신 훔쳐내야 했다. 우듬지에 올랐다, 비닐 줄로 묶였던 폐교는 옆구리 한 쪽을 열고 나를 맞고 있다. 잡풀들이 작은 운동장의 주인노릇을 하고 있다. 세월과 인간의 몰인정을 뒤집어 쓴 교사(校舍)는 쓸쓸타 못해 을씨년스럽다.

“미카엘의 집”이란 초라한 간판 뒤로 숨은 가게는 주인의 숨소리마저 안 들린다. 교정을 지키고 있는 동백 숲에 앉았다. 그들도 산호수나무와 어울려 군락을 이루며 해풍과 싸우느라 잔뜩 웅크리고 있다. 가지를 오므리고 두터운 이파리를 겹겹이 쳐 바람의 침입을 막아내고 있는데, 토실한 동백열매가 살짝 비집고 나와 볼에 빨간 연지를 발랐다. 그런 동백이 산호수에겐 마뜩찮다. 그는 아예 빨간 잔 열매를 무더기로 내밀고 꽃처럼 태양을 유혹한다. 그들이 있어

폐교는 심심찮다. 이곳 지자체에서는 폐교를 관광객들과 유익한 추억 만들기 장소로 거듭 태어나게 하는 어젠다를 생각해 봤음 싶었다. 숲 그늘에서 시원한 해풍에 몸뚱이를 내던지곤 낙서를 한다.

-<바다는 할일도 없나보다

하늘과 마주보며 화장하는 일 외엔

하늘은 바다, 바다는 하늘의 거울 인가

하늘구름이 바다에 떴다. 그들이

얘기 한다, 수억 년 저편의 기억을

땅에서 바위를 때어 다도해를 만들던

한 덩이 바위를 쪼겠다. 심심하여

바위가 운다, 밤엔 더

하얀 등을 주었다, 울보 바위에게

하늘이 말했다 “하루에 두 번만”

바다의 웃음에 시간이 삐죽했다

수평선, 시간에 쫓겨 온 바람이

바위눈물을 씻는다

바위얼굴에 시간이 흘렀다

아! 저 천태만상

바다가 하늘, 하늘이 바다를 본다

등대도 본다. 근데 지금 지지리도 할 일이 없나보다>-


pm4시에 여객선에 오른 난 한 시간 후, 저구포구 곶을 돌아 명사해수욕장에서 배낭을 내렸다. 망산 자락이 휘감은 아담한 해수욕장은 끝 여름이 머물고, 여름끄나풀 붙잡고 물속에서 늘어진 몇 사람이 딴 세상사람 같다. 아름드리 해송이 즐비하게 줄서 그들을 지켜보며 태양의 마지막 몸부림을 가리고 있다. 그 밑의 평상이 몇 십m 이어졌고 ‘새익산인’들이 뒤풀이 장을 폈다. 백사오십 명의 새익산인들이 소맥과 오징어 회무침, 수박과 포도 등으로 풍요를 낚는다. 피서인파가 썰물처럼 빠졌던 명사해수욕장엔 때 아닌 새익산인들로 성시를 이뤘다. 짐짓 모두가 만끽함 같았다. 그렇게 꾸려가는 집행부와 회원들의 정성이 엿 보이고, 그런 땜에 새익산 나들이는 만원사례인가.

하나 아쉬움을 떨치진 못했지만 말이다. 생각할수록 슬그머니 부아가 났던 귀로였다.

땡볕 속 대여섯 시간의 섬 답사, 염분 흠뻑 밴 해풍을 뒤집어 쓴 끈적임, 씻을 수 없는 소매물의 물 부족이 주는 찜찜함을 고스란히 안고 귀로에 오른 난 버스의 온풍에 너 댓 시간을 시달려야 했던 고역에 잡쳤다(3호차 승객들 이구동성).

고유가시대란 핑계로 유쾌한 나들이를 짜증나게 함은 손님에 대한 결례이고 배신행위일 것이다. 더구나 냉방을 요구하는 손님의 요구를 묵살하는 기사의 식언배짱은 고유가시대의 ‘경제적인 여행’과는 상관이 없다. 최소한 어떤 변명(?) 한마디 입 서비스라도 했어야 했다.

‘호남해외관광’이란 상호에서 ‘호남’이란 단어만을 빼 달라고 호남인들은 말할 수 있다. 손님께 불친절한 서비스업을 하면서 ‘호남’대표인양 상호에 ‘호남’을 팔아선 안 됨이다.

호남의 이미지를 위해서도, 그 회사를 위해서도 호남관광에 주의를 환기시켜야 함이다.

참으로 뿌듯했던 소매물도 여행이 여행사의 무례로 다소 김빠지게 함이라.

08. 08.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