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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내려놓는 우리명산 답사기

공룡사냥 원정기 (설악산)



★ 공룡사냥 원정기 (설악산) ★


* 중생대의 쥐라기에서 백악기에 걸쳐 살았던 공룡(恐龍) 중에 스테노니코사우루스란 공룡은 인간과 닮았었고, 몸 구조나 지각은 인간보다 더 뛰어났다. 두 발 가진 이 공룡은 접시모양의 눈을 갖고 있어 머리 앞뒤를 볼 수 있으며, 시감각이 바상하여 밤에도 사냥을 했으며, 손·발가락으로 물건를 잡고 던질 수도 있었다. 생태계의 대변혁이 없었다면 스테노니코사우루스는 자동차를 몰고, 빌딩을 짓고, 티브이를 발명하였을뿐더러 우리 인간을 동물원이나 곡마단의 볼거리로 만들어 지배했을지 모른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샤워를 하고 자리에 누우니 밤11시가 넘었다. 왕복 열 시간의 버스여행과 열두시간여의 사냥의 후유증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나의 몸뚱이는 자리에 눕자마자 대친 파처럼 늘어졌다.

눈을 감는다. 감은 눈꺼풀 안에서 동공은 멀뚱멀뚱 오늘 설악에서 목도했던 풍정들로 가득하다. 애초부터 난 불가능할 것 같아서 사냥에 끼려하지 않았다. 공룡 잡겠다는 그 무모성을 조롱이라도 하고 싶었기에 이십 여일 전 그 소식을 접하고도 코 방귀도 끼질 안했었다.

공룡이 뉘네 집 개새끼이든가? 광고는 ‘새 이리떼 소굴’에서 냈었다.

근데, 출정 사일 전, 백제 이리떼 중 사인방(여)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공룡사냥 명단에 등록을 했다는 거다. 꼴에 남자란 꼬리표를 달고 묵살키 뭣해 나도 ‘이리떼 소굴’방문을 노크했다. 열리지를 않는다. 세 군데를 쑤셔 봤다. 두목께서 응답이 왔다. 끼어주겠단다. 해서 어제 밤 열시 반에 출정하는 이리떼 속에 가까스로 동참했던 거다. 참으로 희한한 사냥출정도 다 있다. 남이 장에 가니 뒷짐 지고 따라나서듯 난 그 풍세였다. 사인방과 어찌하다보니 나처럼 꼴찌로 끼어든 박(찬식)사장이 있어 외톨이는 면하겠다는 위안은 갖게 됐다.

오늘 새벽 네 시경에 캄캄 장막을 쓴 설악동 주차장에 내린 이리떼들은 엉거주춤 서서 요기를 하곤 공룡사냥 장도에 올랐다. 90명에 가까운 떼거리였다. 그 이리떼가 깜냥에 두 눈도 모자라 이마에 발광 눈을 하나씩 붙이고 있다. 그들의 행차는 마치 도깨비떼거리와 다름 아니라. 기이한 장면에 우습다 못해 숙연해 지기까지 한다.

누가 공룡 잡아달라고 광고한 바도 없고, 잡아오면 포상 준다는 사람도 없는데, 이렇게 많은 이리떼가 산천초목이 죄다 잠든 이 밤중에 기습전을 펴고 있으니 어안이 벙벙하다.







-<마등령에서 맞은 일출>-

이래도 되는가? 세상의 깊은 잠을 이렇게 깨워1대도 된단 말인가? 그런 건 아랑곳없이 밤의 적막을 깨며 행군하는 무리 속에 나도 입방아를 찧다, 지팡이 짚는 소리도 보태다하며 뒤따르고 있었다.

굳이 이렇게 한 밤중에 소동을 피워야함은 공룡이 1000m 고지에 있고, 새벽에 곤히 잠들기에 여명과 동시에 때려잡아야 하는 땜이란다.

어쨌든 난 애시당초 사냥엔 관심 접은 놈이라 공룡모습이나 가까이서 보고 이리떼들 날뛰는 천방지축을 구경하며 배꼽이나 잡자는 속셈 이였으니, 나의 그 알량한 심보를 두목들이 눈치 챘다면 당장 모가지를 날릴지 모를 판이어서 신경이 곧추서긴 했다.

이리떼들은 소리 소문 없이 비선대를 지나 마등령 쪽으로 향한다. 세 시간쯤 돌·바위 길을 올랐을까. 좁아진 하늘 우측 가장자리 한 곳이 이상해졌다.

그 쪽에서도 원군이 오고 있음인가? 밝은 빛이 솟고 있다. 또 다른 이리떼들이 횃불을 밝히고 오는 모양이다. 걸으면서 계속 밝아지는 그곳을 주시하는데 점점 붉어진다. 십여 분간의 붉음은 점점 엷어지다 구름 뒤편이 밝은 색으로 바뀐다. 원정군은 보이질 않는다.

좁게 하늘을 가두고 있던 검은 산릉들이 서서히 자태를 보여주고, 내 바로 앞에서 추사의 새한도 속의 묵송(墨松)처럼 서있던 나무도 초록 옷을 입고 있다. 구름 뒤의 여명은 좁은 하늘아래 군상들의 모습을 서서히 들춰 내보이고 있다.

구절초가 나의 발끝에서 눈 비비며 인사를 한다. 잠 깨워 미안타. 초목들도 선잠을 깼던지 느릿느릿 초록 옷을 입고 있다. 누군가의 탄성이 이리떼를 공명시키고 나의 귓가까지 다가왔다. 그 탄성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다. 자고 있던 공룡의 모습이 너무 환상적이다.

은빛 각질 비늘은 서광에 오묘한 은백색으로 눈부시다. 그의 등허리에 돋은 뿔들은 칼날 같고, 큰 뿔은 바위산이라. 저길 어떻게 접근하여 잡는단 말인가? 여기서 봐선 어디가 머리고 꼬리인지도 모르겠다.


무리들이 나한봉이니 1275봉이니 범봉이니 하고 모두 아는 채를 하고 있다. 그새 집결지인 마등령에 이르렀다. 세 시간 반이 흘렀다. 여기서부터 공룡사냥에 돌입하는데 각자 알아서 몸조심하고 팀워크도 챙기라고 부두목이 주의를 한다. 이제 볼만하게 됐다.

박 사장은 화상에 더 이상 무리하면 안 된다싶어 좀 전에 돌아섰고, 사총사와 그들의 대장(등반)을 뒤따르기로 했다. 아까부터 우린 줄곧 맨 후미였다. 선두가 잡아놓고 잔칫상 벌리면 살점 하나나 국물 한 모금 얻어먹으면 족하다는 얄팍한 보신주의다. 나의 그런 속셈을 눈치 챘던지 투구꽃이 나타나 머리를 들이밀어 외면하려는데, 마등령을 내려서기 무섭게 그놈들이 떼거지로 나타나 대든다. 떨쳐버리고 공룡몸통 언저리에 다가섰지만 머리통이 보이질 않는다. 무릇 짐승을 잡으려면 머리통을 가격해야 함이데, 덩치가 하 커 어림할 수조차 없다.

수 억년을 살아온 공룡이 급소를 함부로 내 보일 리가 없겠다. 사냥하겠다는 우리가 무모하고 창피할 노릇이라. 그는 가장 낮춘 등허리도 못 오르게 한다. 고작 자기옆구리 밑에 떨어뜨린 각질이나 만지던지 아님 밟고 냄새나 실컷 맡으라는 거다. 그가 옷갈아입으면서 떨어뜨린 각질을 아래에 마사토로 쌓아 거기에 갖가지 수목들을 키워놓고, 전시장을 만들어 허탈한 사냥꾼들에게 눈요기라도 하라고 배려를 하고 있었다.

수백 년을 키워온 졸참나무와 잣나무의 위용하며, 원시림을 조성한 공룡의 선물에 사냥이란 단어도 절로 사그라지게 됨이라. ‘사냥감’은 이제 공룡이 아니라 공룡이 일군 장대한 주위의 풍광이라! 그 풍광에서 느끼는 경외심을 뭉개고 ‘공룡 잡겠다.’는 놈은 천하에 죽일 놈이 되는 거였다. 1275뿔다귀 밑에 이른 이리떼들은 이젠 사냥의 목표점이 완전히 바뀌었으리라.






공룡이 거느리고 있는 장대한 볼거리만으로도 식상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공룡이 자기를 포획하러 온 무리들에게 모든 걸 거저 선물하진 않는 지혜를 도처에 발휘하고 있었다. 깊은 골을 파서 내림과 오름의 고행의 철학을 맛보이고, 자기의 얕은 등허리를 올라오게 하여 사·팔방의 풍광에 취하도록 하며, 그가 내뿜는 시원한 숨결은 우리의 깊은 폐부까지 침투하여 찌꺼기를 몽땅 걸러내고 있었다.

그 상쾌한 맛에 또 다른 깊은 협곡을 오르내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오르고 내림의 반복은 우리의 삶의 축소판이라. 공룡의 등을 타고 자연의 위대함을 감상하며 맑고 시원한 그의 숨결을 호흡해보라! 시쳇말로 “안 가 봤음 말을 하지마시라.”다. 거길 가 본 자들의 입담을 통해 ‘공룡사냥’은 날로 번창하는 거라고 생각됨이다.

무모한 공룡사냥이 결콘 무모치 않다는 사실은 가보지 않고선 말을 하지 말아야 함이다.

공룡사냥에서 우리는 우리일생의 축소된 삶의 궤적을 발견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공룡은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게 훌륭한 사냥선물을 한 셈이다. 그를 더 잡들이 하겠다고, 높이 솟군 등허리를 오르다 추락사한 자의 비보가 동판에 새겨 그의 옆구리에 박혀있음이 나를 슬프게 했다. 공룡과의 다섯 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보낸 우린 그의 꼬리 끝 잔등에서 점심을 들었다. 꼬리 깨라도 너무 편했다.

출정식 전, 나는 ‘꿩 대신 닭이다’라고 생각했던, 그러니까 공룡 못 잡으면 천불동계곡이라도 실컷 보자고 했던 그곳을 향한다. 정오를 훨씬 넘겼다.


무너미고개에서의 내리막길은 여간 가파르지가 않다. 천불동이라고 호락호락 선보여 줄 리가 없다. 깊은 골짜기의 녹음 속에서 자작나무가 유난히도 흰 피부를 힐끗힐끗 내보이며 시선을 즐겁게 한다.

어디선가 물소리가 천상의 자장가처럼 실 날같이 흐른다. 만나기 힘든 금강보라초롱이 길섶 비탈에서아는 채를 한다. 몇 발 더 옮기니 두 송이가 합장을 하고 내게 인사를 하고 있다. 그 후론 소식 끝이라. 참으로 귀한 만남에 그 또한 행복했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가늘다. 가문 탓일 터.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을 안는 소(沼)의 반김 소리만 아니면, 숲의 고요한 숨소리가 더 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당폭포가 그러고 있었다. 한 시간 반을 천불동을 훑고 있지만 눈이 발을 따르진 못함을 어쩌질 못하고 있다. 깊은 골을 밝히는 하얀 바위, 그 위를 느리게 기어가는 은빛 물, 그 물길에 낭떠러지를 만들어 물은 또 곡예를 연출하고, 옥색 소는 그를 안느라 파란 피부에 흰 주름살을 만들고 있다. 뿐이랴! 천애 바위벼랑이 요상한 소나무를 키우고 소에서도 똑 같이 키우고 있으니 깊고 높음을 헤아릴 수가 없다. 파란 하늘이 옥색 소에 내려앉아 소를 비취로 만들고 있다. 그 비취에 햇빛이 비스듬히 꽂아 스펙트럼을 만들어 비취 속을 굴절하며 유영하고 있다. 그 빛의 굴절이 소의 주름살을 타고 소 바닥 하얀 바위얼굴에 빛의 파도를 무지개 마냥 연출하고 있다. 신묘한 진경을 어찌 세치 혀로 말할까 보냐! 햇살님을 불렀다. 사진으로 가두자고···. 허나 그녀는 몇 십 걸음 앞서있고, 거기서 포획하긴 각도가 없다. 다음 장을 기대하며 발길을 땠다. 참으로 천천히 게으른 거북이가 되 풍광을 즐기고 싶은데,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져 주질 않는다.

아스라이 올려다 본 기암에 불꽃이 붙었다. 화염구멍인가? 바위 혈(血)인가? 둘 다 아닐 거다. 가을이 망을 보고 있음이다. 바윈 팥배나무를 심어 빨간 열매로 가을 신호탄을 쏘고 있음이다. 내 바로 옆 습한 곳에 여름철엔 그리도 당당하게 활개 펴고 기름기 잘잘했던 진초록 관중이 풀죽어, 갈색 가을에 이파리 가장자리를 내주고 있다.

양폭 대피소에 닿았다. 손발에서 얼굴, 머리까지 청정수를 끼얹었다. 엄청 시원하다. 당(唐)시인 이 상은이 “계곡 청정수에 발 씻는 짓이 천하에 꼴 볼견이다.”라고 지적을 했건만, 열 시간 여를 혹사시킨 발바닥을 우선 살리고 볼 욕심에 그 생각은 한 참 후였다.

오련폭포가 하얀 뼈대를 들쳐 내고 옹색한 물길로 명색을 유지하고 있다. 귀면암이 나를 압도한다. 모든 기암이 부처의 형상은 아닐지라도 만상으로 다가오는 품위는 나를 순수의 일념으로 안내한다. 처처불상(處處佛像)일도불심(一到佛心)이라던가~!

비선대에 이르렀다. 한 밤중엔 형체도 없던 그가 우리를 맞아 관찰하고 있다. ‘이놈의 이리떼들 뭘 사냥하긴 했냐?’는 성싶다. 그의 품은 넓다. 항상 즐겁게 안아준다. 신선이 비상한 후, 뒤에서 금강굴부처님이 하감하고 있으니 싫어도 인상 쓸 처지가 아닌 것이다.

고려의 문신 안축(謹薺. 安軸, 1287~1348)은 설악산을 답사하고 시 한수를 남겼다. -<金剛秀而不雄, 智異雄而不秀. 雪嶽秀而雄. = 금강산은 수려하나 웅장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웅장하나 수려치 못하지만, 설악산은 수려하고 웅장하다>-라고.


오후 세시 반쯤 신흥사 앞마당에 왔다. 아까, 밤중에 주무시느라 말 없던 거대한 좌불께서 정좌하고 근엄하게 묻는다. “너 사냥 한 게 뭐 있느냐?”라고.

버스는 여기서 2km 밖에 있다고 부두목께서 택시를 빌려 태워준다. 맨 꼴찌에게 주는 배려치곤 넘 부담스럽지만 댕강 챙겼다. 그의 친절과 배려가 가슴 뭉클케 한다. 아까 천불동 계곡에서 잠시 몇 마디 나눴지만 그 다감한 친절성은 온후한 인상만큼이나 맘에 들었다.


뒤풀이마당에서 박 사장을 찾았다. 그의 발등은 붕대사이로 피부가 풍선처럼 부풀어 물집이 컸다. 그는 그런 상태로 나와 헤어져 되돌아오다, 다시 천불동계곡을 거슬러 나와의 조우를 시도했단다. 주위사람들 말마따나 그는 애초에 출발을 안했어야 했다. 엊 밤, 그런 화상을 입고도 나를 데리러 왔었다. 어두워서 망정이지 발등을 붕대로 칭칭 감고 슬리퍼신은 채 사냥길에 올랐음을 누가 보았다면 미쳤다고 혀를 찼을게다. 그의 다재다능을 난 멕가이버라 여김인데, 그의 지혜와 집념은 그가 오늘날 반석에 오르게 하는 동인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난 그를 먼발치에서나마 좋아한다. 하지만 오늘 그는 만용을 부렸다. 기대한 동행을 못하는 섭섭함은 있었더라도 말이다. 다섯 시가 되기 전에 버스는 출발했다. 공룡사냥에 나섰던 이리떼들도 다른 보다 값진 사냥으로 흡족 해 하는 것 같았다. 그 만족을 음미하련지 대게가 눈을 감았다.

08. 09. 21

#.‘이리떼’의 이리는 익산의 옛 이름이어서 ‘새익산 회원’들을 이리떼라, 회장·부회장을 두목이라 칭함은 산행 글을 다소 재밌게 쓰기 위함일 뿐, 다른 의도는 전혀 없음을 혜찰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