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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내려놓는 우리명산 답사기

두륜산에서 몽유에 빠지다

★ 두륜산에서 몽유(夢遊)에 빠지다 ★


해남에서 두륜산을 향한 지방도에 갓 핀 벚꽃 몇 송이들이 손님을 맞느라 화사하게 웃고 있다. 며칠 후면 저놈들이 한꺼번에 만개하여 이 거리를 흰 구름바다로 만들 것이다.

차창으로 달려드는 벚꽃 속에 초로(初老)의 루디가 회한의 얼굴로 다가선다. 그는 그토록 아내가 염원했던 도쿄여행을 하면서 급작스레 사별한 아내를 거기 벚꽃구경(Cherry Blossoms ; Hanami = 영화 명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속에서 찾으며 통한을 독백처럼 실토한다.

“우리에겐 남겨진 시간이 많은 줄로만 알았다.”고.

시간과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항상 기다려주지만은 않는다. 우리들의 사랑과 행복도 벚꽃처럼 만개했다가 순식간에 사라짐과 다름 아닐 것이다. 갑자기 떠나버린 아내(투루디)의 빈자리, 그 상실의 허탈함을 치유키 위해 떠난 ‘벚꽃구경’ 속에서 루디(남편)는 유행 가사처럼 ‘있을 때 잘해’를 통감하며 절규한다. 영화는 죽음이 때론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수반시켜 준다는 루디를 생각하다 옥천면 오소재에서 버스를 탈출했다.

두륜산 들머리는 육산이어서 낙엽관목들이 키만 키운 나지(裸枝)숲을 이뤘다. 그들 속에 광나무, 사스래피나무, 참식나무 등의 상록수가 햇볕을 포식하느라 반질거리고 있다.

나지들 겨드랑이 잎눈은 봄을 촉감하련지 실눈을 뜨려하고, 난쟁이 산죽들도 키만 키워 나의 볼을 간지럼 태우려든다. 반시간을 그들과 보내다보니 여기저기서 얼레지가 가녀린 목을 내밀고 초롱꽃망울을 이고선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다. 따뜻한 햇살이 거들어 그 무거운 꽃잎을 활짝 벌려 뒤로 말아 올리게 해야 할 참이다.

그 놈에 눈 팔다가 난데없는 바위무덤에 빠졌다. 모나고 못생긴 바윈 죄다 여기 모였다. 못난 바위 무덤은 500m는 족히 되리라. 그놈들 위를 걷는데, 탄탄대로인지라. 어떤 놈을 밟아도 흔들리거나 뒤집히지 않는다. 수억 년 전 대둔산을 만들 때 모나고 각진 부분은 때어다 여기다 안치한 모양이라. 대둔산이 왜 대둔산인가? 산정상이 둥그스름 하다서 붙은 이름이 아니던가.

그 바위묘지 속에서도 생강나무는 삐쩍 마른 몸으로 노란 꽃을 피우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바위무덤을 곡예 하듯 아니, 발마사지 실컷 하며 반시간쯤 오르니 가련봉이 둥그렇게 거대한 바위를 다듬어 놓고 사이에 통천(通天)골을 만들었다. 거기 벼랑바위 골을 통과하려 산님들이 장사진을 쳤고, 장사진은 울긋불긋 끝도 없이 꼬리를 이었다. 주말이면 유명산 어디나 이렇게 꽃장사진을 잇을 테니 상전벽해가 탐낼 암로인화원(巖路人花園)이 되가는 바위산이라.

가련봉(703m)에 선다. 정오가 아직 이다. 쪽빛바다는 촉수를 저쪽 깊숙이 뻗어 강진읍 땅까지 파먹고, 그의 아가리 속으로 다 들어가지 않은 섬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느라 내뿜는 입김이 뿌옇게 아지랑이처럼 번져 다도해를 감쌌다. 짐짓 꿈속에서 보는 몽유화(夢遊畵)의 파노라마라. 그 원경을 눈이 시리도록 담는다. 산님들이 펑퍼짐한 가련봉 가장자리에 오찬장을 펴고 있다. 몽유화를 감상하며 즐기는 점심 맛이 어찌 신선놀음이 아닐까보냐.

난 자리를 떴다. 식욕이 당기길 기다려, 앞에 우뚝한 두륜봉에서 취해보기로 했다. 가련봉에서 내려오는 길도 못난 바위무덤이라 신경이 날서야했다. 석공이 가련봉에서 이 바위들을 쪼아내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그대로 놔두었음 가련봉 높이는 몇 미터는 더 높았을 테다. 만일재에 닿았다. 여긴 아예 산님들의 오찬 장소였다.


두륜봉을 향하는데 두루뭉술한 바위 밑을 빙 돌아가니 두륜봉(630m) 구름다리 푯말이 보인다. 시장기가 지펴 몽유도를 완상할 그럴싸한 장소를 찾아 나섰다. 멍석바위에 배낭을 푼다. 밥알 씹는 맛보다 몽유화 즐기는 맛이 더 꼬숩다. 옥색물감 풀어놓은 바다는 수많은 섬들을 잠재운 채 장난감 어선 한척을 띄워 흰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세상의 평온은 깡그리 모아다놓은 바다와 뭍과 하늘이 만든 천국이 저긴가 싶다. 엷은 안무는 더욱 몽환적이게 한다. 나눠먹기 아까워 반시간을 그렇게 혼자 즐겼다.

pm1시를 넘겨구름다리를 밟는다. 두륜봉(638m)은 바위를 쪼아내어 분지를 만들고 나무도 키우며 하늘정원을 만들었다. 거기 둥근 바위사이로 조망하는 다도해는 일품이 아니라 명품이라. 저기 완도가 얼마 후면 바다의 아가리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이 희미하다. 완도사람들에게 대피령을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모든 걸 가슴에 담을 수만 있담 얼마나 좋으련만 좁은 가슴을 어쩌질 못하고 디카에 잡으려는 푼수 짓(아마추어에도 한참을 뒤처진다)을 반복한다. 포식하다 배터지기 전에 하산하기로 했다.

하산 길도 예의 못난 바위무덤이라. 반시간을 내려오니 동백을 앞세운 상록수가 세를 이룬다. 바위너덜도 푹신한 육산에 자리를 내줬다. 반지르한 상록이파리에 앉다 미끄러져 부서진 햇빛이 숲 바닥을 어슬렁거리며 갈팡질팡한다. 초의선사(草衣. 張意恂)가 40년간 안주한 일지암을 찾았다. 차선일미(茶禪一味)사상의 다도를 정립한 초의선사는 “모든 법은 서로 다르지 않으며 평상심도 곧 도(道)다”라고 설파 했는데, 그의 제자 소치(小痴; 許鍊)는

“두륜봉 밑 솔숲이 깊고 대나무 무성한 곳에 초실을 얽었다. --- 위아래는 못을 파고 처마 아랜 대쪽을 연결하여 구름 비친 샘물을 끌어온다. ---- .”라고 스승이 안주하고 있는 일지암을 글로 그렸다.


-<밝은 달 촛불 삼고 또한 벗을 삼아,

흰 구름 자리하고 또한 병풍도 하여.

죽뢰인양 송도인양 시원도 하고,

몸도 마음도 맑고 또 맑아,

흰 구름 밝은 달 손님으로 맞으면,

도인의 앉을 자리가 이보다 나을 손가.>- -초의선사 -


물 흐르는 소리가 가늘다. 겨울이 붙들어 얼음으로 만들었는데 이제 녹아내리는 소린가 싶다. 동백숲이, 푸른 녹음이 짙어지고 물의 속삭임소리가 갈수록 더 커진다. 얼었다 녹은 놈이 바위를 빠져나온 놈과 만나고, 지맥을 뚫고 솟는 놈과 악수를 하면서 지난 겨울나기를 얘기 하느라 신명이 났을 테다. 그놈들은 재잘거리다가 낭떠러지에서 곤두질하며 푸른 소에 흰 파장을 일으키니 겨울잔영이 혼비백산한다. 참으로 한적한 산책이로고···.

전직 우(체)국장, 신(협)전무님 일행이 족욕을 하고 있다. 오늘 ‘아름다운 사람’들 속에서 유일한 구면들이라 반가웠었다. 동행을 한다. 상록수하며 관목들이 묵직한 세월의 때깔을 뒤집어쓰고 폼을 잡는 놈이 부지기수다. 아래 계곡의 물소리도 듣기 좋다.

서산대사(淸虛; 休靜. 1520~1604)가 묘향산 원적암에서 선학과 후학양성에 노후를 보내다 입적 보름 전에 가부좌를 하고 제자 유정[四溟]과 뇌묵당[處英]을 불러 유언을 했다. 자기의 금란가사(金襴袈裟)와 발우(拔羽)를 여기 두륜사에 갖다 두라는 거였다. 까닭을 묻는다.

“만세불훼지지(萬歲不毁之地)요,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라고 스승이 답했다.

3년 후(1607) 제자들은 유품을 챙겨 대둔사에 안치시켰다. 그 후 임란이나 6.25 동란 때도 대둔사는 끄덕 없었다. 만년이 흘러도 망가져 훼손되지 않고, 세 번의 재난에도 끄덕 없는 터였음을 실증하고 있잖은가!

중국 곤륜산 줄기가 동진을 하다 백두산에 머물고 다시 남하하여 머무니 ‘두륜산’이라. 거기 대둔사에 발을 들여 놓았다. 요사채 추녀 끝을 올라타는 매화가 고와 사진에 담고 ‘서산대사유물박물관’에 들었다.

대사의 선시(禪詩) 한 수를 옮긴다.

“주인은 꿈을 나그네에게 말하고,

나그네도 꿈을 주인에게 말한다.

지금 두 꿈을 말하는 나그네 그 또한 꿈속의 사람이구나.”



동백나무와 삼나무가 빽빽 울창한 숲길에 청정수가 흐르며 내 바쁜 걸음을 가볍게 거든다. 약속 된 시간, 오후4시가 다 됐다. 반야교를 뛰고 일주문을 박차며 장춘교에 들었다. 십 분이 지나쳤다. 아름다운 산님들이 뒤풀이 하느라 정연하다. ‘아름다운 산악카페’를 꾸릴 자격이 농타 싶었다. 귀로에서 아름다운 회장은 나를[아낌없이 내려놓는 우리명산 답사기] 아름다운 산님들에게 소개한다. 아름다운 산님들이 아름다운 마음을 모아 아름답게 나누겠단다.

책은 그들 아름다운 산님들을 주인으로 맞는다.

아름다운 카페를 종종 찾아 나도 아름다운 산님을 닮아가야겠다.

★ 09. 0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