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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내려놓는 우리명산 답사기

빛 바랜 결혼기념날에 비슬산이 준 기쁨

★빛 바랜 결혼기념일에 비슬산이 준 기쁨★


슬픔을 잉태한 달이

조금씩 배를 불러올릴 동안

나무는 외로움을 속으로 삼키며

어둠을 이깁니다

어느 날 달이 몸을 풀어

어둠에 젖은 만상을 건져 올릴 때

나무는 비로소 잎새를 나부키며

생을 확인 합니다

그 기다림의 긴긴 시간

나무는 그냥 서있는 게 아니라

무릎 밑에 조용히 풀꽃을 품으며

적막을 밀어냅니다


그런 와중에도 초연할 수 있는 것은

가고 오는 것이 무엇인 줄을

나무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윤혜의 ‘비슬산 꿀밤나무’ >-


“여자바지를 좀 볼려구요.”

“예, 이리 오세요.” 나는 진남색과 베이지색 바지 두 개를 골라서 가게 아주머니께

“아주머닌 어떤 것을 택하겠어요?”라고 물었다.

“이걸로요.”라며 베이지색을 가리키던 아주머니가

“선물하시게요. 사이즌 아세요?”라고 물었다.

“예, 77 사이즈면 됩니다.” 아주머닌 바지 하나를 골라 카운터로 가서 종이가방에 넣으려다말고 “사모님께 선물하시게요. 생일인가 보죠?”라며 나를 빤히 쳐다본다.

“아니요, 내일이 합궁한 날입니다.”

“그러세요. 사모님은 좋겠다. 예쁘게 포장을 해 드릴게요.”

“그리해 주심 고맙지요.” 아주머닌 뒤 쪽방으로 가서 빨간 상자를 꺼내 오시면서 양발 한 족을 들고선 선물하겠다며 같이 포장을 해 줬다.

 

오늘 새벽 6시 반쯤 나는 손수 도시락을 싸서(아낸 죽은 듯이 침실에서 꿈적도 않고 있어 난 처음으로 도시락을 쌌다) 나오면서 어제 밤 샀던 선물을 식탁에 놓고 집을 나섰다.

<여보! 대구 비슬산에 갔다 오리다. 오늘이 우리 결혼 날인데···. 나와 결혼해 줘 고맙

소. 바지는 맘에 들는지 모르겠소.>라고 쓴 쪽지를 선물포장에 붙여 놓은 채였다.

이틀째 냉전(?) 중인 우린 엊밤 선물을 주며 화해를 시도해 보려다 나는 쥐꼬리만한 자존심의 포로가 되 결코 꼬리를 내리지 못하고 도둑고양이처럼 집을 빠져 나왔던 거였다.

am7시,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공단로는 벚꽃이 만개하여 하얀 터널을 이뤘고, 나는 ‘흙산악’에 파묻혀 거길 미끄러지듯 빠져나가고있었다.

부부의 삶이란 게 어찌 해학적으로 생각다보면 소꿉장난일 것도 같다. 오랜 세월을 같이한 정과 의무감이란 씨·날줄이 얽히고 설켜 빛바랜 ‘언약단지’를 놓지 않으려 바둥거리는 모습이 우리 부부인가 싶다.

엷은 안개속의 고속도로 변엔 조팝나무가 하얀 면사포를 쓰고 노란 개나리와 봄을 주·받고 있다. 어디선 연분홍 복숭아꽃이 봄을 훔쳐 웃다가 산 벚꽃무리들에게 릴레이 바통을 넘기고, 산자락 아래 촌락은 아침을 여느라 안개를 밀쳐내고 있다.

열시 반쯤 흙사람들이 유가사입구에서 비슬산을 향해 발걸음을 땐다. 대구분지가 다른 곳에 비해 따뜻한 땜일까. 연초록 이파리는 싱그런 4월의 풋비린 냄새를 골짜기에 흩뿌리고 있다. 허나 거기뿐, 이내 가뭄은 나목들과 굵은 바위너덜 길에 달라붙어 등산객의 발부리에서 뽀얀 먼지로 상승한다. 등산로 주변은 까만 먼지로 분탕질을 했다. 그 분탕질 속에서 비슬산 초목들은 용케도 고사하진 않고 시름 앓고 있음이 역력하였다.

진달래가 새싹 눈마저 뜨질 않고 있음은 천재(天災)보단 인재(人災) 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들에게 가뭄은 견딜만한 거겠지만 진종일을 먼지 일으키는 사람들의 발길엔 속수무책이 아니겠는가. 그들이 언제 폐병에 걸려 죽게 될지는 어림할 수 있잖을까 싶었다. 그런 비슬산이 오후 1시쯤 되니 할 수없다는 듯 정상(1083m)을 내놓는다. 개나리와 난 땅솔 아래에 점심자릴 깔았다.

사람들 손길 닿지 않은 깊숙한 곳의 진달래 몇 그루가 발갛게 꽃망울을 터뜨렸을 뿐 생강나무와 버들강아지(?)가 초라하게 노란 꽃술을 달고 우릴 맞고 있었다.

자연은 천재보다 인재가 더 무섭다. 임금 네 분[비슬(琵瑟)산엔 임금왕자가 네 개가 있다]을 모시고 있음 뭐하나. 성에 안차면 더 많은 임금을 가라치우는 게 지금의 우리들인 것이다. 하늘도 때 아닌 염천마냥 구름 한 점 없다.

무슨 얘기 끝에 개나리부부도 엊그제부터 삐뚤어져 있단다. 부부란 두 개성이, 객체의 융합이려니 알력이 없을 수가 없겠다. 그것들을 융합해가는 끈질긴 담금질의 과정이 부부의 삶일 것이다. 거기엔 인내와 배려가 상존해야함을 알면서도 기꺼이 꺼내 쓰기를 망설이는 우둔함도 버리지 않는 게 우리들이다.

뒤풀이마당에서 변정진 총무의 소개로 송병천 ‘흙산악’회장과 수인사 했다. 변총무의 입에서 자연스레 <아낌없이 내려놓는 우리명산 답사기>책 얘기가 나왔고, 송회장도 익히 알고(부인이 구입했단다) 있었는데 나를 감격케 한 것은 송회장의 파격적(?)인 제안 이였다.

책 20권을 달라는 거였다. 좋은 일에 쓰고 더는 지인들에게 선물하여기분 좋아지고싶다는 거였다. 현직 국어선생이기도한 송회장은 ‘베푸는 즐거움’의 맛과 멋을 통달한 것 같아 난 부러운 눈길로 그를 한참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필요로 한 곳에 내 손길을 줘서 즐겁고, 거기서 발생하는 결과물을 또 다시 지인들과 나눠 가짐으로써 얻게 되는 행복은 최상의 기쁨이리라. 송회장에게서 그걸 느꼈다. 내가 나인 더 많지만 생각은 그가 훨씬 더 선배였다.

귀로 버스 속에서 송회장을 생각하다 문득 성룡(成龍)이 떠올랐다. 성룡의 부모님은 가난하여 호주로 이민을 가야했고, 그곳 대사관 식당에서 풀칠을 하였는데, 7살 된 성룡을 학교에 보낼 수가 없어 부모는 그를 멀리 홍콩에 있는 경극학교에 떠맡겼었다. 거기서 성장한 성룡은 후에 세계적인 배우가 되어 명성만큼 부를 이뤘다.

그런 그가 전 재산 4000억원을 사회에 환원시키겠다고 멋진 ‘부대래 부대거(不帶來 不帶去)’란 기자회견을 했었다. ‘공수래 공수거’를 빗댄 그 말보다 더 우릴 탄복시키고 미쳐버리게 했던 것은 기자들이 “외아들에겐 어떻할 거냐?”고 물었을 때의 그의 답변 이였다.

“아들이 똑똑하면 굳이 내가 돈을 안줘도 스스로 부를 이룰 것이며, 그렇지 못하면 많은 돈을 줘도 낭비하여 없애고 그의 인생까지 망치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라고 한 말 이였다.


1만원으로 불우아동을 돕고, 거기서 생기는 책을 선물하여 지인 좋고 나 좋은 ‘일거삼득’의 기쁨을 송병천 회장은 즐기는 거다. 그것도 20번을 말이다. 즐기려는 욕심도 많다. 그게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이다.

진달래에 취해보려 나선 산행이, 그 불바다에 빠져보고 싶은 비슬산이 송회장으로 해서 맘은 뜨겁게 밝아졌다. 기쁨으로 벌겋게 탔다. 기분이 그리 좋았다.

아침에 찌푸대하게 나선 산행이 헤헤 기쁨으로 충만하게 한 비슬산행 이였다.

09. 04.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