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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내려놓는 우리명산 답사기

새 이리떼들의 접도 원정기

★ 새 이리떼들의 웰빙섬(접도) 원정기 ★


보름 전쯤 일이다. ‘접도예약 하루 만에 동이 났으니 갈려면 지금 예약을 해야 한다’라고 메시지가 떴다. 생전 첨으로 듣는 이름이라 신비한 탓도, 하루 만에 동이 났다는 말에 ‘나도 끼워 넣으라.’고 답을 했었다.

요즘은 주말에 어디 산행을 하고 싶어 수소문하다 예약을 할라치면 “예약 끝”하고 빗장을 잠그기 일쑤여서 낭패를 보곤 하지만, ‘새 이리떼 소굴’은 부아를 지르는 꼴이라. 끼리끼리 전통하곤 빗장 열자마자 후다닥 해치우곤 빗장 걸어잠그는 떳다방에 다름 아닐까 하는 의뭉스런 생각도 해봤었다.

어쨌거나 예약은 해 뒀단 전갈은 받았겠다, 하여 엊밤엔 접도도 좀 알아야 하겠고, 좌석도 확인하려 새 이리떼 소굴 빗장을 열어보니 접도원정 이리떼수가 이백에 가까운 게라. 버스 네 대에 내 좌석은 2호차 11번에 이름을 표기하고 있었기에 어안이 벙벙했다. 더는 접도란 게 진도의 새끼 섬인데 잘 알려지지 않아 섬 답사(트래킹) 코스가 인적이 드문, 해서 웰빙코스라고 이름 붙인 것 왼 별 뾰쪽한 게 없는가 싶은데, 뭘 먹겠다고 떼거리로 몰려들었는지 그것이 또 궁금해 진 거였다. 암튼 네 대의 버스는 겨울이 미적거리는 아침거리를 벗어나려 달리고 있다.


am10시 반, 검푸른 바다가 흰 거품을 가쁘게 토해내며 소용돌일 치는 울돌목을 단숨에 뛰어넘어 18번 도로를 따라 진도의 속내를 반시간 정도 휘젓더니 문제의 접도에 닿았다. ‘접도대교’라고 쓰인 다리는 바다를 막은 뚝 위의 길이지만 본시 ‘최고’나 ‘대’자 쓰기를 좋아하는 우리네의 허세(?)다보니 붙인 이름이란 생각을 해봤다.

곧장 어촌 수품 항에서 버스는 이리떼들을 쏟아냈다. 어촌은 순식간에 울긋불긋한 이리떼들로 성시를 이룬다. 그 느닷없는 소란에 어촌사람들이 문을 열고 나와 구경을 하고 있다.

이리떼가 뭘 구경하거나 사냥하러 온 게 아니라 섬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어주기 위해 온 꼴이 됐다. 그러나 이리떼들은 아랑곳 않고 임도를 따라 사냥감 찾으러 분주히 산으로 오르고 있다. 저 밑에 진도를 섬이게 한 바다가 빙 들러있고, 그는 내가 딛고 있는 접도를 동아줄로 메달아 놓고 있었다. 그 줄만 끊어지면(금 새 헤일에 밀쳐) 난, 이리떼들은 어찌할지가 궁금해져 잠시 혼자 즐거운 상상에 빠져보았다. 접도를 접수하여 ‘이리떼 왕국’을 세울 텐가!?

바람기가 차다. 하드라도 싫지가 않다. 떠나기 싫어 한 자락 질질 끄는 겨울을 접도의 봄이 밀쳐내느라 풀꽃들을 앞세우고 있다.


동백, 광나무, 사스레피나무, 자금우, 모새나무 등의 상록수가 따스한 햇볕 챙기기에 눈부시고, 굼뜬 활엽 나목아래선 춘란이 부끄러워 얼굴 감싸고 하얀 목 내미느라 빠알간 핏대를 세우고 있다. 춘궁엔 먹을 게 귀한 꿩이 춘란 꽃을 따먹는다 해서 ‘꿩밥’이라고도 했던 춘란은 이리떼들의 출현으로 꿩이 모두 도망 가버려 안심했던지, 고마워선지 계속해서 나타나 헤헤 웃으며 인사를 한다. 뿐이랴. 하얗고 어떤 놈은연분홍 재비 꽃인가 싶고, 활짝 핀 산자고가 해맑게 웃고 있다. 노루귀가 해볕에 솜털을 바르르 떨고 있고, 현호색이 화사한 초롱불을 켰다. 접도는 그들을 앞세워 본격적으로 봄 시장을 펼칠 태세다.

이리떼들이 곳곳에서 그 봄을 담느라, 포식하느라 부산을 떤다. 이곳의 초목은 이름표를 잘 달고 있었다. 접도 사람들의 그들 사랑이 손끝에 잡히는 듯하다. 그들은 또 “불법 채취 금지”란 경고팻말을 세우기도 했는데, 이리떼완 상관없는 팻말일 것이다. 이리가 어디 초식동물이던가? 쥐바위, 거북바위를 지나 병풍바위정상 아래서 왼편으로 내리막길에 들어서면 음습한 터널에 들어서게 된다. 상록수가 빼곡하게 들어차 또 하나의 검푸른 하늘을 만들었는데 뭉텅뭉텅 잘린 햇덩이가 유령처럼 어두컴컴한 숲 터널을 배회한다. 기괴하기까지 한 그 가파른내리막 길은 저 아래서태풍으로 바다가 사나워져 울기라도 하면 대낮에도 무섬증에 오싹 할 것 같았다.

그 음침한 길 우측엔 수십 미터 단애가 병풍처럼 휘둘러있고,까맣단애를 넝쿨식물이 거미줄처럼 얽혀서 기어올라 태곳적 분위기까지 맛보게 한다.

웰빙코스, 사람의 때가 묻지 않은 길을 말할 것이다. 으시시한 웰빙코스를 20여분을 즐겼며 한 무리의 뒤꽁무니를 줄곧 따르다 산등성에, 환한 세상길목에 나왔을 때야 내가 따르던 무리가 이리떼가 아닌 ‘빛고을(광주)양반’들임을 알았다. 길 잃은 고아이리가 되니 초조하다. 햇살을 불렀다. 음파로 위치를 알려준다. 병풍바위 위란다. 점심자릴 꾸린단다. pm1시가 다 돼 가고 있었다.


헐떡거리며 가파른 병풍바윌 올랐다. 숨이 차서 보이는 게 없다. 햇살, 평화님 내외, 달봉님, 때 이른 개나리와 진달래가 거기에서 점심을 즐기고 있었다. 끼어들어 배낭을 깠다. 도시락을 열기 바쁘게 복분자와 오디주가 차례로 손에 따라지고 있다. 목구멍에 부었다. 달작씁쓸한 술은 향이 그만이라. 밥도 밀어 넣었다. 얼굴이 화끈해져 온다. 그때야 사방을 조망해 보았다. 제일 높다는 남망산자락이 왼편을 수놓고 우측엔 암청색 바다가 내 발아래 깊숙이 파고들어 해안에 하얀 포말을 끊임없이 토해 흰띠 두르게 하고 있는 거다. 그 포말 토하는 소리가 여간 숨차질 않다. 그도 배고픈가? 바닷물은 되돌아서 달려 검푸른 수평선으로 향한다. 바다 한 가운데에 덩치 상당한 바위가 등허릴 굽히고 누어서 쓸쓸한 바닷물을 달래고 있다. 그 파수꾼 섬 이름은 뭘까?


그 많은 이리떼들은 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꿩 소리도 들리지 않는 섬에서 뭘 사냥하고 있을까? 물은 상극이어선지 아직 바다엔 얼씬도 않고 있다. 배고프면 물고기 사냥이라도 함직한데 말이다. 2시가 될 무렵 부부느티나무를 배알한다.그들이 합궁할 땐 얼마나 좋았을 꼬? 느티나문 넘 좋은 나머지 떨어질 줄을 모르고 있다가 지금 사람들에게 회화화 되어 모델노릇 하느라 신상이 괴롭다. 제발 기혼자는 익히 알고 있으니 그냥 지나치시라. 처녀 총각들이나 합궁의 자세를 배우러 알현해 다오. 느티나문 그렇게 말하고 있는 성싶었다.

선달봉 삼거리에서 고래바위를 훑고 솔섬바위길엔 소사나무와 굴참나무가 너무나 기괴한 옹두라지를 빚어 천연분재의 멋과 미감에 넋을 뺐게 하고 있다. 솔섬바위에서 남해의 창해를 디카에 담아 벼랑길을 하산한다. 한 떼의 이리무리들이 역순으로 올라오고 있다. 거꾸로는 별 의미가 없다는 듯 밝게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솔섬해안의 대도전 촬영지는 수천 평의 넓은 마당바위에 쉼 없이 달려와서 씻어내는 푸른 바닷물과 그들의 속삭임이 바람에 실려 휘둘러 저만치서 막아선 천길단애 안에서 맴돌며 웅장한 교향시를 연주한다. 그 교향시에 귀기울림인가. 아님 달려와 기진맥진한 바닷물이 내뿜는 하얀 물거품을 엿보려 함인가. 달봉님이 물가바위에 바짝 엎드려 한 동안을 죽어있는 듯싶다.

동백계곡에 들어섰다. 동백 아닌 수종은 이곳에서 철저히 도태되고 있었다. 기껏 팔뚝만한 동백나무를 위해 허벅지보다 더 큰 나무도 야차 없이 몇 동강이가 났다. 사람들의 이기심이 빚은 살육의 현장이라. 그보다 더 문제는 앞으로 무진장 늘어날 방문객들의 자연사랑일터. 웰빙코스가 제 명을 하려면 접도 사람들도 고민을 해야 할게다. 오늘의 이리떼들처럼 자꾸 몰려 든다면 웰빙섬의 시름도 깊어만 갈지니 지금부터 머릴 짜야 할 것 같았다.

말똥바위에서 부두목(정상조 부회장)이 우릴 맞는다. 이 아래 말똥바위에서 조망하는 경치가 좋으니 후딱 즐기고 오란다. 배낭을 벗고 말이다. 그의 친절을 한두 번 접한 게 아니어서, 고운 얼굴과 친절이 늘 함께하니 그만이다는 생각을 하게되는 거다. 어째서 말똥이고 갑판바윈지 새겨 볼 겨를 없이 디카에 담았다. 항상 꼴찌인 내가 부두목에게 미안했고, 시간도 집결지까지 반시간도 남지를 아니해서였다. 말똥바위산은 겨우내 살에는 한파에 시달렸을 텐데도 틈새 낙엽 속에서 야생화의 여린 모가지를 밀어 오리느라 봄은 보채고 있었다.

그 여린 모가지에 햇살은 고즈넉이 내려앉아 생명을 샤워시키고 있다. 곱고 깨끗하게 말이다. 자연의 위대한 섭리에 이리떼들도 샤워를 했을 게다. 중간에 마주쳤던 이리떼들, 거꾸로 갔던 옆구리로 돌았던 그 많은 떼거리가 무사히 정시에 집결지에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사냥이 흡족했다는 증좌라. 뭔가 미흡했다면 잡음이 들렸을 테다.

새 이리떼들의 자기관리가 어떤지를 가늠케 함이라. 겨우내 찌들었던 영혼을 씻고 싱그런 봄기운을 맘껏 사냥 포식했으리라. 그들 모두의 표정에 밝게 나타나고 있었다.

웨빙접도! 네 시간 반 남짓의 웰빙 트래킹은 참으로 좋았다. 귀로, 부두목은 책 <남김없이 내려놓는 우리명산 답사기>홍보의 시간을 마련했다. 기분 좋았다.

09. 0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