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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죽음의 바다 - 고래사냥 (영남알프스 가지산)

죽음의 바다 -고래사냥 (영남알프스)


오전11시반에야 울주군 상북면 석남터널 앞에서 가지산자락을 붙잡고 산행에 들 수 있었다.

금년 들어 가장 춥다는 기성청의 볼멘소리를 산비탈의 지표를 힘껏 치켜들고 고개를 내밀고 있는 서릿발[氷柱]이 증표를 하고 있다. 바람결이 매섭다.



그의 울음소리는 애리하고 가날 퍼서 산행에 든 나를 겁탈하듯 후벼든다. 나무들은 어리나 크나 죄다 알몸이다. 말라비틀어진 갈색이파리 하나가 황홀했던 추억의 기억처럼 매달려있고 바람은 그 끈질긴 기억의 고래심줄을 끊어놓으려는 듯세차다. 허나 그 매서운 바람을 마사지하듯 나목들은 반들거리며 숨죽여 즐기고 있다. 아니 죽은 척 하는 걸까, 죽은 걸까?

그 나무들의 처절한 몸부림 아닌 엄숙한 의식사이를 뚫고 가지산을 오른다. 석남·밀양고개를 넘어 산정 코밑 바위틈에 몸을 숨길쯤엔 정오를 넘어 1시가 돼가고 있었다.

나무 한그루도 범접을 허용 않는 넓은 바위산정은 오직 바람만이 살판났다는 듯 호곡소리를 내며 나를 맞는 거였다.

가지산자락을 파고든 들판과 마을은 멀리 지평을 넓혀가며 울산시가지를 장난감처럼 조감시킨다. 쾌청한 햇살은 영남알프스를 눈요기하기에 알맞아 느긋하게 식도락에 빠졌다가 배낭을 챙기려는 데 웬 산님 한분이 불쑥 나타나 장승처럼 앞에 서있다. 만면에 미소를 띤 그는 화두 던지듯 말한다.

“아까 올라가면서 봤지요,” 정상을 한바퀴 돌고 오면 기막힌 바람막이의 이 바위틈새를 양수 할 수 있으려니 싶었던지 그는 엉거주춤 ‘이제 자리를 비워주시지요’라고 뒷말을 이으려는 참 이였다.

M과나는 얼른 배낭을 챙겨 일어서며 “좀 비좁긴 한데 세 분이 괜찮을까요?” 라고 그의 뒤에 서 있는 두 분을 보고 응수하며 땡전 한 푼 안받고 명당(?)을 넘겼다. 가지산정상(1240m)에 섰다.

영남알프스 9봉을, 그들을 휩쓴 바람에 맞서며 가을하늘 같은 깊은 푸름과 채 쓸어 담지를 못한 구름 한 떼를 눈물범벅이 돼 감상하는 거였다. 눈물을 훔치고 선글라스를 꺼내 바람을 차단하니 산해(山海)는 더 검푸르다.

공룡능선을 타고 온 해일은 언재부턴가 도도한 바다를 만들었고, 거기에 고래를 키우며 지금은 “휘이잉~ 휘~ㅇ”하는 울음소리까지 들려주고 있다.


영남알프스 가지산에 올라보셨는지요

태풍을 타고 밀려오는 파도보다 더 큰

그렇다고 험하거나 거만하지 않는 물결이

웅장하게 출렁이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신지요.


그 파도위에 거대한 고래들이 누워있고

승천의 꿈을 키우면서

성자처럼 잠자는 모습을 보셨는지요.


영남알프스 가지산에 오르면

나는 온종일 바다가 되어

고래의 숨소리를 듣고

고래의 등을 타고 넘으며

나도 고래가 되는 꿈을 꾼답니다. -<가지산 ; 임윤식>-


시인이 아니더라도 고래는 삭풍이 몰고 온 해일 속에서도 여느 때처럼 우릴 등에 태우며 꿈을 꾸게 한다. 그 고래등을 타고 쌀바위를 향한다. 바윗길은 고래의 숨결이 응결 됐던지 빙벽을 이뤘다.

고래등에서 내려 다시 죽음의 바다에 들어선다. 상록수 하나 없는 여긴 죽은(?)관목뿐이라. 참으로 심난한 떡갈나무 하나가 황홀했던 미련을 떨칠 수가 없다는 듯 오그리다 못해 쪼그라든 갈색이파리들을 부적인양 나붓대고 있다. 허나 그도 몸통의 물기는 죄다 빼고서 죽음에 들어섰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후략-“ 고 도종환시인은 <단풍드는 날>을 훔쳐봤다.

나무는 아름답게 불타고 죽음에 이렀다가 해동과 함께 다시 살아나는 일생의 반복을 한 치의 틈새도 없이 수백·천 번을 함이다. 죽어야 살아날 수가 있기에 몸의 수분을 95%이상 빼고 가사(假死)상태에 든다.

버릴 때와 버릴 줄을 알고 흔쾌히 다 내려놓는 거다.

그렇게해서 욕심을 비운 그들은 아름답게 수백·천년을 살아가게 되는 걸까. 사소한 욕심 하나도 버릴 줄을 모르는 나는 추하고 그래 이내 욕망의 병에 찌들어 결국엔 한 가지도 못가진 채 쭈글뱅이가 되어죽게 되는 걸 거다.

어느 수도자가 정진을 하는데 바위에서 매일 하루분의 쌀이 나오는지라, 감질 난 그는 쌀구멍을 후벼 많은 쌀이 쏟아지길 원했으나 커진 구멍에선 쌀 대신 물이 나왔다는 쌀바위 전설은 우리의 현실일 테다.

그 쌀바윌 지나 갈림길에서 M과 서울(구면이지만 통성명을 안했는데 서울에서 근래에 이사 왔다고 들었다)이 동행이 되어 귀바위와 운문산 쪽으로 우회하기로 했다. 임도를 뒤덮기라도 할 시목(屍木)의 바다를 항해한다. 장엄하게 죽어있는 거목들이 멋져 부린다.

그들중에 몇은제 수명을 다 했거나 어쩌다 병들어 주검이 돼서도 아름답다.

하나의 티끌까지도 자연의 미생물과 곤충에 영양소가 된다. 허나 우린 추한 시신을 후손들을 위한 보시도 아깝다는 듯 화장이란 공해까지 야기 시켜가며 자연을 훼손하는 짓을 서슴지 않는다.

한 시간여를 죽음의 바닷길을 헤치니 상운산(1114m)이 발밑에 깔리고 귀바위가 배웅을 나오며 운문재가 바짝 엎드려 기다리고 있다.

고래들의 숨소리는 더 거칠어지고 숨소릴 실어오는 삭풍의 포효는 비명에 가깝다. 죽어있는 나무들의 웅장한 자태와 의젓함은 나의 눈길을 붙잡는다.

저들은 다시 명춘(明春)엔 멋진 변신을 하며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감탄케 할 것이다.

세시반이 지났는데 석남사를 향하는 하산 길은 울창한 소나무밀림지대에 임도와 샛길이 수없이 얽힌 미로였다.

골자기까지 깊어 어둠이 묻어난데 산님들도 안보여 불안감이 슬며시 지핀다.

이정표 하나 없는 미로 속에서 약속한 4시까지 석남사매표소에 닿을까 걱정이 돼 울울빽빽한 소나무들의 기발 난 자태를 감상할 여유가 없이 길 찾기에 신경을 쏟아야 했다.

좌측으로 향해 잰걸음을 하며 골자기를 벗어나기만 하면 되겠다는 일념에 M과 나는 샛길만 택했었는데, 적중했던지 석남사가 안온한 요람터에 낮게 자리함을 목도할 수 있어 조인 가슴 쓸어내렸다.

4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땅거미 내리는 비구니도장을 뒤로하고 확 트인 사찰입로를 휘젓는 쾌락이란 산행을 무사히 마친 산님들만이 맛보는 행복감일 테다.

죽음의 바다는 짙어오는 어둠만큼 적막에 휩싸이고 고래들도 숨을 고르는지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행복한 산행에 M이 동행해 줘서 뿌듯했다.

09. 12. 06

^&^ 에필로그

새벽, 김회장과 사무장의 반김 속에 버스에 오른 나는 최기찬 전 회장의 반색에 멈칫했다.

투병중인 그가 오늘도 새벽을 깨우며 산우들을 영접할 거란 생각은 꿈도꾸지 않했으니 말이다. 그의 오늘 같은 영접을 나는 이미 세번째 보는성 싶다.

그가 만들어 꾸려온 '만수산악회'가 영원하길, 산우님들의 건강하고 밝은 미소를 이렇게라도 해서 마주치고 싶어, 산우님들이 오늘도 무사히 즐산하길 기원하며 그 염원에 자기자신도 동행하고픈 간절함일 테다.

난 그와 간단한 수인사만을 나눴었기에 그와 좀 더 일찍히 같이 산행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그가 진정 멋진 산꾼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그의 쾌유를, 그리고 동행할 날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