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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미안은 무슨 미안? (남해 대방산)

★ 누가 미안해야 하는 데? (남해 대방산기행) ★


애초에 남해는 하동포구에서 쪽빛바다에 첨벙 뛰어들었다가 놀래서 삼천포로 내빼려다보니 드넓은 내해 같은 강진만을 만들어 놨다. 졸지에 갇힌 강진만의 바닷물은 끊임없이 파도를 일으켜 뭍을 헐다보니 남해섬이 됐을 테고 심술궂은 사람들은 거기에 다리를 놔 다시 육지로 이었다. 우린 그 다리 중에 삼천포·창선대교를 건너 창선면 단항마을에 내렸다.


남해의 꼬리섬을 하늘에서 훑어보자는 속셈으로 대방산을 오르기 위함 이였다. 오전 10시 반이 막 지나고 있다. 섬 산이란 대게가 그렇듯 요놈도 가팔랐다. 그를 기어오르며 헐떡거리는 건 나뿐이 아닌 강진만에서 달려온 바람도 매 한가지였다. 그 놈은 얼마나 힘이 부쳤던지 우~웅하며 울면서 나무에 매달리려 헐떡대고, 나무는 그럴 땐 요동을 치며 떨쳐내느라 쇳소리를 내고 있었다.

남해섬은 곱게 내려앉은 가을이 절정인가 싶다. 한참 울긋불긋한 색동옷을 차려입느라 정신없는 데 주책없는 바람이 달라 붙자 몸부림 친 나무는 찢긴 옷 나부랭이를 수북이 떨쳐 놓았다. 찢긴 옷깃이 낙엽처럼 날리다 발아래 떨어진다. 옷 색깔은 노랑과 갈색이 주조를 이뤘다. 거기에 듬성듬성 수놓인 초록이 새치름하고, 그 황홀한 가을을 안고 있는 쪽빛 바다는 계절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데, 빨간 아치형 다리가 장난감처럼 얹혀 있다.

검푸른 바다는 흰 거품을 몰고 와 물렁한 뭍 속내를 파고들어 피오르드를 만들기를 하염없이 하는 통에 리아스식 해안이 미로인양 어지럽다.

전망바위에서 조망하는 남해일대의 풍광은 오금을 저리게 한다. 반시간을 오르고 있다.

유독활딱 깨벗고 잿빛으로 멍든 드릎나무는 살갗이라도 지키기 위해서 가시를 성글게 돋고 있을까? 달려들던 바람이 가시에 찔렸던지 엥~하며 달아난다. 그놈들이 길목에서 줄곧 열병식을 하고 있다. 명춘(明春)엔 고추장만 챙겨 오면 알싸한 드릎나물향에 취하기란 확실하다고 장담하는 바이니 산님들 기억해 두시라.


등산로는 사람들의 때가 덜 타서 다소 거칠지만 육산의 쿠션은 낙엽 밟는 촉감까지 고스란히 느끼게 해 준다. 이곳의 붉나무는 난쟁이 뿐인데 빨간 옷은 어디서 훔쳤는지 온통 핏빛이고, 팥나무는 이파리 하나도 남기지 않고 잔가지에 빨간 열매만 무수히 매달고 한들거린다.

연태산을 지나 금오성지를 향한다. 강진만의 갇힌 물은 바다로 나가기 위해 거친 숨을 내쉬느라 하얀 거품을 일으켜선 리아스식 해안 깊숙한 곳에서 산화하고 있다. 섬 산행의 맛이란 망망바다가 뭍과 싸움질 하다 만든 올망졸망한 섬들과 협곡이 낳은 부드러운 해안선의 풍광일 것 같다. 해안선을 어루만지는 파도에 눈 팔다가 촉촉이 내려앉은 가을의 정취를 온몸으로 느끼는 섬 산행의 멋과 맛이란 시쳇말로 ‘안 해 봤음 말을 마시라’ 다.


오늘처럼 바람은 휘파람 소릴 내며 옷깃을 여미게 하고, 하늘엔 회색구름이 무리지어 달리며, 간혹 햇살은 회색구름층 사이를 삐져나와 쪽빛 바다에 은구슬을 굴리는 바다를 안고 낙엽의 섭리에 빠져 걷다보면 어제의 나를 잊게 한다. 가을 속의 망아(忘我)가 된다.

망아 아닌 미아가 되어 길까지 잃고 삼천포로 빠진들 지난번(덕유산에서)처럼 애탈 것도 없다. 어차피 삼천포로 빠지게 돼있다. 그래선지 그날의 동행자도 보무가 당당하다. 그녀의 동료들-왕고집 최·강·백 세 분과 개나리, 평화님이 오늘 내내 동행이 됐다.

정오에 금오산성을 넘고 한 시간 남짓 깊은 계곡을 내리다 올라서니 속금산이 발아래 깔린다. 진한 가을 옷 걸치고 서있는 관목아래서 그가 펼쳐준 낙엽보료위에 점심자릴 폈다. 평화님, 개나리는 우유와 빵을 먹는 나에게 배추쌈을 건네주는데 다시 세 왕고집이 합세를 했다.

난 자연스레 얻어먹다 포만감에 젖었다. 먹거리 중에서도 최고집이 친정에서 가져왔다는 곶감은 맛과 크기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했다. 빵으로 때울 점심이 즐거운 점심자리가 됐다. 1시 반을 지나 자릴 털었다. 포식한 난 그녀들의 스틱보이(심심풀이, 지팡이처럼 쓸 수 있는 사내)라도 돼 줘야 할 것 같아 오후엔 동행을 하기로 했다. 나중에 저녁노을이 나타나 동행꾼이 되기 전까진 말이다.


편백 솔밭의 재실에 닿았을 땐 2시 반, 국사봉은 3시, 대방산(468.2m)은 4시가 돼 올라섰다. 코앞에 금산이 있고 그의 서쪽엔 노도란 섬이 있는데 서포선생 땜에 난 여기 남해를 생각하곤 했었다. 노도는 서포(김만중; 1637~1692)선생의 한이 서려있는 곳이 아니던가.

선생은 올곧아 직언하기를 서슴치 않았는데, 그 대쪽 성품 탓에 희빈 장씨와 맞닥뜨리게 되어 두 번이나 유배를 가야했다. 한 번은 희빈 장씨 일가의 허세에 일갈을 하다가, 두 번째는 희빈 장씨 땜에 폐비된 윤씨를 옹호하다가 노도로 유배돼 3년 남짓 독거하다 56세에 운명하였다. 선생의 유배생활은 철저히 혼자이기를 원했고, 그런 고독한 영혼을 우리의 국문학사에 우뚝한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로 남겼던 것이다. ‘사씨남정기’는 폐비윤씨의 복원을 이루는 내용으로 ‘구운몽’과 더불어 최초의 국문소설 이였다.

그 두 소설만을 놓고 본다면 요부 장희빈은 선생을 유배시켜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을 탄생시키게 했으니 선생과 우리들에게 은인이 됨이라. 무릇 위인들의 걸작은 처절한 고혼이 빚은 결과물이기 십상인지 다산, 고산선생이 그리했고, 사마천이 궁형을 받고 ‘사기’를 남기지 안했던가. 암튼 난 선생으로 해서 남해를 좀은 속 깊게 알게 됐었다. 선생은 강화도에서 육지로 피난오던 배 속에서 유복자(아버지 김익겸은 청의 강화도 함락으로 자결했다)로 태어났고 다시 배를 타고 노도에 가서 운명하니, 살기위해 배를 타고 다시 배를타고 죽으러간 셈이다.


하산길에 들었다. 새로 축성한 봉수대를 휘돌아보고 운대암을 향하는 발길엔 낙엽 밟는 소리가 청량했다.

그들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치열한 삶은 우릴 가슴 뭉클케 한다. 진초록 이파리는 여름 내내 땡볕과 씨름하며 영양소를 만들어 줄기를 통해 나무를 성장시키고, 가을엔 곱게 치장을 하고 씨름했던 태양에 감사기도하다 낙엽이 된다.

낙엽은 추운 겨울엔 두터운 이부자리가 돼 뿌리를 보호하고, 해동과 더불어 자신을 썩혀 뿌리에게 또 다른 양분으로 공급되는 일생을 거슬리거나 지체한 적이 없다. 서포선생처럼 위인은 못 될망정 나무이파리는 닮을 수도 있잖을까. 죽어서 누군가의 삶에 비료가 되는 일 말이다.


운대암엔 4시 반에 닿았다. 아까부터 저녁노을이 우리가 맨 후미라고 서두르며 앞장을 섰다.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는 거다. 왕고집 세 분과 평화, 개나리가 ‘미안해 어쩐디야!’ 라고 걱정이 태산이 됐다. 난 줄곧 ‘괜찮다’ ‘늦은 게 없다’ ‘일찍 하산한 분들이 기다리는 건 당연하다’라고 안심시키며 자못 그럴싸한 합리론을 펴며 목에 힘을 잔뜩 주곤 했다.

근데 버스가 대기할 만한 마을이 몇 개를 지나쳐도 버스코빼기도 안 보인다. 빨리 오라고 채근하지만 말고 버스가 이쪽으로 오면 반시간은 단축되고 우리도 좀 덜 지칠게 아닌가 하고 모두가 입을 모아 쫑알댔다. 더구나 네 분은 손님(?)인 셈이다. 그 기대는 기대일 뿐, 5;20분에 버스에 올랐다.


산악횔 따라 산행을 하다보면 누가 미안에 해야 하는지 헷갈리는 때가 있다. 산행시작 전 집행부는 산행지도와 산행시간이 상세히 기록된 안내서를 주면서 하산시간을 고지한다. 그 산행소요시간에 맞춰 완료하기란 버거울 때가 많다. 나는 풍광을 온몸으로 느끼며 머리통에 대충 새겨 놓으려다말고 때론 디카에 담다보면 보행시간이 더디게 마련이다.

그래도 하산시간에 맞추려고 안간힘을 쏟지만 후미이기 일쑤다. 약속시간을 좀 지나쳤다 해서 크게 미안해 할 일은 아닌 것이다. 산악경주대회도 아닌데 일찍 하산한 분들이 얼마나 썰렁하고 허탈할 것 같은 안쓰럼이 들곤 했었다.

약속된 시간까진 궂이 '기다였다'나 '미안하다'는 말이 싱거운 인삿말의 의미를 벗어나서,후미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주저 없이 정색하며 뱉는 소릴 들으면 무슨 소릴 하는지 이해하기 난처하다.

약속된 시간이 훨씬 지나쳤을 때야 비로써 그 ‘기다렸다’는 말이 또는 ‘미안하다’는 말이 제자리에 서게 됨이 아닌가.



버스는 곧 삼천포로 내 달리다가 어느 횟집 앞에 서고, 우린 2층으로 올라갔다. 넓은 방안엔 잔치 집처럼 깔끔하고 산뜻하게 상차림이 돼 있었다. 생각했던 바완 영 딴판이라. 아침에 총무가 7천원을 강탈(?)하듯 추징을 할 때도 입 닫고 소 눈깔 굴리듯 하고만 있었는데 꿍꿍이속셈이 있었던 거다.

갈뫼장(송회장)이 바닷가엘 갔으니 회파티를 하자고 네댓 장을 쏘았는데 좀 모자랄 것 같아 강탈을 했단다. 1인 1,5000원짜리 상에 산님들 수가 50명쯤 되니 강탈하지 않고는 방법이 묘연 했을 터다. 송회장이 쏠만한 사연도 있었다지만 동부인하고 와서 쏘았으니, 더구나 모두가 덕분에 포식하고 혀 꼬부라졌으니 그의 기분도 짱 이겠다 싶었다.


참으로 기분 좋은 하루였다. 집나간 건달마냥 들랑날랑 대는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갈뫼에겐 고맙고 미안했다. 이건 오롯이 ‘미안하다’ 이다. 고맙고 미안한 건 또 있다. 익산님의 맘 씀이다.

낫살 들고 건망증이 심해지는지 두 눈깔 때어놓고도 산행을 하며 낌새도 모른 나였다. 익산님이 안경을 들고 와서 나에게 건네주기 전까지 말이다. 누가 안경을 습득했는데 보아하니 내거여서 찾아오느라 뒤쳐졌단다. 익산님께 신세 진 건 비단 이번만은 아니다. 그렇게 챙기는 분들이 있으니 갈묄 오면 긴장이 풀려 삼천포로 빠지기도 하는가 싶다. 갈뫼사람들 고맙수다.

09.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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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뻥이 아니외다.

우리 뒤에도 몇 분이 계신다. 거기엔 아이더와 나비아타의 커플들도 있다. 그 소리에 꼴찌가 아니라고 쾌재를 부른 우린 느긋하니 즐긴 건 다 즐기는 거였다. 대방산정에서 저녁노을이 '그 정보는 오보다'라고 수정하기 전까진 말이외다.

아이더-갈뫼, 나비아타-익산 커플님들!

담부턴 사천포로 빠질렴 애초에 내게 예고를 해 주시더라고요. 그리 짜잔해 갖고서 무신 산행이랍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