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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치매 - 그 엉큼한 촉수

치매 - 그 엉큼한 촉수

 

 

서울 간 아내가 애들과 저녁식사를 하다가 전화를 걸어왔다. ‘냉이국을 끓였더니 좋다고 난리가 났다’고 하면서 사뭇 격앙된 분위기를 전할 셈으로 애들에게 릴레이통화를 시도하는 거였다. ‘향이 죽여준다’느니 ‘된장국 맛이 끝내준다’느니 ‘또 캘 수가 있냐?’느니 ‘아빤 언제 올래?’라고 제마다 한마디씩에다 손주`녀들까지 앙알대니 시끌벅적 난장판 된 정황이 빤히 보이는 거였다. 다시 아낸 전화기를 낚아채선 엄한(?) 분부를 하명한다.

“당신 언제 올래요? 올 때 냉이 좀 캐갖고 와요."라고 자기들 들뜬 기분에 취해서 내 심통 따윈 생각도 않고 통화를 끊는 거였다. 아내가 서울 가기 전날 미륵산등산 후 우린 냉이밭(미륵산 동네앞에 있는 스무 평 남짓한 텃밭인데 누구도 냉일 채취하지 않고 우리내외가 매년 이맘때 캐먹곤 해 우리네 밭이라 했다)에서 캐와 저녁에 된장국 끓여 먹으면서 서울애들이 먹다가 어떤 사단이 날지를 예감했던 바라 피식 웃고 있었는데 다시 또 벨소리가 났다. 아내였다.

“주말에 비 온다니 낼이라도 가서 캐갖고, 흙먼지만 잘 털고, 물기 묻히지 말고 비닐봉지에 넣어 냉장고서랍에 넣어두었다 가져오라”고 구체적인 지시를 하는 거였다. 담날, 난 미륵산등정 후 제법 많은 냉이를 캐서 아내의 지시대로 작업을 하느라 오후 한나절을 꼬박 벌 슨 셈이다. 꼬부리고 앉아 그걸 다듬다보니 허리가 뻑적지근했지만 식구들 모두가 다시 냠냠쩜쩜대며 난리칠 걸 생각하니 옹골지기까지 했었다.

냉이면 다 냉인가? 비닐움막 속에서 자란 냉이와 난전에서 긴 겨울을 난 냉이와는 비교할 가치조차 없음이라.우리 식구들은 누구보다도 그 향과 맛, 영양을 잘 알고 있음이다. 아니다 다를까 주말엔 이틀간 비가 내렸다. 월욜에 일보고 화욜쯤 상경할참인데 그날 냉이 채취하지 않았음 아내한테 된통 맞았을 테고 애들한테도 면목이 발끝에 숨어야 했을 것이다. 근데 일욜에 도축장에 다니는 지인을 우연히 만나 앙팡질 먹거리 건 하나 더 생겼다.

내가 서울 가면서 삼겹살도 사갖고 가야한다니까 낼 출근해서 알아보겠다는 거였고, 담날 점심시간에 구입할 수 있으니 퇴근 때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지인은 무려 삼겹살을 8kg이나(도매하는 곳이라 뭉치로만 판단다) 갖고 왔는데 놀래자빠진 건 값이 팔만원이면 된다는 거였다. 그걸 냉동고에 넣자마자 난 기고만장하여 아내에게 전화에 대고 이실직고 했었다.국내산 삼겹살이 1kg에 1만원이라니! 그것도 가장 좋은 부위로-. 나의 흥분은 고스란히 아내한케 전해지고 그 뉴스는 애들한테로, 다시 빙 돌아 내게 “웬 일이야!?”로 되돌아 왔었다.

오늘(화욜`20일)아침에 서울행 열차를 탔다. 어제 밤 날 흥분시켰던 삼겹살(네 덩이로 나눠 진공포장 했었다)을 가방에 챙겨서 말이다. 가방이 꾀 무거웠다. 허나 모두 모여 삼겹살파티를 신나게 할 생각을 하면 까짓 짐도 아닌 것이다. 늘 그렇지만 오늘신문 한 부를 독파하다보면 종착역에 닿곤 한다. 브라운스톤`서울 둘째 집에 들어서니 아낸 점심을 차려놨다. 화제는 단연 삼겹살덩이였고 지인이 누구냐?였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아낸 냉이무침 나물을 안 내놨다고 호들갑을 떨며 미안 해 하자 난 벌떡 일어서며 실성한 놈처럼 외쳤다. “여보! 어쩐 디야?”

“웨~에?”라며 놀랜 토끼눈의 아내를 보며 넉 빠진 난 그만 우거지상이 되 한탄성을 질렀다. “냉일 안 가져 왔어”      “뭐~ 냉일!” 아낸 심각한 상황을 간파한 듯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오? 내가 챙기지 않으면 뭘 하는 게 있어야지.”                                                                                                                         “당신도 까마득하구먼. 생각났으면 어제 밤이나 오늘 아침전화에 냉이얘길 했을 텐데―.”                              “핑계는-.” 아낸 어이없다는 듯 말문을 닫았다. 어쩌면 그렇게도 까마득하게 잊을 수가 있을까? 내 스스로가 믿어지질 안했다.

‘어제 밤부터 삼겹살로 흥분해서 그랬다’고 억지춘향노릇을 해보려 했지만 아낸 시무룩했다. 보다는 앞으로 열흘 후에나 갈 텐데 냉장고에서 냉이 썩지 않을까가 걱정되는 아내였다. 오늘 냉이뿐만이 아니었다. 요즘은 건망증이 심상찮다. 좀 전까지 생각했던 것도 말로 튀어나오질 않을 때가 종종이였다. 특히 고유명사가 제일 떠오르지가 안 해 낭패인 적이 많다. 접땐 아내친구로부터 전화 왔었는데 서울 갔다고 하자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해 번호가 생각나질 안 해 얼마나 당황했었던지 창피하기도 했다.

이 부지불식간에 나타나는 건망증이 치매의 전초인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중의 하나가 치매일 것이다. 내가 할 일을, 한 일을 생각도 못하고 생각할 수도 없는 기억과 생각의 함몰상태-끊김은 곧 정신을 놓음이라. ‘정신없이 산다.’는 말은 거죽만 살아 있다는 말이겠다. 곧 목숨만 붙은 짐승이나 다름없음이다. 소름이 돋을 판이다. 신선한 음식은 치매예방에도 그만일 텐데 이 동토의 계절에 냉이를 잊다니~!                                                                      “여보! 애들아, 칠칠한 아빠 어여삐 봐주라.”     2012. 0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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