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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고사리가 주는 행복

고사리가 주는 행복

‘잔인한 4월’이 오면 4월의 새싹 고사리를 잔인하게 꺾는 맛에 도취하길 즐기는 우리부부만한 사람도 드물게다.

산야에 연초록빛깔이 선연해지고 벚꽃이 필 땐 우리부부의 산행길은 고사리아제비(죽은 고사리)밭에 온통 신경을 날 새우고 있게 된다.

특히 함라산은 고사리가 무성하여 우리부부를 고사리채취 맛에 빠져들게 하는 행복에 며칠을 보내게 한다. 큰 나무가 없는 햇볕 잘 드는 묘역이나 산불 난 장소에 맨 먼저 고사리가 움트는데 면적이 적고 땅이 비옥치 않아 큰 재미를 맛볼 순 없다.

땅을 뚫고 태아처럼 머리를 웅크리고 고개를 내미는 탐스런 고사리 순을 보고 있노라면 신비한 자연의 비밀과 소생의 경의를 엿보게 된다.

이삼일 후엔 털 보송보송한 몸뚱이에 웅크린 머리를 곧추들고 한 뼘 이상 직립한 채 서서 잎 피우기 직전의 고사리는 흡사 어린애가 앙증맞게 주먹 불끈 쥔 모습 그대로다. 하여 갓 난 애의 주먹손을 고사리 손이라 했을 테다.

그 탐스럽고 오동통한 고사리가 비옥한 숲 속에 하나 둘씩 숨어있고, 그 놈들을 보물찾기 하듯 발견해 가며 꺾는 재미란 형언할 수가 없다.

내가 스스로 잔인하다고 생각하는 건 탐스런 그 놈을 밑동 가까이 꺾을 때의 전율과 소리의 감전에 엄청 행복해 한다는 점이다.

고사리보물찾기와 채취하는 순간의 쾌락은 내겐 선(禪)의 경지라!

그 순간들은 모든 걸 놓아버리고 더는 잊어버린 일념(一念)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한 생각에 머물 수 있다는 시간은 나를 정화시키는 선경(禪境)에 이르게 함일 것 같아서다.

그런 일념의 시간은 고사리채취를 하는 한나절 동안 계속됨이고, 그런 시간은 원하면 4월 내내 만끽할 수가 있는 것이다.

아내가 느끼는 맛이야 나와 다를지 모르지만 채취에 올인 하는 모습과 욕심은 나를 능가한다. 그래 한참을 채취에 열중하다보면 방향감각도 잃어 전혀 엉뚱한 곳에서 서로를 찾다가 전화질까지 하곤 하는데 언젠간 휴대폰도 불통이 돼 걱정이 분통으로, 나중에 가까스로 만나선 서로를 탓하는 입씨름으로 비화 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아낸 다음날 아침엔 등산가자(고사리채취가자)고 얼리버드 짓을 잘도 하곤 한다.

모든 걸 잊는 일념의 맛도 좋지만 날씨가 더울 땐 난 가고 싶지가 않다.

등산복이 아닌 어차피 나물채취복장을 해야 하고 그 짓도 몇 시간째면 중노동의 고역이 되는 땜이다. 그런대도 아내의 ‘고사리 뜯는 거와 등산이 매 한 가지’란 억지논리에 못이긴 척 따라나서곤 하는데, 등산(채취)후 샤워하고 쉬면 그 맛도 일품이려니와 그 놈들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 햇볕에 말려 보관했다가 나물반찬으로, 특히 제사 때 누나들께 한 봉지씩 선물할 땐 또 다른 행복을 얻게 된다.

누나들께서 이른 봄에 우리부부가 채취한 웰빙식품이라고 얼마나 좋아하시는 걸 보면 그런 뿌듯함을 쉽게 얻을 수가 없을 것이다.

고사리는 아미노산류인 아스파라긴(Asparagine), 글루타민산(Gluyaminic acid), 플라보노이드의 일종인 아스트라갈린(Astragaline) 등의 성분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어‘산에서 나는 쇠고기’로 불릴 정도로 단백질이 풍부한 식품이란다.

또한 무기질(칼슘과 칼륨) 성분이 풍부하여 치아와 뼈를 튼튼해지게 하고 혈액을 맑게 해 어린애성장에 좋고, 고사리 뿌리를 달인 물은 이뇨(利尿)와 해열, 고혈압, 여성 대하, 황달, 치질, 야뇨증의 치료를 유용하다고 한다. 고사리의 차가운 성질은 성욕을 억제시키며, 정신을 맑게 하는 작용이 있어 수도하는 사람에게 좋아 사찰음식으로 사랑받았다.

근데 엊그제 산나물 채취하다가 적발돼 곤욕을 치루는 뉴스를 접했었다.

물론 입산금지구역에서 온갖 산나물을 무분별하게 채취하다 단속된 경우였다.

사실 요즘은 웰빙식품에 혈안이 돼서 등산로주변의 고사리 밭은 사람들 발자국으로 휑하게 뚫렸다. 다행인 건 고사리가 다년생인데다 생명력이 왕성하고 5월 초순 이후에 채취한 건 나물로써의 가치가 떨어져 채취를 않고, 곧 새순이 돋아 여름이 되면 무성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앞으론 고사리 꺾는 재미도 단념해야 하는가? 하는 걱정이 지핀다.

솜털 보송송한 여린 고사리를 찾아내 하나씩 뜯는 행복을 접어야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맘이 언짢 해진다.

호젓한 곳에서 튼실한 고사리를 뜯은날 밤에 자리에 눠 눈을 감고 있으면 오늘 옹골찼던 고사리밭의 정경이 눈에 선해 자못 또 한 번 열락에 들게 되는데 말이다.

다른 산나물 채취는 금하더라도 고사리는 괜찮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고사리는 적당히 속아줘야 숲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니 말이다.

2012. 05.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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