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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그 미지?

090828

인간관계에서 어느 정도 상대를 알면 꼭 알고 싶은 게 있어지죠.

그게 우리의 정서라는 것. 부인하지 못하죠.

제가 샘의 전직이 궁금했듯이...

그런데 전 물어보지 않기로 했어요. 현재의 샘이 중요하거든요.

저요.++++ 가르쳐요. ++선생이 아니라 ++선생인데, 요즘은 통합교과에요.

++이 ++도, ++이 ++도 함께 가르쳐요.

3학년에 전기가 나와요. 근데 전기에 '전'자도 모르는 사람이 3학년을 하려니, 어찌해야 했겠어요?

몇 년 전 일이에요. 3학년은 하고 싶은데 전기는 모른다? 문제가 있잖아요.

그래서 방학동안 큰 애한테 배웠어요. 그앤 과학, 수학을 잘 할 뿐더러,,,

서울대에서 전기에 대해 잘 배웠더라구요. 공식이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가까지..

그래서 열심히 배웠죠. 그리고 제 남친한테까지..

그 친구는 서양화 전공인데 기계쪽을 좋아했어요. 물론 전기도...

두 남자한테 배워 지금은 아주 쉽게 잘 가르친다고 하는데 모르죠. 애들이 그렇게 느껴야죠..

그래서 지금은 전기가 ++보다도 더 재미있어요.

무튼 그래요. 저 수업들어가야 해요. 우리반..다음에 봐요

이렇게 가정선생인 저를 그 누구도 알아맞히지 못해요.

그 이유를 분석해 봤어요.

하나는, 제가 가정적이지 못하다는 거에요. 사실 맞아요. 딸 셋중 큰딸인데 부모님이 한 번도 가사노동을 시켜보지 않았어요.

동생들이 다 했죠. 지금도 엄마가 친정에 가면 둘은 밥을 해서 먹고 가라고 한데요. 근데 제가 가면 엄마가 해줘요.

우리 둘째가 대학을 가서 한다는 말이.. "엄마가 그동안 참 저희들에게 잘해준 줄 알았데요. 그런데 남의 집에 가서보니 밥상 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리더래요. 근데 아무도 고맙다는 인사를 안하더라, 참 이상했다"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집은 가끔씩, 아주 가끔씩 김치찌개만 해줘도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했거든요. 그러던 아이들이 머리가 굵어지니 스스로 알게 된 거죠.그래놓고 미안했던지 물질적인 밥상은 비록 보잘 것 없었어도, 정신적인 밥상을 잘 차려줘서 고마워요, 라고 했어요.

둘, 아마 제가 약간 자유분방하다는 것일 거에요. 대부분의 한국인이라면 '가정과'하면 왠지 여성스럽고 차분하고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정반대거든요. 아마 그런 것들이 저를 가정과출신으로 보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 과를 다니고 있었거든요.

실은 갈데가 없어 갔었으니까요. 약대를 가려고 하는데 집에서 사대를 가라고 했죠. 갈곳이 별로..

대학에서 수공예를 배웠어요. 쉽게 말해 뜨개질을 배우는 거죠. 40명 중에 저만 수공예 과목 신청을 하지 않았어요. 그런 걸 대학에서 배운다는 게 우스웠어요. 그리곤 임용고시를 보고 학교로 들어왔어요. 그때만해도 '++'과목과 '++'과목이 있었어요.

++선생이 두 과목 모두 가르치는데 작은 학교는 전 학년의 ++를 다 가르쳐야 해요, 조금 큰 학교는 가++선생이 많아 나누어 가르쳤어요. 그러면 저는 무조건 ++을 했어요. 이론으로 가르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작은 학교로 발령이 났어요.++ 모두 가르칠 수밖에요. 그래서 일본에서 7년을 사신 시어머니께 하는 수 없이 뜨개질을 배웠죠. 그리곤 ++과목을 수업했죠. 문제는 뭐냐하면.. 저는 뭔가를 하면 뿌리째 뽑아버려야 직성이 풀린다는 거에요.

뜨개질을 배우는데 그게 뭐 대단하겠어요? 게이지 내면서 아주 재밌게 독파를 했죠. 알고보니 아무 것도 아니였어요.

그때사, 아 다른 선생들이 ++과목을 선호하는 이유를 그때야 알았어요.

방법만 가르쳐주면 애들이 알아서 다 해버리니 선생이 수월했어요. 그런데 그동안 저는 힘든 ++과목만을 고집했으니 그 선생들이 얼마나 속으로 고마워했겠어요?

그래서 지금껏 미술, 국어, 수학.. 이런 순으로 사람들에게 제 전공을 들었던 말이에요. 그러니 ++이란 말은 그 누구의 입에서도 나오지 않았죠. 샘!! 이런 것도 편견이겠죠.

세상은 편견속에 살고 있으며, 편견속에서 자신들의 눈을 통해 그것이 전부라고 바라보며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또한 ++선생들이 욕심이 많아요. ^^여고에서 같이 근무했던 ++과 선생들 모두가 지금 교장을 하고 있어요.

저만 평교사를 하고 있죠. 도통 관심이 없었어요. 승진에 말이에요.

전 교사가 싫었죠. 그런 교사를 왜 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도 재밌다고 할 수는 없어요. 우리 애들이 "엄마는 기자를 했으면 진짜 잘 했을 거에요."라고 말하죠.

제가 생각해도 잘 했으리라 생각하네요. 제 발로 뛰어 살아있는 생생한 기사를 쓰는 것,, 멋지지 않나요?
그래서 다시 태어난다면(?) 언론쪽으로 뛰어들고 싶어요.

동적인 면과 정적인 면을 다 가지고 있는 여자가 바로 저에요. 그래서 사람들은 저를 말할 때 그 누구도 제대로 말하는 적이 없어요. 방학 한 달 내내 바깥 출입 한 번 안하고 집에 틀어박혀 책을 읽기도 하고, 아니면 배낭 하나 달랑 메고 한 달 내내 돌아다니기도 하는 여자, 누가 어느쪽이라고 단언하겠어요?

외나로도에서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더니 촌노들이 그럽디다. "다리가 하얗네. 도대체 뭐하는 여자여!" 아주 궁금한가봐요. 그래서 아마도 캄보디아에서 일행들이 아들과 엄마를 연인으로 착각하지 않았을까요?

샘!!

이젠 저에 대해 모르는 게 없네요. 다 알았어요. 산도 좋아하고 여행도 좋아하고, 책도 그러저럭 좋아하고, 연애도 잘하고, 스스럼없이 세상을 보고.. 그림도 그리고 수영도 잘하고.. 걷기도 잘하고.. 노래 못하고. 배구 못하고. 영화 좋아하고. 정적이고, 그러다 동적이고 변덕스런 여자.. 이것이 저에요.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스스럼없이 시장가도 아들들 잘 부려먹고 애들에게 공주엄마고.. 반찬은 뒷전인 적당히 때우는 엄마.

젖냄새 난다며 우유로 아이키우고 애들에게 모유먹여 키웠다고 거짓말 하는 엄마.

우리 아들들,,, 모유먹고 자랐다고 말해요. 제가 그렇게 말했거든요. 너희들 모유먹일 때 엄마 무척 힘들었다, 이렇게..

이렇게 웃기는 여자가 엄마에요. 저는 그래요.

엄마는 가정에서 연극배우가 되어야 한다고. 비록 못해줬어도, 기죽으면 안된다고..큰소릴 쳐야 한다고. 이렇게 외치는 엄마에요.

이젠 아셨죠? 웃기는 사람이 바로 저라는 걸.

샘 말따나 멀리있는 제게 뭐라고 하겠어요? 질책해도 어쩔 수 없지요.

그러면서도 아직도 엄마를 이 세상에서 가정 무서워해요. 아빠보다 엄마가 무서운 우리집 애들.

그러면서 아빠보다 더 친구인 엄마. 괜찮지 않나요?

한때 저는 행복했어요. 제 주위에 백과사전이 세 명 있었거든요.

아들 둘과, 남친.. 모르면 전화하면 방금 답이 도착했어요. 그것도 큰 행복이었죠.

언젠가 첼리스트 정명화씨가 말했죠, 남편은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라고.

아주 행복한 얼굴로 그 말을 하면서 흐뭇해하는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특히 둘째와 남친은 백과사전이었어요. 큰애는 이과인데 이과 성향이어서인지 다양한 독서를 하지 않아, 조금 딸려요.

하지만, 가장 청음력이 좋은 사람은 큰애에요. 우리집에서 가야금을 가장 잘 조율하는 사람이 큰애거든요.

아직도 산조를 잊지않고 들려주죠.

그애는 음악으로 키워도 괜찮을 것 같아요. 황병기 같은 가야금 연주자로 키우고도 싶었던 아이에요.

서울대 다닐 적에 '여민락'에서 가야금 정악을 공부하기도 했었죠.

조금 멋지고 샘 딸들처럼 명품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아이가 바로 큰아이랍니다.

모든 것 여기서 끝, 할게요.

안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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