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없이 사는 우아한 게레눅
‘목이 기린 같다’는 의미를 지닌 ‘게레눅(Gerenuk)’은 소말리어에서 유래했는데, 뒤로 길게 뻗은 우아한 두 뿔의 머리가 사슴만한 크기의 기린처럼 보인다. 눈은 무언가를 말하는 듯하고, 크고 긴 귀(뜨건 사막지대에서 태양열을 식히는 작용을 한다)의 이 동물을 바라보는 것만도 즐겁고 흥분된다. 앞다리를 나뭇가지에 걸치고 뒷다리로 서서 몸을 지탱하면서 지상 1.8m~2.4m 높이에 있는 먹이를 먹는 우아한 모습은 기이하여 세상에 이런 동물이 있을까? 싶다.
더더욱 놀래 키는 건 놈들은 물을 마시지 않고 산다는 사실이다. 지구상에 살아있는 식물과 곤충과 동물이 물 없이 사는 게 있을까? 없다. 오직 게레눅이 약 80종의 다양한 관목과 교목과 상록수의 잎과 줄기에서 수분을 취하면서 산다. 또한 게레눅은 기린(4.6~5.5m높이의 먹이)과 딕딕(0.6m이하의 먹이)의 먹이생태계와 달라 먹이경쟁이 없고 영토분쟁도 없다. 게레눅은 각자의 눈 모퉁이에 있는 냄새샘에서 나오는 타르 같은 물질을 나무의 잔가지에 묻혀 그 냄새로 1평방킬로미터 남짓한 지역을 영토로 선택하면, 이웃의 게레눅은 절대 침범하지 않고 평화를 유지한단다.
게레눅은 동아프리카 원산지로 탄자니아 세렝게티 평원에서 해안선을 따라 케냐, 이티오피아, 소말리아의 해발 3000m까지 서식한다. 건조한 사바나와 관목지대에서 발견되는데 Gerenuk이라는 이름은 소말리아어로 ‘기린목 영양’을 의미한다. 기린과 비슷한 긴 목과 다리, 작은 머리와 큰 눈과 귀를 가진 외형 때문이다. 뒷다리로 서서 높은 곳의 나뭇가지를 끌어당겨 나뭇잎, 새싹, 꽃, 과일을 먹는 미식가다. 기린은 나무 꼭대기부분의 풀을, 작은 영양은 나무 아랫부분의 먹이를, 게러눅은 나무가운데의 잎과 싹과 꽃을 먹는 셈이다.
머리는 길고 좁으며 귀는 크고 주둥이는 뾰족하다. 가늘고 긴 네 다리가 삐쩍 마른 몸을 지탱하며, 짧은 털은 윤기 흐르는 갈`회색이라 건조한 사바나숲속에 은신하기 딱 좋다. 게레눅은 물을 마시지 않아 물웅덩이가 필요 없는 유일한 희귀종일까 싶다. 놈들은 식물에서 얻는 수분만으로 건조한 기후에 잘 적응하여, 일생 동안 물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 물 없이 사는 동물! 어찌 신비하지 않나! 게레눅은 외톨이로 홀로 살지만 때로는 암컷과 새끼들, 소규모의 수컷끼리 집단생활도 한다.
낮에 주로 단독생활 하는데 수컷 1마리와 암컷 6∼7마리가 무리를 이룰 때도 있다. 장성한 게레눅 수컷은 늘 영역을 보호하며 텃세를 부리다 번식기에만 암컷들과 무리를 짓는다. 우두머리 수컷끼리는 다른 수컷의 영역을 무시로 들락거리면서 어린 수컷이 영역을 침범하면 쫓아낸다. 암컷들은 10마리 정도의 가족 무리를 이루고 수컷의 영역을 자유롭게 지나다닌다. 어린 수컷들은 따로 무리를 지어 자기의 영역을 확보할 때까지 떠돌이 생활한다. 평균 수명은 10∼12년으로 암컷의 수명이 수컷보다 약간 더 길다.
짝짓기 철에 수컷은 암컷 주위를 맴돌면서 멋진 뿔과 목을 움직여서 구애한다. 암컷이 관심을 보이면 냄새샘의 분비물을 암컷의 다리에 문지르며 오줌냄새를 맡아 짝짓기에 든다. 임신기간은 약 7개월로 한배에 한 마리의 새끼를 낳고 연중 출산한다. 새끼는 대게 아침에 낳아 밤이 오기 전에 힘을 얻게 되는데, 태어나 10분 만에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곧장 걸음마를 해서 저녁에는 장난을 칠만큼 활동하여 어미를 안심시킨다. 하여 어미는 천적으로 부터 보호하려고 새끼의 냄새를 청소하고 위장 숲에 숨겨놓아, 젖을 뗄 때까지 보호하는데 홀로 숨어 있는 동안 빠르게 성장한다.
어쩌다 숲에서 일탈한 새끼는 낮은 울음소릴 내어 어미를 찾는다. 잘 들리지 않을 것 같은 울음소린 아주 멀리까지 전달되어 어미와의 소통이 가능해진다. 새끼는 두 주가 지나면 가족과 함께 잔가지와 잎을 뜯어먹는다. 어린 암컷은 생후 1년이면 젖을 떼고 독립하지만, 어린 수컷은 1년 반이 되어야 젖을 떼고 2년이 되어야 어미로부터 독립한다. 게레눅은 몸길이 1.4∼1.6m, 어깨높이 90∼105cm, 꼬리길이 25∼35cm, 몸무게 29∼58kg로 수컷이 좀 더 근육질이다. 짧고 뾰쪽한 하프 모양의 뿔은 뒤로 구부러졌고, 뿔끝은 날카로운 두 개의 갈고리로 갈라져 위를 향해 앞쪽으로 구부러져 있다. 뿔 표면에는 25∼35개의 융기가 있다.
놈들은 아침이나 황혼녘에 먹이활동을 하고, 낮에는 포식자나 인간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낮은 관목이나 덤불숲속에 숨어 휴식을 한다. 놈들의 털은 짧고 윤기가 나며 등은 붉은 갈색이고 눈 주위, 다리의 안쪽, 가슴과 배쪽은 흰색이다. 놈들은 배설물로 식물의 씨앗을 지상에 퍼뜨려 식생의 구조와 분포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앞다리무릎에 검은색의 작은 반점이 있고, 꼬리는 짧고 끝에 검은색 술이 달려 있다. 천적으로는 치타, 표범, 사자, 아프리카들개, 하이에나 등이 있으며 서벌, 라텔, 카라칼, 수리류는 새끼 게레눅을 사냥한다.
게레눅은 인간들의 밀렵과 생태계 교란으로 서식지가 파괴되고 있어 안타까운데 지구온난화와 가뭄 등의 인위적인 파괴로 인해 열악한 환경은 개체수 감소로 세계자연연맹(IUCN)의 취약보호 종으로 분류됐다. 우아하고 날씬한 몸매와 갈`회색의 때깔 좋은 잔털, 특이한 생김새에 먹이활동으로 다투지 않고, 서로가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평화주의자 게레눅! 먹이와 삶의 터울로 싸우지 않는 게레눅의 일생이 사람들의 욕심을 순화시키는 모멘트가 될 수도 있겠다. 놈을 보러 아프리카로 달려가고 싶다. 애완동물을 멀리하는 내가 게레눅만큼은 동반생활하고 싶다. 2024. 02. 01
'느낌~ 그 여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환구단과 조선호텔 (0) | 2024.03.15 |
---|---|
NYT 1면에 등장한 김건희 여사와 디올백 (0) | 2024.02.03 |
마리 앙투아네트와 김건희 (1) | 2024.01.27 |
죽은 때까치를 위한 조사(弔辭) (0) | 2024.01.03 |
가족의 공감대를 향해 (0) | 2023.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