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감-그 미지?

세밑 우미26에서

세밑 우미26에서

'우미26'정문벽 대리석에 음각한 "한우암소 특등급의 맛은 그야말로 판타스틱하고 엘레강스 합니다" 라는 문장은 외래어를 남용하는 나도 유치하단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세종대왕이 통곡할 희비극이다

세밑 밤거리 음식점은 망년회모임으로 난장처럼 떠들썩하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잊고 새해를 맞이하자는 희망의 자리에 술기운이 더해 짐짓 지겨운 세상에서의 엑서더스를 꿈꾸나 싶다. 서대문 독립문로 허름한 골목에 입소문 난 한우생고기집이 있다. 모진 가뭄에 콩 나듯 찾을까 말까한 울`식구들이 들어선 ‘우미26’집은 만석인 손님들의 입담소란과 소고기구이 냄새와 자욱한 연기로 밤을 사른다. 물가고에 살아가기 힘들다고 볼멘소리 처도, 아니다 오늘밤만큼은 잊어버리자고 작정을 한 서민들이다.

육회와 사시미

기쁨보다 번민과 아쉬움이 많았던 금년을 술 한 잔에 날려버리고, 소원한바 이뤄질 명년이 온다면야 날 새워 고래고래 떠들어도 괜찮지 싶다. 근디 그 자리엔 필히 망년지교(忘年之交)가 있음 금상첨화일 것이다. 나이 차이를 떠나 오직 재주와 덕으로 사귄 벗과 함께 맞는 망년이니 더 이상 뭘 바라리. ‘우미26’홀 안 만석을 이룬 손님들 중에 과연 몇 분이나 망년지교 벗을 동반한 채 망년파티를 즐기고 있을까? 나도 꼭 짚을 벗이 없는 허접한 자괴감을 어쩌질 못한 채 와인 잔을 비운다.

안심
채끝

고려 때 해좌칠현(海左七賢)이었던 오세재는 53세 때 18살의 이규보와 벗하였고, 나이 차이는 5살이었던 정몽주와 정도전, 정약용과 조익현도 나이 차이를 떠나 좋은 벗으로 오래도록 사귀면서 후세에 많은 귀감을 남겼다. 덕성과 지혜가 천박한 나를 누가 망년지교로 삼을 벗이 없었기에 씁쓸하지만, 내 깐에 자식들이라도 망년지교로 살아주길 못내 염원한다.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알 듯 싶고, 베려하는 삶을 살수가 있어 자식이란 멍애를 던지고 벗으로 살아가고 싶은 게다.

나의 제안에 큰사위는 다소 멋쩍은 표정을 하면서 오케이하고 흔쾌히 술잔을 부딪쳤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망년지교(우) 벗 하나 없단 건 성공한 일생이라 자부할 수 있을까? 대신 식구들로부터 신뢰받고 사랑받는 아버지로, 벗으로 사는 관계가 행복한 일생이라고 합리화 해본다. ‘세상에서 가장 긴 행복탐사보고서’의 핵심은 좋은 관계가 내 사랑하는 사람들, 특히 가족들과 좋은 관계면 제일 좋다고 일러준다. 그리고 잘 모르는 사람과 가볍고 친절한 대화를 하는 것도 행복해진다고 했다.             2023. 12. 28

# 해좌칠현(海左七賢)은 고려 후기에 현실 정치를 떠나 함께 사귀던 일곱 선비, 즉 이인로, 오세재, 임춘, 조통, 황보항, 함순, 이담지를 가리킨다. 1170년 정중부가 일으킨 무신정변을 피한 문인들은 자연 속에 깊이 파묻히면서 중국 진()나라의 청담파(淸談派)인 죽림칠현과 같은 죽림고회(竹林高會)를 조직하고 시작(詩作)과 술로 생활했다. 그들은 중국의 문풍(文風)인 사부(辭賦)를 즐겨 창작했으며 중국 진나라의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 송나라의 시인 소식, 두보 등의 시를 즐겨 추앙했다. 한편 죽림칠현계의 시인들과 함께 이규보 등과 같은 문인들이 속속 배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