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산뜻한 결혼식에서
지리한 장마 끝의 화창한 정오, 남산 숲속에 쏟아지는 햇살도 따가웠다. 크레스트72 글라스홀에서 40여년 지인의 따님결혼식이 있어 낯선 예식장을 찾아들었다. 식장 크레스트72는 남산기슭 국립극장 앞의 한국자유총연맹 부속건물이었다. 방명록에 사인을 하고 들어선 예식장은 낯설고 산뜻했다. 하도 오랜만에 만나서 쬠은 어설펐던 신부양친과 삼촌B - 반갑게 맞는 그들도 세월의 티를 곱게 새겼지만 낯선 예식장에서 내겐 낯설지 않은 유일한 얼굴이었다.
숲속의 궁전 같은 낯선 예식장 꾸미느라 정성께나 쏟아 신선했다. 삼촌B가 앞좌석을 권했는데 난 말석에 앉았다. 넓은 글라스홀의 하객들은 모두 다 낯설어 맨 뒷좌석이 편할 것 같았다. 아홉 좌석의 원탁테이블에 둘러앉은 하객들도 낯설었다. pm1시에 신랑이 입장했다. 사회자는 신랑의 십여 년 지기라 했다. 그가 ‘오늘 예식은 주례가 없다’라고 선언한다. 애초에 빼버린 거다. 내겐 두 번째 낯선 풍정이라!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잘 했다고~!
신랑신부가 퇴장하는 팡파르에 이어 오찬(午餐)은 앉아있는 그 자리에서 즐긴단다. 열대여섯 명의 홀`서빙들이 부산하게 테이블 메뉴판대로 깔끔한 양식을 내놓는다. 아까 신랑신부한테 축하 박수친 그 자리에서 음식을 들었다. 세 번째 낯선 풍정이었다. 축의금봉투 내놓고 식당으로 직행해 밥 먹고 예식장 나오는 하객(賀客)을 왜 초청하는가? 혼주나 하객이나 참 어설픈 돛대기시장통장면이 된다. 결혼식은 밥장사인가? 여태 수없이 찾아간 예식장에서 절감한 씁쓸함이었다. 오늘의 참신하고 멋진 예식이 나를 세 번째로 낯설고 흐뭇하게 해줬다.
두 시간여 이어진 예식오찬의 피날레가 나를 네 번째 낯설게 했다. 예식장을 화사하게 장식한 생화(生花)를 몽땅 하객들에게 선물했다. 하객들이 생화를 몇 송이 내지 한 다발씩 가지고 포장코너에 가서 예쁜 꽃다발로 변신시켜 들고 오면서 짓는 환한 미소는 행복만땅해 보였다. 뜬금없는 꽃다발 선물에 웃음꽃 피우며 달뜬 하객들, 신선한 발상의 전환에 나는 낯설고 낯선 감동을 받았다. 참 멋진 예식이었다. 그 꽃다발은 며칠 동안은 하객의 집안도 싱그럽게 하리라.
오후3시반, 나는 따가운 햇살 속에 국립극장 공연박물관을 찾아들어 아까 낯선 풍정들로 감동받은 산뜻한 장면들을 되새김질했다. 나를 초청해준 신부양친과의 지난 40여 년간의 추억들을 반추해 보기도 했다. 내가 갓 서른 살에 진해(鎭海)에 정착할 무렵 세든 적산가옥(敵産家屋)에서 한 지붕 세 가족으로 살면서 만난 신부의 어머니는 간호사처녀였다. 그러니까 신부어머니에 이어 그녀 딸의 결혼식에 하객이 된 질긴 인연이다.
그 많은 추억보따리 속에 눈감을 때까지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일이 한 지붕에 산지 1년쯤 됐을까? 무렵 발생했다. 어느 날 갑자기 아주머님(처녀 어머니)이 뇌출혈로 쓰러져 울`내외가 병원(의원)엘 갔는데 곧장 퇴원해야 했다. 병원은 집에서 100m정도거리였다. 내 등에 업힌 아주머닌 의식을 잃은 채 축 늘어졌다. 아주머님은 신체가 여장부라서 얼마나 무겁던지 십여 미터 가기도 힘겨워 서너 번 쉬어 가까스로 집안에 모셨다. 글고 하루도 못 넘겨 운명하셨다. 사람이 의식 없는 반 주검일 때의 체중은 상상을 절하단 걸 절감했었다.
아마 그런 경험은 내 생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일 테다. 한집안 세 가족집안에 성인남자가 내라서, 병원이 멀지 않아서 엉겁결에 야기된 운명의 날들을 나는 지금도 새록새록 떠올린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은 진해에서 십년쯤 살다가 익산에 이어 서울에 살고 있는 40여 년간 이어지고 있다. 아름다운 인연이라. 그때 초등생이었을 외아들B(삼촌)는 KBO심판위원으로 프로야구경기 때 TV에서 살짝 엿보곤 한다. 건장한 체구와 잘 생긴 이목구비가 영판 모친을 빼닮았지 싶다. 모두들 건강하고 행복하길 기원한다. 고맙고 반가웠다. 2023. 07. 29
메뉴는 버터와 빵 두쪽 - 치즈위에 해산물과 세비체, 토마토 - 양송이 스프 - 쇠고기 안심 - 국수 - 디져트와 커피 순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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