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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그 미지?

090907

파울로의 스승이 연금술사의 세번째 부류를 설명하다가 이런 얘기를 들려줬죠.

"성모 마리아께서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수도원을 찾으셨다. 사제들이 길게 줄을 서서 성모께 경배를 드렸다. 어떤이는 아름다운 시를 낭송했고, 어떤 이는 성서를 그림으로 옮겨 보여드렸다. 성인들의 이름을 외우는 사제도 있었다.

줄 맨끝에 있던 사제는 볼품엇는 사람이었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은 적이 없었다. 곡마단에서 일하던 아버지로부터 공을 가지고 노는 기술을 배운 게 고작이었다. 다른 사제들은 수도원의 인상을 흐려놓을까봐 그가 경배드리는 것을 막어려했다.

그러나 그는 진심으로 아기예수와 성모께 자신의 마음을 바치고 싶어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오렌지 몇 개를 꺼내더니 공중에 던지며 놀기 시작했다. 그것만이 그가 보여드릴 수 있는 유일한 재주였다.

아기 예수가 처음으로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성모께서는 그 사제에게만 아기 예수를 안아볼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메일로 그렇게 나불대던 입이 막상 전화를 하고 나니 할 말이 없었던 건 저도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왜 했느냐,,, 다만 그곳에 갔을 때 마음이 그렇게 하도록 시켰기 때문이었답니다.

꼭 할말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 장소에서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였지요.

할말이 없어서 그 전화가 누구에게서 온 줄 알면서 전화를 받지 못했다고 했나요?

물론 그것도 마음이 시켜서 그렇게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이 시킨게 아니라 머리가 그렇게 하도록 시켰다는 것 뿐이지요.

'머리'와 '마음'의 차이였지요?

전 머리보다는 마음을 따라 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요.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머리로만 알고 있는 사람보다는 아무리 적게 알고 있어도, 마음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더 인간적이기때문이랍니다.

제가 그 친구를 6년간 만나면서 수없이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했던 이유가 바로 마음과 머리의 교차였지요.

머리로 살아가는 친구를 어느 날은 이해할 수 없어 헤어졌고, 어느 날은 또 안타까워 만나고..

이렇게 하다보니 6년의 세월이 흘렀지요.

서로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면서도 생채기보다도 더 진한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라면 어불성설인가요?

샘이 전화에 대고 할말을 못한다는 것 저 잘 알고 있지요.

"목소리가 난들난들 합니다." 라는 말만 듣고도 전 이해했지요. 정말 전화에 대고 말을 참으로 못하는 사람이군, 하고 말입니다.

샘을 몰랐다면 아마 전 그 소리만 듣고 연락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어감이 이상하지 않나요? 하지만, 그건 마음이 시키지 못한 말을 하려니 그런 말이 나왔겠지, 했지요.

그런데 전화를 받지 못한 이유를 들으면서 할말이 없었어요.

전 이럴 땐 제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자신에게 묻곤 하지요.

오늘은 연금술사의 내용을 보면서 이렇게 적게 하고 있습니다.

답을 원해서 쓴 게 아니랍니다.

답을 쓰는 건 샘의 마음이니까요.

가끔씩은 머리로 사는 것보다 마음으로 사는 게 좋을 때도 있지요?

샘을 통해 6년의 기억을 되풀이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답장이 늦어졌군요.

그 친구와 너무나 닮은 샘!!

그제는 그 친구가 핸드폰에 저장된 제 사진을 보내왔지요.

노짱을 만나러 그 친구와 갔었거든요.

6년동안 한 번도 같이 찍어보지 못한 사진. 항상 저만 찍어줬으니까요.

그 사진을 마지막으로 그젠 받았지요.

그리곤 어제는 문자를 날렸답니다.

지독한 6년이었군, 같이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 가슴으로 사는 것도 제법 괜찮아. 라고.

여자들이 더 더 좋다는 생각을 해보는 요즘입니다. 적어도 머리를써서 행동하는그런 상황을 만나지는 않으니까요.

연산봉에서 문자를 넣자 답을 주는 여자들!! 그런 여자들과의 만남을 자주 가져보는 것이 좋겠지요?

그런 시간들을 만들어보려 앞으로는 힘을 써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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