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 & 내산서원(內山書院) - 가족의 시간 ②
“이국땅 삼경이면 밤마다 찬 서리고 / 어버이 한숨 쉬는 새벽달일세
마음은 바람 따라 고향으로 가는데 / 선영 뒷산에 잡초는 누가 뜯으리
어야 어야~ 어야 어야 어야~
피눈물로 한 줄 한 줄 간양록을 적으니 / 님 그린 뜻 바다 되어 하늘에 닿을세라”
아침7시, 울`부부는 큰애네(훈과 쥴 & 윤이,현이)를 동반한 고향 성묘길에 나섰다. 애초엔 1박2일 여행(?)을 계획했었는데, 훈이의 휴가일수가 빠듯해 당일치기하기로 해서다. 오후부턴 남부지방은 비가 온다는 예보 탓인지 선선한 날씨는 여행하기 딱 좋다. 어제까지의 염천폭염은 언제냐? 싶다. 9인승 신형스타리아는 여유롭고 쾌적하여 대여해준 영현이의 배려가 새삼 고마웠다. 영광 부모님산소(내산서원)까진 3시간 반 소요예정이란다.
경부선, 천안~논산선, 공주~서천선, 서해고속도를 경유하는 나들이 길이 정채가 없어 예정대로 질주했지만, 운전수 훈인 스타리아 최고속도가 110km로 한정돼 추월할 수 있는데서 가속할 수 없어 운전재미가 없다고 씁쓸해했다. 다만 고속도로에서 자율주행이 가능한 스타리아는 편하게 운전할 수도 있다며 (자동차운전을 못하는)아내를 힐끗 쳐다본다. 머잖아 인공지능 자율주행차가 대세를 이루면 무면허운전이 가능하고 아내도 운전할까?
승합차이상의 다인용승차의 시속제한은 사고 시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예방조치일 테다. 10시 반쯤 내산서원에 들어섰다. 내산서원탐방은 쥴이 요망한데다 나도 답사한지 오래되어 앞장섰다. 수은 강항(睡隱 姜沆 1567~1618))선생의 직계손인 나는 선친 생전에 많은 얘기를 들었었다. 선생은 휴가차 귀향했다가 임진왜란이 발발 가족을 데리고 목선으로 피신하다 1597년 전남 영광 논잠포(論岑浦:지금의 염산) 바다에서 왜군포로가 된다.
승합차이상의 다인용승차의 시속제한은 사고 시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예방조치일 테다. 10시 반쯤 내산서원에 들어섰다. 내산서원탐방은 쥴이 요망한데다 나도 답사한지 오래되어 앞장섰다. 수은 강항(睡隱 姜沆 1567~1618))선생의 직계손인 나는 선친 생전에 많은 얘기를 들었었다. 선생은 휴가차 귀향했다가 임진왜란이 발발 가족을 데리고 목선으로 피신하다 1597년 전남 영광 논잠포(論岑浦:지금의 염산) 바다에서 왜군포로가 된다.
왜군은 선생의 가족들을 목선에 싣고 끌고 가면서 울고 보채는 어린아이들 - 선생의 아들 용(龍)과 딸 애생(愛生)을 바다에 던져 익사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선생은 적장의 영지(領地)인 오쓰성(大津城 현재 오즈시(大洲市))에서 3년여 동안의 포로생활을 하면서 <간양록:看羊錄>을 썼는데 아들`딸이 수장당한 그때의 처절한 심정을 간양록에 기록해 분통케 한다.
“용과 애생의 죽음이 너무나 애달프다. 모래사장에 밀려 물결 따라 까막까막하다가 그대로 바다 깊숙이 떠내려가고 말았다. 엄마야, 엄마야 하고 부르던 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나이 30세에 비로소 얻은 아이다. 이 아이를 가졌을 때다. 어린 용이 물 위에 뜬 꿈을 꾸었다. 그래서 이름을 용이라 지었는데, 이 아이가 물에 빠져 죽으리라 누가 생각했겠는가?”
간양록에는 왜적의 정세와 장수들의 인적사항 보고서인 <적중봉소(賊中封疏)>와 일본지도인 <팔도육십육주도(倭國八道六十六州圖)>, 조선인 포로들을 위문하는 글 <고부인격>이 기록된 밀서로 당시 명나라 사신 왕건공을 통해 우리조정에 보냈다. 왜군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임진·정유재란을 맞았던 조선조정은 선생의 밀서(3번이나 보냈었다)가 얼마나 귀중한 정보였겠나! 목숨을 담보한 밀서는 충신의 전범일 것이다.
나아가 선생은 일본에 성리학을 최초로 전파한 비조로, 학승(學僧) 순수좌(舜首座)와 그 제자들을 통해 실사구시 유학으로 일본근대화의 사상적 토양을 일궜다. 오늘날 일본학자들은 일본의 비약적인 근대화성공의 뿌리가 선생이 필사한 주자학과 관련된 책 22권(16종)이다. 선생이 외우고 있었던 것을 기억해내 책으로 엮은 것으로 이 책들은 현재 일본국립공문서관 내각문고에 수장돼 있단다.
선생은 귀국 후 조정에서 벼슬을 추증했으나 죄인의 몸이라고 극구 사양 향리에서 학문연구와 후학양성에 매진했다. 쥴은 서재에 있는 <전라남도 문화총서37집 수은집(睡隱集)>을 독파해 강항할아버지의 삶에 다가서고 싶단다. 간양록은 1985년에 MBC에서 일일연속극으로 인기리에 방영됐고, 조용필씨가 가창하여 공전의 히트를 쳤었다. 내산서원을 품고 있는 방마산5부 능선(서원에서 직선거리 100m쯤)에 부모님 산소가 있다.
코로나팬데믹을 핑계로 4년여 동안 성묘를 안했으니 불효막심이라. 예상한대로 묘소가 박토(薄土)라 잔디 떼가 없는 봉분이 돼 더욱 죄송했다. 두 봉분을 하나의 평분으로 만들고 양편에 있는 백일홍나무를 옮겨와 수목장화 한다는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어 더더욱 불충한 자식이 된 죄인이다. 대충 벌초를 하고 울`식구들은 재배를 올렸다. 윤이와 현인의 첫 번째 성묘는 나를 흐뭇하게 했지만 외조부모묘소란 것 이외에 별 관심 없지 싶었다.
내가 오늘 큰애를 동반코자 한 소이는 울`부부가 죽은 후 화장(火葬)재를 여기에 뿌려주라는 유언(?)을 하고 싶어서였다. 서울에서 원거리란 단점만 감안하면 납골당걱정 안하고, 더는 부모님 곁에 수목장(樹木葬)으로 최상의 안식처란 생각에서였다. 더는 나처럼 멀다는 핑계로 성묘 안 해도 무방하고, 관리비 따위 신경 안 써도 된다. 결국엔 자연의 흙으로 되돌아갈 몸뚱이 아닌가!
해도 우리가 성묘를 하는 까닭은 선고(先考)를 기리는 의식 속에 좋은 가풍을 잇고, 혈연의 유대를 공고히 하는 아름다운 전통이기 땜일 것이다. 한 가족의 역사는 향토의 역사이고 나아가 조국의 역사가 된다. 역사는 인간의 삶의 변천사로써 자아발전의 거울이 되고 문화발전의 동력이 된다. 성묘를 하는 행위는 보다 나은 내일을 도모함일 것이다. 오늘같이 즐거운 가족여행은 연례행사여야 한다.
귀로에 막내의 초청으로 화기애애한 만찬까지 즐겼다. 가족모임은 내 존재의 확인자리이며 밝은 내일을 향한 피붙이 모두가 다짐하는 의기 충전의 자리다. 남부지방에 정오부터 뿌린다는 빗발은 늦은 밤 서울에 가랑비로 흩뿌린다. 여행하기, 성묘하기 참으로 좋은 날씨였다. 부모님께서 어여삐 여기신 후덕이려니! 부모님, 가을에 찾아뵙겠습니다. 뿌듯한 일정이었다. 2023. 0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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