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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봉원사의 영산재

 봉원사(奉元寺)의 영산재(靈山齋)

대웅전(좌), 영산재 괘불 뒤에 봉원사대방
▲제35회 영산재 의식이 한창이다▼

6월 첫 일욜(4일), 한껏 무르익은 신록의 숲이 햇빛너울춤을 추는 안산초록숲길을 소요하다 봉원사문에 들어섰다. 석가탄생 봉축행사기운이 남은 경내에 싱그러운 6월의 태양이 여름 빗장을 열고 있다. 작년에 개축단장한 삼천불전이 눈부시고 종무소마당이 비좁다는 듯한 느티나무의 기세는 종각을 향한다. 안산을 찾는 산님들에게 평안을 보시하는 봉원사는 태고종의 총본산으로 신라 진성여왕(眞聖女王)때 도선국사(道詵國師)가 터 닦은 반야사(般若寺)로부터 시작된 천년고찰이다.

대웅전탱화와 단청은 인간문화재 이만봉 스님의 작품. 법당안 우측의 범종(梵鐘)은 충남 가야사에 있던 종인데 조선의 억불정책(抑佛政策)으로 대원군의 부친 남연군의 묘를 쓰기 위해 가야사를 불태웠을 때 타지 않았던 종을 옮겨온 것이다.
영산재 기도

나는 거의 매일 안산초록숲길을 소요하다 여차하면 봉원사에서 약수를 받아 마시며 해찰 부린다. 반야사는 고려말 보우국사가 중건하고 절명을 금화사(金華寺)라 했는데 영조대왕이(1748) 이곳 땅을 하사해 이전하고 ‘奉元寺’란 현판 친필을 하사했단다. 구한말 개화파의 대표적 인물인 이동인(李東仁)스님이 5년간 주석할 때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 선진인사들과 교류한 갑신정변(甲申政變)의 요람지이기도 했다.

▲봉원사대방, 대웅전 앞마당에서 영산재가 거행됐다▼

 오늘 봉원사에선 제35회 영산재(靈山齋)행사가 열려 축제마당이다. 범음(梵音)과 화청(和唱)등의 음악적 효과와 그런 불교음악에 맞추어 바라춤, 나비춤, 법고춤을 추는 춤사위에 신바람이 났다. 거기에 삼현육각(三鉉六角), 호적, 취타 등의 각종 악기연주가 더해져 산사경내는 종합예술공연장이 됐나 싶었다. 진종일 행해지는 장엄한 불교의식인 영산재(靈山齋)는 그 가치와 우수성을 인정받아 지난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었다.

▲삼천불전 앞에서의 영산재의식▼

또한 대한민국국가무형문화재 제50호로 인정받아 봉원사 영산재보존회(靈山齋保存會)만이 영산재를 봉행하고 있단다. 영산재를 베풀어 망자로 하여금 해탈과 극락왕생을, 살아있는 중생에게는 불법의 가르침과 신앙심을 고취시켜 영산회상에서 불연을 맺고 업장소멸과 깨우침에 이르는 의식이다. 삶과 죽음을 초월한 영산회상의 일원으로 세계평화와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장엄한 불교의식이다.

삼천불전 용마루에 6월의 햇살이 내린다
극락전 건물은 봉원사의 꽃이다. 4군자 문향의 문살조각과 색바랜 단청의 고즈넉한 우아함이 시공을 초월하는 극치미이다. 전면 문살대 위에는 대나무, 국화, 연꽃 및 각종 화초를 덧붙여 화려함을 장식했다.

1899년 인천감옥을 탈출한 백범 김구 선생(법명 원종)이 공주 마곡사를 떠나 이곳 새절(봉원사)에 은거했다. 1950년 9월28일 서울수복 때 영조의 친필현판과 사보, 이동인스님과 개화파 인사들의 유물이 함께 소실되었다. 이때 대원군(大院君)의 별처 아소정(我笑亭)을 옮겨 중건하여 염불당(念佛當)이라 명명했다. 봉원사 대방 안의 '봉원사' 현판은 영조의 어필로 6.25때 불탔는데, 흥선대원군의 사후 묏자리(염리동)에 세운 별장을 옮겨지었다.

대웅전과 영수각
전씨영각(全氏靈閣). 전씨부부가 한 평생 모은 재산 전부를 봉원사에 기부했다. 하여 봉원사에선 매년 전씨부부 기일에 제사를 모셔 기념하며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미륵전 앞에 ‘한글학회 창립총회’ 표지석이 있다. 1908년 8월31일 주시경 선생이 국어강습소를 열어 강의하고, 졸업생과 뜻을 같이한 인사들이 우리말과 글을 연구`교육하려 결성한 장소였다. 또한 봉원사 대방 안에 추사 김정희의 글씨 '청련시경'과 '산호벽수'가 걸려있는데 청련은 당나라 시인 이백의 호로, 청련시경은 이백이 시를 지을 만큼 빼어난 장소를 뜻한다. 청나라 옹방강의 글씨 '무량수각‘도 있다. 명부전(冥府殿) 현판은 삼봉 정도전의 글씨이고, 기둥에 쓴 주련은 매국노 이완용 총리대신의 글씨다.

영안각

만봉스님은 단청장으로서 70년대 초부터 일찍이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가 되어 지금까지 독보적인 불화의 세계를 구축하고 후학양성을 하는 불화와 단청의 대가 - 금어(金魚)로 칭송된다. 대웅전 법당의 탱화와 단청은 인간문화재 이만봉 스님의 작품이고 법당안의 범종(梵鐘)은 충남 덕산 가야사에 있던 종인데 조선시대 억불정책(抑佛政策)을 수행하던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쓰기 위해 가야사를 불태웠고 그때 타지 않고 있던 종을 옮긴 것이다. 오늘 오후 한나절을 봉원사 영산재에 빠졌다. 영산회상을 상상해 본다.        2023. 06. 06

▲미륵전은 미륵부처님의 입상을 봉안하고 있으며, 이곳에는 인등을 모신 인등각으로도 사용되어지는 전각이다.▼
'한글학회 창립총회' 표지석이 있는 미륵전 칠층석탑
▲명부전(冥府殿)편액은 600년 전 조선개국의 일등공신 삼봉 정도전의 예서체 친필이다, 이성계가 부인 강씨 신덕왕후가 승하하자 명복을 빌기위해 정동에 현당인 흥천사를 세워 명부전을 짖고 삼봉에게 편액을 쓰도록 했다. 그 편액이라. 4개의 주련은 매국노로 지탄받는 친일 어용총리 이완용의 친필이다.
봉원사의 염불당(念佛堂)인 대방(大房)은 조선말 흥선 대원군의 별장인 "아소정(我笑亭)" 본채 건물을 이건했다. 대방에는 추사 김정희가 쓴 "청련시경(靑蓮詩境)"(하) , "산호벽루(珊湖碧樓)"(상)와 추사의 스승인 옹방강(翁方綱)의 행서체현판 "무량수각(無量壽閣)"(중앙) 이 걸려있다.
칠성각 후면 탱화
삼천불전 풍경소리가 맑은 6월의 시공을 공명했다
500살도 훨씬 넘겼을 웅장한 귀목은 봉원사의 수호수다
삼천불전서편
삼천불전(좌)과 앞마당의 부처님진신사리탑
삼천불전 서편에서 조망한 마포 마천루 숲
삼천불전후면 탱화
대웅전
종각의 종의 아래에 단지가 묻혀있는데 이것은 소리의 공명정도를 길게 하고자한 방법이란다.
연지
▲용암사▼
대웅전 뒷풍경, 대밭 죽순이 지붕을 넘본다

# 이 글 <봉원사의 영산재>는 6월4일에 쓰고, 오늘(6월6일) 봉원사 영산재를 참배하고 와서 수정보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