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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달팽이 부엌’에서 토끼해 맞다

달팽이 부엌에서 토끼해 맞다

울`식구들이 ‘달팽이 부엌’에서 섣달그믐을 보내자고 율과 앨이 모의(謀議)를 한통에 울`부부는 늦은 오후 죽전 보정동 카페거리를 찾아들었다. 카페 ‘달팽이 부엌’은 협소한 공간을 최대한 오밀조밀 활용하고 있는 스탠드`바 식의 양식집인데 부부가 요리에서 접대까지 서비스한다. 비좁은 달팽이 부엌에 손님발길이 끊기지 않음은 깔끔하고 맛깔난 음식 탓이란다. 율과 앨이 몇 번 드나들다 울`식구들까지 한 시간 반을 달려와 특별한 대접을 받는 단골집이 됐다.

달팽이부엌
새우리조트

 섣달그믐답게 카페거리는 들떠있었다. 달팽이 부엌은 협소한 공간에 울`다섯 식구의 테이블을 마련해줘 딴 손님들은 스탠드바를 차지한 채 토끼해를 맞고 있었다. 음식맛과 와인에 취한 우린 섣달그믐과 계묘년의 징검다리에서 얘기꽃 피우며 밤으로의 여행을 하고 있었다. 이번의 계묘년(癸卯年)은 흑색[癸] 토끼[卯]해를 이름인데 검정색은 지혜를, 토끼는 다산과 평화를 상징한다니 잘만하면 행복한 한 해가 될 성싶다고 우리는 와인 잔을 부딪쳤다.

치즈플레터

새끼를 많이 낳는 토끼는 영리한 동물로 회자된다. ‘교토삼굴(狡免三窟)’이란 말은 순둥이 토끼의 삶의 지혜를 일컬음이다. 착하고 이쁜 토끼는 평생을 뉘한테 못된 짓 한 번 안하지만 딴 동물들의 먹잇감으로 위태위태한 일생을 산다. 하여 위기타개책으로 은신처인 토굴을 세 개 이상 파서 서로 연결하여 위기탈출구로 사용한다. 만물의 영장이란 인간들이, 아니 나는 지금까지의 삶에서 위기탈출 때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더는 주위에 피해를 주지 않고 슬기롭게 난관을 헤쳐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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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에다. 토끼만도 못한 삶을 살아온 셈이다. 더구나 토끼는 누군가의 배를 부르게 하는 희생물로 생을 마친다. 교토삼굴은 다분히 종족보존을 위한 은신의 방책이라. 어쨌거나 나는 내 나름의 ‘교인삼굴(狡人三窟)’을 식구들에게 얘기했다. 아내의 신뢰를 잃지 않고, 매일 두 시간 이상의 트레킹으로 건강을 유지하며, 화내지 않고 배려하는 삶을 살겠다고. 내 얘기를 듣자마자 율이 ‘좋습니다, 아버지 건배하시지요.’라고 와인 잔을 들고 식구들 모두에게 건배자축을 선창 했다.

글고 차례대로 각자 나름의 ‘교인삼굴 삶’의 의지를 얘기했다. 토끼 땜에 각자의 삶을 반추해 본 섣달그믐이었다. 토끼는 참 영리한 놈이다. 그의 구토설화(龜兔說話) 중에서 수궁전(水宮傳) 한 절을 옮겨봤다.

“東海波臣玄介使(동해파신현개사) 동해의 자라가 사신이 되어

一心爲主訪靈丹(일심위주방령단) 임금 위한 충성으로 약 구해 나섰네.

生憎缺口偏饒舌(생증결구편요설) 얄미운 토끼는 요설을 펴서

愚弄龍王出納肝(우롱용왕출납간) 간을 두고 왔다고 용왕을 우롱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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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왕의 병세에 토끼의 간이 특효약이란 처방이 내리자 용궁에선 별주부에게 토끼를 잡아오라고 명한다. 별주부는 지상에 올라가서 토끼에게 ‘먹이도 적고 위험한 곳에서 무슨 고생이냐? 내가 먹이도 풍부하고 목숨도 위험하지 않는 좋은 곳을 안내할 테니 내 등에 업히라.’라고 꼬셨다. 꾐에 빠진 토끼는 낯선 용궁에 갔는데 자신의 간이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한 영약(靈藥)으로 사용한다는 이야기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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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곧장 평정심을 찾은 토끼는 “저는 1년에 한 번씩 간을 햇볕에 말리는데 아까 나무에 매달아 놓았다.”고 아뢴다. 별주부는 토끼를 등에 태우고 다시 지상으로 나와 토끼한테 빨리 간을 가져오라고 채근하며 놓아줬다. 그 길로 토끼는 함흥처사였다. 순간의 기지(奇智)로 위기탈출 한 토끼의 ‘지혜로움’은 계묘년을 살아가야하는 우리들의 지표이겠다. 나의 영달을 위해 누군가의 인격을 음해하는 정상배들 - 왕의 비위 맞추려 토끼사냥에 혈안 된 해바라기 정객들은 계묘년엔 개과천선 했으면 싶다.

명란꽈리 파스타
울`식구들이 비운 와인들

너를 결단내야 내 길이 탄탄대로일 거란 교만은 자해(自害)의 길이다. 토끼 간을 영약으로 생각하는 오만의 역사는 우리 모두를 슬프고 역겹게 했다.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세상을 꿈꾼다. 그 누구에게도 피해주지 않고, 더는 신세지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길은 내 마음에 달렸다 할 것이다. ‘토끼의 지혜’를 늘 생각하는 삶을 살자고 울`식구들은 또 와인 잔을 부딪쳤다. 섣달그믐은 그렇게 깊숙이 영글어갔다. 아니 여명의 실루엣이 밤하늘에 서기처럼 아른댄다.                     2023. 01. 01

감바스알하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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