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나들길 14 - 초지진(草芝鎭)포구 횟집에서
청명한 가을아침인데 한기가 호주머니까지 파고든다. 8시 반에 집을 나섰다. 동서(同壻)내와 강화도초지포구 횟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약속해서다. 동서가 가끔 찾았다는 영순호횟집은 푸짐하게 차린 싱싱한 회를 포식하면서 미련이 남아 약속한 두 번째 강화도횟집나들이다. 네 명이 4인분을 주문해 먹다먹다 생선뼈다귀 탕은 테이크`아웃 했었다.
일찍 출발해야 좋은 자리 잡아 식도락만끽하다 일찍 귀가할 수 있다고 어제 밤에 동서가 설레발을 떨었는데, 강화도에 진입하자마자 정체되는 교통은 그걸 실증이라도 하는 듯했다. 초지대교를 건너 강화나들길14 입구 - 초지진 해변길을 5분쯤 달리면 열대여섯 개의 횟집이 늘어섰지만 도무지 회집단지 같지가 않다. 가게정문이 바다를 향하고 있어서다.
영순호집(딴 집은 안 가봐서 모른다)은 오육십 대 아저씨와 아주머니 세 분이 손님 받느라 정신없어선지 고급스런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집이다. 오직 푸짐한 먹거리로 승부수를 거나싶었다. 농어와 우럭을 비롯한 잡어를 두툼하게 썰어 접시에 수북이 쌓아올린 - 눈썰미 맛은 서푼아치도 없다. 산 낙지를 썰어 내놓는데 완전히 썰지를 안 해 꿈틀대는 낙지토막을 떼어 먹을라치면 여간 곤욕이다.
조기새끼구이, 멍개, 조개, 큰새우 등 서비스해물이 다 막일꾼 솜씨다. 정갈하고 보기 좋지 않아 먹기 싫으면 먹지마라는 듯싶다. 마지막코스는 생선뼈따귀찌개인데 냄비크기와 양에 놀란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손님들도 다 수더분하고 인심 좋을 것 같은 보통사람들이다. 암튼 식당은 정오가 되기 전에 만석이다. 식당 앞은 바다다. 바다 너머엔 인천 대명항구다. 큰 강 같은 바다의 탁류위에 어선 몇 척이 불침번처럼 유유한다.
탁류가 흐르는지, 어느 쪽으로 흐르는지, 아님 멈춰 탁류가 된 건지 알쏭달쏭하다. 저 탁류를 거슬러 한양침범을 시도했던 열강의 함선에 우리 군과 민간이 얼마나 살상당하고 수장 됐던가? 1866년, 고종의 천주교인 박해에 항의하려 저 뱃길로 들어온 프랑스군과 싸운 관군이 패하여 초지진이 함락되었고, 1871년엔 미 해병대에 다시 초지진이 함락되니 신미양요였다. 글고 1876년에는 일본군이 강화도에 포격하면서 침범한 한일수호조약 맺어야 했었다.
엊그젠 우리해군이 일장기에 경례를 했다고 구설수에 올랐다. 김정일은 우리 군이 미`일본군과 합동훈련 한다고 트집 잡고 휴전선 하늘에서 으르렁댄다. 자강(自强)은 최고의 안보지만 안보를 핑계로 전술 핵 설치는 자멸의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최고의 안보는 전쟁발발의 핑계거리를 없애는 외교정책이다. 미국과 중국의 틈새를 이용하는 등거리외교의 지혜를 짜 내야한다. 군비증강은 군수업자들의 배만 따시게 함이다.
프랑스, 미국, 일본의 침략에 이은 외래문명에 우리전래의 고유풍속들이 훼손되던 암울한 시대에 우리고장에 대한 애정과 관심에 천착한 강화도출신 선비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1846-1916)이 있다. 과거에 급제하고도 벼슬길 대신 강화17개면 100여 마을을 나귀를 타고를 샅샅이 발길로 더듬어 그 감상을 시와 산문으로 남겼다. 이른바 '심도기행(沁都記行)'으로 오늘 날 ‘강화나들길’의 효시다. 화남선생의 시 한 수를 옮겨본다.
" 斗頭我步帶春風 봄바람 맞으며 두두미를 걷노라
一府山川兩眼中 온 마을의 산과 내가 한 눈에 들어오네.
明月綠楊諸具榻 밝은 달 푸른 버들 여러 구(具)씨 탁상에서
滿杯麯味使人雄 잔 가득한 술맛이 힘을 내게 하는구나. "
2022. 1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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