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이태리-두바이여행 17일
2) 스위스 취리히(Zurich) 첫날
취리히의 첫날아침이 밝았다. 여명이 아닌 그냥 날이 샜다. 회색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가랑비를 흩뿌리고 있었다. 고도가 높아선지 아님 알프스산맥 탓인지는 모르지만 삐딱하면 날씨 궂은 게 취리히라고 율이 변명(?)을 한다. 파크하얏트 1층식당에서 뷔페식 아침식살 했다.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스위스지만 5성급호텔의 뷔페식단은 호사스럽다할까 눈과 입을 현혹시킨다.
호텔에서 우산을 빌어 구시가지산책에 나섰다. 호텔에서 10분쯤 걸으면 갈수 있는 프라우뮌스터 성당(Fraumünster Church)을 향한다. 취리히시내는 5층 이하의 건물로 스카이라인을 만듦인가? 구시가지에서 뾰쪽한 첨탑 두 개가 솟구친 성당은 취리히의 랜드 마크 같이 돋보인다. 이슬비가 옷 젖지 않을 만큼 흩날린다. 그래 설까? 몇 백년을 발길에 닳은 네모돌박이 길은 물기 젖어 반들반들 윤기 자르르하다.
게다가 정갈스럽고 고풍이 밴 건물들은 돌출간판이나 입간판이 없고 상점 밖에 내놓은 진열대도 없어 얼쩡대는 사람이 없다면 흡사 유령의 도시다. 모든 전선은 지중화 하고 건물사이에 전선 한가닥을 걸쳐 길 중앙에 가로등을 매달아 어둠을 녹힌다. 큰길엔 트램(전차)전선뿐이다. 휴지조각이나 담배꽁초도 없다. 나는 부러 하수구를 들여다봤는데 역시 깨끗했다. 시민들이 이런 정갈을 떨면서 살아갈 수도 있구나! 몇년 전에 찾았던 독일 마인츠시가지의 청결이 부러웠는데 취리히는 한 단계 더 상위다.
수시로 벌리는 보수공사로 누더기 된 땜질포도, 요란한 간판으로 도배된 건물들, 전봇대의 전선이 거미줄처럼 엉킨 시가지, 상점마다 물건거치대를 거리에 내놔 머리통 헷갈리게 하는 서울에서 사는 나에겐 적잖은 충격이었다. 이렇게 정갈한 도시가 있을까? 간판 없는 너무나 단순해진 시내에서 목적지를 찾는데 불편은 없을까? 휴대폰의 지도 웹을 모르면 어찌할까? 허나 어지럽고 혼란스런 시가지에서 간판 찾기는 더 짜증나고 헷갈려 정신분열을 야기 시킬지도 모른다.
암튼 나는 너무나 깔끔하고 잘 정돈된 취리히시내가 이상형의 도시 같아 도착 하루 만에 영구히 살고 싶었다. 집들도 독특한 개성을 발휘하며 흡사 주택전시장 같고, 베란다의 화분꽃들은 깔끔한 도시를 더더욱 아름다운 멋들어진 낭만의 도시를 만들었다. 우중에도 우산 없이도 결코 서둘지 않고 교통규칙을 철저히 지키는 시민들의 여유로움이 되려 어설퍼 보이는 나였다. 진종일 이슬비가 내리는데도 우비를 걸치거나 우산을 받친 사람들을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방수`후드재킷을 걸치고 우중의 산책을 즐기는 듯한 취리히시민들! 고어텍스재킷이 고산지대나 북반구의 야외활동복으로 그만이었단 글을 읽은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리마트(Limmat)강변길을 따라 두 개의 녹색첨탑이 회색하늘을 찌르는 프라우뮌스터 성당(Fraumünster Church)에 도착했다. 300여 년동안 취리히시를 수호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로 손꼽힌다는 성당은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이 만든 5개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유명하다.
형이상학적인 도안을 독특한 색감을 칠해 감각적인 아름다움으로 표현한 창유리와 남쪽 익랑의 장미꽃 문양은 방문객들이 젤 사랑하는 곳이란다. 안쪽에서는 프레스코화도 볼 수 있다. 아우구스토 자코메티(Augusto Giacometti)가 1945년에 제작한 “천상의 낙원(The Heavenly Paradise)”을 북쪽 익랑에서 볼 수가 있는데 창유리와 뾰족한 첨탑은 사뭇 인상적이다. 사진촬영이 금지돼 아쉬웠다. 교회 뜰(마당)에선 마침 주말 번개시장이 열리고 있었는데 유기농 농산물은 구색맞추기 같고 먹거리와 간이무대공연 관람의 축제장 같았다.
또한 조촐한 무대공연도 열리고 있었는데 이슬비가 내려도 관객들은 요지부동이다. 특히 나를 놀래 키는 건 좌석 없는 마당에 줄곧 서서 공연에 홀린 듯한 어린애들의 진지한 태도였다. 부모의 손을 잡고 공연장에 선 애들은 나대거나 떠들지 않는 진지함은 공연보다 가슴 뭉클케 했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헛눈 팔고 천방지축 떠드들면서 나대는 불안정한 모습과 확연히 달랐다. 왜일까? 엄격한 사랑의 잣대로 키우는 가풍이 떠올랐다. 무작장 퍼주기 사랑은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번개시장이나 공연장에서 진지한 분위기를 공유하려 노력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체험학습 하는 번개시장은 건강한 시민사회를 일궈가는 산교육장이 될 터였다. 애들이 어른들의 공중도덕과 바른사회생활의 자세를 학습하는 축제의 장이라서 애들을 동반한 주말나들이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은 부모님이다. 성당의 일일장마당은 어린애들의 생생한 실습교육장이었다. 그런 사회적인 윤리의식과 공존의 삶은 취리히시가 도시의 유토피아를 일구는 자양분이 됐을 테다.
취리히시가 살기 좋은 낭만의 도시란 생각이 들었다. 취리히시민들이 부러웠다. 취리히에 정착해 살고 싶다. 알프스빙하가 녹아 시내를 흐르며 푸나무들의 생존을 도와 숲의 도시를 만들고, 나아가선 거대한 취리히호수를 만들어 살기 좋은 휴양도시를 만들었지 싶었다. 목축업 외에 별 볼일 없었던 알프스고산지대인 스위스의 중심도시 취리히는 행복을 건져올릴 수 있는 파라다이스란 생각을 해봤다. 2022. 0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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